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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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엡5:1-4)
최근에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드레스 코드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걸 보니까, 이렇게 표현을 해놓았습니다. 그날의 TPO 또는 무드에 맞는 의복 스타일, 색상, 컨셉을 지정하고 그에 맞춰 입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 주 패션 용어 몇 개를 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보던 중에, 펴샌을 알려면, tpo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tpo가 뭔가 보니,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 이 세 가지가 패션을 이루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언제 입는 것인가/ 어떤 장소에 가는 것인가?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그리고 또 하나 참 생소한 단어가, 요즘 젊은이들이 인스타에 자주쓰는, ootd라는 단어입니다. Outfit Of The Day. 그 날의 옷차림, 오늘의 착장. 이것들만 잘 알아도 좋은 패션 감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저는 제 인생에 정말 어려운 것이 이런 패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너무 패션에 대한 기대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옷입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영적으로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말미에, 우리가 영적으로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예수님으로 옷입는 것이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간에 맞게 장소에 맞게 상황에 맞게 우리가 입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옷이 있다는 것입니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롬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떻게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까? 누구로 옷입고 예수 그리스도오 옷입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자 그렇다면, 새로운 한 주간, 우리가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은 어떤 옷일까요? 1. 사랑의 웃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옷입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엡5:1-2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러분 말씀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거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어떤 옷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의 옷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주 어떤 옷을 입고 한 주간을 사셨습니까? 아니 여러분은 오늘 어떤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으로 옷입고 살아야 할 첫 번째 옷으로 사랑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사랑의 옷을 입는다는 게 뭘까요? 여러분, 사랑하며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제가 신학교 다닐따 정두영 교수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음악가 교수님이셨는데, 첫수업때 그 분이 항상 작곡하신 귀한 곡을 부르면서 시작하셨습니다. 그 곡이 뭔가하면,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그때 이 곡을 부르며 사랑이 뭔지를 많이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지구촌에서 섬길 때, 참 귀한 사랑을 많이 받고, 귀한 사랑을 많이 입었었습니다. 특히 개척 전에 모셨던 진재혁 목사님을 통해서 받은 귀한 사랑이 이번 주 다시금 좀 많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은 저랑 아내랑, 한 모임을 가는데, 저희가 목사님을 모시고 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박목사 지구촌 20년에서 가장 후회되는게 뭐냐? 그래서 생각 가운데, 목사님, 20년 사역하면서 저는 해외선교를 통해서, 해외를 많이 다녀왔는데, 저희 아내는 하번도 해외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차에서 내리시면서 박목사야, 바로 해외 여행 일정 좀 잡아라. 휴가 줄테니 개척하기 전에 먼저 해외 여행좀 다녀와라. 첨에는 농담이구나 싶었는데, 다음날 비서실에서, 목사님 여행 일정을 달라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이 꼭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인사를 드리는데, 목사님 조그마한 봉투하나를 주셨습니다. 제가 그 봉투를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근데 제가 개척하고 난후, 목사님이 케냐로 떠나신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제 후배 가운데 한 전도사님이 아이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키우시던, 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이가 개를 키우다보면 정서적으로 좋을 수 있으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가 큰 개를 보니까 너무 힘들어하고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이 후배가, 며칠을 고민하다고 진목사님께 다시 돌려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케냐로 떠나시는 기 며칠 전 이전도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애견 가게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강아지를 한 마리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케냐로 가셔야 하는데, 사실 목회자가 많기 때문에 이름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 후배를 사역자를 위해서 일부러 애견샵에 가서 강아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큰 개는 힘들지 모르지만, 어린 강아지를 괜찮을거라고...
사실 지구촌교회는 당시 목사만 50명이 넘었습니다. 풀타임 전도사님들을 합치면 약 200명 가까이 됩니다. 저는 그 모습에 참 귀한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내)가 입어야할 곳이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도로서, 목회자로서, 집사로서 이번 한 주간 입어야할 옷이 무엇일까요? 저는 주일이 되면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번 주는 내가 입어야할 드레스코드가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입어야야 이번 주 드레스코드는 love라는 드레스 코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으로 옷입는다는 게 뭘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옷입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사랑의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예수님으로 옷입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의 옷입고 살아가는 복된 한 주간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은 어떤 옷일까요? 1. 사랑의 웃을 입어야 합니다.
2 거룩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자 오늘 본문에 바울이 우리가 입어야 할 두 번째 옷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엡5:3-4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자 말씀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음행이나 온갖 더러운 것과 탕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초자 부르지 말라. 이게 성도의 마당한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마땅한 것,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입어야 할 거룩의 옷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왜 바울은 하필이면 이 당시, 바로 에배소 공동체에게 이런 거룩을 강조했을까요? 당시 에배소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에배소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고, 그리고 우상의 중심지였습니다. 지중해의 모든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지중해의 모든 상권, 경제, 돈의 흐름이 이 에배소를 통해서 시작되고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 문제, 탐심과 탐욕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건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 에배소에는 아데미 여신상이 있었습니다.(자료화면), 이 신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아데미 여신상은 풍요와 다산의 여신입니다. 당시 아데미 여신산 큰 것은 120미터, 넓이가 60미터, 솔로몬 성전의 3.4배에 달했습니다. 여기 앞에서 풍요와 다산을 위해서 제사를 들고 거기 아데미 여신상을 섬기는 여사제들과 음란한 행위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이런 음행, 음란, 온갖 더러운 것, 탐욕은 당시에서는 너무나 만연되어져 있는 문화였습니다. 이러한 도시 한 복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어야 할 정말 중요한 옷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거룩의 옷이고, 순결함의 옷이고 깨끗함의 옷인 줄로 믿습니다.
마16:16에 보면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천국열쇠를 줄게.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야 말로 만능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한 신안인의 고백 같은데 왜 이 신앙고백을 이렇게 높게 예수님은 칭찬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13절의 말씀을 같이 보아야 합니다. 마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이샤랴 빌립보”라는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자료화면)라는 것은 가이사, 황제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황제의 이름을 그 도시앞에 붙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의 조건이 만족 되어야 했습니다. 첫째, 황제의 이름에 걸맞는 웅장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으로 추정해 보건대, 가이사랴 빌립보는 꽤 큰 도시였습니다. 제가 이스라에 성지 순례를 가서 보았을때도 가이사랴 빌립보는 굉장히 규모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둘째는 황제의 동상이 있고, 황제를 숭배해야 한다. 큰 도시의 한복판에 황제의 동상이 서 있고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지나면서 황제를 숭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이사, 황제가 제 인생의 주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이사랴 빌립보, 그 도시는 아주 크면서 그 도시에는 황제의 동상이 있고, 거기에 모든 사람들은 황제를 숭배했습니다.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들어가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때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황제를 주인으로 섬기고, 황제가 주는 돈, 황제가 주는 권력, 이것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만이 제 인생의 주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있는 이 동탄이라는 신도시가 또 하나의 바로 황제의 도시가 아닐까요? 세상이 주는 돈, 권력, 권세, 이것이 주인되어 살아가고 있는 도시가 아닐까요? 이 도시의 한 폭반에서 오늘 어쩌면 주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 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돈이 최고이고, 권력과 권세가 있어야 한다고 고백하는 이 시대의 한 복판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고백할 수 있느냐? 저는 여러분의 고백이 이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시니이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이 도시 한 복판에서 우리가 입어야 할 곳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룩의 옷이고, 순결의 옷이고 깨끗함의 옷인 줄로 믿습니다. 다들 돈돈하며, 성공성공하며 살아가는 이 도시의 한복판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은 어떤 옷일까요? 1. 사랑의 웃을 입어야 합니다.
2 거룩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3.감사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야기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감사의 옷입니다.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엡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자 말씀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감사의 말을 하라. niv, but rather thanksgiving. 오늘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감사의 옷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감사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오늘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감사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인물이 구약의 다니엘입니다. 당시 다니엘은, 바벨론 왕 다리오왕이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사자굴에 던진다는 조서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자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지만 이번 주 새롭게 다시 한번 본 단어가 바로 전에 하던 대로, just as he had done before.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다니엘이 바벨론같은 세상속에서 매일같이 입고 살았던 옷은 바로 감사의 옷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바벨론 포로민으로 사는 다니엘의 삶은 때로는 비합리적이고,비인격적이고, 때론 이해불가능하고, 다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그가 매일 입고 산옷은 바로 감사의 옷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감사의 감사의 옷이 아닐까요? 아니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요청하는 모습이 감사가 아닐까요 지금 내 상황, 환경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주님이 내 인생에 원하시는 것이 감사가 아닐까요? 어떤 상황이 되어도, 주님의 내 인생의 주권자이심을 믿고, 하나님은 내 삶에 가장 선한 것을 주신다. 좋은 것을 주신다, 그 믿음이 있을 때 나오는 것이 바로 이 감사가 아닐까요?
이번 주에 이런 감사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던 중에 인터넷에서 감사노트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근데 거기 적힌 글이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감사는 결코 상황이 풍요롭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상관업이 감사하기로 결단하고 훈련할 때 가능한 것이며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를 선포할 때 그 감사가 나를 살리고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능력이 된다. 감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며, 감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의 빛을 주신다.
그러면서 이 감사노트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153법칙: 하루에 1번 하나님 말씀 묵상하기, 하루에 5가지 감사제목 적기, 3 하루에 3번 감사 표현하기, 우리도 이 가을 이 감사의 제목들이 실천되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에 5가지 감사제목을 찾아보고, 그리고 3번 감사를 표현하기, 여러분은 지난 주에 몇 번 감사를 표현했습니까? 아니 오늘 여러분이 입어야 할 옷이 이런 감사의 옷이 아닐까요? 저는 지나간 주간에서 참 우리의 삶에 상황속에서 정말 감사하지 못하고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지난 분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고, 이해가 되지도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때에라도, 하나님은 내 인생이 가장 선한 것을 주신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그 믿음이 있을 때, 그 신뢰가 있을 때 우리안에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사하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감사해야 할까요? 여러분 감사해야 여러분(가족)이 살 수 있고, 감사해야 사단에게 빼앗겼던 삶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불평과 불만의 의해 사단에서 빼앗꼇던 여러분의 주도권을 감사를 통해 새롭게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 이야기만하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최근에 한 귀한 선교사님이 저에게 보내주신 카톡 하나가 저에게 이번 주 내내 울림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내내 예수님으로 옷입는 것이 뭘까를 정말 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영자- 염색
그냥 주님으로 푹 물이 들면 좋겠습니다.
물감이 천에 물을 들이듯 주님으로 제가 물이 들면 좋겠습니다.
가르치는 것과 사는 것 따로 있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 따로 있으며
깨달음과 실천이 따로가 아니라
주님의 삶이 내 몸에 배어 버려서
그냥 사는 것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줄줄 외우지 못해도
조리있게 진리를 변증하지 못해도
그냥 사는 것이 말씀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님으로 푹 물이 들어 버리면 참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소망해야 할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성경 말씀 줄줄 다 외우지는 못해도, 그냥 사는 것이 말씀이 될 수 있는 그런 삶, 무엇보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지 않은, 깨달음과 실천이 따로 있지 않는 정말 예수님을 옷입고 살아가는 그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으로 옷입고 살기 위해 이번 주 주님은 어떤 옷을 입고 사시기 원하실까요? 여러분의 사랑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여러분, 기도많이하면, 내 제자인줄 알 리가 그렇기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면 내 제자인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거룩의 옷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사의 옷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 여러분의 인생의 삶이 예수님을 깊게 깊에 물들어갈 수 있는 귀한 가을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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