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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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빌립보서 4:6(신약 322쪽)
설교제목: 사귐의 기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를 듣다보면 또는 저 같은 경우에는 설교를 하다보면 유독 많이 얘기하는 주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구원받고 변화된 삶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신앙생활에 관한 여러 요소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그러한 얘기들이 반복되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기도할 것이고요. 열심히 들어도 사실 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도 그러한 종류의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오늘은 기도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 하는데요. 기도라는 것이 참 중요하지만 막상 기도를 잘하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기독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주목받은 기도의 관한 책이 있습니다. “사귐의 기도”가 바로 그 책인데요. 현재 미국의 와싱톤사귐의 교회를 담임하는 김영봉 목사님이 2002년에 쓴 책인데, 아직까지 기도에 관한 국내의 책 중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침 이분이 제가 잘 시청하는 유튜브의 ‘잘잘법’이라는 채널에 나와서 기도에 관해서 짧막한 강의를 한 것이 있어서요. 그 내용을 토대로 해서 오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선 기도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관해 김영봉 목사님은 ‘사귐’이라는 것으로 답합니다. 관련해서 신약성경에서 기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두개가 있다고 얘기하는데요. 하나는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로 ‘프로슈케’이고 다른 하나는 ‘데에시스’입니다. 바로 이러한 단어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 나오는 것인데요. 다시 한번 오늘 성경 본문인 빌립보서 4장 6절의 말씀(신약 322쪽)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서 기도라는 말이 헬라어로 프로스케이고요. 간구라는 말이 헬라어로 ‘데에시스’입니다. 본래 데에시스는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을 뜻하고요. 프로슈케는 찬양하는 것, 고백하는 것, 간구하는 것, 묵상하는 것 등의 모든 기도의 행위를 뜻합니다. 그러니 간구는 기도의 한 요소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기도라는 옷장에 간구라는 옷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도는 다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요구를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내용들이 주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는 결코 간구가 전부가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찬양하고 고백하고 묵상하고 하는 등의 여러 과정을 포함하는데, 김영봉 목사님은 이를 ‘사귐’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 기도의 목적은 사실은 사귐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 곧 어떤 필요를 구하는 것도 기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기도가 불행하게도 간구밖에 없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결코 기도의 전부가 아니며 기도의 목적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제가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도는 하나님의 시선을 얻는 것이고 주술과는 다르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같은 차원의 이야기인데요. 기도가 결코 우리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르게 또는 온전케 세워가는 것인데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오늘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기도를 통해 우리는 그와 같이 하나님을 잘 알게 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는 것입니다. 이것을 김영봉 목사님은 기도가 사귐이라는 것으로 표현한 것인데요. 그가 말하는 ‘사귐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서로에게 자신을 여는 것이고, 쌍방 소통이 일어나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얘기합니다.
그리고 사귐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인데요. 마치 오랜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받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을 닮아가지 못한다면 또는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무언가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과 사귐을 이루어야하고 그에 따라 기도해야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본래 인간이 또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이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와 같이 관계맺고 사귐을 이루시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일전에 제가 기독교교리를 다루면서 삼위일체에 관한 얘기를 했었는데요. 삼위일체 교리가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이라는 관계 또는 사귐을 이루고 계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과정에서 좋다라는 것으로 창조세계를 평가하셨는데요. 유독 아담이 혼자 있는 것 더 정확히는 사람이 홀로 있는 것에 관해서는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해 하와라는 배필을 만드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꼭 결혼을 해야한다거나 연애를 해야한다는 성경의 교훈은 아니지만, 사람은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 함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관계와 사귐으로 이뤄진 것임을 생각할 때, 기도 또는 사귐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관계된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와 창조세계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도 우리 안에 끊어진 관계 이를테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창조세계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또는 창조의 섭리에 따른 것이 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김영봉 목사님은 사귐의 기도를 위한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관한 율법적인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율법에 따라 다시 말해 그분의 명령을 따르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심판하시는 분으로 우리가 여기고 있다는 것인데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늘 감시하고 우리가 잘못하나 하지 않나 지켜보시는 분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분과 사귐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선의를 가지고 계신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좋은 분으로 또는 하나님께 호감을 느낄 때 우리는 그로부터 하나님과의 사귐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귄다는 것도 그와 같은 마음에서 출발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이 마음이 든다 좋다하는 마음에서부터 사귐을 이뤄가지 않습니까? 싫고 밉고 무서운 대상과 어떻게 사귐을 이뤄갑니까? 폭력에 의해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다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사귐으로 우리를 이끌지 못합니다. 그래서 앞서 사귐은 좋아하서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들지 않고서 사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사귐의 출발점이 됩니다.
둘째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그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가 간구와 어떤 필요를 구하는 것으로만 이뤄진다면 우리는 길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또 그 문제가 아주 중요하게 다가오기 전까지 그 문제에 관하여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이들은 갑자기 큰 일이 생기면 열심히 기도의 자리를 찾다가도 그 문제가 해결되고나면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도의 자리를 떠납니다. 그러나 사귐을 이루는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김영봉 목사님의 제안 대략 1시간 정도 이상을 내라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우리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고 해도, 그에 준하는 혹은 그것보다 많은 시간을 내어서 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운동이나 공부나 일하는 것에 좀더 익숙해집니다. 다시 말해 시간을 들일수록 그 일이 중요한 것이고 그 일이 친숙해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것에 시간을 들여야만 우리는 그것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시간을 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여러가지 기도의 방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조용히 묵상하는 것도 있고 크게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도 있고 그 외에도 앞서 기도가 찬양하고 묵상하고 간구하는 등의 여러 활동들이라면 찬양하는 일도 기도가 될 수 있고 또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과 사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기도가 어렵지 않게 또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요.
그러니 기도의 훈련과 습관을 형성하는 일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좀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제가 올해 기도를 좀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저녁에 기도의 시간을 정하여서 기도하였습니다. 대략 오후 10시 이후나 11시 이후가 되면 기도를 시작해서 약 1시간 채 못되게 기도를 했었는데요. 한동안 이와같은 기도의 자리를 잘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일이 바뻐지기도 했고, 제 삶에 여러 변화들이 찾아 오면서 그 기도의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훈련되고 습관으로 형성되지 않다보면 조금의 위기가 찾아와도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니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그러한 습관을 만들어가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가 기도에 관해서 나눴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가 필요를 구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기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이루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바로 세워가는 일 또 충분한 시간을 내어놓는 일이 참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