무명의 기도자 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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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본문: 잠언 30:7-9
Proverbs 30:7–9 NKRV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 우리는 이 아굴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학자들도 아굴에 대해 밝혀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아굴은 아브라함, 야곱처럼 신앙인 명부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가 나오는 열왕기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엘리야,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무명의 기도자입니다.
그는 무명의 기도자였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그가 참으로 겸손한 기도자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좋게 보이기 위해 겸손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겸손이 좋은 덕목이기 때문에 수양 차원에서 겸손한 행동을 보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겸손은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겸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자신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겸손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무명의 기도자 아굴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겸손한 무명의 기도자였는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Proverbs 30:2–3 NKRV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자신을 짐승에 비유합니다. 자신이 짐승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짐승처럼 천하고 미련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표현이 아굴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었던 겸손의 표현이었지 실제 그의 모습이 짐승처럼 무지했다고 말하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실제 짐승처럼 미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혜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있는 표현만 보아서도 그가 지혜가 없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에서 아굴은 ‘지혜’와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을 동격으로 놓고 있습니다. 자신은 지혜도 없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도 없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아굴은 거룩하신 이를 경험한 사람이었고, 지혜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절 말씀 전체를 원어로 보면 ‘지혜’와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을 동격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굴은 자신에게 지혜가 없다고 말했지만 지혜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동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굴이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가 가득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인가요? 왜 아굴은 지혜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같다고 보고 있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다.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혜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거룩한 자를 아는 지식’에서 ‘안다’는 뜻의 히브리어는 ‘야다’이고, 헬라어는’기노스코’입니다. 이 뜻은 경험을 통해 체득하여 아는 앎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은 지혜가 없고 거룩한 자를 경험한 지식 또한 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기 위해 사용한 표현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거룩한 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분을 경험하고도 지혜를 얻지 못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아굴이 하나님에 대하여 체득하여 알게 된 앎은 4절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잠언 30:4
Proverbs 30:4 NKRV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아굴이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아굴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하늘에 올라 갈 수 없다는 것을 아굴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상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상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굴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입니다.
2. 아굴은 바람을 그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 다. 특별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루아흐는 바람, 숨, 호흡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성령 이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의 장중의 손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하 나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지도를 받는 존재지 성령을 지휘할 수 있 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3. 물을 옷에 쌀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욥 26:8
Job 26:8 NKRV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욥은 하나님께서 물을 옷이 아닌 빽빽한 구름에 싸셨다고 말합니다. 수분으로 구름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만 홍해를 가르시어 홍해의 물을 기둥처럼 세울 수 있으신 것입니다.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이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4. 땅의 모든 끝을 정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잠언 8:27-29
Proverbs 8:27–29 NKRV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경계를 구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에 대한 앎, 지식, 지혜를 소개한 이후에 독자들인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와 같이 질문합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 여러분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의 이름은 ‘예수’이십니다.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하나님을 경험한 기도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도 잠언을 통해 지혜에 대해 이와 같이 정의했습니다. 잠언 9:10
Proverbs 9:10 NKRV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면 지혜롭게 행동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사랑하게 돼 세상에서 저항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순간 순간 하나님을 애써 부인하려는 순간들도 많을 수 있지만 다시 귀소 본능을 발휘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 앞으로 자신을 데려갑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들의 삶에 그와 같은 지혜로운 저항이 있으십니까?
연어가 산란기에 강 상류로 올라갈 때 큰 저항을 이겨내야 합니다. 연어는 저항을 이겨가며 강 상류로 올라가려는 것은 그 곳이 알을 낳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는 것을 연어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삶의 우여곡절 가운데에서 죄를 짓고 쓰러져 있을 수 있지만 다시 세상에 저항하여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품이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부터 여러분들은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여 예배당으로 찾아 오신줄 믿습니다.
대부분의 천사들은 하나님께 반역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반역한 천사가 하늘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루시퍼라는 천사의 반역 이후에 또 다른 천사의 반역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치장하고, 행동을 조심합니다. 하물며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보고 계시다면 어떠한 행동을 보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행동을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동의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아굴은 하나님을 경험한 무명의 기도자였기 때문에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라는 사실을 하나나님을 경외할 때 주어진 지혜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짐승’ 같다. 지혜와 지식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 하나님을 경험했던 무명의 기도자였기 때문에 그로인해 주어진 지혜가 넘쳤던 것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를 피해갈 수 없는 교만한 자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로마서 일장에서 이방인들의 추악한 죄의 목록들을 나열하며 한마디로 그들의 사악함을 이와 같이 정의했습니다.
Romans 1:22 NKRV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그런 점에서 기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겸손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내가...내가 뭘 했고,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꿈꾸는 것은 이렇고...내가, 내가”
이에 반하여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루셨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 하시기를 좋아하십니까? 아굴은 하나님과 그분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에 대해 실컷 이야기를 하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로 그 화제를 넘깁니다. 겸손한 자의 특징은 자신보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집중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무명의 기도자 아굴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Proverbs 30:5–6 NKRV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잠언 삼십장 오절의 말씀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18:30 (NKRV)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기서 ‘순전하다’의 헬라어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제련하고, 정련하다”란 의미입니다. 뜨거운 불속에 금을 넣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과정을 이미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그 말씀에 다른 뜻을 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하일라이트인 7~8절 말씀은 아굴의 기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자신을 짐승과 같이 무능하고, 지혜와 지식이 없는 자로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험한 지혜가 가득한 아굴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구절입니다. 우리 함께 힘차게 읽어 보겠습니다.
Proverbs 30:7–8 NKRV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아굴은 이방인들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방언으로 오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방언에 대해 말할 때 고린도전서 십사장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방언은 통변의 은사가 없을 시 알아들을 수 없는 천상의 언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교회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13
1 Corinthians 14:13 NKRV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이 말은 방언을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을 때 더 큰 유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성으로 기도하기 힘들 때, 그리고 영적으로 시급한 기도를 하게 하실 때 우리의 영이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2시간 내내 방언으로만 기도하는 것은 건강한 기도의 방법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놓고 기도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여 기도할 때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대해 어떠한 감동과 말씀을 주시는지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마음의 열매’라고 표현했습니다. 방언으로만 기도하게 되면 ‘마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4:14
1 Corinthians 14:14 NKRV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럼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볼 때 온전한 생각으로 기도하다보면 성령님께서 방언으로 기도해야할 시점을 주시는 데 그 때 방언으로 기도하고 다시 온전한 생각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고린도전서 14:15
1 Corinthians 14:15 NKRV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바울도 저와 같은 조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과 마음 즉 우리의 생각을 분명하게 하나님께 표현하는 기도를 섞어서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자신이 기도해야 내용에 대해 정확히 알고 기도했습니다.
첫째,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둘째,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그리고 단서를 붙입니다. “죽기 전에 응답해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기도는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만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죽기 전에 자신은 하나님께 이 두가지 기도 제목에 대해 응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굴의 기도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굴이 하고자 했던 두 가지 기도의 내용은 주기도문의 기도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첫째, 허탄한 말 또는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둘째로 너무 가난하지도, 너무 부하지도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허탄이란 텅빈, 공허한, 허황된 자랑, 말을 자신에게서 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거짓은 하나님의 속성과 정 반대의 속성, 마귀의 속성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를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사소한 거짓말을 할 때 기억해야 합니다. 그 순간 만큼은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세상 나라가 아닌, 마귀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굴도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했던 것은 그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도 자신을 포장하고, 과장하고, 허황된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거짓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자신의 손실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고, 항상 진실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는 현실적인 기도보다 이 하나님 나라가 자신의 삶에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먼저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올바른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탐욕이 가라 앉고 자족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 발견되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의 마음으로 기도해 보겠습니다.
- 하나님 오늘 나를 돋보이게 해주세요.
하나님 나라의 기도를 해보겠습니다.
- 허탄을 멀리하게 해주세요.
탐욕의 마음으로 기도해보겠습니다.
- 웬만한 거짓말은 그냥 넘어가 주세요.
하나님 나라의 기도를 해보겠습니다.
-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
탐욕의 마음으로 기도해보겠습니다.
- 더, 더 큰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나라의 기도를 해보겠습니다.
- 너무 가난하지도, 너무 부하게도 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Proverbs 30:9 NKRV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든 이유는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자들 중에서도 너무 가난한 자들은 신세 한탄과 삶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무명의 기도자 아굴은 이 기도를 통해 어떤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핵심은 부와 가난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자도 가난하게 하시고, 가난한 자들도 부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무엘상 2:7 (NKRV)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중요한 것은 부자나 가난한 자가 그들의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Proverbs 30:8 NKRV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어디서 많이 듣던 표현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주기도문에서 나오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의 표현과 같은 표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을 할 때 그들에게 먹을 것이 없어 하나님께서는 매일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만나와 매추라기로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 분량만 가져가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만나와 매추라기를 쌓아 보관했습니다. 왜입니까? 탐심 때문이었습니다.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일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더 많은 양식을 자신의 곳간에 쌓아 두었던 것입니다. 그 쌓아 놓았던 양식들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썪어버렸습니다.
저는 저의 모든 소유를 나누어 주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건강도 사용하고 관리해 본 사람이 그것들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돈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셔도 무엇을 사야할지 모르는 청빈한 분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시간이 있어도 어떻게 여가를 즐겨야할 지를 모르는 분들도 만나 보았습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자신도 사용하고 남도 유익하게 하는 분들도 만나 보았습니다. 넘치는 부를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만나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부하든, 가난하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과 지혜와 물질을 가지고 당사자가 누렸고, 누리지 못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매일 매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통치가 자신의 삶에 주어졌을 때 너무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시절 마음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자 하나 삶의 현실이 왜 그렇게 힘이 들던지...인내하며 그 시절을 잘 통과 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욥도 다양한 시험을 극복했지만 지속적으로 찾아온 고통과 가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분에 넘치는 물질을 소유했던 때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시절 모든 것이 편했지만 마음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편한 것과 평안은 분명 다릅니다. 삶이 편해지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열심이 사라지기 시작 했고, 그로 인해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무명한 아굴의 기도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의지하기 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 그가 가진 부의 양을 너무 적게도, 그렇다고 너무 많게도 하지 않기를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얼마든지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부자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언제 그것이 가능합니까? 가난하든, 부하든, 일체의 자족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관심을 두고 삶을 살아갈 때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자족할 수 있는 선함이 없지만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인용 구절
1. 잠언 30:2-3
2. 잠언 30:4
3. 욥기 26:8
4. 잠언 8:27-29
5. 잠언 9:10
6. 롬 1:22
7. 잠 30:5-6
8. 시편 18:30
9. 잠언 30:7-8
10. 고전 14:13
11. 고전 14: 14
12. 고전 14:15
13. 잠언 30:9
14. 삼상 2:7
15. 잠언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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