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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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메시야 텍스트 시리즈 15개 영상
언약시리즈 12개 영상
바울의 사도적 자기이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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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없음/ 기말 10문제 60분 서술형/ 책 7문제, 말씀의 강 3문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 시리즈(모세오경과 시편) 1’
“예수의 가르침과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
1. 예수는 구약성경의 특정 내용이 자신에 관한 것이라고 보았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예수는 구약성경 전체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자주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메시아)에 관한 책이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이 메시아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의 어떤 구절이 메시아에 관한 말씀인가? 사실 이렇게 질문하면 분명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구약성경의 어떤 부분이 메시아 텍스트일까? 메시아 텍스트 리스트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오늘 날 우리가 교회에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려고 하지만 메시아 텍스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채 읽고 공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가복음 24:25-27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서 그들에게 구약성경의 말씀들 중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는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고, 부활해야 한다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셨다.
예수가 제자들을 향해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탄식하신 것은 평소에 이런 내용을 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쳤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두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을 여러 번 듣고도, 이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날 예수는 구약성경의 어떤 구절들을 자신에 관한 말씀으로 적용하셨을까? 아쉽게도 신약성경은 이 점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누가가 이 점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구약성경의 어느 부분이 메시아 텍스트이고, 그 텍스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미 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와 성도들은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그런 기록을 남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복음 24:44-48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부활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만난 사건 직후에 예수는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메시아 텍스트에 관해 교육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만약 당시에 비디오 카메라 혹은 MP3 녹음기가 있어서 그 날 하신 말씀을 다 녹화, 녹음해 둔 것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가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것은 남아 있지 않다.
예수는 메시아의 고난, 죽음, 부활, 죄 사함의 회개가 전 세계에 전파될 것 등이 구약성경에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누가복음 주석을 찾아보아도 학자들은 구약성경의 어디에 그런 내용이 나와 있는지 말하고 있지 않다. 신학교에서도 구약의 메시아 텍스트에 대해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예수 당시 유대교는 구약의 특정 구절들을 메시아 텍스트로 이해하고 있었다
요한복음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메시야 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메시야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 다양한 메시야 사상이 있었지만 대부분들의 유대인이 동의하는 대중적인 메시야 이해가 존재했다. 그것은 메시야는 1)인간으로 와야함 2)정치적, 민족적 국가를 회복함 -> 당시 대중적인 생각
빌립과 나다나엘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메시아에 관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했다”고 말한다.
빌립과 나다나엘은 구약성경에 대해 비교적 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 사람은 구약성경이 메시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해 이미 공통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 그래서 ‘구약성경이 예고한 그 사람을 내가 만났다’고 말하면 상대방도 그게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복음 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무리”(crowd)는 예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왜 예수 너는 우리에게 메시아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느냐? 네가 말하는 “인자” 즉, 죽음을 경험하는 인자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냐?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고 말하는 구절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곳은 시편 89:36이다(영어성경은 37절, 히브리어 성경은 38절). 시편 89:20-37은 메시아 텍스트다.
시편 89:36,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 메시야의 영원성 암시
예수 당시에는 지식인층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차원에서도 메시아사상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메시아사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대인 대중 내부에 소위 대중적인 메시아사상(common messianism)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녹1서- “인자"- 메시야로 불렀다가 인자로 불렀다 함. 다니엘 7:13
천지 창조 이전에 인자가 이미 존재하는 걸로 나타남. AD 1세기, 예수가 태어나기 전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 온다고 생각함 (극소수) -> 이 전통을 이어받은 초대교회.
3. 예수와 제자들은 메시아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누가복음 18:31-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예수께서는 평소 자신에 관해 가르치실 때 구약성경의 율법서와 예언서를 자신과 연결시켜 가르치셨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구약성경의 말씀이 성취된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 죽음에 의해 구약성경의 말씀이 실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는 매우 독특한 자기 이해(unique self-understanding)를 갖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구약성경이 예고한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했을까?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예수가 제시하는 메시아 개념이 그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메시아 개념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제자들은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메시아가 민족적, 정치적 왕으로서 이스라엘 왕조를 다시 세울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의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은 예수가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방식과, 대중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의 제자들이 같은 텍스트를 읽는 방식과 서로 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가복음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여기에서 예수는 이사야 53:12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이사야 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아는 범죄자 중의 하나로 취급될 것이다’라고 말하므로,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이사야 53:12을 달리 해석하였고, 이 부분을 메시아에 관한 것으로 읽지 않았다.
이사야서 탈굼- 당시 아람어를 사용, 히브리어를 아람어 반복 통역해야함. 랍비들이 번역할때 텍스트를 해석해서 아람어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음- 그것이 탈굼. 3세기 경부터 기록. 그대로 번역이 아니라 그 시대 해석과 설명이 들어감.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내 종을 ‘메시야'로 번역해놓음. 주의 종의 노래를 메시야로 봤을 가능성! , 탈굼 기록 3세기, 전승 B.c1세기로 이어 올라감. 1세기에도 고난 받는 주의 종을 메시야로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간에 고난 받는 주의 종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바꿈. 이방인들의 죄 때문에 대신하여 고난받는다 . 랍비들은 메시야를 고난 받는 주의종을 인정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이방인들 땨문에 이스라엘이 대신 형벌 받아서 속함.. 대속개념 인정.. 그러나 절대 집단으로 볼 수 없음(철홍킴).
왜 유대인들은 집단으로 해석하는지 이유를 아는가? 랍비들의 속마음.. 그렇게 해석하면 인신제사라고 생각이들기때문.. 절대로 사람을 받치는 것은 큰 죄로 여김.. 우상숭배..
제자들의 이런 견해가 교정된 것은 예수의 부활 이후다. 예수는 아마도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메시아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다시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바울과 같은 사도들도 예수에 관해 가르칠 때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를 갖고 증거했다
사도행전 26:21-23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은 평소에 복음을 전할 때 예수의 탄생,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의 신적 정체성(divine identity)은 모두 구약성경에 예고된 일이며, 그 예고대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은 예수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사도행전 28: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그는 구약성경의 본문을 예수에게 적용하면서 설교했다. 이신칭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을 펴지 않고, 구약성경만 가지고 이신칭의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가? 바울은 그렇게 했다.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구약성경에 다 나타나있다!! 나는 가능한가???
바울은 예수가 구약성경을 읽는 방식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구약성경을 해석했을 것이다.
로마서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바울은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이 메시아에 관해 예언한 것들이 있고,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짧게 언급하고, 그 예언들에 관해 길게 설명하지 않는 것은 바울과 수신자들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그 예언들이 어떤 것인지 서로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앞으로 도대체 어떤 책의 어떤 부분이 메시아에 관한 예언인지 추적할 것이다.
5. 구약의 메시아 텍스트를 공부하지 않으면 신약의 기독론 구절은 이해할 수 없다
초대교회는 ‘예수는 어떤 종류의 메시아(그리스도)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신약성경의 ‘기독론’(christology)을 만들어갔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는 기독론이며, 기독론이 나타나는 구절들이 가장 해석이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해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를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독론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골로새서 1:15-16을 읽어보자
골로새서 1:15-16
15 그(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맏아들)시니 -> 골로새서 찬양시/ 기독론- 기독론을 알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을 알아야함. 구약성경을 잘 알아야 바울의 신학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이사야서'에 많이 나온다.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구약성경 배경과 특히 메시아 텍스트를 공부하지 않으면 이런 구절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신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는 신약성경의 기독론의 기본적인 근거고 자료다.
구약의 메시야 텍스트 ⇒ 신약의 기독
또한 우리는 1세기 전후의 유대교에서 메시아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해석했는지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더불어 1세기 유대교 내부의 해석도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제2성전기의 유대교 문서들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가 메시아 텍스트를 읽는 방식은 ‘그 텍스트가 기록되던 당시에 무슨 뜻으로 기록되었나?’를 묻는 것이 아니라, ‘1세기에 그 텍스트는 무슨 뜻으로 해석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오늘 날 다수의 구약학자들이 연구하는 방식(historical criticism)과 다르다.
구약의 메시아 텍스트 ⇒ 유대교의 메시아 텍스트 해석 ⇒ 신약의 기독론
신약성경의 기독론의 또 다른 기초는 예수의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다. 즉 예수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주장했느냐가 기독론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수의 자기 이해를 알려면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말씀과 행동, 그의 주장을 연구해야 한다.
특히 그가 구약성경의 특정 구절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했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구약의 메시아 텍스트⇒ 유대교의 메시아 텍스트 해석 ⇒예수의 자기 이해 ⇒ 신약의 기독론
이 시리즈에서는 구약의 메시아 텍스트, 각종 유대교 문서, 복음서, 신약성경의 기독론 구절들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
그 방식은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를 하나씩 연구하되, 한 절 한 절 연구하면서 관련되는 유대교 문서, 복음서, 기독론 구절 들을 연결하면서 공부하는 것이다.
(정리)
다음 강의는 창세기 49장에 나오는 메시아 텍스트 분석을 함.
(다음 강의 예고) ‘구약성경의 메시아 텍스트 시리즈(모세오경과 시편) 2’
“창세기 49:8-12: ‘실로가 오시기 까지’”
에덴에서 새예루살렘까지
하나님 자신이 거할 성전을 만들기 위해, 천지가 하나님의 동산 - 에덴
에덴이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 자신의 형상 아담이 수많은 사람의 등장으로 에덴이 확장되어, 땅끝까지 확장 되는 것!
창,23장의 에덴이라는 공간은 말 그대로 ‘정원' 자연이다. 계 시록 22장은 새예루살렘은 도시다. 이유는? 인구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도시의 형태로.! 에덴은 결국 도시로 결론! 계시록에서는 도시로 끝남.새예루살렘은 새하늘과 새땅이다.
하나님이 에덴을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장소로 만드셨으나, 아담의 실수로 모든 계획이 틀어짐.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가졌던 계획을 인간의 구속사를 통해 다시 이루심. 하나님은 끝끝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원래 계획, 새하늘과 새땅, 새 예루살렘을 만들어낼 것이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성전'이다. 창세기에서 나오는 성전이 어떻게 전개가 되는가?
16페이지ㅣ- 새예루살렘은 성전도시..!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구약에 나타난 에스겔의 성읍 형상 -> 계시록에도 이어짐을 볼 수 있음
18페이지! 이스라엘 선택하시고 언약관계를 통해 장막을 건축해서 임재하심! 성막 -> 성소!
19페이지 스룹바벨 성전! 7번 각주. 포로기 이후 유대 문서에 스룹바벨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이 없다.. -> 자신들도 확신이 없음. -> 에스겔에서 하나님의 영이 떠남.
언약관계는 부부관계 -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 에스겔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을 함으로 이혼서류를 써줬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스룹바벨 성전을 다시 지으면 언약관계가 회복되는가? 그것에 대한 확신 없음.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길을 닦아놓으라 왜? 하나님의 귀환! 왜 초대교회는 이것을 세례요한에게 적응했는지 이해가 되는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돌아온 것이 ‘하나님의 귀환'이다 라고 말함.
쿰란 사람들은 이 구절로 인해 광야에 나가서 율법교육준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길을 닦는다고 생각함.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님의 귀환! 유대교 입장에서는 성전의 귀환이어야 아구가 맞다.
그러나 예수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킬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 예수는 내가 온것이 하나님의 귀환이다! 이것이 성막이다. 그리스도의 존재가 하나님의 임재다 .
그분 자제가 하나님의 임재, 성전이지만 부활 이후에 성령을 통해 그분의 교회에 임한다 -> 하나님의 임재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않으시고, 예수를 믿는 제자들, 그의 교회를 성전으로 임하심. 하나님의 귀환은 교회로 !!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임!
스데반은 그래서 사람이 지은 것에 계시지 않다고 대놓고 말함.- 성막 성소 스룹바벨 예수그리스도 성령을 통해 교회-> 이것에 증가!
정육면체 새예루살렘 -> 지성소오ㅡ 연관되어 있음 -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 새 예루살렘이 확대된 지성소라고 보는 것!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나아감 - 히브리서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 성소의 휘장은 하늘을 상징 - 출애굽기 26:31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청색자색홍색은 하늘을 상징함. 유대인들은 이것을 하늘로 상징. 하나님은 하늘 위에 계심. 지성소에 계신다고 생각할때 휘장(하늘)위에 지성소에 계심.. 휘장이 찢어지는 것은 하늘이 열림을 상징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하늘이 열림.. 하늘 위에 하나님을 보는 것! 하늘이 찢어짐! 휘장이 찢어짐..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됨! 히브리서는 휘장이 그의 육체라 말함 - 십자가에 죽을때 그의 몸이 두 쪽으로 찢어짐.. -> 휘장이 찢어짐 ->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로 들어감. -> 휘장이 양쪽으로 찢어지고 새로운 살 길이 열림 -> 홍해바다가 갈라짐 연상 -> 그 길을 건너감으로 구원받음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히브리서에서 위 말씀도 인용해서 설교. 구원의 길로 연결! 십자가로 찢으셔서.. 길을 내심. 십자가로 결론! 십자가를 통해 이루시는 구원.
솔로몬 성전의 조각은 에덴동산을 본따서 디자인함.
25쪽 - 아바드(경작하다, 섬기다) - 남자의 형벌 땅을 파는 것.. - 아담에게 제사장으로서 나를 섬기라라는 뜻으로! 아담은 제사장, 에덴동산에서 섬기는 제사장!
‘지키다 - 샤마르' 제사장은 성전을 지키게 되어있음. - 레위인들을 지키라함. 성전을 지키라..
그래서 아담을 제사장으로 봄 - 유대교 전승 - 이 전승 가운데에서 신약성경이 기록
그래서 아담이라고 하는 존재는 제사장으로서 성전을 에덴을 지켰어야 했는데.. 뱀의 공격에 실패함
아담은 제사장의 직분을 실패하고 쫓겨남.
하나님이 에덴에서 거니시듯이 후대에서는 성막에서 그렇게 하심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내 집 - 성전! / 여기에서 성전은 무엇인가? 스룹바벨 성전인가? 하늘에 있는 성전이다!! 여호수아라는 대제사장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함.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대신해 더러운 죄를 입고 있음. 깨끗한 옷입힘 -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성전에 지키고 다스리면.. 세상 만물을.. 아담은 동시에 왕이면서 제사장.. 다스리고 지키면- 아담이 잃어버린 제사장, 왕의 직분을 회복! 하늘에서 왕래하리라는 것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왕래함!
성전이라는 기본개념으로 읽으면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을 설교할게 많음.
에덴동산에서 4개의 강.. 성전에서 흐르는 물과 연상 - 죽은 생명을 살리는 이미지는.. 에스겔서의 강이미지는 창세기에서 시작됨을 볼 수 있음. 내면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강 이미지는 창세기, 에스겔 강이미지와 연결 .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성전의 생수로부터 흘러나옴.
스가랴 13:1 , 스가랴 14:8 , 16 에서는 초막절을 지킨다 함.(물과 빛) 왜 물을 붇는가? 창세기에서의 강 ,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빛은 불기둥을 상징, 빛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 해조차 필요없는 상황! 종말의 그 구원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