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Mathematics 하나님의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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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24–33 KRV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Intro
하나님의 나라의 수학 두 번째 시간, 오늘은 하나님의 더하기 입니다.
누가 잘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자기 인생을 경영을 잘 하는 사람이 잘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해야 하는 것을 먼저할 줄 알고, 나중에 해야하는 것을 미룰 줄 알고,
집중해야 할 것은 반드시 집중해서 하고, 불필요한 일들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과감히 끊어버리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잘 되는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는 어떻습니까?
실패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 경영에 실패한 것입니다.
어떤 것을 먼저 해야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늘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집중해야 반드시 해야할 일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일들에 시간을 허비하고, 그런것에 집중합니다.
그러니 실패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까지 그렇게 많은 수포자가 있다고 합니다.
수포자가 무엇이냐면, “수학을 포기한 자들" 의 줄임말이고 하네요.
저도 감사히 중학교 때 이민을 와서, 다행히 수포자가 되지 않았지만, 거의 수포자가 될 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정도는 할 줄 압니다.
사실 뭐 다른 것, 미분, 적분.. 뭐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그렇게 필요한가요?
그러나 적어도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죠?
그래야 우리 인생의 기본적인 경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3주전에 하나님 나라의 수학, 첫번째 시간.. 곱하기에 대해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경영안에 포함되어 있는 인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수학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감사하게 미분 적분은 성경은 안 나와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어떻게 경영하시는지 알면, 우리는 그 경영에 우리의 삶의 경영을 맡기고 살 수 있습니다.
배경설명
오늘 읽은 본문, 특별히 마태복음 육짱 33절은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본문 마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산상수훈의 중간 부분의 내용입니다. 산상수훈은 5장부터 7장까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무리들 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온 제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들이죠. 오늘 말씀을 들으실 때, 예수님의 말하시는 대상이 불신자가 아니라, 적당히 믿는 신자들이 아니라, 모든 것을 예수님을 버리고 쫓기를 결단한 제자들임을 기억하고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더하시는 (plus의) 은혜를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에 예수 그리스도를 더하면 강한 자가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더해져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에수님의 희생 공로가 더해져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더 더 은혜를 더 해주시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의 수학, 하나님의 더하시는 경영에 원리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본문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33 KRV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이 무엇일까요?
말씀의 대한 질문은 말씀으로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바로 31-32절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6:31–32 KRV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려볼께요.
여러분은 요즘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한번 더 반복한다)
아니면 먹고, 마시고, 입을 것 정도는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에는 그다지 이제는 관심이 없다.
그건 내가 좀 찌질했을 때 이야기니깐, 이제 그런 문제정도는 내가 해결하고 산다.. 뭐 이 정도입니까?
하나님의 더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면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니깐 모든 집중이 그것에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에서는 멀어져만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더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땅 가운데 먹고 사는 문제로만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멋지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감당하고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고, 내가 바둥바둥 거리며 내 삶에 나만 내 것에 더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해주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한번 점검해 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더 하심 ( 하나님의 주시는 addition 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 일 수 있을까요?)

첫째, 지금 여러분 삶에 누가 주인입니까?

오늘 말씀 24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6:24 (KRV)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NRSV)
24No one can serve two masters; for a slave will either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God and wealth.
마태복음 6:24 (ASV)
24 No man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hold to one, and despise the other. Ye cannot serve God and mammon.
대학청년부 여러분, 지금 이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대상이 제자들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가졌던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예수님 지금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라고 합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목이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
제자들 가만히 들어 보니 이거 큰 일 났는데 싶은거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자신들의 구원자가, 로마를 물리치기는 커녕, 제자들이 듣기에는 약한 소리만 하고 계시니 얼마나 걱정이 됬겠습니까?
나 이거 밥이나 먹고 살 수 있을까?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분 밑에서 이거 내가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우리도 그러지 않습니까?
주님을 마악 열심히 섬기다가도, 나만 이거 바보되는거 아니야?
그러면서 하나님을 주인 삼았다가도 금방 주인을 바꿉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으면 누굴 주인 삼을 까요?
오늘 성경에서는 인격이 없는 재물을 의인화하여서 하나님과 비교를 합니다.
재물은 헬라어로 마모나.. 영어로는 맘몬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 단어에 아주 재밌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믿다' ‘신뢰하다' 라는 뜻을 단어는 아멘입니다. 그런데 이 마모나, 맘몬이라는 단어가 아멘과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람어에서 맘몬 이라는 단어가 유래 했다고 해요. 그래서 ‘신뢰하는 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제물은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며,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던 것이죠.
지금도 사람들은 재물을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고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았다가도 내 상황이 환경이 흔들리면 언제든지 우리는 주인을 바꿔버리는 존재입니다.
그럼 내 주인이 하나님인지 아닌지, 어떻게 어떻게 자신을 점검해볼 수 있을까요?
1.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점검하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21절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6:21 KRV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는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을 씁니다. 그건 전혀 아깝지 않아요.
하엘이가 커가면서 이제 장난감의 수준도 올라갑니다. 사줘야 할 것도 더 생기고,
저번주 부터는 유치원도 갑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것들도 있습니다.
부모인 저희가 유치원비를 내고 필요한 것을 사주고 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랑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매 주 드리는 헌금뿐만 아니라 우리의 물질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내 시간을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고 있는지 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진짜 주인이면, 무엇보다 먼저 예배의 시간을 삶의 기점으로 잡고 살아가겠죠. 예배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의 시간도 그 바쁜 와중에서도 낼 수 있죠. 내 시간을 점검하면 내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3. 내 마음을 점검해 보면 됩니다.
물질도 드리고, 시간도 정말 충분히 하나님께 드렸는데, 마음을 드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이들은 십일조도 철저히 했습니다. 헌금생활에 빈틈이 없었습니다.
시간도 철저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금식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전에서 늘 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려도 하나님이 주인된 삶을 드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래 믿고, 오래 섬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습니다.
헌금생활도 합니다. 봉사 섬김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사랑하는 온전한 마음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매번 교회에 나와 있으니깐, 매번 섬기고 있으니..
여러분 진짜 하나님이 여러분 주인 맞습니까? 아니면 교회에 있지만 섬기고 있지만, 내 맘 대대로 하고, 내 뜻대로 살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더해주시는 복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물질, 시간을 점검해보시고… 무엇보다 마음을 점검해보세요.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있지 않으면, 늘 정죄합니다. 주변사람들을 보고 늘 판단만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다른게 없습니다.
그들은 늘 회당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요,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두번째, 염려가 습관이 되면 하나님의 더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염려하는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보다 많으면 하나님의 더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6:25 (KRV)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물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은 받지만, 축복과 은사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반대말은 염려입니다.
여기서 성경 원문 “염려하지 말라" 는 “메 메림나테” 라고 하는데,
“하지마" 라는 부정어 ‘메'는 명령형 현재형으로 지금 당장 염려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매우 시급하면서도 단호한 명령이다.
여기에 ‘염려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림나오’는 ‘나누어지다’ , ‘분열되다'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니 염려는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분열되는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재물, 맘몬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게 되면, 마음은 나뉘고, 분열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 상태는 염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 것처럼 그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근심과 염려가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제자들의 아버지되시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6 (KRV)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32(KRV)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리고 그 아버지는 공중의 새도 기르시고, 들의 있는 백합화도 입히시는데,
자녀로 부른 우리들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겠느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자녀의 필요를 알고 계시는데,
이 천지를 지으신,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르시고, 입히시지 않을까요?
습관적인 염려는 우리의 신앙을 갉아먹습니다.
습관적인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염려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십시요. 기도로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세요.
베드로전서 5:7 KRV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7 NRSV
7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맡겨 버리라, 영어로는 cast… 우리의 염려를 주께 내던져 버리는 거에요,
왜냐면 우리 주님이 he cares for us!
“메 메림나태" 지금 당장! 염려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시급하면서 단호한 명령에 순종하여서, 습관적인 염려를 끊어버리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믿고, 하나님의 더하심의 은혜를 놓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땅 의 것만 구하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태복음 6:32 (KRV)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혈통적인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30 KRV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는 세상에 속해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세상 백성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헌신되게 살겠다는 제자들도 세상 백성들과 구하는 것이 똑같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 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마시고, 좋은 것도 입으면 안되나?”
그런데 여기서 구하라는 단어를 뜻을 알면 이 질문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6:32 (KRV)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2절에 말씀에 구하다 라는 원어의 의미는 ‘애써 찾다’, ‘ 간절히 구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여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만 애써 찾으며 간절히 구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우리 믿는 사람들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만 애써 찾고, 간절히 구하는 인생이 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더해주시는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방인이 땅에 것만 구하며 사는 것처럼 그런 인생을 살면 안됩니다.
이방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의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자기 스스로 더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아니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더 해주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모든 필요를 하늘의 아버지를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2 (KRV)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 아십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더해주시는 경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 33절을 한국말로 보면
마태복음 6:33 KRV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원어에는 “그러나" “But” 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영어성경 번역에도 But 이 들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33 ESV
33 But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added to you.
여기서 “그러나" “But”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하늘의 아버지를 모르는 이방인들은
땅에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만 간절히 찾고 구하는 삶을 살지만..
천국백성인 너희는! 다르게 살라! 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죠?
마태복음 6:33 KRV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먼저라는 단어는… 어떤 것들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먼저라고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로 ‘그 무엇보다 먼저’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행구절인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31 (KRV)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는 먼저라는 단어보다 더 세게, 오직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하늘의 아버지의 자녀인 우리는 우리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구하는 삶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순서를 보면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급한 기도 제목이 있으면 당연히 그 기도를 먼저 해야하고 집중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의 일상적인 기도생활 가운데 순서를 한번 점검해보십시요.
어떤 것이 먼저 입니까?
저는 기도를 일단 시작하면 성령님께 이 기도 시간을 인도해달라고 먼저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끔 강력하게 시키시는 기도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루틴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특별히 인도하시는 기도가 없으면 이 순서대로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한기홍 담임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특별히 한기홍 목사님을 위한 기도는 빼먹지 않습니다. 그 분이 대단해서요?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담임 목사님으로 영적 권위자로 세워 주신 분이 한기홍 목사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도 받고, 이 큰 교회가 이 엄청난 사역이 이뤄집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목사님을 사용하시고, 더 성령충만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고
계속해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사역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모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자제분들 가정까지 기도합니다.
그리고 대학청년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변재령 목사님과 목사님 가족, 장로님,집사님, 전도사님, 간사님들, 목자님들, 그리고 청년들의 기도제목을 알고 있다면 그 기도까지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중요한 사역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저의 개인적인 기도제목으로 들어갑니다.
사역자들은 매일매일 교회에 나와 주님의 일을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한다면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매일매일 교회에 나와서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기에는 육체적인 한계와 시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는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점검해보십시요. 여러분의 기도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지..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다윗에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싶었던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지혜를 구했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보면 자신의 백성이라 결코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혜를 구하는데, 여기서 지혜는 듣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었지만, 군림하는 왕이 되지 않고, 백성들의 마음을 잘 듣고 살피어 그들을 잘 보살피는 왕이 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솔로몬의 기도를 참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구했던 지혜만 주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부와 명예와 권력을 더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더하심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을 때 솔로몬은 경험하였습니다.

두번째, 하늘 아버지의 비전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의 비전을 무엇인가요? 열방의 잃어버린 자녀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지상명령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 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자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던지 어디에 살던지 하나님의 비전,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합니다.
우리이 시간과 물질과 재능이 그 일을 위해 헌신되어야 합니다.
언제든 주께서 쓰실 수 있게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것이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영국이 부흥을 체험했습니다. 그 이후에 세계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영국에게 정치적, 경제적 성장을 더 해 주셨습니다.
19세기 말에는 미국의 젊은이들과 교회들이 세계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이 때 부터 미국은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1970년대부터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집회 등을 통해서 부흥을 체험하면서 그 가난하던 나라가 선교사들을 세계 각지로 보내시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한국에 많은 복들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 교회가 이 말씀에 위대한 간증자가 아닐까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이 더해주신 복입니다.
하나님이 비전에 애를 쓰고, 힘을 쓸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고 사용하십니다.

세번째는 예수님의 용서하는 중보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는 단순히 사역에만 국한 되어 있지 않습니다. doing 에만 focus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가 아닙니다.
외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면적인 모습으르 예수님은 늘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이고 용서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전도와 선교, 그리고 맡은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더해지는 하나님의 덧셈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축복의 통로가 막혀 버립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의 덧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욥기 42:10 KRV
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넷째, 하늘 아버지의 베푸시는 사랑의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연약하고 부족한 자녀들에게 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힘이 닿는대로 연약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신명기 14:29 KRV
29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우리 교회는 하는 일이 참 많은데, 토요일에는 홈리스들에게 밥을 해주는 사역이 있습니다.
코비드 전에는 예배도 함께 드리고, 저도 가서 말씀도 전하고 한 적이 있는대요..
참 우리 성도님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홈리스들을 위해서 누구는 밥을 해오고, 반찬을 해오고 해서 아주 맛있는 밥을 그들에게 대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렇게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이 분들을 기뻐하실 지 보면서 함께 기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지금 무엇을 애써 구하며 찾고 살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에서 바뀌지는 않았나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염려가 습관이 되지는 않았나요?
세상 속에 섞여 살면서 나도 모르게 땅에 것만 간절히 구하는 인생이 되지는 않았나요?
신자들의 삶은 하나님 경영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수학, 덧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처럼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고, 염려가 습관이 되고, 땅만 보고 살았다면,
그러나 너희는!
무엇보다 먼저, 오직!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떻게요?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보 기도하는 것입니다.
넷째, 하늘 아버지의 베푸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럴 때,
마태복음 6:33 KRV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을 내가 더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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