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0 청년교회 (실패가 아닌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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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6:13–20 NKRV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6장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지 말고 성숙한 신앙으로 성큼 나아가라고 도전한다.
Hebrews 6:1–2 NKRV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메시지 성경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유치원생 수준으로 그리스도를 그리는 데서 벗어나 멋진 작품을 만드십시오.
우리의 신앙은 발전해야 한다. 성장하고 자라가야 한다. 어린아이의 때가 이쁘다고 일평생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자라나야 한다. 어제의 신앙과 오늘의 신앙은 달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신앙과 내일의 신앙도 달라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하루하루 자라가야 한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바로 전인 12절에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게으르지 않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아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사람인 아브라함을 등장시킨다.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을 특징짓는 두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약속"과 “믿음"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약속된 것을 믿음으로써 인내하며 기다려 상속받는 이들"중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히브리서의 저자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바울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받았던 약속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 히브리서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가?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내 조차도 그의 개인적 덕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확실한 약속을 주셨기에 그는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시다고 표현한다. 그 말의 뜻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못 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신다. 조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이 약속하시면 그 약속은 어떻게 되겠는가?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 언약이 무엇인가? 먼저는 아브라함이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떠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했더니 결국 그대로 이루어졌다.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도 이루어졌다. 지금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다 아는 아브라함을 이야기 하며 권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결국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굳이 약속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그냥 명령만 해도 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맞춰준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해 할 수 있게 믿을 수 있게 하나님이 사람의 방법을 선택하신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러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믿을 만한 존재인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가 보통 계약을 할 때 무엇때문에 계약을 하는지 아는가? 계약조건이 좋아서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밑바탕에는 계약하는 사람과의 신뢰가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계약의 조건을 보고 우리가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계약하는 그 사람을 믿기 때문에 계약을 하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 할지라도 사기 전과가 있는 사람과 여러분은 계약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과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맹세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 약속이 어긋났을 때 어떻게 하겠다고 조건을 건다. 이것이 사람들의 방법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어떻게 맺으셨는지 아는가?
당시 사람들이 맺는 언약과 동일하게 맺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그래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데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의 반을 갈라 아브라함을 통해 백성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시고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횃불만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자신이 쪼개진 동물들처럼 되겠다는 맹세의 행위이다. 보통 사람들은 맹세를 할 때 자기보다 큰 사람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보다 큰 분이 없기에 하나님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신 것이다.
그러니 이것보다 더 확실한 맹세와 약속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동일하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과거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던 그 모든 약속들이 지금 이순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약속이 기록되어 있는 이 성경의 말씀을 믿어도 되는 것이다.
과거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믿고 그가 걸어갔던 그 길을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구원이 임한다는 이 약속을 우리의 소망삼아 한발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경주를 완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 19절에서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닻의 임무는 바다의 조건이 어떻든지에 상관없이 해저에 고정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날씨가 거칠수록 닻은 배의 안정과 안전에 그만큼 더 중요하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삼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쉽지 않다고 해서 이것이 잘 못되었다거나 옳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쉽지 않은 것이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 회복 탄성력 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we are not here to win, we are here to grow,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에게 임할 구원을 소망삼아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있겠는가? 물론 이것이 불가능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끝내 이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 우리는 매번 넘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수없이 넘어진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다. 물론 넘어진 상태로 계속 있는다면 넘어진 것은 실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자전거 안장에 앉아 다시 패달을 굴린다면, 지금의 넘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기 위한 과정이 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손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지 못 할 뿐 넘어질 때 우리의 몸은 넘어지는 순간과 그 이유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에는 똑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포기하지만 말아라. 포기하지만 말아라.
그리고 너무나 감사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실패하고 넘어지고 신앙인으로써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하고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들때마다 얼마나 무너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이런 보잘 것 없는 내 속에 사랑하는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것에 우리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나를 이루실 하나님 나를 자라게 만드실 하나님.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라지 못한다. 우리를 자라게 하시고 만드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1 Corinthians 3:6–7 NKRV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우리에게 소망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안정과 안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했다. 그는 기도 할 때, 자기가 그동안 하나님을 위해 수없이 행했던 선한 일들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이런 히스기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응답은
열왕기하 20:5
5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나님은 우리의 업적과 공로를 보기 이전에 나의 눈물과 기도를 보고 들으신다. 그러니 두렵고 떨리고 낙심이 되고 염려가 되고 고통이 다가 왔을 때, 포기하지 말고 포기하고 싶은 그 마음그대로, 연약한 마음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가길 바란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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