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4:1-8
바울의 마지막 가르침
디모데후서 3:10–4:8
개관
디모데후서 3:10에서 바울은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특징(딤후 3:1–9)에서 다시 디모데에게로 관심을 이동시킨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성경에 의지하고 그가 받은 진리로 계속 훈련받으라고 권한다. (그는 바울과 어머니, 그리고 외조모로부터 성경을 배웠을 것이다; 참고, 딤후 3:10, 14–15). 편지 곳곳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을 보면, 에베소에서의 거짓 교사들과의 지속적인 긴장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담대하고 끊임없이 복음 메시지를 전파하라고 독려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1–5에서 이 강조점을 되풀이하면서,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신화를 좇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확고한 가르침이 필수적이라고 경고한다(딤후 4:4). 이 본문의 마지막 단락은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자신이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만족감을 표현한다(딤후 4:6–8).
구조
5. 디모데에게 사명을 위임함 (딤후 3:10-4:8)
a. 박해의 불가피성 (딤후 3:10–13)
b. 성경을 계속해서 의지하라는 권고 (딤후 3:14–17)
c. 가르침의 요약 및 마지막 권고 (딤후 4:1–5)
d. 바울의 마무리 간증 (딤후 4:6–8)
디모데후서에서의 위치
디모데후서 3:10–4:8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향한 권면을 매듭짓는다. 첫 단락인 디모데후서 3:10–17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역을 지속하라고 마지막으로 권고한다. 그는 디모데에게 또다시 자신을 따라야 할 본보기로 제시하면서 편지를 시작할 때 디모데후서1:8–14에서 제시한 패러다임을 다시 꺼내든다. 위더링턴(Witherington 2006, 362)은 후속하는 두 단락(딤후 4:1–8)을 맺음말(peroratio), 즉 앞선 이야기의 일부를 요약하고 강조하는 절정으로 본다. 가르침의 마지막 섹션에 이어서 바울은 디모데의 여행 계획과 관련된 내용과 디모데가 익히 알고 있을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말로 편지를 마무리한다(딤후 4:9–22).
정경에서의 위치
바울이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의 사역 경험들을 거론한 것(딤후 3:11)의 사도행전에 나오는 선교 여행의 문맥 안에 놓일 수 있다(참고, 행 13:48–52; 14:1–20). 하나님이 그를 이전의 모든 환난에서 구하셨다는 디모데후서 3:11의 말은 시편 34:19를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경건한 삶과 고난을 견디는 삶에 대한 가르침은 다른 목회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가르침을 반향한다(딛 2:12; 딤전 4:6; 6:11). 디모데후서 4:1의 “명령” 언어는 디모데전서 6:13을 반향하고, 진리를 전파하고 거짓 가르침을 반박하라는 명령도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의 명령을 따라간다(참고, 딤전 4:13; 5:20; 딛 1:13; 2:15). 거짓 가르침에 굴복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는 디모데전서에서 거짓 가르침에 대해 반복적으로 경고했던 것과도 연결된다(참고, 딤전 1:3–7; 4:1–5; 6:3–5, 20).
쟁점 한눈에 보기
• 박해의 불가피성
• 성경의 가치
•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사명을 위임함
• 핵심 단어 연구: ‘테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 “하나님의 숨이 불어넣어진”
• 핵심 단어 연구: ‘호 투 테우 안트로포스’(Ho Tou Theou Anthrōpos), “하나님의 사람”
• 핵심 단어 연구: ‘스펜도, 스펜도마이’(Spendō, Spendomai), “전제로 부어지다”
출발점: 영감과 무오
디모데후서 3:16은 성경에 관한 교리의 핵심 구절이다. 여기서 성경이 명시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된다(“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참고, 핵심 단어 연구: ‘테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 “하나님의 숨이 불어넣어진”). 이 구절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이라는 성경의 목적과 용도를 기술하기 때문이다. 성경 연구는 궁극적으로 모든 신자들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딤후 3:17). 대부분의 신학 교과서들은 성경의 권위, 영감, 무오에 대한 장황한 논의를 포함한다. 그루뎀(Grudem 1994)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45–138) 1–8장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교리”를 다룬다. 에릭슨(Erickson 1998, 224–85)은 10-12장을 하나님 말씀의 영감, 무오, 권위라는 주제에 할애한다. 헨리(Henry)의 책 『하나님, 계시, 권위』(God, Revelation and Authority) 제4권의 대부분은 성경의 권위, 무오, 영감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춘다(특히 6–8장을 참고하라. Henry 1999, 4:129–219). 이러한 신학책들은 해당 본문의 내용을 포함하여, 어떤 디모데후서 주석보다도 훨씬 더 자세하게 이 복잡한 주제의 미묘한 문제들을 탐구한다. 최근에는 영감과 무오란 주제가 복음주의 그룹에서 격렬한 논쟁거리였고, 이 주제와 관련하여 수많은 출판물들이 나왔다(예, Enns 2005; Allert 2007; Beale 2008). 성경 사전에서 성경무오와 영감을 다룬 글들 역시 이 주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유용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사명을 위임함
앞서 설명한 것처럼(참고, “디모데후서에서의 위치”), 이 본문은 바울의 담론 구조에서 맺음말(peroratio)에 해당한다. 즉, 편지의 요지를 요약하고 되풀이하면서 정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1–5에 나오는 첫째 단락은 담대한 복음 사역자가 되고, 진리를 가르치며, 거짓 가르침에 대응하라는 요구를 갱신한다.
바울은 자신의 명령을 갱신하면서, 예수님의 미래의 “나타나심,” “왕국,”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을 강조하는 삽입절을 중간에 집어넣는다(비교, 행 10:42; 살후 2:8). 배슬러(Bassler 2002, 207)는 신 현현의 언어가 “이 마지막 장의 권면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배슬러는 이 단락이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한 언급으로 끝난다는 점에 주목한다(딤후 4:8). 이 동일한 구절 안에 최후 심판에 대한 여러 암시가 들어 있다. 바울이 받을 “의의 면류관”에 대한 언급, 예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묘사하는 것, 그리고 “그날”이라는 문구 등이 그것이다. 편지의 이 대목에서 종말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궁극적인 성취를 앞서 가리키고, 또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 사역을 완수하라”(딤후 4:5; 개역개정 “네 직무를 다하라”)고 제시한 일에 헌신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한다.
최후 심판을 상기시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말세”에 사역하고 있다는 바울의 관점과 부합한다(참고, 딤후 3:1). 디모데후서 4:3에서는 시급성의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여기서 바울은 “때가 이르러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가 완전히 도래한 것 같진 않기 때문에, 디모데는 복음 메시지에 귀기울이고 반응할 일부 사람들이 있는 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사역을 이어가야 한다.
이 본문의 마무리 단락(딤후 4:6–8)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 경력의 끝을 향해 가면서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들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만족감을 내비친다. “이미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는 바울의 말은 대체로 바울 자신의 임박한 순교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참고, 핵심 단어 연구: ‘스펜도, 스펜도마이’[Spendō, Spendomai], “전제로 부어지다”). 그는 자신이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자신의 투옥이 곧 죽음으로써 종결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바울은 서둘러 디모데에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급한 요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딤후 4:9, 21).
• 배슬러(Bassler 2002, 194–214)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회서신의 모든 본문을 탐구한다. 디모데후서에서는 첫 번째 나타나심을 암시하는 성육신 주제가 1:9–10에 나타나고, 그리스도의 두 번째 나타나심이 4:1–8에서 다뤄진다. 바울의 최후 권면을 둘러싼 종말론적 틀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앞서 가리키면서, 담대하게 사역하라는 그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동기를 제공한다.
“Epiphany Christology in the Pastoral Letters: Another Look” Pauline Conversations in Context: Essays in Honor of Calvin J. Roetzel
• 라안스마(Laansma 2009, 199–207)는 “주석” 섹션에서 이 본문이 다른 신약 본문과 언어적, 주제적으로 연결된 부분을 지적한다. 그는 여기서 특히 누가-행전과 다른 목회서신의 관계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에 더 이상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는 특징은 목회서신에서 거짓 가르침이 묘사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 본문에 대한 그의 주석 전체는, 고난받을 준비를 하고, 가르침받은 것을 굳게 지키고, 인내로써 사역을 수행하라는 편지의 주요 주제와 잘 들어맞는다. 그는 특히 이 단락의 시작과 끝에서 최후 심판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시급성”에 주목한다(딤후 4:1, 8).
“2 Timothy 2:14–26” Cornerstone Biblical Commentary: 1–2 Timothy, Titus & Hebrews
• 라이펠트(Liefeld 1999, 286–90)는 디모데후서 4장을 바울의 “최후 발언의 기록”이라 부른다. 그는 디모데후서 4:1–8을, 디모데에게 요청하는 부분인 4:1–5와 사역자로서의 자기 삶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4:6–8로 나눈다. 최후 심판의 주제에 대해 라이펠트는 요한계시록 20:11–15, 고린도후서 5:9–10, 고린도전서 3:12–15를 인용하면서, 미래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전망과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바울의 요구”에 무게를 더하는지를 보여 준다. 디모데에게 전한 직접적인 명령은 모두 에베소에서 거짓 가르침에 대응하면서 강력하고 확고한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 사람들이 결국 건전한 교리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디모데는 힘써 가르쳐야 한다. 라이펠트는 디모데후서 4:6–8의 바울의 최후 진술이, 예를 들어, 자신에게 주어질 “의의 면류관”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성공적인 사역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바울이 이 편지들을 작성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바울이 “몇 가지 성취를 유산으로 남길 수 있게 된 데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 이해할 만하다고 공감한다.
“2 Timothy 4:1–8” NIVAC: 1 & 2 Timothy, Titus
• 타우너(Towner 2006, 594–618)는 디모데후서 4:1–5를 명령과 그 이유라는 측면에서 설명한다. 디모데후서 4:6–8의 사적인 발언들은 바울을 디모데를 위한 본으로 재차 거론하고, 바울의 때가 거의 끝에 이르렀음을 주목시켜 명령의 시급성을 더함으로써 이 명령을 강화한다. 그는 디모데후서 4:1의 종말 이미지 역시 디모데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시급성의 분위기를 더한다고 설명한다. 심판, 재림, 왕국의 종말론적 요소들은 “하나님의 특정한 미래가 ... 지금도 현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디모데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이 명령의 근거는 에베소에서의 지속적인 배교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다(참고, 딤후 4:3–4).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의 사역 경험을 디모데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디모데후서가 줄곧 그랬던 것처럼 디모데에게 명령하면서 바울 자신의 인격적인 본을 제시하는 일반적인 패턴을 취한다.
“2 Timothy 4:1–8” NICNT: The Letters to Timothy and Titus
• 위더링턴(Witherington 2006, 362–70)은 이 단락이 앞의 주장들을 요약하고(recapitulatio) 강력한 정서적 호소(conquestio)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단락을 수사학적 결어(peroratio)라는 형식적 범주로 설명한다. 또한 이 구절들은, 맺음말이 가진 또 하나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라, 편지의 몇 가지 주제들을 확장한다. 또한 그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최후 심판에 대한 언급이 이 단락의 구조를 형성하면서 독특한 수사학적 단위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2 Timothy 4:1–8” Letters and Homilies for Hellenized Christians, Volume I: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on Titus, 1–2 Timothy and 1–3 John
‘에피파네이아’(Epiphaneia), “나타나심.” 신약에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는 “출현” 또는 “나타남”을 의미하는데, 이는 ‘에피파이노’(epiphainō, “보여 주다,” “자신을 드러내다”; 또는 “밝히다”)에서 유래한다. 예를 들어, 디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에피파이노, epiphainō)”(딛 2:11), “우리 구주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나타났다(에피파이노, epiphainō)”(딛 3:4 ESV)고 말한다. 초기 그리스 문헌에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를 비롯한 ‘에피파이노’(epiphainō) 관련 단어들은 신전 내에서 신들이 출현하거나 신들의 도움이 나타난 것과 연결되었다.
신약 내에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 “나타남”)는 서신서에서만 나타나는데, 이것은 대체로 그리스도의 두 번째 강림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는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에피파네이아, epiphaneia) ... 불법한 자를” 물리치실 것이다(살후 2:8).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딤전 6:14), 그리고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딛 2:13 ESV)은 이 세상이 다음 세대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묘사한다.
디모데후서 내에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는 세 번 나온다. 디모데후서 4장에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강림을 고대하는데, 이는 다른 신약 본문에서의 용례와 비슷하다. 그리스도의 “나타남”(에피파네이아, epiphaneia)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주된 요소가 될 것이다(딤후 4:1). 또한 바울은 “그의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epiphaneia)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을 위한 상급(“의의 면류관”)을 이야기한다(딤후 4:8). 디모데후서 4:1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한 기대를 고려할 때,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한다는 언급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있게 될 그리스도의 심판과 공의에 대한 소망어린 기대를 가리키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디모데후서는 유일하게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를 사용해 그리스도의 첫 번째 나타나심(즉, 그의 탄생과 지상에서의 삶)을 가리키는 예를 포함한다. 해당 본문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 자신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것이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epiphaneia)으로 말미암아 드러났다”(딤후 1:9b–10a ESV). 이같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과거적인 의미로 언급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한다”(딤후 4:8)는 말 역시 그의 두 번째 나타나심보다는 첫 번째 강림을 가리켰을 가능성이 있다.
적용 개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의미 있는 목적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이를 위해 기꺼이 어떤 고통도 감내하려 한다. 다른 이들은 큰 고통을 겪지 않고, 다만 자신의 삶을 사소한 목적들에 맞추며 살아간다. 바울에게 복음, 즉 “좋은 소식”은 그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유일한 목적이며, 그는 복음에 충성하기 위해 큰 어려움을 감내한다. 복음은 그를 삶의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 즉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연결시킨다(딤후 1:9).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딤후 1:12), 디모데에게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지시한다(딤후 1:8). 바울은 자신의 투옥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직무의 일부분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에 대해 생각할 때(딤후 1:7–8), 우리는 이것이 고난으로부터의 보호 내지는 회피를 포함하는 것이라며 반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말한다(딤후 1:12).
자신의 후배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라”고 옥중편지를 쓸 대담한 멘토가 필요하다(딤후 1:8). 그런데 바울이 바로 그렇게 한다. 그는 자기 삶의 중심이 되는 목적이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서의 사역에 있다고 여기면서,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는다”는 예리한 설명을 덧붙인다(딤후 1:12a). 그는 디모데(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에도 맞서 헌신할 수 있도록 고무하기 원한다.
적용 개관
신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주제 중 하나는 인격적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령에 의한 즉각적인 품성의 변화가 아닌 것은 자기 의에 따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들은 영적인 변화가 철저한 영적 훈련의 결과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성경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인격적인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신자에게 성경의 중심적인 역할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ESV)고 말한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딤후 3:15 ESV). 바울은 성경과 인격적으로 대면하는 것 외에도 “건전한 가르침”이, 자기 기만으로 표류하지 않고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으로 서게 할 방법임을 암시한다(딤후 4:3–4).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파하고 ... 경책하고, 경계하고, 권하라”고 지시하고(딤후 4:2 ESV),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제공한다.
하지만, 가르침 자체가 안전 장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 모두가 “자기 사욕을 만족시키고 ... 진리를 듣기를 외면하면서” 가르침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딤후 4:3–4 ESV). 가르침의 융통성에는 성경의 표준으로 평가받는 일이 요구되고, 따라서 가르침은 단순한 의견이나 감상 따위가 아니다. 오직 “건전한 가르침”만이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