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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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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39:1-5(구약 60쪽)
설교제목:
Genesis 39:1–5 NKRV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설교를 듣고 이른바 은혜를 받았다고 할만한 때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 당시에 수련회를 갔다가요. 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시는 어떤 선교사님의 설교가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아마 그분의 설교스타일이 요즘에도 청소년들 모이는 수련회 가서도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 설교자의 전달력도 훌륭했지만, 설교의 내용도 당시의 저에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것은 이와 같은 메시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요.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 준비하고 30대에 영향력을 발휘하라는 것이지요. 이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설교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요셉이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잊지 않고 역경 속에서도 힘써 살아가니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가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그와 같은 이야기에 매료되어서 나도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훌륭한 사람으로 더 정확히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사실 그렇게 만만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막상 30대가 되고 보니, 저는 요셉처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꿈을 이루기에는 멀리 벗어난 상태에 있었죠. 그러면서 한 때 저를 감동하게 했고 저에게 꿈과 희망을 준 이야기가 오히려 저를 실패자로 규정하는 것 같아서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10대에 20대에 온전히 살지 못했구나 제대로 살지 못했구나 하는 것들로 저를 옭아매려 했고 제 삶에 희망이 없어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신학을 공부하고 또 성경을 공부하면서 사실 요셉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그와 같이 꿈을 이루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만약 요셉의 이야기가 꿈을 이루는 것이라면요. 특별히 앞서 얘기한 30대에 성공해야하는 것이라면요.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은 절망을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아주 소수의 30대들만이 이른바 사회적 성공을 그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는 것을 바탕으로 이루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메시지가 세상에서 경쟁하여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성경이 과연 세상과 다른 비전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으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를 다시 보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는 김근주 교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강의에서 그는 요셉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와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일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내용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요약해서 말씀 드리자면, 요셉을 종으로 산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봅니다. 그리하여 그의 집안에 대소사를 요셉에게 맡기었는데, 놀랍게도 요셉으로 하여금 그 집안이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역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됨을 믿고 이해하니깐, 이 일이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요. 하나님을 모르는 이집트 사람 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이집트 사람에게서 요셉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은 참 특별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편 요셉이 신앙이 출중한 사람이어서 그가 종으로 팔려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모습을 보디발에게 보였기 때문에 보디발이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을까요? 앞서 말한 김근주 교수님은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오히려 요셉이 그렇게 했더라면, 요셉은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기는 커녕 그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냥 고용된 일꾼이 아니라, 종으로 팔려온 사람이 자기가 믿는 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종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내려버둘 주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주인의 힘을 생각할 때, 심지어 요셉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반대의 상황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빗대어 말하면 이런 것이죠. 직장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신앙인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신앙생활에 몰두하는 사회 초년생이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께서 사장이라면 그를 좋은 신앙인이라고 여기며 우대하겠습니까? 아니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피우며 직장에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니 해고를 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신앙인들이니 고민이 되시겠지만, 비그리스도인들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당장에 해고하겠지요. 그러니 신앙생활을 몰두하는 종이나 직장인을 비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보다는 신앙의 부정적인 면만을 더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인 것은 그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것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어땠을까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특히나 요셉처럼 노예로 팔려온 경우라면 더욱더 일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경우에 종들은 시킨 일만 하거나 되도록 시킨 일도 대충하려 들겠죠. 그런데 주어진 일을 잘하다 못해 그 이상을 하려고 드는 종이라면 어떨까요? 달라 보이지 않겠습니까? 도무지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한편으로 보통의 인간이 아닌 아주 특별한 종류의 인간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요셉이 하나님을 이집트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인 방법일 거라는 것입니다.
한편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신앙인이 살아가는 삶임을 교훈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말을 그리스도인으로 보이게 또는 신앙인으로 보이게 살라는 것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에 열심이 있고 그 일에 매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보이곤 합니다. 그것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앙생활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삶이 분리된 이중적인 존재이거나 믿는대로 살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덕은 우리가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은 받는 만큼 일하고 주는 만큼 사랑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사랑하는 만큼 일하고 사랑하는 만큼 주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줍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삶의 길을 보임으로써 우리가 세상의 가치나 물질에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임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적인 행위와 모습들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실하고 세상과 다른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건데, 저는 오늘 우리가 요셉과 같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에 잣대로 보면 별볼일 없거나 평범한 것이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다르게 일하는지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는지를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증거하게 됩니다.
이렇게 오늘도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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