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자랑, 산 자의 자랑
야고보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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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views성도가 선망하고 자랑할 것은 세상의 부요함,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 영원한 생명이 성도가 자랑하고 선망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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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자랑, 산 자의 자랑
(약1:9-11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지난 설교 요약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시험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주어집니다. 시험의 양상이 아무리 다양해도 그것을 통과하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온전히 인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내심은 성인군자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온전한 인내는 사람이 노력하거나 결심한다고 이룰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온전한 인내는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믿음이란 정확히 무엇에 대한 믿음일까요? 하나님의 존재, 능력, 성품, 뜻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시고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시기 때문에 이 시험조차 나에겐 유익인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가 나에게 이 시험을 허락하셨다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은혜 역시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성도는 기뻐하며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출제하신 하나님의 의도, 그리고 요구하시는 반응을 알 때 우리는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있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모든 지식과 상상을 초월하십니다. 그래서 이 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 지혜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전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의 이 말은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능력에 양발을 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며 간을 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정절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순간순간 나에게 가장 유리한 쪽을 택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우직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을 보고 어리석다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지혜는 절대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통과할 답을 얻지 못합니다. 차라리 망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편에 서는 자들에게만이 시험을 통과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정절을 가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시험을 통과하고 영적 성숙, 온전함에 이르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론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은 복음으로 인해 원래의 터전에서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문화와 낯선 땅에서의 생활로 인해 여러 가지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열악했습니다. 항상 자신과 가족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을 것입니다. 배고픈 것도 서러운데 예수를 믿는다고 조롱하며 적대시하기까지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과 그의 백성이 누릴 축복을 생각하면 스스로의 비천한 모습에 괴리감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비록 소수의 특권층이겠지만 가난한 이들은 선망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성도들 중에 부요한 자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부에 대한 열망, 그리고 부에 대한 자랑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음을 둘로 나눠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없는 마음, 하나님만 의지해선 불안해하는 마음. 또한 성도의 마음을 둘로 갈라지게 하는 것은 물론, 교회 공동체의 마음도 시기와 질투, 갈등과 분쟁으로 인해 여러 갈래로 나눠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이 겪는 문제들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와 너무도 닮아있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우리 모습이 상상되지 않습니까? 모든 서신서가 그렇겠지만 야고보서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현실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해답 역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효과적인 해답이 될 것입니다.
본론
1) 가난한 자들을 향한 권면
1) 가난한 자들을 향한 권면
먼저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낮은 형제에게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는 말은 모순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어떤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입니다. 낮은 형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새로운 신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또한 그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성도는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그 간구를 응답하심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의 성도의 기도의 향이 담긴 금대접 이야기가 바로 그 내용입니다.
진노의 자녀였을 때,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였을 때 우리의 자랑은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새 사람을 입은 우리의 자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의 신분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부를 열망하고 자랑하며 그것이 자신의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그는 죽은 자, 진노의 자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심각하게 말하면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자라고, 구원받은 성도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어쩌면 아직도 죽은 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모든 것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비천에도 처할 줄 알고, 풍요로움에도 처할 줄 아는 것. 돈에 휘둘리지 않는 신앙, 세상의 성공에 휘둘리지 않는 신앙. 그것이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부요함은 그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창조주 하나님, 세상의 모든 은과 금이 내 것이라 하시는 하나님, 하늘과 땅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사실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을 매일 맛보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살면 절대 두 마음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2)부요한 자들을 향한 권면
2)부요한 자들을 향한 권면
반대로 교회 안에 부요한 성도들을 향해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아마 이들은 성도지만 그들의 부요함을 자랑했던 자들 같습니다.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은근히 돈 자랑, 직업 자랑, 자식 자랑하며 마지막에는 얄밉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포장을 합니다. 성도 여러분, 물론 고깝게 듣는 사람들은 은혜로운 간증도 자기 자랑한다고 곡해합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간증이라면 그것이 듣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세상의 부요함은 옛사람의 자랑거리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에게 그것은 얼마든지 배설물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들에게 진노의 자녀 흉내 내기를 멈추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그 낮아짐의 내용이 10-11절에 나타납니다.(약1:10-11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자신의 낮음을 자랑하는 부한 자의 모습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요함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 힘 있는 자, 지식이 많은 자가 세상을 다스릴 것 같으나 실상 그것은 강한 햇빛에 말라 바스러지는 풀처럼 연약하고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허무한 것임을 아는 자, 그가 바로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는 부요한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정작 자기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건 겸손한 척하는 교만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어떻게든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을, 정보가 아닌 인격적으로 관계적으로, 경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가 두 마음으로 나뉘게 하는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그 지혜가 온전한 인내로 시험을 통과하게 할 것입니다.
결론
세상의 부요함은 죽은 자들, 옛사람의 자랑거리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랑거리를 껴안고 영원한 심판으로 들어갑니다. 마귀의 미혹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이 두 마음으로 나뉘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었다 다시 태어난, 살아있는 자입니다. 영생을 얻은 자의 자랑은 그리스도 예수, 그분으로 인해 바뀐 우리의 신분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입니다.
기도 가운데, 오늘의 삶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의 자랑이 정말 자랑할만한 가치가 있음을 마치 눈에 보이도록, 귀에 들리도록, 손에 잡히도록 생생하게 경험하게 해주시기를, 그래서 정말 자랑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그러한 은혜를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세상의 부요함에 마음이 끌려 우리의 발을 각각 하나님과 세상에 걸치게 하려는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높아진 우리의 신분을 자랑하는 자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자랑하게 하소서.
하나님, 아굴이 구한 것처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필요한 양식을 우리에게 공급해주시옵소서. 가장 값진 보물, 가장 큰 자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