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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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맥가이버 라는 오래 전에 방영되었던 티비 시리즈를 아십니까?
“우리 할아버지는 말씀 하셨지...” 라는 말을 되내이며, 기가 막힌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탈출 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도구를 만들어 내는 모습에 손재주가 좋고 머리가 똑똑한 사람을 맥가이버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들어낸 물건들은 주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생존용으로 만들다 보니, 그 모양새가 공학적으로 엉성한 것은 사실 이었습니다. 완벽하기 보다는 작동이 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 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가 비늘과 덕테이프로 만든 신발을 본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편으로는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고도 실패한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 할까요?
최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엑스는 스타쉽 이라는 대형 우주 왕복선을 발사 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발사한지 몇초 지나지 않아 폭발해 버린 것입니다. 이 로켓에 소요된 돈은 자그만치 1300억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발사를 지켜 보던 관제소의 사람들은 조금 아쉬워 할뿐 누구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론 머스크는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수천억의 돈을 공중에 날려 버린 그의 행동을 누군가는 비난하겠지만, 관제소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로켓 발사의 최대 난관 이라고 불리는 ‘최대 동압점' 이라는 것이 있는데, 로켓 주변의 압력이 최대가 되는 지점을 이 로켓이 통과를 하고 폭발했기 때문에 중요한 난관은 해결을 하고 폭발 한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다음 발사때 사소한 문제들만 잘 관리 하면 성공은 따논 당상 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깊은 상황은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비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그런 비난을 미소로 응대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주님의 이 땅에서의 삶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서 놀랍지도 않은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도전과 비난 입니다.
때때로, 우리 의도와 상관 없이 비난을 받곤 합니다.
그 일로 가슴 아파하고 관계가 단절 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계속 해서 무시해야 할까요? 그 관계는 끊어 버리면 될까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비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비난과 나쁜 평판에 직면 했을때 어떻게 대응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 가질 때, 깊은 깨달음과 지혜 얻으시기를 축원 합니다.

1.설명 가능한 믿음

오늘 본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표적을 나타내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으로 시작 합니다.
주님의 사역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대부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11:14 (NKRV)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천국의 비밀을 풀어주시어 깨달음을 주시는 그 사역에 무슨 이견이 있겠는가 할 수 있지만, 주님의 사역은 이전에 본적이 없는 아주 특별한 역사였기에 긍정적인 반응만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표적의 깊은 영적 의미 보다는 마술이나, 볼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주님을 시험하는 무리도 존재 했습니다.
누가복음 11:16 NKRV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후자의 주님을 시험하여 더 많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과 달리, 전자에 해당하는 경계하고 시기하는 무리들은 무시 할 수 없는 수준의 비난과 오명을 씌우려는 악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들을 ‘바리새인들' 이라고 정확히 지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24 (NKRV)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
자기 스스로를 주님과 동등하거나 또는 더 높은 위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자 시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깍아 내리려는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행하는 모든 표적이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서 행하는 것이 아닌 ‘바알세불' 을 힘입어 행하는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1:15 NKRV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이것은 분명한 오명이었습니다.
바알세불은 성경 전체에 걸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우상신 중 하나 입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수 많은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이 특이한 종족으로 여겨졌습니다.
신 중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바알' 가나안 지역의 여신 ‘아세라' 두로와 시돈 지역의 ‘아스다롯' 등이 있었고,
한편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된 신들 중 숙곳브놋은 암탉의 형상을, 네르갈은 수탉의 형상을, 아시마는 염소 형상을 띠고 있었다 한다. 그리고 닙하스는 개의 형상을, 아드람멜렉은 노새의 형상을, 아남멜렉은 말의 형상을 각기 띠고 있었다 한다(플핏, 메튜헨리 주석).
주님의 거룩한 표적을 이방신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비난도 모자라 바알세불이라는 언급이 더 심한 모욕이라는 이유는 뭘까요?
바알세불이 더 험한 모욕인 이유는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으로 불리는 악령 중에 악령 이며 또한 역사 기록에 의하면, 바알세불의 또다른 이름은 ‘오물의 신' 또는 ‘파리의 신', ‘분토의 왕' 이기 때문 입니다. 뭐 이런 신이 다 있나 하겠지만, 당시 블레셋 지역에서 섬기던 신이 분명하다는 것은 구약성경에도 등장하는 에그론 이라는 도시에서 파리 형상을 한 바알세불 금 신상이 출토 되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3 (NKRV)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모욕 중에 가장 심한 모욕, 바알세불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욕 중에서 가장 심한 욕으로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물의 왕’의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터무니 없는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쁜 첫인상과 나쁜 평판은 사회생활에서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현재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과거의 잘못이나 허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존재 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되고 배풀며 살아가도 그들은 은근히 우리를 흠짓 내고 우리를 깍아 내립니다. 우리는 이럴 때, 보통 화를 내고 그 사람과의 단절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또 나의 험담을 하고 과거의 잘못이나 오해를 전파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 입니다.
또다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걸림돌이 되고 나아가 복음 전파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 입니다.
우리 주님의 대응을 봅시다.
누가복음 11:17–18 NKRV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우리가 누가복음시리즈를 나누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며 논쟁하기 보다는 조용히 그들 사이를 지나서 멀리 떠나 가라는 설교를 기억 하십니까?
그 설교의 상황은 주님을 절벽으로 몰고 가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아주 급박하고 이성을 잃은 상태 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상황은 말로서 사회적 오명을 씌우려는 상황 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오명씌우기와 비난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십니다.
간단 합니다.
‘내가 오늘 말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낸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적이 아닌가?
바알세불이 귀신의 왕이라면 내가 귀신을 쫓았는데, 이 표적이 바알세불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통찰은
대부분의 오명씌우기와 비난은 어처구니 없고 근거 없는 비난인 경우가 대부분 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의도는 그저 시기로 인한 미움인데 말입니다.
“흔히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나는 일평생을 이것을 뒤받침할 증거를 찾아왔다.”
-버틀런드 레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대의명분을 가지고 일처리를 한다고 굳게 믿지만 사실은 감정적이고 비 합리적인 결정을 생각 보다 많이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명언 입니다.
요즘,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 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악평과 오명은 열등감이나 부정적 사건에 대한 과대해석인 경우가 많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대부분 부풀려지고 왜곡 시켜서 상대를 깍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비난할 꺼리가 생겨도 서불리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콜게이트가 좋은 치약이다' 라는 자신의 신념을 들여다 보니, 그것은 컨슈며 리포츠를 확인한 결과도 아니고 그렇다고 콜게이트 치약의 광고가 매력적인가? 다른 상표의 치약을 써보고 비교를 해봤나? 모두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상품의 대표성 즉 후광효과(Halo Effect) 였다는 것입니다.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이 그려져 있는 운동화는 마이클 조던의 유명세를 타고 리세일가가 상상을 뛰어 넘는 운동화도 많습니다. 그 신발을 신으면 농구를 마이클 처럼 잘 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 상표가 주는 후광과 명성의 효과 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한번 가지면 나머지 그 사람의 장점도 부정적으로 보는 ‘갈퀴효과'도 있습니다.
외모가 준수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사진을 동시에 보여주고 이 학교에서 돌덩이가 든 눈뭉치를 던진 사건이 있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준수하지 않은 아이가 흉악한 성품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축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또다른 실험은 3-5세 아이들에게 당근, 우유, 사과주스 같은 음식에 대해 평점을 미기도록 했는데, 맥도널드 포장에 싸여 있었을 때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네, 여러분이 듣고 있는 비난과 어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대부분 근거가 없고 감정적이며 주관적인 평가의 결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그냥 싫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단 싫어하고 이유를 찾습니다. 실수를 할 경우 그 비난은 최대치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비난을 하기 전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뉴스위크의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핸드폰, 자동차 키 등의 매일 쓰는 물건을 찾기 위해 하루 평균 55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스카이 다이빙 사고의 6%는 낙하산 펼침 레버 잡아당기는 것을 잊어 버려서 이다.
어떻게 저런 중요한 것을 잊을 수가 있지 할 수 있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 보다 믿을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만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고 믿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비난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있다면 다른 이들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용서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영성과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에베소서 4:31–32 NKRV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상관 없이, 정의롭고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일뿐 입니다.
바알세블의 힘을 의지해서 살지 않으면 됩니다.
누가 뭐라하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일하면 됩니다.
그리고 누가 물어도 설명할 수 있는 정당하고 명확한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 입니다.
주님은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고 설명 가능한 삶을 사셨습니다.
오류 투성이의 비난을 내려놓고
마음(Heart)과 뜻(Entire Being)과 힘을(Might)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사랑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조차도 주님을 믿을 것을 권면 하십니다.
누가복음 11:20 NKRV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주님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냈음을 믿으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한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을 바꾸고 주님을 믿을 것을 하나님의 권능을 믿을 것을 권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분쟁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받들고 그뜻에 따라 살아가고 화합하는 나라 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악한 영이 쫓겨 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만이 역사하는 나라 입니다.
주님을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그 나라가 임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 하십니다.
누가복음 11:23 NKRV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주님과 대척점에 서서 주님을 반대하고 시기하고 비난하는 자리에서
이제, 마음을 함께 하여 모이자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교회에 분열을 가져다 줍니다. 서로 분쟁하게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악한 영의 나라는 이 악한 일을 하기 위해 강력하게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조직적인 면에서 악한 영의 나라도 이렇게 연합하는데, 믿는 자들의 교회가 분열 한다면 이 영적 전투는 승리 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 조차도 구원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리새인은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방관자 였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님을 비난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주님이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방관자 였습니다.
기적이나 표적을 더 보여주시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라 다니면, 기적도 맛보고 모든 일도 잘되리라 기대하며 한 발치 물러서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성경의 진리와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믿는 자들을 흔드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욕하고 비난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에는 열정적으로 신앙 생활 하는 이들 보다
방관하고 외면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개개인의 삶을 살면서 만나는 수 많은 비난과 오명씌우기 속에 사회적 인정과 격려에 목말라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렇때, 신자들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신념을 버리고 설명 가능한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 처럼, 우리가 이 땅에 온 목적과 오늘을 사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 해야 합니다.
정당하고 선한 일을 실행하며 살아야만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오물의 왕, 분토의 왕, 파리의 신으로 몰아 세워 모욕했듯이이 세상이 우리를 이단 사슬과 비교 하며 기독교를 비판한다 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삶과 믿음에 대해 설명 가능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비난 하는 바리새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살았기 때문 입니다.

설명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평판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의 신앙이 하늘의 복된 삶을 추구 해야 합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성결의 삶을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한 여인은 주님을 찬양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찬양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11:27 NKRV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그 여인은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큰 소리로 찬양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훌륭하니, 그분을 낳고 기른 여인 즉, 마리아는 복된 여인 이라는 논리 입니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누가복음 11:28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주님을 잉태하고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선택 받은 한 여인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복일지 몰라도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복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켜 행해야..

이것이 설명이 가능한 삶을 방법 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무어라 설명할까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예수의 삶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설령, 세상이 악하여 불의가 만연한 것이 절망스러울 지라도 포기 하지 않고 말씀 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그곳을 밝게 비추고 생명을 전파하고 정의를 행하며 부패를 막는 삶이 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영성과

우리가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 할까요?
지속적인 영성생활이 필요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의 서정 가운데 들어섰다면,
더 이상은 악한 영이 틈타지 않도록 의롭고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주님을 따라야 하고 성령을 의지 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 지속적인 영적 성결한 삶에 대해 깨끗히 청소된 집으로 비유 하십니다.
누가복음 11:24–26 NKRV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매일 매일 말씀을 우리의 영혼의 거울로 삼아 자기를 성찰하며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 손을 내밀며 먼저 용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던히도 나를 쳐 복종 시켜야 합니다.
한번 청소 했다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 영혼의 집은 성결하게 유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악한 귀신이 일곱이나 되는 더 많은 귀신이 들어와 우리 영혼은 더 전 보다 더 심하게 황폐해 질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1.설명 가능한 정의롭고 선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2.세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상적 복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3.여러분의 영혼의 집은 어떤 상태 입니까? 죄의 오물이 여기 저기 묻어 있지는 않습니까? 정리 정돈 되지 않아 어지럽게 방치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4.주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소극적으로 저항하고 방관하며 선택적으로 순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설명 가능한 정의롭고 선한 삶
2.하늘나라의 복된 삶- 하나님 말씀 실천 하는 삶
3.영혼의 집은 매일 깨끗하고 성결한 상태를 유지
4.반대자 입니까? 방관자 입니까?
이 질문들이 여러분에게 깊은 영적 성찰로 다가 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평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평판과 비난에 영향을 받느냐 아니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명 가능한 옳바른 삶을 살기를 소망 한다면 세상의 비난 이나 평판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온전하지 않아도 연약하여도 주님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주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 설명 가능한 온전하고 정의로우며 선한 삶을 선택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 말씀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 지속적인 영적 성결의 삶을 살기로 다짐 하시는 성도님들께 주님의 신령의 복이 충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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