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혜는 듣는 마음과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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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혜는 듣는 마음과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서론]
잠언에는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지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직장상사와 틀어진 관계를 해결할수 있을까요?
그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삶의 위기가 찾아올때 그것을 견디고 이겨낼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얼마나 지혜로워 졌을까요?
이 시대는 온갖 지식과 정보가 넘쳐납니다.
컴퓨터에 치면 세상 모든 정보들을 쉽게 얻을수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과연 이런 정보도 있을까 싶어 유튜브에 이렇게 친적이 있습니다.
선풍기 목 고치는 법.
와, 이것을 가르쳐주는 영상도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참 세상이 너무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편리한 세상 뒤에 그늘진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가짜 정보를 구별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것에 쉽게 휩쓸려 다닙니다.
AI 알고리즘은 그런 편향성을 더 자극하여 우리를 한쪽으로 더 몰고 갑니다.
이때문에 사회는 점점더 분열되고 분쟁이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종 정신병에 시달리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히 한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넘쳐나는데 우리의 지혜가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홍수속 먹을 물이 없는 것같은 현실속에서 어떻게 참된 지혜를 얻을수 있을까요?
[본론]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내용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3장 앞부분을 보면 어느날 솔로몬이 꿈을 꾸는데 그 꿈속에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3장에서 하나님이 등장하시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2장에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3장에서 하나님이 등장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자신이 선택한 왕으로 인정하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소원을 하나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자신의 소원을 말합니다.
3장 9절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지혜로운 마음을 구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원래 히브리어로는 ‘듣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이유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고, 백성들의 목소리도 잘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런 마음을 기쁘게 여기셔서 그에게 그가 구했던 지혜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았던 부귀영화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장 12절입니다.
이제 나는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너보다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 창녀의 이야기는 솔로몬이 꾼 꿈이 개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지혜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안믿는 사람들도 이 이야기는 아마 다 알 것입니다.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그림보시면 아시겠죠?
어느날 창녀 두 사람이 왕을 찾아옵니다.
그 중 한 여자가 왕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두 여자가 한 집에 살며 사흘 간격으로 동시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가 집에서 잠을 자다가 무심코 자기 아이를 깔아 뭉게 아이가 죽고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다른 여자의 살아있는 아이와 자신의 죽은 아이를 바꿔치기 합니다.
바꿔치기 당한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새벽에 자기 아이에게 젖을 먹이려고 보니 아이가 죽어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고 기가 막혔을까요?
그러다가 아침에 자세히 죽은 아이의 얼굴을 보니 자기 아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여자에게 찾아가보니 자기 아이가 그 여자 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꿔치기 한 여자는 그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다는 것입니다.
당사자인 두 여자 말고는 어느 누구도 진실을 알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자들의 말만 듣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들의 말만으로는 도저히 풀수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유전자 검사 하나면 곧바로 풀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갓태어난 신생아 얼굴로는 누구를 닮았는지도 구별할수 없습니다.
처음에 두 여자들은 이 문제를 들고 아마 자기 동네 재판관에게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윗단계인 시 재판관에게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역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증인도 증거도 없으니 너무 해결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감으로 대충 찍을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모든 재판관들이 해결을 못하니 결국 누구에게까지 가게 된 것일까요?
솔로몬왕에게까지 이 문제가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대법원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두 여자의 신분이 창녀라는 점입니다.
창녀가 누구입니까?
직업적으로 몸파는 여자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가장 천시받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창녀들을 부정하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여겨 가까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들이 왕 앞에까지 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정말 파격적인 일입니다.
이 말은 솔로몬왕이 그만큼 나라를 정의롭고 공평하게 잘 통치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자, 소외된자들조차 공평하고 공정하게 대우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대리자인 인간왕을 세워 건설하고자 하신 나라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처럼 솔로몬 통치 초기에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럼 솔로몬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해답을 다 아시겠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 솔로몬은 지혜를 발휘합니다.
24절입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칼을 가져오게 하였다. 신하들이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오니, 왕이 명령을 내렸다. “살아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솔로몬은 칼을 가지고 살아있는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고 명령합니다.
보통 물건이라면 이렇게 하는것을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칼을 가지고 아이를 반으로 가르면 아이는 죽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두 여자 모두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공정한 방법 같지만 어리석고 무자비한 방법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왕이 이렇게 판결한 이유가 있습니다.
26절입니다.
그러자 살아있는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 대한 모정이 불타 올라, 왕에게 애원하였다. “제발, 임금님, 살아있는 이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어도 좋으니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안될 테고, 네 아이도 안 될테니, 차라리 나누어 가지자”하고 말하였다.
당연히 진짜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죽게 생겼으니 그것을 막으려 합니다.
자식을 다른 여자에게 주더라도 죽이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엄마이기에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죽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가짜 엄마는 어차피 아이가 죽게될테니 그 아이를 나누어 가지자고 말합니다.
가짜 엄마는 자기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죽든 살든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짜 엄마의 말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어차피 당신 아이도 안되고, 내 아이도 안될테니 나눠갖자고 말합니다.
이 말을 보면 그녀는 진짜 아이를 갖고 싶어서 아이를 바꿔치기 한게 아닙니다.
그녀는 다른 여자에 대한 단지 시기심때문에 아이를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는 죽었는데 다른 여자는 아이를 갖고 있는게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가 죽든 말든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혜가 왜 필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위선과 거짓말, 속이는 자들이 넘쳐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분별하기 굉장히 어려운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숏츠 영상을 보는데 이단영상들도 섞여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숏츠 영상은 무의식중에 그냥 입력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합니다.
우리가 숏츠를 많이 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단들도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정치나 연예인, 상품들에 대한 거짓 영상들은 너무 많아서 말할것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더욱 지혜가 필요합니다.
거짓과 악에 속지 않기 위해 당하지 않기 위해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탄의 속성은 우리를 속이고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지혜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혜를 어디서 얻어야 할까요?
솔로몬왕을 보십시오.
지혜를 어디서 얻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는 더욱 간절히 지혜를 구해야 살아남을수 있습니다.
최근에 ‘지혜 피라미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지혜를 얻는 피라미드의 가장 아랫쪽에 성경을 둡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리 삶의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두어야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지혜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만으로는 우리가 삶의 모든 지혜를 얻을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피라미드 위쪽도 살펴봐야 합니다.
피라미드 가장 아랫쪽이 성경이고 그 위에는 교회 공동체가 있습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통해 얻는 지혜도 굉장히 소중합니다.
교회 위에는 자연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지혜를 얻습니까?
자연 위에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음악, 미술, 영화와 같은 아름다움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꼭대기에 인터넷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아에 봐선 안된다는게 아니라 지혜를 얻는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지혜 피라미드를 자꾸 거꾸로 적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역 피라미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원인 성경은 가끔 봅니다.
교회나 자연, 책도 그리 자주 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은 마치 지혜의 근원인양 날마다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뒤집어진 지혜피라미드를 다시 올바르게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혜의 근원이시므로 성경을 날마다 가까이 하며 지혜를 얻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지혜란 어떤 지혜일까요?
제가 앞서 3장 9절에서 솔로몬이 구한 지혜로운 마음이 원래 히브리어로는 ‘듣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솔로몬의 듣는 마음이 등장합니다.
솔로몬왕이 처음부터 듣고 싶었던 말은 두 여자가 입술로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아무리 들어봤자 판단하는데 도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왕이 진짜 듣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마음이 하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게 감춰져 있던 마음의 말을 솔로몬왕은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칼로 자르라고 한 것은 그 마음의 말을 들으려던 솔로몬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참 지혜란 들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보이는 것만 듣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듣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때 잘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경청이라고 합니다.
경청에는 청각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생각과 마음, 자세까지도 의지적으로 들으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자기 말을 하고 싶어합니다.
겉으로 말을 할수도 있지만 속으로 말을 할수도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듣는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기 말을 계속하고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때 우리는 우리의 말을 하느라고 주님께 경청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 자세까지도 의지적으로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참 지혜를 얻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지혜는 듣는 마음에서 얻을수 있습니다.
또한 참 지혜는 듣는 마음뿐만 아니라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입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솔로몬이 알고 싶고 듣고 싶었던 것은 모성애입니다.
모성애가 진실을 드러나게 만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