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8 금요기도회: 에스겔 1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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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오늘 다시 금요기도회로 저희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려는 죄를 가지고 있는 저희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이 시간도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찾으니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평강을 주옵소서. 오늘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이 시간되게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14:1-11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 누구든지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가는 모든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을 놀라움과 표징과 속담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에서 끊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무더운 더위도 한풀 꺾이고 어느덧 가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셔서 오늘 금요기도회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기 앞서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겔 14:1-11 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문제가 제기되는 1-3절,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인 4-5절, 그리고 하나님의 두 번째 답변인 6-11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제기되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답변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을까요? 이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부분인 문제 제기입니다. 1절부터 보시면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선지자 에스겔을 찾아갑니다. 이 장로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대표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어떤 문제를 가지고 에스겔을 찾아갔습니다.
아마 이들은 공동체에 생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여호와 하나님께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온 것 같습니다. ‘앉았다’라는 동사는 어떤 특별한 문제로 선지자를 찾아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모습은 8장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었습니다. 그때도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가 여호와 하나님께 문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답변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대표인 장로들이 선지자 앞에 앉는 것은 여호와에게서 나오는 메시지를 촉발시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 앞에 앉은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곤 먼저 에스겔에게 물어보십니다.
3절입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이스라엘 장로들은 100프로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에스겔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3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마음에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절을 하고 섬기는 외적인 모습도 잘못된 것이지만, 여기서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내면화된 우상숭배입니다. 마음에 들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우상에 바친다는 뜻이며, 자기 앞에 두었다, 더 정확하게는 얼굴 앞에 두었다 라는 것은 내면에 우상숭배가 고착화된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어떤 우상숭배 행위를 염두에 두고 지적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아직까지 끊어내지 못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상이라는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찾아오자 에스겔에게 “인자야, 그들이 내게 묻기를 조금인들 내가 용납해야겠느냐?”라며 반문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시면서 4절부터 쭉 말씀하십니다. 답변을 구하러 온 장로들에게 하나님은 4-5절에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라며 자신이 여호와임을 확인시키시고 첫 번째 답변을 주십니다.
4-5절입니다.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래, 내가 너희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단다.”라는 말을 들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의 답변은 “너희는 마음에 우상을 세워 나를 배신하였다. 그러니 내가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우상 숭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어려움을 이겨낼 답변을 구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답변이 아니라 그들에게 오히려 질문하시고, 심판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우상숭배한 죄를 고발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5절에서 말씀하듯이 우상을 섬기기로 한 그들의 마음에 대한 대가로 이스라엘을 체포하기로 하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장로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이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두 번째 답변을 주십니다. 두 번째 답변은 하나님은 6절에서 앞에서 심판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시고 ‘그런즉’이라는 말로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6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하나님은 4-5절에서 이미 제기된 문제를 되풀이 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7-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심판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회개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십니다.
그런데 이 회개의 대상이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7절 상반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전입한 외국인까지도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을 확대시키십니다.
이들이 만일 마음에 계속 우상을 세우고 선지자에게로 나온다면 하나님은 3가지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첫 번째는 그 사람을 대적하신다고 합니다. 원문의 더 정확한 의미는 “내가 그 사람을 향하여 내 얼굴을 둘 것이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자신의 얼굴 앞에 두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그들 앞에 두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해 죽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적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심판은 “그들을 놀라움과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게”하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표징’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본보기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우상 숭배를 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우상 숭배를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임하게 될지 이스라엘이 그 본보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구나!”라고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속담이라는 의미도 마찬가지로 부정적입니다. 우리는 바벨론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릅니까? 적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식으로 쉽게 바꿔서 말해봤을 때 이완용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릅니까? ‘매국노’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이완용은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내린 재앙을 가리키는 속담, 즉 대명사로 쓰이게 된다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심판은 “내 백성 가운데서 끊겠다.”입니다. 이것은 인간 권위 밖에 있는 전적인 하나님이 주체이신 선고입니다. 이 형벌은 제사장 법전에 따르면 여러 다양한 범죄 중에서도 종교적이고 성적인 금기를 위반한 범죄에 적용되는 형벌입니다. 다시 말해 아내인 이스라엘이 남편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외도하여 우상을 사랑하는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 “내 백성 가운데서 끓겠다.”라는 심판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 형벌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의 추방, 다시 말해 하나님 앞으로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는 형벌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문제 해결을 들으러 온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에스겔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아주 충격적이고 무시무시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나안 땅에서 끊어져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도 끊어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8절 끝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이후에야 이스라엘은 우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앞에서 그들이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회개의 길 또한 열어놓으셨습니다.
또한 11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백성을 가혹하게 다루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라고 그들을 구속하려는 목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행위를 넘어서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마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다른 것을 놓고 섬기는 마음 또한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겉 모습에 속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말했듯이 우리의 중심, 즉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1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제물들을 가지고 성전에 가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서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바로 마음에 하나님을 최고로 모시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그들이 많은 제물을 들고 성전에 오지만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라는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장로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과 같지 않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돈, 명예, 자식, 건강 등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섬기고 있진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것도 섬기고 있진 않습니까?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모습은 아닙니까?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우리는 동시에 섬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이런 우리에게 정해진 미래는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대적이 되고,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며,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무시무시한 심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하듯이 ‘회개’입니다. 우상숭배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칼빈이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우상을 제조하는 우상 공장일뿐입니다. 회개가 필요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마음에 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한 죄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대적인데 그분이 모든 죄를 짊어져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셨으며, 우리가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어야 하지만 그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셨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끊어져야 하지만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 받으시고, 우리에게 회개의 영이신 성령님을 주심으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덕분에 우리는 11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상숭배를 해서 잘못했다며 회개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상을 숭배하려는 오늘 우리 마음 속에 세워둔 우상이 없는지 돌아보며 회개하고,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심판을 모두 다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우상을 찍어내는 우상 공장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정해진 미래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다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우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우상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며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회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