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0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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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유언

여러분 오늘도 함께 만나 반갑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누리는 오늘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친구들 다들 지난주에 9월 모의고사가 있었죠?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수) 결과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귀한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함께 말씀을 나눌텐데요, 우리 지난주에 어떤 말씀 나누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이스라엘판 왕자의 난, 아도니야 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아도니야의 모습을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함께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지난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을 함께 볼텐데요, 바로 다윗이 죽기 전 솔로몬에게 당부하는 그러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주실지를 말씀을 잘 보면서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시면,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다윗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역시도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 솔로몬을 불러서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2절부터 4절까지 그 당부의 말이 등장합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세 가지 말을 전합니다.
첫번째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자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은 솔로몬이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이고, 그 길이 정말로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장부가 되라는 것, 즉 용기를 갖고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이 말은 아버지로서 다윗이 아들에게 가지는 걱정과 염려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다윗이 왕으로서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들이 존재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임 왕인 사울에게서, 또한 여러 이방 나라들로부터,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로부터 수없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을 다윗은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에게 이 왕의 자리는 대장부로서 존재해야 하는 자리였겠죠.
두번째 다윗이 전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명령, 즉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앞의 이야기와 연결이 된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요, 다윗이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담대히 왕으로서 설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만큼 그의 말씀을 잘 지켰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생명이 지켜졌고, 자신의 나라가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있음을 경험했던 다윗이기에, 솔로몬 역시도 자신과 같이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죠.
사실 이 말씀은 다윗만 했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야 했던 상황, 즉 오늘 말씀의 솔로몬과 동일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1:7 NKRV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한 이 말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한 말은 솔로몬 뿐만이 아니라 그 자손들까지도 하나님의 길을 따를 것을 바라는 권면의 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4절에 나타나는 말씀인데요, 다윗은 이 말씀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언약의 말씀을 언급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명 다윗 언약이었죠.
다윗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솔로몬 뿐만이 아니라 그의 자손들까지도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결국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한 것은 총 세가지였지만, 결과적으로 정리하자면 단 한가지의 말이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그 길을 따라가라는 것이었죠.
어쩌면 간단할 수 있는 당부의 이야기였지만, 안타깝게도 이 다윗의 당부는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당장 솔로몬부터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이죠.
솔로몬은 그의 초기에는 말씀을 잘 따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그의 나라가 강대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와 명예가 그에게 찾아오자, 그는 점차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졌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인간적인 욕심으로 죄가 찾아온 것이죠.
결국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하지 말라고 명하셨던 일들을 다 행하게 됩니다. 여러명의 아내를 삼고, 자신의 군대를 크게 늘렸으며, 수많은 은금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던 것이죠.
결국 솔로몬 이후로 나라는 둘로 갈라지고, 수많은 악한 왕들이 그로부터 나타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이 당부한 것은 말씀을 따르는 것 그 하나였지만, 그것조차도 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대로 죄의 길에 거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는 것을 우리는 솔로몬을 통해서도 다시금 바라보게 됩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봅시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뒤이은 5절부터 9절까지 또 다른 말을 전하죠.
그런데 그 내용이 앞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행이 됩니다.
이 역시도 정리하면 총 세가지의 말이었는데요, 모두 솔로몬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이들에 대한 다윗의 당부였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장수 요압에 대한 당부였습니다. 바로 요압을 없애라는 당부였죠.
5절을 보면 다윗이 요압을 없애야 하는 이유가 등장합니다. 바로 그의 손으로 피를 흘렸다는 것이었죠.
우리가 지난주에 잠시 나누었던 이야긴데요, 요압이이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다른 이를 해했던 바로 그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의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렸으니, 그의 최후가 평안하지 못하도록, 즉 죽일 것을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이죠.
바울의 두번째 당부는 바르실래의 아들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왕의 상에서 함께 먹도록 하기를 당부했습니다.
왕의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아주 큰 영예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아주 귀빈으로 대접해주라는 말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죠.
그렇다면 대체 바르실래의 아들들이 누구냐, 이들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몸을 피하던 시기, 다윗을 열심히 도왔던 이들입니다.
사실상 다윗이 매우 힘든 시기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는 것이죠. 다윗으로서는 그들을 향한 고마움이 매우 컸을 것이고, 그랬기에 아들 솔로몬에게 그 도움을 갚을 것을 말한 것입니다.
마지막 당부는 시므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 역시도 요압과 같이 평안히 스올로 내려가지 못하게 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렇다면 시므이는 어떤 인물이었길래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요?
시므이는 바르실래와 반대의 입장에 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몸을 피할 때 시므이는 다윗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시므이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가 사울의 자손이었기 때문인데요, 자신의 가족인 사울을 죽게 만들고 왕이 된 다윗이었기에 그의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이 아주 쌤통이었겠죠.
하지만 그의 저주와는 다르게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 실패로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올 때 시므이는 이전과는 반대의 모습으로 다윗에게 조아리게 됩니다.
신하들은 그 당시 바로 그를 죽일 것을 요구하였으나,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말했기에,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그의 최후를 맡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전한 또 다른 세가지의 당부였습니다.
사실 이 내용을 듣고 나면 어떤가요?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서 대장부가 되라’ 라고 했던 멋있는 다윗의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내용만 보면 마치 ‘내가 못죽였으니까 쟤네들 꼭 죽여라’ 와 같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의 다윗과는 다르게 매우 없어보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의 시선에서는 다윗의 그런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이 늙어서 저러는 건가 싶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었다라면, 다윗이 정신이 나가서 저런 말을 했던 것이라면 이 말씀은 아마도 기록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록이 되었다는 것은,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대체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전해주시고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 이후로 솔로몬은 아버지가 당부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지킵니다. 요압과 시므이는 죽게 되고, 바르실래의 아들들은 은혜를 입게 되죠.
이러한 결과는 우리의 눈으로는 마치 패배한 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요압과 시므이가 승리자가 아닌 패배자였기 때문에 저런 취급을 받는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압과 시므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반대로 바르실래의 아들들이 은혜를 입게된 것은 그들이 행했던 대상이 바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이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지도자로 그를 세우셨다는 의미인 것이죠.
그렇다라는 것은 그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과 시므이는 무엇을 한 것이죠? 그 대리자를 따르지 않고, 저주하고 하는 일들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이러한 행동은 개인 다윗이 아니라, 그를 세우신 하나님 자신을 향한 행동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을 죄로 여기시고 그들에게 솔로몬의 손을 통해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택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앞선 출애굽의 시기에도, 그들의 리더였던 모세에게 대항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벌을 주셨습니다.
모세를 비방하던 누이 미리암에게 나병을 내리셨고, 대놓고 대항했던 고라에게는 땅이 갈라져 죽음을 맞도록 하셨고, 그 외에도 수많은 벌을 모세에 대항하는 이들에게 행하셨습니다.
반대로 바르실래의 아들들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 선대하는 이들에게는 복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수아의 정탐꾼을 보호해주었던 라합이 대표적인 경우였죠.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모두가 죽었던 여리고에서 죽지 않고 모든 가족이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요압과 시므이가 억울하게 보일 수도 있을거에요. 요압이 죽였던 사람으로 말씀에 등장한 아브넬은 사실 요압의 동생을 전쟁중에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복수하고픈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시므이 역시도 자신 가족의 원수인 다윗을 향해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누가봐도 다윗이 망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 때야말로 그 저주를 하기에 아주 적절한 때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너져가던 다윗을 선대했던 바르실래의 아들들이 이상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세상의 시선에서 망해가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눈으로는 요압과 시므이의 비참한 최후가 억울해 보이고 불쌍해보일 것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시라면, 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막으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우리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그분은 동시에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뜻을 따르고, 그의 말씀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시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벌이 있을 것이라고요.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겠지요.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분명한 죄를 지은 이들에게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그때도, 또한 지금도 동일하게 분명한 죄에 대해 벌을 내리십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오겠죠. 그렇다면 우리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는건가요?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면 그것은 맞을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벌은 따라오겠죠.
하지만 방금 제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벌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주십니다.
스스로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그 벌로부터 구원하여주시고, 자신이 그 벌의 대상자가 되셔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죄의 처벌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믿는 믿음이라는 은혜로 죄로부터, 또한 그로 인해 받아야 할 벌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히 살아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는 모든 죄악들을 분명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생각했을 때는 어떤가요? 어쩌면 그 공의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거에요.
왜냐하면, 지금 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일들을 보게 되면, 마치 공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에는 그렇지 않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시선을 뛰어넘어서 그의 공의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지 않는다면, 반드시 세상의 마지막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한 사람 한 사람 심판하실 때, 그의 공의를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모든 정의를 맡기고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할게요. 오늘 말씀을 함께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시며 복을 주신다는 것을, 동시에 요압과 시므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벌이 따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에서는 불공평하고 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렇기에 마치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하시며, 그의 공의를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잊지말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하나님 말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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