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3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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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1–9 NKRV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2:1은 히브리서 설교자가 1장 내내 아껴 두었다가 비로소 내뱉은 간절한 주장이자 메시지이다. 이책의 장르 자체가 ‘권면의 말'이다. 즉 히브리서의 궁극적 목적은 ‘권면'이다.
“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 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 즉 모세오경 전체를 가리킨다.
저자는 거짓 가르침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전해 들은 진리에 주목하라며 독자들에게 도전한다.
하나님께 귀기울인다는 것은 단지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실천할 길을 찾는다는 뜻이다.
야고보서 1:22–24 NKRV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체중감량보다 더 힘든 것이 감량한 체중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으로 돌이키려는 유혹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시적인 것 말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밥을 굶거나 극단적인 식단을 짜는 것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겠지만 그것은 평생 할 수 없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이어트만이 아니다. 몸을 만드는 것도,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어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모두가 다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유지가 어렵다.
뭐든 어느 순간 잘 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수련회때나 아웃리치나 교회 밖에서는 DTS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참여하는 동안에는 뜨겁다. 내가 구원 받은 사람같고 내 믿음이 자라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은혜와 기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독자되는 기독교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히브리서 2:1
히브리서 2:1 NKRV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들은 것은 넓게는 복음이고 자세하게는 히브리서 1장의 내용이다. 그것은 천사보다 귀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천사를 비상식적으로 존귀하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천사는 천사이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천사를 숭배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왜 하필 바다의 이미지를 예를 들어 이야기 한 것인가? 바다는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원하는 곳을 가고자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엔진을 가동한 상태에서 배의 키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다는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곳에서 방향을 잡고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애씀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어디론가 휩쓸려 간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의 신앙을 유지하는 것에는 우리의 애씀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신앙이 뒷걸음 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서를 기록할 당시 기독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였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 유대인이 유대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쓴 책이 바로 히브리서이다. 학자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히브리서 기록 시대를 주후 70-80년대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앙이 어떻겠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지 40-50년이 된 것이다. 40-50년이 되었다는 것은 한세대가 지나갔다는 의미도 된다. 예수님을 눈으로 본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세대가 지나고 부모나 사역자를 통해 예수님을 들을 사람들은 어떠했겠는가? 이전 세대의 믿음이 있었겠는가? 아마 믿는다고 아무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싱앙생활 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믿음은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님이 아닐 수 있다라며 유대교로 개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삶 속에 어려움이 찾아 올 때, 나의 진짜 믿음이 드러나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 아야 한다. 내가 정말 붙잡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때가 내 삶의 위기라고 하는 그 때이다. 내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 내가 직장에 떨어졌을 때, 내가 재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그 때가 되어야 비로소 내가 진짜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은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잘 있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교회 예배 한번 빠지는 대신 1,000억을 준다고 한다면 여러분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1,000억이라는 돈은 정말 정말 큰 돈이다. 10년동안 한달에 8억 3천만원, 일주일에 1억 9천만원이내 통장에 들어오는 거다. 하루에 2,700만원씩 내 통장에 들어오는 거다.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이들이 1,000억도 아닌것과 예수님을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지금 당장 내가 손해보는것이 있다면 기꺼이 예수님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을 신앙을 지키며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은 ‘날마다 무엇을 보고 듣느가'에 달려 있다. 날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주일 예배 때나, 부흥회 때, 제자훈련에서 은혜를 받아도 삶은 변화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 성으로 이사 가서 살다가 망한 이유에 대해 성경은 날마다 소돔 성 사람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가 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걱정하셨던 것에 대해 말씀한다. 사람들이 심각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먹고 마시고, 학교가고, 일하고, 집사고, 차를 사고, 시집 장가가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살 것을 걱정하셨다.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주님은 잊어버린 채 세상일에만 온통 정신 팔려 살기에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방황하지 않고 복음의 진수를 붙잡기 위해서는 시시때때로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묵상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모든 고난을 당하셨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거하며 아파하는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넉넉히 위로해 주실 수 있다. 또 부활로써 죽음을 정복하셔서 죽음에 종노릇하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이 자유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참된 자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임한 자유,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묵상해야 하는 내요이다.
이 복음의 진수들을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신자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재신해 죽으신 이유강 시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로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 살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시는지 일깨운다. 우리가 복음의 내용을 날마다 기억하고 묵상할 때 복음은 우리를 안내하는 등불이 되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세상의 문화 속에서 우리가 죄악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 것이다.
세상 문화와 거짓 사상은 우리를 흔들고 믿음을 파선시킬 수 있는 거대한 물결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지속적으로 묵상하며 복음의 진리를 내면화해야 한다. 복음 안에서만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식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다가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우리 방식대로 따르게 되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다준 유익을 잃어버리고, 동정심 어린 격려를 보내시는 분의 도움을 얻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구원을 등한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게 되면 영원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자비와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삶을 살면서 큰 구원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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