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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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기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은 아파트 건물 붕괴 사고에 대해서 아는가? 멀쩡하게 지은 줄 알았던 아파트가 한번에 무너지는 사건인 것이다.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아파트 건물을 짓는 중에 철근을 건물에 필요한 만큼 넣지 않고, 콘크리트 강도가 부족했으며, 층 중간마다 예쁘게 화단 같은 흙 공사의 하중이 너무 커서 붕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3가지 원인으로 건물이 붕괴가 된 것이다. 여러분 같으면 이러한 사례를 가지고 있는 공사 업체가 지은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건물 붕괴 사고로 인해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아파트를 보고 ‘순살 아파트’라며 어떤 건설회사가 집을 지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의 탐욕으로 일어난 일이다. 생명보다 돈이 더 귀한 사회의 모습이다. 이로 인해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이러한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어디있겠는가?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 있는 건물이나 비행기, 자동차가 몇 분 뒤에 큰 사고가 일어난다고 어떠한 전문가의 말을 들으면 어떤가? 바로 두려움이 찾아올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믿음이 없이는 어떠한 인간관계도 형성할 수 없다.
오늘의 말씀은 히브리서이다.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의 내용은 ‘믿음’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누구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글을 쓴 저자가 구약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유대인 그리스도를 향한 글인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부터 큰 박해를 받고 있음을 10장에서 말하며 이 책의 목적은 예수님만이 유일하시고 위대하신 분이심을 높이며, 어떠한 박해와 환난이 찾아와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도전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읽은 11장에서 믿음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믿음으로 살았던 인물들을 소개한다.
11장 1-2절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쉬운성경으로는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 입니다. 2 옛날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완성되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당시에 로마 사람들이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고, 도저히 믿음으로 살 수 없을만한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잠잠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언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가? 기도응답이 이루워질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선하신 길로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은 확실한 증거가 내 안에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이 당할 고난은 잠깐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약속하셨음을 기억하라. 히브리서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사진] 여러분은 이 그림을 누가 그렸다고 생각하는가?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가? 이 사진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교양과목에서 그린 자화상이다. 여러분은 내가 그렸다는 것을 믿는가? 만약에 누군가 이 그림이 내가 그렸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면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그린 그림인데, 굳이 증명할 이유가 필요한가? 정 그렇게 못 믿겠다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지도해주신 교수님을 만나게 했는데도 끝까지 못 믿는다면 나를 못 믿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믿음이란 어떠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문제이다.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 누구이신가? 하나님이다. 이것을 우리는 증명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과학이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창조 세계는 순엉터리와 신화와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과학과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진화론이 맞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는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세상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성경을 틀렸다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전혀 우리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과학을 맹신한다. 그러나 과학의 가장 치명타는 어느 누구도 태초의 세계를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도 하나의 가설이며, 사람의 뼈나 지질학적인 것으로 그저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태초에 계셨던 분이 계시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에 보면 ‘우리’라는 표현이 쓰여져 있다. 이것은 1인칭 복수로 사용된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어떤 신앙 고백을 하는가? 성부, 성자, 성령을 고백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혼자가 아닌 성삼위 하나님과 함께 일하셨다. 그 진리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은 시대가 바뀔수록 발전해가며, 변해간다. 피타고라스가 B.C 500년에 둥글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중세시대에 콜롬버스가 개척했을 때도, 사람들은 당연히 지구가 평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밝힌 건 16세기에 들어서 미젤란이라는 사람을 통해 밝혀지게 되었다. 나중에 소련과 미국에서 1968년에 지구와 달이 둥글다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줬지만, 여전히 21세기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미 2500년 전에 피타고라스가 밝혔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믿지 않았다. 이처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보게 된 것도 역사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과학이라는 것은 밝혀낸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의학만 보더라도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웠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이 너무나도 많다. 또한 의학은 돈이 되지 않으면 연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수가 생기는 병이면 이득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소수의 사람을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자금을 투자를 하며 연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학이라는 것 또한 오늘날까지도 한계가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에 눈으로 직접 본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무엇을 인정하는가의 문제이다. 여러분은 시대에 따른 변화가 많은 과학을 따르겠는가? 변하지 않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르겠는가? 그렇기에 과학도, 성경도 믿음의 영역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태초의 세계를 발견하려고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며 애쓰지만 우리는 이미 태초 세계를 알고 시작한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과학보다 훨씬 이성적인 것이다. 오늘 말씀 히브리서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소개한다. 히브리서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첫 번째로 아벨이 등장한다. 아벨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담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아벨과 가인이 제사를 드렸는데 누구의 제사를 받으셨는가? 아벨의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셨다. 그때 가인의 반응은 어땠는가? 분노했다. 하나님은 그가 너무 분노하신 것을 아시고, 왜 화내냐고, 얼굴이 왜 안 좋으시냐고 물어보시면서 죄를 다스리며 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분노의 마음이 가득했던 가인은 동생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서 그를 살인하게 되는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아벨은 어디있냐고 물어보시자, 가인은 되려 거짓말을 하며 모른다고 하였고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냐며 따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살인에 대한 댓가로 가인에게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저주를 내리신다. 이 말씀을 들은 가인은 이 벌은 자신에게 무겁고 하나님을 오해하며 자신을 이 땅에서 쫒아내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가 오해한 것이다. 누구든지 너를 죽이는 사람은 일곱 배나 벌을 받을 것이라며 누구든지 이러한 약속을 볼 수 있도록 표를 주시고 그를 지켜 보호하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어떻게 반응하는가?창세기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여러분은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까? 예를 들어서 열심히 일하고 수고한 아버지께 물 한잔을 드리는데 어떤 친구는 우리 아버지가 우리집을 위해 고생하시고 힘들게 일하셨으니까 이거 마시고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친구와 ‘아 귀찮네 정말, 왜 자꾸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거야’라고 투덜거리는 자녀 중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떤 물을 기쁨으로 마시겠는가? 당연히 그렇게 자신에게 물 한잔도 주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는건 오히려 기분만 상할 것이다. 가인도 이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이 예배를 안받으셨다면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하는가? 회개하며 돌이키고, 주님이 왜 나의 예배를 안받으셨을까 조심스럽게 여쭤봐야하는데,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기 때문에 ‘내가 기껏 이렇게 개고생했는데 예배를 안받아?’ 하는 마음으로 드렸을 것이다. 여러분도 만약에 예배 오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예배 드려준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 가운데 있다면 가인과 다른 모습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은 살인을 했던 죄에 대한 댓가를 분명하게 물으시지만, 그를 죽이지 않으시고 은혜로 그를 저주의 선에서 끝내신 것이다. 주님이 그를 미워해서 징계를 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를 오히려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품 안에서 그와 다시금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신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보호막이 사라졌기에 그는 인류 최초의 성을 쌓고 살았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자신이 스스로를 지켜야하며 누가 언제 자신을 죽일 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하는 것이다.
반면에 아벨은 하나님께 말씀을 순종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결과가 어땠는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으나 돌아온 것은 형이 자신을 살해한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 억울한 상황이 아닌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충성했는데,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마나 그를 기뻐했으면 그를 후대까지 그를 기억하며 칭송하며 그의 믿음에 대해 오늘날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하나님이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다윗의 충실한 장군이었던 우리야도 어땠는가? 그에게 충성했지만 결과는 다윗의 계략으로 무참히 전쟁터에서 죽음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의 충성심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고, 기뻐하셨으므로 마태복음 첫 장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나타난다. [사진] 1907년 9월에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오신 루비 켄드릭이라는 선교사님이 있었다. 그녀는 1905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준비하고 한국에 와서 개성에서 교사로 헌신했다. 아침마다 기도회를 열었고, 조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며, 아픈 아이들을 간호하다가 9개월 만에 과로로 사망하여 현재 양화진에 잠들어 계신다. 그녀가 가족에게 쓴 편지의 글은 “만일 자신에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고 말했던 이야기가 비석에 담겨 있다. 나중에 함께 양화진을 가게 된다면 함께 켄드릭 선교사님을 찾아보자.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했던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시대가 아무리 바뀌더라도 주님은 영원히 그들은 잊지 않으신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성경에서 이렇게 딱 두 번 등장한다. 그는 야렛의 아들이면서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았던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다. 그는 365년을 살았다. 1년은 몇 일인가? 365일이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가인의 아들의 이름도 에녹이다. 가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아들을 낳고 성의 이름도 에녹성이라고 지었다. 그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성을 쌓는 일을 하였고, 야렛의 아들 에녹은 다른 어떠한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최고로 삼는 삶을 살았다. 제 아무리 성벽을 높게 쌓는다고 해도, 더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면 금새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영원함을 갖는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삶은 어떤 삶인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어린아이는 엄마가 없으면 큰일난다. 혼자서 스스로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렇기에 엄마 옆에 쫄쫄따라다니며, 엄마랑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한 것처럼 하나님을 날마다 찾는 삶, 하나님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고 나와 영원히 함께해달라고 매달리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더나아가 그러한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자의 모습이다. 에녹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뤄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인생의 성공으로 크게 하나님께 영광돌린 삶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우선으로 두었고 믿었기에 하나님이 그의 모습에 너무나 기뻐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여러분 있는 모습 그대로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하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란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결국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주님이 분명하게 지금도 살아계시고 나와 이 공동체에 함께 계심을 확신해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질 수도, 볼 수 없는 존재라고 하여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랑 같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눈에 보이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그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가 4세기에 기독교 국가가 된 것처럼 한창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죽이던 로마를 바라보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말고 존버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최후의 날에 상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거듭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존버란 ‘존귀하게 버티다’이다.
사랑하는 드림인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은 Show me the Faith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Show me the money,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을 인정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것도 아닌 믿음을 보이라고
요구하시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우리에게 우리를 삼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와도 주님이 더 크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모든 만물과 우주는 하나님 손 안에 있고,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해야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밝히 환하게 비춰질 영광을 바라고 기다리며, 믿음의 조상들이 걸었던 길들을 증거 삼아 이 믿음 지켜나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스러운 상을 바라며 현재 힘들고 고통스럽고 막막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존버(존귀하게 버티자)하시기를 바란다. 존버는 반드시 승리한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바라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