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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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송말씀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암송말씀 영어
전도서 3:1 (NIV)
1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heaven:
서론
-예화
-문제제기
저는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길 원합니다.
▣ 침묵하지 못하는 사람
스파르타의 정치가 데마라투스가 공회 석상에서 한마디의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이를 본 그의 친구가 '여보게, 못나서 말을 않나? 아니면 할 말이 없어서 안하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대는 모르는 말일세! 못난 사람은 절대 침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말을 통제할수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절대로 말을 통제하지 못한다.
* 입을 열어 다툼이 되느니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말 때문에 싸움의 불길을 키우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침묵은 때로 끊길 뻔 했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기도 하고, 그 사람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시 연결해 줍니다. 또 하나님앞에서 참 인생을 알게된 자는 하나님앞에서 침묵할수 밖에 없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본문 연구
-본문설명
-본문의 진리
-본문에 나타난 교리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이 인생을 돌아보며 인생의 회고를 통해 인간의 계획이 허무하며 하나님과 교통함을 통해 극복되어지고 영원절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할때 영원 한 삶에 참여할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무한한 섭리속에서 초라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합니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경륜속에서 보호되고 있음을 알고 낙심하지 않고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키아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키아즘 구조라는 것은 abc c’b’a’의 구조로 그것이 대칭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당시 주로 쓰여지는 방식으로 시적인 구조를 통해 더욱 명백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을 강조시켜줍니다. 또한 긍정과 부정의 표현을 통해 그의미를 밝힙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방법과 인간이 행하고 있는 수고의 예증을 통해 현재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깨닫길 원합니다.
첫째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때가 있다입니다.
범사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인간삶의 모든 상황과 활동입니다. 천하만사는 기쁨 즐거움을 말합니다. 또 기한과 때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70인역에서 기한은 한정된 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로 때는 통상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로 나타납니다. 카이로스는 크로노스보다 먼저 나타나면서 기한이 나타나는 모든 때를 포괄합니다.
결국 아무리 수고하여도 잘났어도 극복하지 못하는 유한한 인생이며 모든일의 행복 혹은 괴로움이 하나님이 정해진 기한과 때에 따라 분배되어지고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그에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상만을 바라바고 웃고 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랑함이 헛되다. 그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자칫 잘못 생각하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모든것이 무가치하기때문에 나는 정해진대로 어차피 흘러가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겠다는 주장입니다. 어차피 내가 안 움직여도 세상은 흘러가니 정해진대로 숙명과 같이 살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의지를 박탈하고 기계적으로 정하셔서 살아가는 로봇정도로 인생에 섭리하고 있지 않기때문입니다. 무자비하지 않은 분입니다. 옳아매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실수가 나타나더라도 그 실수를 고려하면서 까지도 한치의 오차도 없는 그의 섭리대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기적이다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믿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2-8절을 통해 나타난 인간의 수고의 예증입니다.
2절은 생명에 대한 예시입니다. 날때가 있고 죽을때가 있는것은 탄생과 죽음을 말합니다. 여인이 아이를 낳는것을 나타납니다. 또한 심을때와 심은것을 뽑을때라는 것은 이와 비슷한 의미로 식물의 시작과 끝을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앞에서 유한합니다. 또한 우리가 보는 나무와 들풀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잠시잠깐 왔다가는 존재입니다.
3절은 2절에서 조금 더 확장된 부분으로 죽일때와 치료할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바라보면 생명의 죽음과 치료로 해석하게 될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본문이 나타내는 의미는 구원에 대한 관점을 나타냅니다. 율법안에서 죽고 그리스도안에서 회복된 우리입니다. 또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그들이 포로로 끌려갈때,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섬길때 죽은바와 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솔로몬의 이전의 구약의 상황을 볼때에도 출애굽할때 그들은 홍해를 지날때 죽은자와 같았지만 다시 사는 역사를 이루었고, 광야를 지날때에도 죽은자와 같았으나 사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또 놋뱀사건을 바라볼때에도 그들은 불뱀에 물려 죽은 바와 같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로인해 놋뱀을 바라보는 자들은 사는 역사를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 부터 징벌을 받는때가 또한 위로받고 회복되는 때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 크로노스라는 시간에 속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속에 있는것입니다.
헐때가 있고 세울때가 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의 건축을 통해서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는 많은 건축을 한 왕이었습니다. 건물을 헐고 건물을 세웠습니다. 나라를 헐고 하나님의 약속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는 그의 삶을 통해 그것들을 체득하고 깨달았습니다. “헐거나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다.” 실제로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는 성전건축하기를 원치않으시고 솔로몬때 건축되게 하셨습니다. 이와 함께 개인을 세우는 것도, 단체를 세우는것도, 나라를 세우는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하에 있습니다. 솔로몬때의 주변나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을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안에 그렇게 된것입니다.
4절은 희노애락을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일에는 한가지의 상황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재난을 당할때 함께 울었고 또 기쁜일이 있을때 함께 웃었습니다. 또 슬퍼할때 슬퍼하였고 춤출일이 있을때는 함께 춤추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러한 모든것은 하나의 감정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웃고만 싶어합니다. 춤추고만 싶어합니다. 하지만 일련의 시간속에서 희노애락은 함께 존재하며 또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5절은 두가지로 해석되어집니다. 첫째는 전쟁이고 두번째는 포도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을 하고 난다음에 적의 성의 돌들을 던져버림으로서 또는 적국의 밭에 던져 망가뜨림으로서 그 승리를 표현했습니다. 또한 돌을 거두어 다시 모아 성을 쌓는일을 감당했습니다. 전쟁에서 전쟁의 때와 나라를 부강하게 할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포도원은 돌을 치울때 농사를 짓기위해 그 열매를 위해 수고함을 말합니다. 또 돌을 거둘때라는 것은 울타리와 망대를 세우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농경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안을때와 멀리할때는 대게 친구 사랑하는 남녀 국가간의 관계입니다. 우호적일때와 그렇지 못할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사소하게 보이는 일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예외없이 작용함을 설명합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습니다.
6절은 부유함과 가난하게 되는것을 말합니다. 찾는다는 것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잃는 다는 것은 재산이나 부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재산을 모을때가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수고하여도 재산이 없어지는 경우들도 존재하게 될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때로 알고 재산에 집착하지 말고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킬때와 버릴때는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가치를 매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가치있는것은 지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덜중요한 것은 포기해야 할때가 있습니다. 재산이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있다가도 없는것입니다. 또한 구제라는 부분을 생각했을때 남을 윤택하게 하는것으로서 재산이라는 가치를 내려놓아야 할수 있는것입니다.
7절에 찢을때와 꿰맬때는 장례식과 장례식후의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관습을 따라 비참한 상황에 처하였을때에는 그들의 애통함을 옷을 찢음으로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애통함을 표현한뒤에는 그들의 옷을 다시 기웠습니다. 또한 잠잠할때와 말할때라는 것은 이스라엘 관점에서볼때 신의 경륜이 드러날때 연장자에게는 그 말을 아꼈습니다.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데 더 유익하다는 지혜로운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간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도 존재하였습니다. 죄를 꾸짖을때 위로할때 무죄한자를 옹호할때 진리를 가르치는 경우에는 말할때였습니다.
8절은 사랑할때 미워할때 전쟁할때 평화할때를 말합니다. 사랑과 미움은 인간의 삶에서 두드러집니다. 그것이 확대될때에는 국가간의 전쟁으로도 나타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사랑과 미움, 전쟁과 평화의 연속인것입니다.
전도자는 2-8절의 예를 들어 세상모든일이 하나님의 주권섭리에서 벗어날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권적 섭리를 인식못한채 세속적 안락만을 누리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헛된 행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인간의 수고가 헛됨을 나타냅니다.
이 부분에서는 2-8절을 통한 예증을 통한 인간의 수고의 헛됨을 하나님의 주권섭리안에 모든일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3장9절에서는 인간의 수고가 드러납니다. 인간의 수고가 하나님의 주권과 해아래 인생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살아가면 뭔가 성취된것처럼 보이나 진정만족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자들이 대단한 것을 이룬것 같지만 하나님의 경륜속에 있습니다.
또한 3장10절은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이 왜 무한한 고통과 수고를 겪어야 하는가 물음에 신본주의적 관점에서 답을 제시합니다. 이 세상에서 수고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죄로 인함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원죄와 함께 자범죄가 나타나 수고하며 노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없이 하나님의 섭리없이 살때 해결할수 없는 문제를 던짐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뜻에 순응함으로 인간의 처한 절망의 문제를 극복할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은연중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도록 지어졌습니다.
진리를 취하면 유익한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무한한 섭리중 자신의 일부만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초라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항상 겸손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이 하나님의 경륜가운데 있음을 알고 낙심하지 말고 선하게 인도하실것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방법
-버려야할 것
-현실에서 해야할 것 2~3가지
그렇기때문에 성도는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해 고통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절대주권을 의지하여 영원한 삶을 참여하고 허락되어지는 축복을 누려야하는것입니다.
결론
-전체요약
-중요한 간증과 권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길 원하십니까? 인생의 부분을 살아가는 우리로서 자랑함으로, 우쭐되어 살아가지 않길원합니다.
인생에 닥쳐오는 허무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극복할수 있습니다.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앞에서 무가치한 인간의 수고에 열을 쏟을것이 아니라
영원절대자이시고, 한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가며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며 허락하시는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승리하는 삶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