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이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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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실 오늘 제천에서 오는 길 입니다. 제가 지금은 서울에서 CCC 사역을 하고 있지만, 학생 때는 제천 CCC 출신이기 때문에 종종 제천에 가서 캠퍼스 예배도 드리고 같이 예수님 안에서 성장했던 간사들도 만나서 교제도 하고, 또 제천CCC 후배들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제가 대학 졸업을 2018년에 하고, 2019년까지 간사로 제천에서 사역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벌써 2023년이니까 제가 만나고 가르쳤던 학생들은 벌써 다 졸업을 하고, 이제는 정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대학생들이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애쓰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어제 22학번 순장과 교제를 하게 되었는데요. 교제를 하다 보니까 “내가 학생 때는 말야” 라는 말을 어느새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말하면서도 “와 내가 꼰대가 됐나…?” “라떼를 찾네?”라는 생각을 했는데, 현재 캠퍼스에서 훈련 받고 사역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내가 학생 리더십으로 사역할 때는 이런 이런 사역들을 했었고, 이런 이런 일들을 해서 이런 열매가 있었고, 이런 이런 저런 사건들이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감사하게도 제가 학생 때 CCC에서 어떻게 훈련받고 어떻게 사역했는지 이야기들을 하고, 내가 꼰대 같이 ‘라떼를 찾아서 미안하다’ 심심한 사과를 했는데, 정말 착하고 마음 밭 좋은 22학번 순장이 이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전설처럼 듣기만 했던 저희 윗 학번 시절의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간사님!”이라고요.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의 청년이기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인지, 정말 그런 것인지.. 다 알 수 는 없지만!!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렇게 후배 순장들에게 “라떼”를 찾았던 저의 마음이 솔로몬의 마음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왕기상의 말씀들을 살펴보았을 때 ‘다윗이라는 위대하고도 강력한 왕’이 죽고 정치적으로 아주 혼란스러웠죠? 아도니야가 왕이되고자 도모하기도 했고, 심지어 다윗의 가까운 신하들이 아도니야에게 힘을 보태 주기도 했고 또 다윗이라는 강력한 왕을 이어 이스라엘 전역에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 솔로몬은 얼마나 부담이 되었겠습니까?? 이러한 솔로몬의 마음이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의 자세”에서 여실히 느껴지죠.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정말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잘 다스리고 싶은 솔로몬의 마음이 말이죠.
이처럼 다윗이라는 위대하고 강력했던 왕을 이어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솔로몬은 정치적으로 심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부담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차츰 차츰 이스라엘 가운데에 왕으로서의 영향력을 미치게 되고, 심지어는 그 영향력을 주변 나라까지 확장하게 됩니다. 직전 본문인 열왕기상 4장을 보면 솔로몬의 영화가 얼마나 컸는지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었고”, 솔로몬이 블레셋과 애굽 땅까지 영향력을 미쳤고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는 등 그 영향력과 영화가 얼마나 컸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이렇게 점점 나라가 안정이 되고, 자신의 왕권도 강화가 되어서 평안 중에 있을 그 때에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솔로몬’과 두로왕 ‘히람’ 입니다. 나라가 어느정도 안정이 된 후에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5절 같이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아멘”
솔로몬은 히람에게 자신이 이제 성전을 건축하려한다고 그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사실 사무엘하 7장을 그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다윗이 평안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죠. 그 때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집에 거하지 않는다 내가 언제 집을 지어달라고 했느냐? 하지만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한 집을 지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 때 말고, 그의 아들이 나를 위해서 성전을 지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다윗의 삶은 ‘하나님과 다윗의 이 언약’ 이후로 일평생 이 성전을 짓기 위한 밑작업을 하게 됩니다. 역대상을 보면 백성들을 독려해서 자신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을 위한 밑작업을 계속해서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전을 지을 터인 ‘아라우나의 타작마당’도 돈을 주고 사게 되죠. 이런 다윗이었는데, 자신의 아들 솔로몬에게 얼마나 ‘성전 건축’이라는 자신과 하나님의 비전을 전해줬겠습니까?? ‘네가 왕이 되면, 꼭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한다’라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약속을 아들 솔로몬에서 얼마나 이야기했겠습니까..
솔로몬의 마음에는 이 다윗에게 이어받은 이 “하나님의 비전”이 계속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 되는 과정에서 아도니야의 반역도 있었고, 다윗이란 위대한 왕의 뒤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큰 부담도 있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새로운 왕으로서 자리를 잡고 주변 국에 영향력을 미쳐가는 그 모든 순간들 속에도 솔로몬은 가슴한 켠에 “성전 건축”이라는 다윗에게 이어받은 그 “비전”이 계속해서 남아있었던 것이죠. 어느정도 정치적인 상황이 안정이 되고, 자신도 왕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그 때 다윗에게 이어받은 ‘성전 건축’이란 하나님의 비전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오늘 본문 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솔로몬이 이 다윗에게 이어 받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행하는데 있어서 “두로왕 히람”과 함께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6절에서 보듯이 두로의 시돈 사람들이 벌목을 잘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이일들을 이루어나가고자 하는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었지만, 저는 보다더 7-8절 말씀에 주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7-8절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르되 오늘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그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하고 이에 솔로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사람을 보내어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거니와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이 바라시는 대로 할지라” 아멘
솔로몬은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이 다윗으로 부터 이어받은 ‘하나님의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내가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어받은 “성전건축”이라는 이 하나님의 비전을 행하고자 합니다! 히람!! 당신의 나라 사람들이 벌목을 잘하니 이 비전에 함께합시다!! 라고 솔로몬이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솔로몬의 이야기에 두로왕 히람은 여호와을 찬양하고, 솔로몬이 요구한 백향목과 잣나무등을 성전 건축을 위해서 제공하는 역할들을 맡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그 ‘하나님의 비전’이 다윗에게서 솔로몬에게로 이어져갔고 이제는 솔로몬에게서 ‘히람’에게 이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이죠. 읽지 않은 이후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비전을 이어받은 히람은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들을 성실히 공급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요즘 저의 마음에 와 닿는 표현 중 하나가 “예수가 이어지길”이라는 표현이 저의 마음에 울림이 되는데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국 “예수를 이어가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다윗에게로, 다윗에게서 솔로몬에게로, 솔로몬에서 히람에게로 이어졌던 그 “하나님의 비전” 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예정하심 아래에서 시작되어 예수께로, 예수에게서 사도들에게로, 사도들에게서 그들의 제자에게로, 또 제자가 또 다른 제자에게로 그렇게 20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오늘 우리에게까지 예수가 이어져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예수를 이어가는 싸움을 행하며 나아가는 것이죠.
특별히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에 있어서 선지자의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번 설교 시간에 말씀드렸던 적이 있는데요.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선지자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다윗과 맺으신 언약이 가시적으로는 솔로몬이라는 왕과, 그가 세우는 성전 그리고 그의 나라를 제시하고 있지만 거시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인 예수와 그분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선지자의 관점으로 오늘 솔로몬의 성전 건축 준비를 바라 볼 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적용되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이죠. 가시적인 관점에서 먼저 살펴봅시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이어주었고, 솔로몬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들 속에서도 아버지에게 이어받은 하나님의 비전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었고, 결국 때가 되어 그 비전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감에 있어서 홀로하지 아니하고 히람이라는 두루의 왕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비전들을 흘려보내고 함께 이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비전을 이어갔던 사람이 솔로몬이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교회로서 우리가 거시적인 관점으로 확장해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예수께서 이 땅에 오사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셨죠. 우리는 그것을 지상명령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이어받은 사도들이 그들의 제자에게,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계속해서 이어왔죠. 그리고 그 비전이 오늘 우리에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전을 이어받은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결국 성전 건축에 돌입했던 것 처럼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감에 헌신을 다해야겠죠. 그리고 이 일들을 솔로몬 혼자 하지 아니하고 두로 왕 히람에게 그 비전들을 흘려보내며 함께 성전을 건축하도록 이끌어 간 것 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혼들에게 예수를 전해주고, 예수를 이어가며 예수의 나라를 함께 세워가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솔로몬이 히람에게 다윗에게 이어받은 하나님의 비전을 흘려보낼 때 히람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6절을 중반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드리리이다”
즉 솔로몬은 두로에서 제공하는 나무의 재료값을 두로왕 히람이 측정한 값대로 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4 장을 보면 이방 나라까지도 솔로몬에게 조공을 바칠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두로왕 히람은 오늘 말씀 1절에서 봤을 때 다윗을 사랑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히람이 원래 다윗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이 가득했고, 정치적으로도 주변 나라의 패권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 벌목한 나무를 두로에게서 그냥 조공으로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것에 대한 값을 분명하게 치르려고 합니다. 힘이 있음에도 말이죠.
우리 한 번 사무엘하24:18-25절을 같이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사무엘하가 기록하고 있는 다윗에 대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심판으로 인해 전염병이 돌았고, 그 때 선지자 갓의 말에 따라서 여부스 땅의 ‘아라우나’라는 타작 마당을 사서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는 말씀이죠.
흥미로운 것은 다윗이 아라우나에게 가서 타작마당을 사겠다고 했을 때 아라우나가 그냥 드리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왕이 찾아와서 땅을 사겠다고 하니까 백성의 입장에서 그냥 드리겠다고 이야기 할 수있잖아요?? 그런데 다윗은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이 모든 것을 다 거절하고 은 오십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서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습니다.
이 때 다윗은 내가 값을 치르지 않고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열렸음에도 다윗의 마음은 자신이 하나님께 값을 치르고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오늘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 입니다. 충분히 압도적인 정치적인 힘으로 성전의 재료들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랬듯 솔로몬 역시도 이에 대한 값을 분명하게 치르겠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무엇을 보게 됩니까??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이라는 어떤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윗은 성전 건축이라는 이 틀 안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이어준 것 입니다. 성전 건축이라는 이 언약의 주제가 왜 나타났습니까?? 나는 이렇게 화려한 궁에 사는데 우리 하나님의 궤는 장막 가운데 거하다니! 내가 주를 위해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고백과 마음 위에서 이 언약의 주제들이 발생되었잖아요??
다윗은 단순히 프로젝트를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고백을 이어주었고, 이러한 마음을 이어받은 솔로몬이 히람에게 동일하게 그 마음을 전해주었기에 히람 역시도 여호와를 찬양하며 성전 건축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지자의 관점에서 결국 성전 건축이라는 오늘 말씀 가운데 주어진 과업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세우기’라는 과업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감에 있어서 우리가 이어받아야할 것은 이 가운데 깃들어있고 녹아져있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자는 이 명목하에 우리는 수많은 사역들, 수많은 봉사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녹아져있는 ‘이 마음’을 이어받고 또 이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수고와 헌신은 그져 공허한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인 이삭을 드렸던 그 장소가 다윗이 값을 치르며 자신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이며, 그 타작 마당 위에 솔로몬이 다윗과 같이 값을 치르며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을 드리며 성전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성전이 세워진 그 땅, 바로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시는 것이죠.
저는 우리 피플스교회가 이 마음을 이어받고 이어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 다윗이 그랬듯, 솔로몬이 그랬듯,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러하셨듯 ‘하나님 나라를 세워간다’는 하나님의 거대한 꿈과 비전 안에 녹아져 있는 그 마음들을 이어받고 이어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이어가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며 예수를 이어가는 싸움을 해나아갈 때 그런 우리의 삶의 고백과 믿음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고 또 우리를 통하여 주님 다시 오실 날이 준비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져 갈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어받은 예수를 이어가는 자들이 됩시다. 하지만 그 과정 가운데에서 예수를 이어가기 위한 어떤 사역과 일들에 함몰되기 보다, 예수가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왔던 그 모든 시간 속에 녹아져있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 그 마음을 이어받고 이어가는 자들이 됩시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솔로몬이 그랬고 하나님도 그러하셨고, 이제는 우리가 그러한 사람으로서 예수를 이어가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에수를 이어가는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가득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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