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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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11)
<서론>
다들 이런 생각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나는 커서 절대로 아빠처럼 엄마처럼은 안살거야!’
그런데, 청소년기를 지나청년기를 거쳐 장년의 시기에 이르러서...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나는 절대로 따라가지 않겠다 맹세한 부모님의 그것’이 그대로 있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 내 아들 딸에게서도나는 절대로 따라가지 않겠다 맹세한 그것’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때가 있습니다.
강론제목 5절 상반부의 ‘지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있을 법한 예기를 했습니다.
지체’라고 번역된 헬라어 ‘멜로스(μέλος)’는 ‘몸의 한 부분, part’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은 후, 우리의 시선과 삶이 하늘을 것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의 모든 죄 된 것을, 후회하고 슬퍼하여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싫어져서 버렸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버리고 싶은 남아있는 옛것의 ‘한 부분이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앞의 3:1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한 바울은, 이제 ‘땅의 것을 죽이라’; ‘예수 믿기 전의 죄 된 땅에 속한 지체를 죽이라!’고 당부합니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쉽게 그것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죄의 잔재들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땅에 있는 지체’로 인하여, 동일한 실수와 죄를 계속 반복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낙심하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믿었기에 위의 것을 찾아야하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땅의 지체는 무엇이며,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땅의 지체들을 죽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
1. 우리 안의 모든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5-9).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말씀은,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안의 모든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5절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해 3:1-4의 내용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 성도들은 “땅에 있는 몸의 지체를 죽이라”(5a)고 말합니다.
여기서 ‘죽이라’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에 놓이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땅에 속한 습성과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 있는 몸의 지체 곧 땅에 속한 습성은 과연 무엇입니까?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5b)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등입니다.
음란’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성적 행위’입니다.
부정’은 ‘배설물과도 같이 지저분하고 문란한 삶’입니다.
사욕’은 ‘부끄러운 열정’을 말합니다.
악한 정욕’은 ‘잘못된 욕심’을 의미합니다.
탐심’은 ‘지나친 욕심으로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것은 우상숭배라고 지적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하나님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다!」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6절에서 말합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6)
이와 같이 땅에 속한 습성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땅의 것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쪽 이스라엘의 역사남쪽 유다의 역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위한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율법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보다 성전과 성벽을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익하다면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의 강하게 보이는 신들도 함께 섬겼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하나님이 아닌 애굽 앗수르 바벨론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것 중요시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북 이스라엘은 그토록 따라하고 싶었던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하나님 아닌 애굽을 바라보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결국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들을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7절은 우리도 ‘이전에는 다 마찬가지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다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7절)
가만히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대부분은 이런 과거의 비뚤어진 습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나는 육체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았고, 몸을 더럽히지 않았으며, 사욕이나 악한 정욕을 품지 않았고, 탐심을 내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자신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나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법 없이도 살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8절과 9절을 살펴보면, 우리의 그런 자랑은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8,9)
이스라엘과 유다만이 그런 불신앙을 보인 것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내던져야 할 또 다른 땅의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바로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거짓말」 등입니다.
「분함과 노여움」을 하나로 묶은 개념을 ‘분노’라고 하는데, 이는 누군가를 향해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를 지칭합니다.
화가 나는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악한 생각(악의)을 품게 되고, 그것이 마침내 비방(헐뜯는 말), 부끄러운 말(욕지거리)과 같은 절제되지 않은 언어폭력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분노나 말의 실수로부터 자유롭겠습니까?
나는 늘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말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의도와는 달리 내가 함부로 내뱉은 한마디 말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부지기수입니다.
‘거짓말’은 또한 어떻습니까?
크고 작은 위기 앞에서, 예상되는 손해 앞에서,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소재가 두려워, 때로는 내 입장이 궁색해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리고 쉽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고, 거짓말이 내 가정과 내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에 하나님도 오늘 나의 이런 상황은 다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러운 땅의 지체를 죽이고, 화에 찌들어 사는 우리의 마음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언어폭력을 당장 멈추라고 말씀합니다.
옛 사람의 특성인 거짓말을 이제는 그만 그치라고 명령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그래서 이제는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는, 새 사람의 마땅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하는 이유, 이것이 새사람의 마땅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악한 생각, 말과 행동; 땅의 지체들을 버리고, 진정한 새 사람으로 하루 하루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9-10).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 새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9절하반절 10절에서 밝힙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9b, 10)
그런데 사실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여전히 죄를 반복해서 짓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품은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쉽게 그 잘못된 생각을 고치지 못합니다.
‌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상처 입을 것을 알면서도, 내 분을 참지 못해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립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쉽게 멈추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땅의 지체(부분 part)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하여 바울은 설명하기 위해 우선,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우리의 옛 사람 또는 옛 자아와 함께 그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린 존재라고 말합니다(9b).
이는 우리의 옛 자아; 옛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할 분 만 아니라, 이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 믿는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까지도 새롭게 하심을 입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10).
주목해 볼 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이 만물과 동물과 식물을 지으실 때는 「‘그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5번 반복해서 말씀합니다(창 1:1, 2, 21, 24, 25).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이와 전혀 달랐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종류대로 짓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인간은 온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특별하고도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귀한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시조인,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새 창조 구원사역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닮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 지음을 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비록 외 양은 사람이나 진정한 인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극단적이고 과격한 표현이지만, 성경에 기초하여 생각할 때 이는 조금도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야 할까요? 이에 대해 바울은,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한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가장 귀하고 고상한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더구나안다’는 것은 부부가 하나 되듯이(창 4:1; 눅 1:34) 하나님을 알되 깊은 교제를 통해 마음의 중심까지 하나님처럼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 하는 출석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변화하여 하나님의 모습처럼 거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앙은 신분 세탁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 형상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돈세탁이나 신분세탁처럼 겉모양만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동기나 가치관, 중심의 밑바닥까지 온전하게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되 겉모습만 닮는 피상적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동기와 가치관, 내면의 뿌리까지 철저하게 닮아 주님처럼 이 세상에 완전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증거하는 거울들이 되는 것입니다(요 14:9).
본문대로,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까지도 새롭게 하심을 입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마치 옷을 입고 벗는 것과 같은 외형뿐만 아니라 내면도 현격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세상을 보는 관점, 우리 세상살이의 우선순위, 우리 생각의 패러다임다 바뀌는 구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내 안에 역사하시는 생명의 성령을 따라, 땅의 지체를 죽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바울은 11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할례파나 무할례파, 야만인(barbarian)이나 스구디아인(이란계 유목민?), 종이나 자유인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 믿는 성도는 누구도 예외 없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리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먼저, 반복해서 짓고 있는 죄와 허물들을, 솔직히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그것의 변화를 위해 간구해야합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연약함을 한 두 개씩은 정도는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명하지 않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합니다.‌‘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내 형편이 이래서 어쩔 수 없어!’ ‘이런 재미조차 없으면 어떻게 살아!’라며,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일에서, 나를 예외 시키려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 안의 모든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 새사람이 되어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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