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스타 히브리서 4:12-16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82 viewsNotes
Transcript
필요할때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간구하기
필요할때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간구하기
히브리서 4:12–16 (DKV)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양날 선 어떤 칼보다도 더 예리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냅니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은 우리에게서 진술을 받으실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시니 우리가 고백한 신앙을 굳게 지킵시다.
이는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며 또한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비하심을 얻고 필요할 때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시다.
교회사의 위대한 교부인 어거스틴의 회심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은 밀라노의 한 정원에. 이제까지 함께 살아 온 여자들 그리고 세속적 쾌락을 추구했던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자기와의 치열한 내면적 투쟁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그의 영혼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그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눈앞에 스크린처럼 드러나고, 폭우 같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어 놓으니, 그것이 모두 헛된 것이며,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 통곡하였습니다. “나는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 그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소년인지 소녀인지가 구별은 안 갔지만 “tolle lege”(집어서 읽어라!)라고 들렸습니다. 이러한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는 마치 그에게 하늘로부터의 명령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서신을 펴들고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곳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이 말씀은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어거스틴의 폐부를 찌르는 듯이 박혀 들어갔습니다.
이 사건이후 어거스틴은 회심을 하게 되며 하나님앞에 자신을 헌신하게 됩니다..!
12절 -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 -> 마음=중심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죽어있는 문자가 아니다. 살아있는 말씀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힘'이 있고 ‘운동력'이있다는 것이다. 힘과 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요한복음 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이라고 고백한다.
요한복음 1:1 (DKV)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할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말씀이 우리의 혼의 영역과 영의 영역을 찔러 쪼갠다고 말한다. 그것은 곧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숨은 동기'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줘야하는 ‘숨은 동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감추인 ‘숨은 동기'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안에 나자신도 모르게 깊숙히 숨겨둔 ‘동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숨은 동기가 정결해져야 한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단지 나자신의 출세와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 숨은 동기가 말씀 앞에 드러나야 한다.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은채, 덮어두고 단절된 관계속에서 묻어두고 하나님 앞에 나오고 있다면.. 그 동기들은 드러나야한다.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감추일 수 없다.
나에게 하나님이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영역들이 있는데.. 그것을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예배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영역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이다. 왜 그런가?? 그분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모든 중심을 뚫고 계시며,, 그분 앞에 어떤 것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속에 있다면.. 우리는 성숙해질 수 밖에 없다. 더디더라도 성숙함의 여정속에 있을 것이다. 왜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숨은 동기들을 계속해서 비춰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숨은 동기들이 드러나고.. 순결한 동기로 하나님을 구하고 예배하는 예배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15절-16절 말씀을 보자.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 동정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동정은 ‘느낌을 공유하고 감정을 이해하다’라고 말한다. 여러분의 연약함에 대해서 여러분이 느끼는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 감정을 이해하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예수님을 많이 믿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여성이 훨씬 많다. 왜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구절을 보니까 이해가 된다.’
때론 아내한테 공감을 잘해달라는 요청을 받을때가 많은데.. 우리 예수님은 공감의 왕이시다. 여러분의 연약함을… 여러분이 느끼는 그 감정을 함께 공유하시고 감정을 이해하시는 분이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힘들때에,, 도움이 필요할때,, 어려움이 생길때에.. 사람을 먼저 찾지 말고.. 주님께 나아와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감정을 함께 느끼시고 이해하신다고 말한다.
왜그런가?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신 분이시기에 그렇다.
요한복음 1:14 (DKV)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시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진리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무엇이 되는가? ‘이단'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때에 ‘영지주의’ 이단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의 고통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적인 고통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육신 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것은 예수님은 광야에서의 마귀시험을통해 배고픔을 느끼기하셨고, 우시기도 하셨으며, 기뻐하기도 하셨고, 화도 내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기까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고, 조롱을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철저하게 공감하고 이해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 나아가라..
16절 필요할때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여기에서 제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은...
‘필요할때 도우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를 놓치지 말라.. 기도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 이 때라는 단어의 원형은 ‘카이로스'다. ‘하나님의 시간'이자 ‘기회'라는 단어로 쓰인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서 해결하려하지말고 그 이전에… 간절히 아버지께 기도함으로.. 그분께서 도우시는 ‘기회'를 잡으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시간,,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은혜의 보좌앞으로 될 수 있는대로 많이.. 나아가 기도해야하는 줄로 믿는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왜 기도해야하는가?
하나님께 도우심을 얻는 때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도우심을 얻는 기회를 얻기 위하여.. 이 순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을 잡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보좌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그럴 때에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지지'가 있다.
그분의 도우심을 입는것.. 그것이 그분의 지지를 입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