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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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6:7(신약 8쪽)
설교제목: 영성과 침묵
Matthew 6:7 NKRV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요사이에 CBS라는 기독교방송에서 방영한 ‘아카데미의 숲’이라는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다시 보고 있습니다. 약 5~6년 전에 방영된 프로그램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서 다시 볼 수 있는데요. 여러 강사 분들의 강의를 보다가 현재는 성현 목사님의 영성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아직은 강의를 다 듣지 못했지만, 첫 강의를 들으면서 흥미로운 부분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강사 분인 성현 목사님이 강의를 시작하면서 영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드냐고 질문을 해요. 우리 성도 분들은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드실까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 중에서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해요. ‘부담으로 다가온다’고요 어떠신가요? 공감이 가시나요? 왠지 모르게 영성이 신앙에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오지 않나요? 반면에 또 다른 분들은 이렇게 얘기해요. ‘기도 또는 신앙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 같다고요. 이러한 답변은 어떠신가요? 공감이 되시나요? 아마 저는 앞서 부담이라는 말도 사실 이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영성이라는 말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고, 뭔가 신앙에 열심을 이루거나 아주 특별한 상태에 놓인 것 같은 것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는데요. 예전에 듣기로 기독교의 성인 중에서 성 프란시스라는 분이 있는데요.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분이 설교를 하면 숲의 동물들도 와서 그 설교를 들었다고 해요. 저는 이런 것이 영성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영성이라는 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신앙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요. 한편 이러한 생각이 영성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부담이라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영성 강의를 해주시는 성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해요. 영성은 ‘관계’라고 말이지요. 어떠신가요? 영성을 관계라고 말하는 것이 와 닿으신가요? 저는 이 말이 참 와닿았는데요. 아마 최근에 제가 기독교교리 공부를 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일전에 수요예배를 통해 기독교교리를 나누면서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또 기독교는 어떤 종교일까? 이러한 질문을 놓고 설교를 준비하고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요. 묘하게도 이러한 질문이 하나로 단어로 연결되는 것을 보았어요. 모두가 ‘관계’라는 것으로 통하는 거예요.
설명하자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신데요. 이것은 하나님이 관계지향적인 속성을 지신 분임을 말해주지요.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하는데요. 사랑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 이상의 관계를 맺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관계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말하지요.
또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역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는데요. 이것은 하나님의 관계중심적 속성을 닮은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죄라는 것도 이러한 관계중심의 삶이 무너진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도 관계를 중시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관계를 중시하는 종교인데요. 성경 또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최고의 율법 또는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사랑하라’는 명령임과 동시에 ‘좋은 관계를 이루라’는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 안에서 관계라는 주제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성이 신앙에 관계된 것이라고 했을 때 관계라는 말도 충분히 납득이되고 이해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를 잘 맺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성현 목사님은 여러 영성의 대가들을 통해서 그 방법들을 매 강의때마다 소개해주고 있는데요. 첫번째로 소개해준 분이 헨리 나우웬입니다. 그는 본래 가톨릭의 사제이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개신교에서 많은 주목받았던 분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그의 통찰이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의 삶에 있는데,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정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후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데이브레이크라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을 돌보는 공동체에 들어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이른바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 어찌보면 낮은 자리에서 섬김을 이룬다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그가 그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귀감이도 주목이 되었습니다.
어째든 이러한 인물이 말하는 영성에 관해서 성현 목사님은 소개하는데요. 헨리 나우웬이 말하는 영성 또는 관계맺음은 친밀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크게 세가지의 종류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에 관한 얘기하는데요.
첫째는 나와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둘째는 타인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첫째와 둘째는 꼭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가면서 터득하게되고 보통은 어느 정도 잘 이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미운 4살 또는 중2병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를 지나면서요.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게 돼죠. 또 우리는 자라면서 학교나 학원 등에서 또래집단을 만나면서 서로 관계를 맺어가고 사귐을 이뤄갑니다. 이렇게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 세워가는 일은 꼭 신앙인이 아니어도 합니다.
반면에 신앙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데요. 흔히 우리는 이것만 영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첫번째와 두번째를 모두 포함해서 세번째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바로 세워나가는 것이 영성입니다. 그런데 첫번째와 두번째의 관계는 살아가면서 나름 터특하게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경험하게되는데요. 세번째 관계 곧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더하는 것은 이와 같은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여기에도 세가지의 요소가 필요한데요. 저는 한가지 요소만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그것이 한편으로 우리 신앙생활에서 꼭 좀 필요하고 주목할 요소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침묵입니다. 이것은 기도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요. 우리는 기도할 때 자주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또는 우리가 하고픈 말을 아뢰기에 바쁩니다. 기도를 대화라고 하면서도 사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나 생각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담임목사님이 해주신 얘기였던 것 같은데요. 어떤 권사님이 매일같이 기도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놀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하나님 진짜 내 기도를 듣고 계셨군요.’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또한 우리의 기도가 어떤 모습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일방적인 말하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정말 기도가 대화라고 생각한다면, 서로 주고 받아야하는 것이 아닌가요? 또한 하나님이 정말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 점에서 침묵이 중요합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내 기도 마치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침묵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나 침묵하고 계신 것 같아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정말로 음성을 듣는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한다고 가만히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끝임없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되뇌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침묵을 가장한 소리없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침묵은 무엇이냐? 그것은 그저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부부는 눈빛만봐도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있다면서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동안의 세월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지만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행동이나 표정과 반응들이 그뜻을 집작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침묵은 나에게 집중하고 있던 나혼자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던 것 곧 나에게 관심하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관심을 옮겨가고 돌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서도 또한 발견하게 되는데요. 제가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Matthew 6:7 NKRV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예수님은 기도에 관한 교훈을 주시면서요. 중언부언 하지 말것을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한다’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사람들은 오래 많이 기도해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또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가 그런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것은 기도가 일방적으로 어떤 얘기를 쏟아놓는 종류의 것이 아님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기도가 아니라면, 반대로 말을 듣는 것이 제대로 된 기도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기도에서 침묵이 중요한 것이기도 해요.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멈추고 우리의 요구를 멈출 때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주님께 귀 기울이는 일에 힘을 쏟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얘기를 하지말라는 것이 아니에요. 내 얘기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얘기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기도하면서 또한 침묵하며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또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마음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그와 같은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영성을 키워가는 우리 성도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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