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좋은 관계 맺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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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133:1(구약 900쪽)
설교제목: 행복은 좋은 관계 맺음입니다.
Psalm 133:1 NKRV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 때문에 참 행복합니다.’
# 축복후
감사합니다.
오늘은 영상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강의 영상의 일부를 가지고 왔는데요. 강사에 관해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강사는 현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가르치는 서은국 교수입니다. 그는 현재는 돌아가신 미국의 에드 디너 교수의 제자인데요. 에드 디너 교수는 행복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서은국 교수는 행복 연구의 원조격인 사람에게서 배운 행복 연구의 전문가입니다. 또한 그는 세계 100대 행복 연구 학자에 선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장황하게 그를 소개하는 것은요. 그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다룰 ‘행복’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꽤 권위가 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보여드릴 영상 외에도 그가 쓴 책을 통해 제가 그의 이야기를 많이 인용할 것인데요. 그 까닭은 그가 이 분야에 꽤 권위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영상을 통해 그가 행복에 관하여 하는 이야기 한 토막을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 영상: 5분 18초
< 1. 행복이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
제가 서은국 교수님의 강연 영상과 그분의 저서 ‘행복의 기원’을 읽으면서요. 행복에 관해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깨달음을 이것이었습니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행복을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는 삶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는데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밥을 먹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함이고 일을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인데, 돈을 버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행동의 종착지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사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스며들어서요. 우리는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행복을 위한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희생시킵니다.
오늘 지쳐 쓰러질 정도로 일을 하면서 내일 있을 행복을 기대하고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미래에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 믿어요. 그런데 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행복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해,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해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오늘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러한 행복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성경의 행복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새롭게 읽혀졌어요. 같이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10장 13절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의 말씀, 구약 278쪽에 있습니다.
Deuteronomy 10:13 NKRV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성경은 우리가 행복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따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이 구절이 쉽게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행복은 분명 기쁨에 관계된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은 진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행복해지려고 별의별 것을 다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따르는 일이라도 분명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요? 오히려 자주 힘들고 어려움을 경험하는 일이 아니던가요? 그런데도 성경은 왜 그것이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하는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서은국 교수님 얘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말이 제게 또다시 이렇게 읽어졌어요. 잘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사실 오늘 우리는 행복에 관한 얘기를 하지만, 우리가 추구할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잘사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행복은 잘살기 위한 수단입니다. 결코, 우리가 이루고 도달할 목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행복에 관한 이야기는 이로부터 출발을 하면 좋겠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도달할 목적지는 아니지만요. 행복을 통해 우리는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행복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를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 2. 소유가 행복을 주지 않는다. >
우리 성도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 이것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요. 아마도 공통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돈’이 될 것입니다. 서은국 교수도 그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자신은 대학에서 행복에 관한 강의를 오랫동안 하고 있는데요. 매 학기 학생들에게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사건을 적어보라 한답니다. 그러면 독보적인 1위는 ‘복권 당첨’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것은 그 대학생들의 생각만은 아닐 겁니다. 대체로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바이기도 할 것입니다.
서은국 교수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 따르면요. 미국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 돈으로 약 100억원의 상금을 받았던 복권 당첨자들에 대한 연구였는데요. 복권 당첨 1년 뒤, 21명의 당첨자들과 주변 이웃의 행복감을 비교했더니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관해 서은국 교수는 설명하기를 감정이라는 것은 아무리 대단한 자극에도 계속해서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적응’이라고 말하는데, 인간에게 그 어떤 대단한 일도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험을 한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그 후에는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성적이 어중간하던 친구가 갑자기 전교 1등을 해버리면, 다음번에 이전과 같은 성적을 다시 받으면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래서 고깃국을 맛보면 콩나물국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복권 당첨 같은 일확천금의 경험이 장기적인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복권 당첨으로 감정의 반응선이 바뀌어서, 이전과 같이 TV시청이나 친구들과의 식사와 같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좀 더 넓혀보면, 돈과 같은 물질 또는 소유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히려 그 경험이 인생에서 여러 행복한 경험들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자가 많은 곡식을 거두고 그 곡식을 저장하기 위해 곳간을 이전보다 더 크게 짓고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이는 소유가 우리의 삶을 구원하지 못하고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유가 우리의 삶에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언젠가 수명이 다하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더 큰 자극을 필요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소유를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것은 앞서 얘기한 어떤 부자의 경우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 3. 행복은 좋은 관계 맺음입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처음에 보았던 영상을 기억하시죠? 서은국 교수는 행복에 있어서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기쁨은 사람을 통해 옵니다. 사랑, 칭찬, 인정과 같은 다른 사람을 통한 경험들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낭만적인 이유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행복은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행복은 생존에 따른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서은국 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 책에서요. 어떤 연구에 따르면 매가 혼자 있는 비둘기를 사냥할 때 그 성공률이 약 80%가 됩니다. 하지만 비둘기가 다른 비둘기 친구 1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60%로 성공률이 떨어지고 5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10% 이하로 사냥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또 가축의 피를 먹고 사는 흡혈박쥐가 있는데요. 어미가 피를 구하지 못한 날은 새끼들의 배를 채우고자 이웃집 박쥐에게 피를 빌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반드시 빌린 양만큼 정확히 갚습니다. 이처럼 혼자보다 함께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동물들의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또 서은국 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 책에서요. 지금은 돌아가신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말합니다. ‘지구에서 최고의 생존 성공담을 가진 동물은 개미와 인간이다. 두 생명체의 공통된 특성은 유별날 정도로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한 개체로서는 그다지 탁월한 능력이 없지만, 서로 돕고 나누고 이용하는 복잡한 사회적 능력 덕분에 두 종은 지구에서 유례가 없는 성공신화를 썼다’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동물을 비롯한 인간의 생존에 매우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뇌는 온통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뇌는 사람에게 중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뇌과학자인 미국의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인간의 뇌에 관하여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인간의 뇌는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라고 말입니다. 그는 뇌의 최우선 과제는 남을 설득하고, 속마음을 이해하고 하는 등의 사람 간의 복잡 미묘한 일을 해결하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또영국의 로빈 던바라는 교수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의 뇌가 발달한 것은 작은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보다 큰 집단을 이루면서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타인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 뇌가 커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인에 관한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서은국 교수는 결론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이와 같은 그림 언어로 묘사합니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시편 133편 1절(구약 900쪽)입니다.
Psalm 133:1 NKRV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는 ‘형제가 연합하여’라고 나와 있지만, 다른 한글 성경 곧 새번역 성경에는 ‘형제자매’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함께 어울리는 일이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인데요. 여기서 ‘선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이것은 선하다는 말 외에 ‘좋다’는 말로도 번역되고 ‘복’이라는 말로도 번역됩니다. 그러니깐 형제자매의 연합은 행복한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도 우리가 좋은 관계 맺는 것을 행복한 것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간에 사랑의 관계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계명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됩니다. 달리 보자면, 결국 신앙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행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맨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행복을 주는 것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깨달을 때,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뀔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길을 예비해 두시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에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따름으로 행복한 삶으로 또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하나님과 우리 서로의 관계를 바로 세워가는 일이 우리를 위해서 참으로 중요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저는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합니다.
< 4.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룩된 관계 >
하지만 사실 모든 관계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은국 교수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이지 그 반대는 불행이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행복에 절대적인 요소가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관계가 사람을 힘들게 하고 피로하게 하여 오히려 사람이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건은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좋지 않은 관계에서는 아무리 식사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 인문학의 가르침과 신앙의 가르침의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를 모르겠지만, 결국 인문학의 가르침은 좋은 관계를 선택적으로 이루게 합니다. 다시 말해 나에게 좋은 사람만을 취사선택하며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좋은 관계를 통한 만남만이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얘기합니까? 어쩌면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지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앞서 얘기한 것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불행을 자초하는 길입니다. 또한 생존에 불리한 길입니다. 우리를 적대시하고 우리를 위협하는 말 그대로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참 불행한 명령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를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찾을 수 있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기로 그는 본래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스데반을 순교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예수님께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원수와 같은 사도 바울을 초대교회는 또는 바나바라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는 기꺼이 맞아들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이 가진 놀라운 힘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한계로는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가능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좋은 관계를 이루기 위해 신앙인은 우리는 사람을 가려서 선택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능력을 힘입기를 성령께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 5.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
끝으로 한 말씀만 드리려고 합니다. 서은국 교수는 자신의 스승인 에드 디너 교수의 논문 제목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행복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에드 디너 논문의 제목을 한글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이 말은 행복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번의 기쁨을 얻는 것이라는 겁니다.
앞서 복권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연구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권은 일상의 행복을 빼앗버리고 불행을 자초하게 만드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은국 교수는 이러한 행복의 특징을 아이스크림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아이스크림은 잠시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미래를 기약하며 큰 거 한방을 기대해서는 안 되고 한때 유행했던 말 ‘소.확.행’, 곧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선 이야기를 바탕으로 얘기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행복에 있어서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우리가 이러한 관계를 이루는 일은 한번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언제든 관계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 관계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큰 거 한방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소소한 관심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때 우리는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데, 저는 오늘 우리 성도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은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에 있다고 했는데요. 오늘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애쓰고 분투는 우리 성도 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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