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 관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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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신명기 6:5(구약 203쪽)
설교제목: 궁극적 관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 교직원은 매주 토요일 오전에 경건회를 합니다. 쉽게 말하면, 교직원예배를 간단히 하는 것인데요. 이때 서로가 돌아가면서 설교를 합니다. 어제는 전향희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요. 평소와 다르게 저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향희 목사님이 왼손 네 번째 손가락과 두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향희 목사님 옆에 담임목사님이 앉아 계셨는데요. 담임목사님도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사실 두 분이 끼고 있는 반지는 그날 처음 착용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 네 번째 손가락에 있는 반지는 결혼반지일 것이니, 오래 전부터 착용을 해왔던 것일 겁니다. 물론 두 분이 반지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전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 그 반지를 어디에 어떻게 착용하고 있는지를 보다 관심 있게 보게 된 것입니다.
< 1. 관심은 보게 만듭니다. >
제가 갑자기 반지 얘기를 늘어놓고 있으니 이상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텐데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더 얘기를 들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지난 주 목요일에 난생 처음 커플링을 맞추러 갔습니다. 매우 어색한 자리였지만, 묘한 즐거움이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됐습니다. 보통 커플링은 잘 사용하지 않는 손에 대부분 왼손에 착용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한 얘기를 듣고 문득 가까운 분들을 보니 정말로 모두 왼손에 반지를 착용하고 있더군요. 달리 말하면, 두 분은 모두 오른손잡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하겠죠. 그러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사람은 정말 관심하는 것에 주의 집중하게 되는 것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전에는 반지를 왼손에 차던 오른손에 차던 관심도 없었는데요. 이제는 오른손잡이는 반지를 대체로 왼손에 착용하고, 왼손잡이는 대체로 반지를 오른손에 착용한다는 새삼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관심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생활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에 관심하지 않으면 그것에 관해 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은 아니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령, 대부분은 심폐소생술이라는 것을 나름 알고 있을 겁니다. 의식을 잃은 사람의 가슴부위를 눌러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막상 실제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것을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분명 방송에서도 보고 나름 여러 기회를 통해 배워도 본 것 같은데, 막상 그것을 직접하기에는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저만 해도 민방위 훈련을 하면서 이것을 한 번씩 해보게 되는데요. 막상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자신 있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어설프게 아는 것이 많고요. 그러면서 아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잘 모릅니다.
< 2. 아는 만큼 볼 수 있습니다. >
제가 예전에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성경을 참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하다는 경험 말입니다. 한번 제가 여쭤볼게요.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뱀의 모습을 한 사탄이 하와에게 찾아와 그 열매를 먹어보라고 유혹합니다. 여기서 문제요. 이때 아담은 어디 있었을까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보통은 이 장면에서 아담은 하와와 떨어져 있었다고 곧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요. 창세기 3장 6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은 사실 하와 옆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뱀의 유혹을 받은 것은 하와만이 아니라 아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여자인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서 괜히 아담까지 피해를 본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사소한 것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안 읽는 것이 또 있는데요. 흔히 우리가 ‘선악과’라고 얘기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 나옵니다. 물론 선악과라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에 기초해서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혹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때,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아는 만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관심하는 분야에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만큼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요. 요즘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사용해요. 이것을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 핸드폰을 통해 참 다양한 것을 할 수 있거든요. 우리 성도 분들은 핸드폰으로 주로 무엇을 사용하시나요?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확실히 스마트폰은 나이 어린 사람들이 더 많은 기능을 더 잘 사용하곤 합니다. 물론 가끔 예외도 있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아는 만큼 활용도가 넓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분은 전화하고 문자하고 유튜브를 포함한 인터넷을 사용하는 정도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것으로 원격조정을 해서, 일터를 벗어나서도 일터의 기계나 프로그램을 조작하거나 관리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핸드폰이 단지 연락을 주고 받는 수단을 넘어서 일을 하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도 스마트 폰을 여러 용도로 사용을 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전화나 문자를 포함해서, 책을 읽을 때도 쓰고 성경을 읽거나 연구할 때도 쓰고, 교회관련 일을 할 때도 쓰고, 은행거래를 할 때도 쓰고 운동을 할 때도 쓰는데요. 이렇게 제가 알고 있는 기능을 상황에 따라 정도를 달리하여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보다 더 많은 기능을 사용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보니깐, 그림도 그리고,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제게 익숙한 것을 통해 설명해서 저만 잘난듯이 말했는지 모르지만요. 사실은 또 우리 성도분들이 잘 아는 분야에서는 제가 한참 모를 겁니다. 생각해보니최근에 뜨개질로 수세미를 짜고 가방을 만들고 하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하다 생각했고요. 오븐으로 마늘빵을 만드는 것을 보고 또 무척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에게 많은 지식이 있는 분야에 관해서는 우리가 참으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무서운 질문을 드리자면요. 우리는 과연 신앙생활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이에 관한 앎이 부족하여서 신앙생활에 관하여 잘 관심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봅니다.
< 3. 관심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
하나만 이야기를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저의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요. 제가 처음에 반지 얘기를 했는데요. 이 반지를 관심하게 된 것은 지난주에 커플링을 맞추게 되면서 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남자는 악세사리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고 평소에도 잘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시계나 목걸이 정도 혹은 귀걸이 최대치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큼직한 사탕이 박힌 보석반지 외에 반지라는 것을 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저로 하여금 그것에 관심하게 만들고 그것을 구매하기에 이르게 했을까요? 당연히 그 물건 자체에 관심보다 그 물건을 함께 공유하는 상대에게서 비롯된 관심과 사랑이지요. 저는 성경을 통해서도 이러한 점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6장 5절(구약 203쪽)의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관심을 집중하는 일이 됩니다. 현대의 유명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 우리가 신앙하는 대상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정말로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관심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러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의 사랑이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온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은 관심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그것만을 바라보고 그것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께 관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