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이를 버려 두고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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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설​설교질믄지
지난 설교 리마인드
우리는 지난 설교를 통해서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유대인이라면 지나가지 않았던 사마리아 지역을 굳이 지나가십니다.
왜 그러셨나요?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먼저 그 여인을 찾아가셨고, 그 여인을 그 가장 더운 낮에 친히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녀에게 있었던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질문을 통해 알려주시고 예수님이 영혼의 그 깊고 넓은 빈 공간을 채워주실 유일한 분인 것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그 빈 마음의 공간을 채워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 예배할 장소 -> 참된 예배로의 시선 전환(20 - 30)

왜 갑자기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질문했을까?
예수님이 생명의 강이신 것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알려주시죠.
그리고난 후 다소 쌩뚱맞은 대화의 주제가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듣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절대 아닐겁니다. 성경 본문을 보시면 알겠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가 더욱 깊어지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의 아주 속 깊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그 비밀을 어떤 사람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쇼.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으로부터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아니면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해서 더 대화를 깊게 하겠죠.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 대화를 계속 해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과의 더 깊은 대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 쌩둥맞은 대화의 주제가 뭘까요? 바로 예배입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 주제 성구였죠?
예수님이 자신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인 것을 말씀하시고, 남편에 대한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갑자기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요한복음 4:20–21 (NKRV)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묻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조상은 북이스라엘이죠.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분단된 이스라엘에서 예배(제사)의 처소가 갈리게 되었었습니다.
그때 북이스라엘은 그리심 산의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고, 남유다는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왜 묻는지 그 의도가 중요한 것이죠.
여러분 사마리아 여인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녀의 마음의 텅 빈 공간을 무언가로 채우려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왜 그렇게 텅 빈 마음의 공간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남편으로 그것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마리아 여인은 그래도 북이스라엘 민족의 피를 이은 여자입니다. 유대인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거죠.
그 유대인 신앙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 예배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자신의 영혼과 관련된 직결된 부분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그녀는 그녀가 드리는 제사가 자신의 영혼과 큰 연관이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신인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예배, 제사가 뭐에요?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종교 제도잖아요?
사마리아 여인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겠죠. 자신이 드리는 제사가 자신의 영혼을 치료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걸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빈 공간을 남편이라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남편을 갈구했죠.
그런데 궁극적으로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여인은 결국 초월적인 존재, 그러니까 신이겠죠. 그 신만이 자신의 그 빈 공간을 충분히 채울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에 대해서 궁금했겠죠.
그런데도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묻는 것은 사뭇 이해가 잘 안됩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할까요?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의 관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아무리 제사를 열심히 잘 드려도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제사드리는 장소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정통 유대인들이 제사드리는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수님의 시선에서 예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일까?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에서 예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24 (NKRV)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는 성령과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령과 말씀이 참된 예배의 본질이며 장소 자체는 본질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장소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4:21 (NKRV)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참된 본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전에 ‘종교’를 믿고 있었는가? ‘복음’을 믿고 있었는가?
청년 여러분.
사마리아 여인이 왜 자신의 문제를 예배의 장소로 생각했을까요?
우리가 이 본문을 단순히 예배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고 더 시선을 확장해봅시다.
여러분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자신의 마음의 그 허무한 빈 공간의 문제를 해결해줄 분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는 결국 자신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분에게 드리는 정성의 제사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그저 자신의 문제의 해결자일 뿐입니다. 또한 제사는 그 문제의 해결자에게 보이는 자신의 성의에 불과한 겁니다.
이 모습이 무엇을 보여줄까요? 바로 인간의 “종교성”이죠.
여러분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종교”의 원리가 아니라, “복음”의 원리로 움직입니다.
종교와 복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종교의 원리는 어떠한 신 혹은 신이 꼭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해줄 능력이 있는 대상에게 댓가를 치루고, 그 댓가에 맞는 결과를 얻습니다.
쉽게 말하면 종교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무언가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주는 대상이 바로 “신”이죠.
여러분 모든 인간들은 일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꼭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종교가 아니더라도, 종교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행동하는 무언가에 대한 댓가를 꼭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복음의 원리”로 움직입니다.
복음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복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나님에게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예수님께서 그 이루어주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그 이미 주신 것들로 인하여 종교적 행위 즉 예배를 드립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서 내가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잘 듣고, 찬양을 잘 해야 하나님이 무언가 내가 바라는 것을 해주실거야!” “취업을 잘 되게 해주실거야!”, “좋은 학교에 보내주실거야!”, “좋은 환경을 주실거야!” “부모님이 건강하게 해주실거야!”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은 종교일 뿐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의 원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프로세스는 이렇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의 원인인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에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 기쁨과 감사로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죠.
종교와 복음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점들이 존재하죠.
종교는 얻지 못한 것들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낳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같죠. 얻지 못한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울 무언가를 위해 계속해서 집착합니다. 예배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집착하죠.
복음의 원리 안에서는 이미 얻은 것들에 대한 끝없는 감사로 예배가 행해집니다. 이미 마음의 빈 공간은 없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다 채워졌으니까요.
사마리아 여인은 어떤가요? 철저하게 종교적이죠. 종교적으로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더 나은 예배가 무엇인지 집착합니다. 여기서는 장소에 대해서 물어봤죠.
어리석게도 자신의 종교적 행위에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 종교적 행위에서 벗어나 이미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으로 인하여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바로 진정한 예배라고 가르쳐주시는 거에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다 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사역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짜 복음을 알게 된 여인의 행동은 “갈증의 물을 기르던 물이를 던지는 것” (28절)
요한복음 4:28 (NKRV)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 복음을 전함의 열매는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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