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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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상 4:20-34
제목: 평화와 번영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솔로몬 왕국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가운데 솔로몬 왕국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무엇이었으며, 그럼에도 베풀어주시는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를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해당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살펴볼텐데요. 국가의 재정 상태나 백성들의 만족도는 다윗 시대를 방불케 하는, 어쩌면 그 이상의 만족감을 누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4장 20절과 21절 말씀 보십시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하게 다윗과 솔로몬의 능력이 탁월해서 이스라엘이 잘먹고 잘살게 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로부터 대략 천년 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8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에 대한 약속을 하셨죠.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창세기 창 26장 4절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멘.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에 대한 약속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언약으로 맺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성취된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내용 역시 온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열왕기상 4장 24절 말씀 보세요.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이스라엘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그 유익이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민족들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얼마나 큰 번영을 누렸을까요. 오늘 본문 22절과 23절 말씀 보세요. 솔로몬의 하루의 음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 고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고르요 살진 소가 열 마리요 초장의 소가 스무 마리요 양이 백 마리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 솔로몬의 하루 음식물이 이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풍족했으면 이렇게 많이도 먹었을까요. 만약 우리가 어떤 역사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는다면 “과장 좀 보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성경은 구태여 과장을 보태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을 찬양하기 위해서 열왕기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는 풍요와 번영의 시대였기 때문에, 세상적인 관점으로 열왕기를 기록했다면 약간의 실수나 오점 정도는 덮어둘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다윗이나 솔로몬의 영적인 상태를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솔로몬이 하루에 취한 음식물의 양이나 백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은 25절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4장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아멘. 열왕기 저자가 기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안한 모습은 후대에 미가 선지자에 의해 인용됩니다. 해당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미가서 4장 1절에서 5절 말씀을 메모해 두시고 천천히 묵상하시면 되겠고요. 제가 미가서 4장 1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미가서 4장은 끝날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크고 두려운 날,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을 언급하는 것이죠. 그리고 3절 말씀을 부분적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심판하실 것이며, 이 땅에 전쟁이 종결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다음절, 4장 4절 말씀이 핵심입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인데, 이 일이 언제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마지막 날, 심판의 날에 주님의 자녀들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게 된다는 것이죠.
다시 오늘 본문인 열왕기상 4장 25절 말씀 보세요.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방금 전에 살펴본 미가서 4장 4절 말씀과 동일하죠. 이 내용이 동일한 이유는, 미가 선지자가 바라본 마지막 날의 모습이,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평화와 번영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차용해서 말씀으로 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이 얼마나 평화롭고 풍요로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솔로몬 왕국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가장 완벽한 왕국이었을까요? 미가 선지자가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 이미지를 인용한 것을 보면, 솔로몬 왕국은 어디에다 내놔도 손색이 없는, 완벽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4장은 솔로몬이 거느린 신하들과, 솔로몬 시대의 평화와 번영의 상태,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를 드높이는 그런 인상을 주지만, 열왕기 저자는 은연중에 슬쩍, 솔로몬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모든 백성들이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모습은 너무나 보기 좋고 아름답습니다만,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26절 말씀 보세요. 솔로몬의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이며.
이게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신명기 17장 1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신명기 율법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지나치게 강화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솔로몬의 군사정책은 신명기의 율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과 병거와 마병을 통해 강한 군사력을 확보한 솔로몬의 이스라엘 왕국에는 반 언약적인 요소가 암세포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솔로몬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신명기 율법을 위반하였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이 율법에 무지해서 신명기 말씀을 모르고 위반했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군사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 정도는 확보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에 군사력을 강화시키다가, 율법을 위반한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솔로몬이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의 영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33절에서 35절까지 말씀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다윗은 율법을 준행하는 것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는 말씀 보면서 뭐 하지 말라고 하면 가끔 답답하거나, 족쇄에 묶인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럴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요?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다윗은 계명대로 살아가는 그 자체를 즐거워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겠죠.
이와 반대로 솔로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솔로몬이 어떻게 국가를 통치했습니까? 병마를 많이 두는 정책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 부분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게 지혜로우면 뭐합니까. 율법 어기는 데 그 지혜를 사용하면, 과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 삶을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물론 여기서 우리는 기계적인 인과응보론을 생각해선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산기 두드리듯이, “너 잘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지? 마이너스 10점. 너 60점 미만으로 떨어지면 아웃이야. 내가 너 지켜보고 있어. 잘해.”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호랑이 선생님처럼 우리를 감시하신다면, 어떻게 우리가 마음 편히 살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아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이 율법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솔로몬에게 주신 축복을 당장에 거둬가지 않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도록, 그 지혜를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혜롭게 통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인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선 첫째로, 솔로몬 시대에 누린 평화와 번영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결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이 체험한 그 평화와 번영의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더욱 깊이 소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둘째로, 솔로몬이 율법을 어긴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평화롭고 안전한 것처럼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오래 참으심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자녀가 잘못하자마자 따귀를 때리려고 손을 들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자녀를 향해 오래 오래 참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우리 삶에 어떤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나 정도면 괜찮지. 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라고 속단할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때에나 기도의 자리에 나아올 때, 잠잠히 고민해보고 돌아보고, 주님 앞에 우리의 죄성을 내려놓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삶에 적용함으로써, 건강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하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을 솔로몬 시대에 성취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어떠할지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 불쌍히 여겨주시고, 평화와 번영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그 믿음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넉넉히 이겨내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혹여나 죄악에 빠져 있음에도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면,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고, 솔로몬과 같은 과오를 우리 삶에서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성령 하나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마음을 찢는 회개와, 삶의 적극적인 변화를 통해, 주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 모두와 동행하여주시며,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설교 개요
1.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모습
- 얼마나 번영을 누렸는지
- 이상적인 메시야 왕국으로 그려진 부분.
2. 그렇다면 솔로몬 왕국은 완벽했는가?
- 마병을 많이 둠. 율법 X.
3. 완벽하지 않음에도 허락하시는 은혜
-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심.
적용
1. 마지막 날에 도래할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만듦
2. 연약함과 불완전함에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
- 그러나 율법을 어기는 것,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에는 대가가 있음.
(징계 혹은 심판).
- 인간적인 한계와 우리의 교만함을 고려할 때, 주시는 것보다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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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pp.96)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았음. 그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자립을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것. 이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장면임. 미가서가 끝날의 왕국을 그린 그림과 매우 유사함. 미 4장에서 칼은 보습이 되며, 모든 사람은 두려움 없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으며 민족들은 시온으로 순례를 옴.
그러나 26절과 28절에 언급된 말들은 어떠한가? 솔로몬의 위대한 재물을 증명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솔로몬은 그의 통치 초기에 신명기 율법을 범하여 장래에 자신에게 닥칠 문제들을 쌓고 있었음. 신 17:16에 근거하면, 왕상 4:26에서 솔로몬은 이 금령의 첫 부분을 명백히 침범함. 그리고 바로의 딸(11:1, 3:1 참조)과 솔로몬의 배교에 대한 단락 바로 앞인 왕상 10:26-29에서 솔로몬은 두 번째 부분을 침해할 것. 위대한 왕과 완벽한 왕국에 대한 천상의 그림은 사실상 100%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음. 왕상 11-12장에서 왕국이 몰락하기까지 이러한 암적인 요소들은 고요함 속에 서서히 잠식해 나아갈 것.
그럼에도 4:29-34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 찬사를 보냄. 하지만 그의 지혜는 하나님의 것이며, 솔로몬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하더라도 율법을 어긴 것(몰랐거나 실수했거나)에서 인간의 지혜에 한계가 있음을 발견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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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C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음. 양식은 풍족했고 나라는 활기가 넘쳤음. 솔로몬은 하나님과 대중 모두의 호의를 얻었음. 이 번영의 일부는 다윗이 굴복시킨 나라들이 솔로몬에게 바친 조공 덕이었음. 이로 인해 창 12:1-9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물질적 축복이 현실이 되었음.
모세와 사무엘은 부유한 군주들을 경계함. 예레미야 역시 비슷한 우려를 표함(렘 22:13-17). 상식과 인간 역사는 과연 권력과 돈이 결국 왕을 타락시키지 않을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 것. 그러나 하나님은 솔로몬이 언약을 지키는 한 하나님의 승인이 유효할 것이라고 확언한 바 있음. 그럴 때에만 권력과 경건함 사이의 어려운 균형이 유지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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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주해 – 김진수 (pp.103)
본문은 솔로몬 시대에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아졌음을 강조함(20절). 그는 또한 솔로몬이 “그 강”(유브라데스)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과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 모든 나라를 다스렸다고 증언함. 이는 옛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을 상기시킴(창 15:5, 18; 26:4; 28:13-14; 35:11-12). 저자는 이를 통해 솔로몬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암시함.
본문에는 또한 솔로몬 시대에 이룩된 물질적 풍요(4:22-23)와 정치, 사회적인 평화가 언급됨(4:24-25). 모든 백성들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으며”(4:20),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안연히 살았다”(4:25). 더 나아가 솔로몬이 주변 모든 민족들을 관할했고, 그들은 솔로몬에게 조공을 바쳤음(4:21). 이 진술들은 솔로몬 시대가 갖는 구속사적 의미를 밝혀줌. 솔로몬 시대는 풍요와 평화가 함께하는 이상적인 나라가 이루어진 시대임. 이 이상적인 나라는 타락 이전 풍요와 평화가 지배하던 에덴 동산의 모습과 유사함. 솔로몬 시대는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축복이 회복된 시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음.
요컨대, 솔로몬의 시대는 족장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된 시대였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 태초에 인류를 위해 에덴동산을 건설하신 하나님의 창조계획(창조 언약)이 성취된 시대라는 것이 저자의 신학적인 관점임. 여기서 주전 8세기 선지자 미가가 그의 시점에서 미래에 이루어질 낙원에 대해 예언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
미 4:1-4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사 2:2-4과 거의 동일한 이 본문은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음. 현재 논의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4절의 진술임.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 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이 구절은 왕상 4:25의 솔로몬 시대를 묘사하는 말과 대동소이함. 이로부터 미래의 메시아 왕국과 솔로몬 시대를 연결 짓는 선지자의 역사이해를 엿볼 수 있음. 구약 선지자들에게 솔로몬 왕국은 종말론적인 메시아 왕국을 앞당겨 보여주는 예시적 성격을 갖는 것이었음. 복음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지자들이 고대한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이 도래한다고 가르침(마 3:2; 4:17).
그런데 특이하게도 본문은 솔로몬에게 병거와 마병이 많았다는 사실을 강조함(4:26-28). 이는 솔로몬이 군사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한 것일까? 그러나 솔로몬의 군사정책은 신명기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 또한 사실임. 신명기는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라고 가르침(신 17:16). 그러므로 말과 병거와 마병을 많이 가진 솔로몬 왕권은 그 자체 안에 반 언약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음. 예수께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9)라고 하신 것은 솔로몬 왕권이 가진 이런 한계와 모순들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일 것.
** 솔로몬의 지혜(4:29-34)
솔로몬의 지혜가 뛰어났다는 것은 결국 여호와가 진정한 지혜의 주인이라는 의미. 솔로몬은 3천 잠언과 1500 편의 노래를 지었으며 식물학과 동물학 분야에서도 방대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음(4:32-33). 이는 솔로몬이 언어 예술적 재능과 함께 자연 과학적 지식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는 의미임. 솔로몬이 이처럼 탁월한 재능과 방대한 지식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덕분임.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였기에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복이 있었음(왕상 10:8). 후에 선지자 이사야는 “지혜와 총명의 신”이 함께하는 메시아의 도래를 바라보았으며,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놀라운 지혜를 소유한 메시아-왕으로 묘사함(눅 2:47,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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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pp.178)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평화의 시대를 구가했는지, 그들의 행복과 번영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음. 이러한 번영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조공을 받았기 때문. 그러나 이스라엘이 주변 모든 나라를 정복해서 조공을 받은 것은 아님.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에게 정치적으로 예속되어 있어서 조공을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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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o500
② 솔로몬 왕국의 번영과 평화(왕상 4:20–28)
저자는 솔로몬 왕국의 번영과 평화를 열왕기상 4:20–25에서 교차대칭구조로 보여 준다. 중심축(X)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드러내는 수사적 장치이다(Throntveit 1992, 5).
A 온 나라가 번영과 평화를 누림(왕상 4:20)
B 강 이편의 나라들을 다스리고 조공을 받음(왕상 4:21)
X 솔로몬이 하루에 소비하는 음식물(왕상 4:22–23)
B′ 강 저편의 나라들을 다스림(왕상 4:24)
A′ 온 나라가 번영과 평화를 누림(왕상 4:25)
이러한 교차대칭구조는 솔로몬 시대에 큰 번영과 평화를 누렸고, 어떻게 누리게 되었는지 보여 준다. 교차대칭구조의 중심부 X는 상단부 A–B, 그리고 하단부 A′–B′와 연관이 있다. 이 구조의 중심축 X는 왕궁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밀가루와 고기에 대한 양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하루에 소비되는 양이 밀가루 삼십 고르, 굵은 밀가루 육십 고르, 살진 소 열 마리, 초장의 소 스무 마리, 양 백 마리 이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라고 소개한다(왕상 4:22–23). 여기에 사용된 ‘고르’(כֹּר)는 양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현대단위로 약 100갈론(약 350–400l)이다. 이 정도의 음식이 소비되려면 솔로몬의 왕궁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림잡아 14,000명에서 3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Skinner 1904, 95). 이 수치는 솔로몬 시대가 얼마나 부요했는지를 보여 준다.
특히 저자는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평화를 묘사하면서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왕상 4:25)라고 했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번영과 평화를 묘사하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미 4:4; 슥 3:10). 이것은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평화를 보여 주기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8)고 하신 것은 나다나엘이 이 나라를 소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셨다는 것이다.
③ 솔로몬의 지혜(왕상 4:29–34)
저자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 같이’ 주셨고, ‘동쪽 모든 사람’들의 지혜와 비교하며 설명한다. 이들은 성경에 보면 미디안과 시리아, 아랍 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삿 6:33; 7:12; 렘 49:28; 겔 25:10). 동쪽 사람의 지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지만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나 아다파(Adapa) 신화와 여러 격언 수집록에 나오는 메소포타미아의 지혜를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레이 1993, 224).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의 탁월함에 대하여 저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솔로몬은 잠언 삼천 가지와 노래 천다섯 편을 지었다(왕상 4:32). 초목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왕상 4:33). 그때 고대 근동에서 문학, 식물학, 생물학, 조류학, 어류학 등과 같은 백과사전식의 지혜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러한 지혜를 주신 것은 기도 응답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솔로몬의 지혜를 설명하며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왕상 4:34)고 끝을 맺는다.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오는 사람에 대한 사례는 열왕기상 10:1–13에 기록된 스바 여왕의 방문이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를 볼 때 성전 건축기사인 열왕기상 5:1–9:28을 괄호(parenthesis) 안에 넣고, 이 문단을 빼고 읽어도 흐름상 문제가 없다. 이는 솔로몬의 지혜와 번영이 성전 건축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A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옴(왕상 4:34)
X 삽입구: 성전 건축(왕상 5:1–9:28)
A′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옴(왕상 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