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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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133:1(구약 900쪽)
설교제목: 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Psalm 133:1 NKRV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알고 있으시겠지만, 이번 금요일부터 청년부 여름수련회가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교육부서이기도 하고 저는 언제나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돼요. 수련회라는 것이 평소와는 다르게 숙박을 하면서 좀더 친밀하게 교제하고 좀더 밀도 있게 신앙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요. 어떻게하면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이렇게 저렇게 궁리해 봅니다. 아쉬운 것은 과거보다 요즘에는 수련회에 시간을 내어 참여하는 것이 열성적이지 않다가 보니까요. 또 사회환경도 교회의 행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교회 일로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부의 경우에도 직장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요. 주말이나 공휴일 등을 이용하지 않고는 평일에 시간을 내서 수련회를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그것은 신앙 또는 신앙생활에 관계된 일이 오늘날 청년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와 가치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그러다보니 더욱더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주어진 시간이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만큼 그 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낼 방법들을 깊이 생각하게 돼요.
이번에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고민한 주제는 ‘공동체’에 관한 것인데요. 제가 생각할 때 아마도 수련회의 목적은 이 ‘공동체성’을 이루기 위함에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오늘 성경본문인 시편 133편 1절을 주제성구로 놓고 ‘공동체’ 곧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자’는 내용으로 수련회를 준비하는데요. 한편 생각해보니깐 이러한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는 비단 청년에게만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과 더 나아서 삶이 이 공동체에 관계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오래 전에 들었던 얘기인데, 제 전문분야는 아니라서, 또 제가 이를 잘 알지도 못해서 과거에 들었던 얘기를 토대로 말씀을 드리는데요. 사람 또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한자가 이렇게 보여준다고 해요. 인간을 한자로 쓰면, ‘사람 人(인)’에 ‘사이 間(간)’을 쓰잖아요. 여기서 사람 人(인)자는 두 사람이 등을 기대고 있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요. 그러니깐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둘 이상의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죠. 또 사이 間(간)를 쓰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하는데요.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즉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러니깐 우리의 선조들의 사람에 관한 이해가 이 한자어에 담겨 있는데요. 우리 선조들의 생각에 사람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그 유명한 철학자도 말하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이에요. 다시 말해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거예요. 실제로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요. 우리의 삶이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뤄져 있고, 또 우리가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우리 삶을 시작했음을 모두가 알고 있죠.
이처럼 본래부터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인데요. 문제는 이것이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죠. 놀랍게도 신앙 안에서도 공동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같은 말인데,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쓰고 있어요. 제가 읽어드릴께요.
시편 133:1(구약 900쪽) / 새번역 성경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개역개정에 있던 ‘형제’라는 표현을 ‘형제자매’로 확장했지만, 내용은 같아요.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왜 우리가 공동체를 이룬 모습이 아름다운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신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구약성경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사람이 혼자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시며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인 하와를 만드시지요. 구약성경 창세기 1장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사역 중에서 유일하게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장면이 바로 여기에요. 하나님은 창조하시 모든 것을 좋다고 말씀하셨느데, 아담이 홀로 있는 것만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죠.
다시 말해서, 하나 이상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관계된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일전에 한번 말씀드리긴 했는데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죠.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주 복잡한 것이지만, 단순하게 말해보자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관계 또는 공동체를 이루고 계신 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 하나님의 본성이 공동체에 관계되어 있고 그분이 원하시는 바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니 우리의 신앙에서 공동체는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신앙생활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저는 또 다시 생각해봐요. 과연 우리가 신앙생활하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어떤 유익이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사실은 저같이 내향적이거나 조용한 성격의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참 힘들 때가 많이 있어요. 우선은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요. 그 복잡한 관계들이 때로는 신앙생활을 힘겹게 하고 어렵게하는 경우가 종종 아니 자주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사람에게 치여서 상처입고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는 멀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치중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더 곤고하게 더 깊이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거든요. 그것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요. 그것이 올바른 종류의 신앙생활이라 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하는 만큼 사람들 더 정확히는 이웃과의 관계도 소중히 여겨야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 역시도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것이죠.
그래도 분명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쉽지 않고 때로는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대도 우리가 이러한 관계 또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은요. 단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령하셨기 혹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달리 말하자면, 공동체가 주는 유익이 있다는 거예요. 어쩌면, 하나님도 그것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몰라요.
제 얘기를 좀 드려보면 이래요. 저는 자주 고백했듯이 내향적인 사람이고 또 그에 따라서 활동적이거나 주목받는 일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에 반대가 되는 상황이나 사건을 만나면 당황하거나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요. 그렇다고 마냥 그것이 나쁘다거나 싫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 속에서 저의 이렇게 편향된 모습을 거부하거나 못마땅해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저의 한계로 다가오는 것이 좀 싫고 불편할 때가 있어요. 종종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나도 멋지게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멋지게까진 아니어도 거리낌없이 음악과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사랑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같은 것이 들때가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생각처럼 몸이나 마음이 따르진 않지만요. 그런데 이러한 저의 한계를 극복하는 순간이 종종 있는데요. 언젠가 제가 어린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쳤던 적이 있었어요. 아마 난생처럼으로 누군가에게 율동을 가쳤던 것 같아요. 당시에 어린이를 담당하는 교육전도사였는데요. 작은 교회이다보니 혼자서 많은 것을 해야 했어요. 가장 큰 난관이 어린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치는 일이었는데요. 그때는 이 율동을 어른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하는 것이어서, 어떻게든 가르쳐야 했어요. 그러나 워낙에 몸치인 제가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밤마다 교회에서 혼자서 율동연습을 하고 거의 체조를 외우듯이 율동을 외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쳤어요.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막상 가르치려고 하니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율동영상을 틀고 제가 시범을 보여가며 율동을 가르쳤어요. 다행히도 아이들은 저보다 훌륭해서 금새 율동을 익혔고 예정대로 발표를 할 수 있었어요.
아마 저의 성향과 기질대로 살았다면, 그러한 일들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설령 그 일을 맡았다고 해도 그것을 완수하지 못했을 거고요. 그런데 제가 속한 공동체가 저의 한계를 넘어서게하고 저를 변화시켰어요. 저는 그것이 공동체가 주는 큰 유익이라는 생각을 해요. 홀로 있음을 통해서는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공동체를 이루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고 더 큰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저는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 것을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요. 저는 공동체가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키는 것을 경험했고 그것을 또한 우리 성도 분에게도 일어나길 기대해요.
그래서 바라건대, 오늘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온전케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삶과 공동체를 이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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