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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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의 시작
(2023.9.3. 성산 공동체 첫 주일예배-서 현 목사)
본문: 마16:13-19
주제: 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1. 서론-질문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사도행전 2장을 먼저 떠올립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이 임하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초대교회를 이야기하면 사도행전 2장을 이야기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면 사도행전의 교회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교회가 형성되기 전. 예수님은 이미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그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에서 교회가 시작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교회의 시작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방 지역에서. 둘째, 고백 위에서. 셋째. 교회의 능력입니다.
2. 본문
1) 이방 지역에서
1) 이방 지역에서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떠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이동하신 뒤 일어난 일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을 끊임없이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말씀을 잘 안다고 했지만, 말씀으로 예수님을 공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오병이어. 칠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물고기와 떡을 나누어주시는 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가운데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이동하신 곳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입니다. 마16:13 을 읽어 주십시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이사랴 빌립보는, 그리스의 신 판을 숭배하는 동굴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있는 곳. 즉 유대인들의 중심을 떠나 이방 신을 섬기는 곳으로 이동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은, 이방 신을 섬기는 곳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여러분, 교회는, 이방 지역에서 주님이 주님이심을 선포하는 모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는 모임. 그것이 교회입니다. 다른 것을 신으로 섬기는 곳에서, 예수님이 진정한 신임을 선포하는 모임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방 신을 섬기는 지역에 도착하셔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러분,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이 질문에서 교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와 주님이 말씀하시는 교회가 참 많이 다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과, 주님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참 많이 다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 특히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고난주간에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님이 고통받고 피 흘리는 건 싫어요. 징그러워요. 그래서 저는 십자가는 별로 안좋아해요. 저는 구약도 안읽어요. 부활하신 주님 이야기만 읽는 게 좋아요”
깜짝 놀랐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부활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반쪽 복음입니다. 자기가 믿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믿고 본다면 성경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2) 고백 위에서
2) 고백 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 어떤 사람은 엘리야.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이런 말들은, 지금까지 존재하는 생각의 범주에 예수님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존의 틀에 갇혀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분입니다. 예수님은 틀을 깨십니다. 첫 번째 기적.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바꿔주셨습니다. 왜 그것이 첫 번째 기적입니까? 물항아리 여섯 개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불완전한 수 여섯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불완전합니다. 물은 포도주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율법을 완성하십니다. 그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이 첫 번쨰 기적인 것입니다.
제자들의 대답 중 어느것도 예수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베드로가 뜻밖의 답을 합니다. 마16:16 를 읽어 주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러분, 다른 제자들의 고백과 베드로의 고백이 갖고 있는 차이가 무엇일까요? 첫째, 다른 제자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자신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고백을 했습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스스로 자신의 입으로 나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둘째, 다른 제자들은 기존의 존재하던 생각들에 예수님을 끼워맞췄습니다. 자기들의 상식 수준에 예수님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자 중 하나야. 예수님은 메시야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선지자야. 이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은 전혀 새로운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입니다. 지금 이곳은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 지역입니다. 그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다른 이방 신들. 우상은 죽은 것이고 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살아계신 신인데, 그분의 아들이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것들을 신으로 고백합니다. 우리의 경험. 우리의 배경. 우리의 재산이 우상이 되어서 그것을 높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죽은 것입니다. 오직 살아계신 신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남들의 고백을 인용합니다. 상식적인 수준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고백은 성령으로 인한 고백입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고백.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난 고백이 일어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교회는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모임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상식이 아니라 상식을 뛰어넘는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몰상식이 아닙니다. 비상식이 아닙니다. 상식 위의 상식. 이 땅의 상식이 아니라 하늘의 상식으로 모이는 모임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17절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바요나 시몬아”라고 부른 것을 봐야 합니다.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요나는 베드로의 아버지 이름입니다.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인간의 아들이다”라고 하십니다. 서로 대조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의 아들이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18절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셨습니다. 이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 주신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마16:18 를 읽어 주십시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신앙 고백이 반석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언어유희를 통해서 놀라운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인간인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을 통해서 반석이신 주님이 반석이라는 별명을 가진 베드로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고백이 반석처럼 굳건하게 변하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이 위에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집니다. 어부에 불과한 인간 베드로는 예수님이 불러주시며 “반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그 별명을 붙여주신 이유가 여기에 등장합니다. 별명과 달리 계속 흔들렸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 고백을 통해 반석이신 주님과 연합합니다. 이 고백 때문에 베드로는 반석이 되고, 반석이신 주님은 바요나. 즉 요나의 아들처럼 인간으로 오셔서 베드로와 관계를 맺어주십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결과, 인간이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고백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인간들이 모여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인간들에게 임재하셔서 예수님을 드러내주시는 공동체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선포하며 드러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목사가 주인이 아닙니다. 성도가 주인도 아닙니다. 많은 교회가 목사가 주인 되어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에 반대하여 성도들이 주인 되는 교회를 만들자고 합니다. 그것도 잘못되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3) 교회의 능력
3) 교회의 능력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교회에 능력을 주십니다. 그 능력이 바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음부는 어두운 곳.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원어를 보면 능동태. 적극적인 의미로 씌여 있습니다. 교회가 진격해 나가는데, 죽음이 저항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죽음은 생명을 이기지 못합니다. 교회의 진격에 지옥이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확장됩니다. 교회는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줍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열쇠를 주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교회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립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기에, 생명이 죽음을 이깁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여러분, 교회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귀가 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교회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어디서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서 예배드리지 않으면 어디서 예배드리겠습니까? 세상에 많은 조직과 공동체가 있지만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조직과 공동체는 교회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의 능력은 생명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가능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이 없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가장 큰 능력은,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십자가에서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의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즉,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걷는 공동체입니다. 그럴 때 주님과 함께 부활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음부의 권세를 이기게 됩니다. 십자가를지지 않으면 이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험한 인생길 고난의 길을 걷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공동체로/교회로 주님과 동행하며 이 길을 걸어갑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여러분, 혼자 신앙생활 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함께 불러주셨습니다.
3. 결론-우리를 통해 드러내시는 주님.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 동안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지 않으셨던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에서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고, 주님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는 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질문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도 언젠가는 예수님이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너희의 고백은 과연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 결단이 있을 때 고백이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그러나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온누리교회서 새가족 담당으로 사역할 때 어떤 분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온누리교회 다닌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새가족 교육을 받지도 않고 등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예배만 드리고 혼자 봉사만 했습니다. 어떤 분은 저를 장로님으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결단합니다. 이 공동체에 속하겠습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며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 결단을 하고 새가족 교육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질문에 결단하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교회를 이뤄가는 것. 그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 일이 일어날 때,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교회의 시작을 보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문헌
Keener, C.S. (1997) Matthew.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p 마 16:14–16.
Blomberg, C. (1992) Matthew.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The New American Commentary), p 251-2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