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 views

우상에 빠진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안에 거하는 지혜로운 자로 하나님을 찬양하자!

Notes
Transcript
지난번에 이어서 저는 이사야서를 다루고 있는데요. 혹시 여러분은 제가 왜 이사야서를 다루고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큐티책, 날마다 솟는 샘물의 본문이 이사야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큐티책을 통해 본문을 선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나 큐티를 하고 있는 청년들, 새벽예배를 나오고 있는 청년들과 말씀으로 교제하고,
나아가 일주일에 한번 있는 청년부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 보다 깊은 묵상을 통해 우리 청년부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전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그런 기대감으로 설교를 준비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대감을 갖고 이 자리에 오셨나요?
간절히 소망하기는 이 시간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계획을 기대하며 나아오셨기를 소망합니다.
그 소망 가운데 우리에게 역사하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상을 숭배한 애굽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1-4절)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애굽(=이집트)을 향해 경고하시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애굽(=이집트)는 고대 근동의 최대 강국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강대한 힘을 키워갔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성경 안에서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던 시절도 있었죠.
그 강대한 애굽을 향해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신 주권을 드러내려 하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 19:1(NKRV)
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하나님은 애굽인들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애굽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던 신은 ‘바알’이었습니다. 폭풍과 비를 가져오는 신으로서 풍요의 신으로 불린 바알신을 고대근동에서는 “구름을 탄 자”라고도 부르기도 했습니다.
애굽사람들은 그런 바알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자, 그 우상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은 등장 앞에 그 우상들은 흔들립니다.
이 흔들림은 단순한 흔들림이 아닙니다. ESV 영어 성경에서는 이 장면에 ‘trembl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흔들리다’, ‘떨리다’ 외에도 ‘전전긍긍하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그 우상들은 구름을 타고 오신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애굽인들의 마음을 빼앗을 우상들이지만, 그 우상들조차도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는 두려움을 느끼는 불완전한 존재였다라는 것이 오늘 말씀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이들마져 우상에 사로잡혀 그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을 찾아봅니다.
그 우상은 바알처럼 구름을 타거나, 물질을 풍요를 약속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보다 소박하지만, 오직 한가지만을 생각하라고 우리의 마음을 유혹합니다.
그 우상의 이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나’라는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과거 청년부 임원도 하고, 해외에서 유학중에 선교단체에서 훈련도 받고, 당시 청년부에서 셀리더를 할 정도로 열정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청년부를 담당하시던 목사님에게 있어 그 청년은 큰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바로 주일에 모가수의 콘서트를 관람한다고, 같이 팬클럽 활동을 하던 청년들을 데리고 콘서트장에 간 것이었습니다.
콘서트 장에 갈 수 있죠. 그러나 목사님에게 고민을 안겨준 것은 그 청년과의 통화때문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목사님께 콘서트장에 간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동안 주일 잘 지켰으니, 한번쯤은 저를 위해 이 시간을 쓰고 싶어요”
여러분은 이 청년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동안 교회에서 열심히 했으니, 하루정도는 나를 위해 주일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나요?
혹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동의하는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이미 그분은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 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죽으셔서,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 주일에 주님을 외면하고, 나의 기쁨을, 나의 즐거움을 쫓는 것이 우상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 ‘나’라는 경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 모습이 어찌 하나님 자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청년은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주일에 콘서트를 관람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그렇게 점점 예배 생활에 소홀해져 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금송아지라는 우상 가운데 흔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와 말했습니다.
신명기 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생명의 길,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마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어린아이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너무나 위태롭죠.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떨어질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무사히 그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절대 넘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이가 그 두 손을 꼭 붙잡거나, 그 아이를 안고 함께 그 다리를 건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인도자 이십니다. 세상에서 구원으로 나아가는 외나무 다리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안아주시고,
우리의 두 손을 잡아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우리의 인도자 이십니다.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행동은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를 하나님께 맡기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애굽인들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이 섬기는 우상을 바라보며 그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가려 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 앞에 사람의 계획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이사야 19:2 (NKRV)
2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이사야 19:3 (NKRV)
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이사야 19:4 (NKRV)
4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도 돌이키지 않으며, 여전히 자신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왜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이사야를 통해 그들에게 미리 경고하신 것일까요?
이어진 5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 그들의 삶의 터전이 나일강을 마르게하며, 그들의 삶의 근간을 흔드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임에도
왜 그것들을 행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일까요?
저는 1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그 경고 가운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애통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자가 없음을 책망하시는 하나님(11-15절)

이사야 19:11–13 (NKRV)
11 소안의 방백은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12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
13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로운 자가 없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을 뜻을 알아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전할 자가 없어 애굽을 파멸로 몰아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구원하기를 원하시지만 그러시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구원하고 싶으셨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아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한 사람이 없어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음을, 그 구원의 하나님을 거부하는 애굽의 어리석음을 하나님은 슬퍼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향한,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심판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사랑을 이어가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가족옷을 통해 그 사랑을 보여주셨고, 가인에게는 이마의 표를 통해, 홍수심판 가운데서는 무지개를 통한 언약으로
영적인 암흑기라 불리던 사사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어가신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뜻을 알고, 생명을 길을 걸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런 지혜로운자를 찾으시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가 있는 그곳에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모퉁잇돌(=주춧돌)로 삼아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사랑을 세워가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의 소망 가운데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주춧돌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로 인해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부활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야 말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지혜로운 자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9:10 (NKRV)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세워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십계명을 두가지로 압축하셨습니다.
Mark 12:29–31 NKRV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 계명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기초를 제시해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분의 이름을 오용하지 않으며, 그분을 대신하는 우상을 만들지 않고,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을 위한 공간을 둠으로써 그분을 높이고, 예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죠.
이런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을 통해 잠19:23 “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말한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천국의 삶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한강교회 청년 여러분!
제가 요즘들어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삶이 힘들도, 상황이, 관계가 나의 숨을 조이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하나님의 계회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경고 가운데서도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애굽을 위로하시고, 애굽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느 곳에 있던지, 무엇을 하던지, 마음의 공허함이, 앞서는 그 순간에도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우상으로 만들지 말고, \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자유하게 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계획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이번 한주 지혜로운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 가운데 우리가 그 지혜로운 자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승리의 종려나무 가지로 주님을 찬양하는 한강교회 모든 청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