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벧전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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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9월 3일 주일 청소년부
제목 :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Slow, but steady)
본문 : 베드로전서 5:5-11
결단 : 주가 일하시네
1. 인사
오랫만입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가, 몇 달 본당에 있었다고 이 훌랄라홀이 상당히 낯섭니다. 그래서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만 담대히 전하고 내려가보려 합니다.
2. 성경은 사랑을 말한다
1) 성경은 정말 사랑을 말하나?
저는 이 성경을 지금 당장 1독 할 수 있습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성경을 넘기고) 자, 이제 이 성경의 내용을 제가 요약 해보겠습니다. 성경을 요약하니 “사랑” 이라 요약이 되네요.
성경을 사랑이라 말들 하는데, 그래서 진짜 성경이 사랑을 말하는가? 의구심은 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심판과 저주를 명하실 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너 나 안믿어? 그럼 너 멸망할거야!”, “너 왜 내 말을 안듣지? 너 좀 혼나야겠다. 당분간 너의 기도 내가 듣지 않겠어. 어디 한 번 잘 살아봐!”, “너 쟤 왜 괴롭혔어? 너 내가 쟤 대신 복수할거야!”
2) 고난과 역경이 넘치는 사랑의 성경
그런데도 우리는 성경은 곧 사랑이라 정의 내립니다. 또 고난과 역경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아브라함이 무려 100세가 되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이삭이죠. 이삭이 좀 자라니, 하나님이 뭐라 말해요? “이삭을 바쳐라~”
아브라함 뿐입니까? 요셉이 꿈을 꿉니다. “밭에 곡식 단을 묶었는데, 내 단은 일어서고, 여러분 단이 제 단을 둘러싸서 절 하더라구요?” 몇일 지나서, “저 또 꿈꿨어요! 해와 달, 그리고 열한 별이 제게 절 하는 꿈이요!” 이 꿈을 듣고 어떤 결말을 맞이 합니까? 애굽 노예로 팔려갑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 삶에 무엇이 등장한다고 말합니까?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좀 우리의 삶이 평온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정녕 그렇지 않습니다.
수련회를 통해서 분명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마귀들이 쉽게 떠나가지 않고 괴롭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니요,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예수를 몰랐다면 더 자유하지 않았을까 고민이 될 정도로 심각합니다.
3. 각기 다른 하나님의 때
1)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라
일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 하나님 못 만났는데요? 예수님 못 만났는데요?” 하나님의 때는 다 다르기에, 그 날이 속히 오길 소망하며 지금의 자리를 지키라 대답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못 만났다고 낙담도, 좌절도 하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몇 년, 몇월, 몇 일에 한 순간에 이뤄지는 이벤트같은 날이 아닙니다. 각자의 상황과 때에 맞게끔 주어질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고, 포기치 말아야 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것” 입니다.
2) 고3, 하나님의 때였다
저 역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은 고3 여름 수련회 였습니다. 그리고 그 수련회가 제 인생의 마지막 수련회라 여겨 왔습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에서 ‘뭐 해라’ ‘뭐 맡아라’ 해서 그냥 해오기는 했다만,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서 해온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청년이 되는 순간 “내 신앙은 내가 선택한다”는 마인드와 함께, 고3 여름 수련회를 잠정적 마지막 수련회로 지정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제겐 그때가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뒤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가 엄청난 때 였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고3 여름 수련회, 둘째날 저녁집회때 하나님을 만났고, 지난 과거의 제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이제는 나와 함께 가자’라 말씀하시며 기다려 주셨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창 체대 준비할 때라 ‘좋은 체육교사가 되자’라는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체육교사가 되자’로 소망 또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서부터 수능까지 남은 모든 시간들, 실기까지 남은 모든 시간들이 녹녹치 않았습니다. 피부병이 심해져 견디기에 너무 괴로웠고, 잦은 부상과 심지어 수능 이후 실기 준비하다 팔을 다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 저는 체육의 ‘ㅊ’만 떠올려도 화가 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저는 준비해왔던 3년이라는 시간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 가운데 든 생각은 “그래, 내가 교회에 있을 때 행복했지? 교회 관련된 대학을 가자!” 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하게 되고 돌고 돌아 끝내 목회자로 부름 받아 서 있습니다.
저는 교회 동기들 중 가장 늦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늘 “쟤는 왜 저래?” “뭐 저리 열심히 해?” 라고 생각해 오며 살았는데, 제가 지금 그런 모습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저만 이렇게 남아 자리를 지킵니다.
4.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부름을 지키며
하나님의 때는 다 다릅니다. 이미 일 수도 있고, 아직 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때를 여전히 소망하며 기다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미 하나님을 만나 이제는 그 부름을 지켜 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히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때를 온전히 지키고 소망할 수는 없습니다. 영원한 것에 비해, 우리는 너무 작은 존재 입니다. 너무 나약한 존재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며 “하나님의 때를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를 결단해 볼 수 있습니다.
1) 겸손하라
먼저는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겸손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저 고분고분 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순하게, 선하게 살라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겸손은 곧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는 것” 입니다. ‘오늘 이곳에 계신 성령님’ 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찬양의 가사를 보면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 기다리며 / 주님 손에 우릴 드립니다 /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부름을 지키며 우리가 결단할 첫 번째 은혜는 “겸손, 곧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는 것” 입니다. 왜요? 그렇게 겸손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랑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우 연약한 존재라, 이 말을 들어도 결국 고난이 오면 원망과 낙담과 저주와 절망을 합니다. 그런데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때는 늘 선의에 있습니다. 선의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와 다르다면, 당연 내려놓아야 할 것은 ‘우리’ 입니다.
2) 근신하라, 깨어라
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부름을 지키며 결단할 두 번째 은혜는 “근신하라, 깨어라” 입니다. 근신이 무엇입니까? 근신은 ‘가까이 하여 신중하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주식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 이겠습니까? 말씀입니다. 인간으로써 매일 끼니를 먹어 살아야만 한다면, 크리스천으로써 매일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물론 하루 밥 안먹는다고 죽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루 말씀 안 본다고 죽지 않지요. 그런데, 이틀이고, 삼일이 지나도록 밥을 먹지 못하면 죽음이 가까워지고 또는 건강이 마냥 좋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당장 내가 하루 안 본다고 내 영적 상태에 티가 안 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 수록 우리의 영적 상태는 아픔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소망으로는, 이 주일을 반드시 지키십시오. 일주일에 하루라도 이 말씀을 나누고 듣기에 힘쓰는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3) 믿음을 굳건케 하라
마지막은 “믿음을 굳건케 하라”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내가 믿는 하나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2학기가 시작되어 나름 또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으로서 살고 있는 우리 친구들. 학업과 관계와 모든 걸음 걸음 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굳건케 하십시오.
그 작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부르심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거대한 나무를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한다 생각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 보다 앞서는, 겸손하지 못한 자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눈 들어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결단찬양 : 주가 일하시네]
#말씀을 가지고
1) 하나님을 만나 인격적 변화가 이뤄지게 하소서, 하나님을 만난 나의 삶이 영원히 변치 않게 하소서
2) 겨자씨 만한 믿음일지라 하더라도, 매일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소서. 나를 통해 역사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