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고민, 교회

열왕기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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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본문을 시작하기 위해 짧게 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저는 최근에 IVP에서 주최한 북클럽을 참여했습니다.
5주동안 수요일마다 마포까지가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헨리나우웬의 책으로 나눔을 가졌습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니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상처받은 이야기들 이었습니다.
책 챕터중에 상처받는 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병에 걸려서 힘들어하는데 어떤 집사님이 이렇게 귀에 속삭였다고 합니다.
병에 걸려서 잘 낫지 않는것은 어쩌면 죄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니 회개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분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깊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또 다른 분은 교회에서 받은 또다른 상처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몇분이 더 교회에서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모두 여전히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그 마음을 잘 표현한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 작가로 유명한 필립 얀시가 쓴 ‘나의 사랑, 나의 고민, 교회’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며 읽었는데요.
그는 그의 책에서 교회의 부족한 점이 많아 여전히 고민이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교회를 선택하셨음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해줍니다.
그 책에는 교회에 대한 매우 인상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모험이요, 도박이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에 대해 더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볼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약의 성전을 살펴보기전에 반드시 이해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 과연 성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구약시대의 성전은 건물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럼 현재 우리에게 성전은 어떤 의미일까요?
무엇보다도 더이상 성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옛 시대의 산물이며, 그림자일 뿐입니다.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건물로서 성전의 의미는 사라졌습니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곧 참 성전이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성전이라 불리는 대상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고전3:16 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영인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재하는 우리 몸이 이제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곧 성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성전건축 이야기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성전인 교회를 어떻게 견고하게 세워나가야 할까요?
첫째, 교회는 사람들의 은사와 헌신을 통해 견고히 세워집니다.
13-14절입니다.
솔로몬 왕은 사람을 보내어서, 두로에서 후람을 불러 왔는데, 그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과부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으로서, 놋쇠 대장장이이다. 그는 놋쇠를 다루는 일에는 뛰어난 지혜와 기술과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솔로몬 왕에게 불려와서, 공사를 거의 도맡아 하였다.
솔로몬은 두로에서 후람이라는 기술자를 불러와 성전 기물을 제작합니다.
두로에서 왔기 때문에 지역으로만 따지자면 그는 이방인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핏줄을 따지면 그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어머니가 납달리 지파에 속한 과부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있습니다.
남편이 두로 사람, 놋쇠 대장장이입니다.
또한 역대하 2:14 에 보면 후람의 어머니가 납달리 지파가 아니라 단 지파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는 둘다 맞습니다.
후람의 어머니는 단지파 태생이었지만 납달리 남자와 첫번째 결혼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자 납달리 지파 과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재혼하게 된 남자가 바로 두로의 놋쇠 기술자였던 것입니다.
그럼 아들인 후람은 첫번째 남편 아들일수도 있고 두번째 남편 아들일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피가 섞여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분명 이스라엘 나라 안에도 많은 놋쇠 대장장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굳이 타국에서 그를 데려왔습니다.
그에게는 기술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지혜는 광야에서 성막을 짓던 기술자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지혜와 총명 그리고 기술로 성막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 지혜가 후람에게도 부어진 것입니다.
또한 후람은 이방나라에 살지만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보다 성전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기술은 돈으로 살수 있지만 마음과 열정은 돈으로 살수 없습니다.
그는 분명 뛰어난 지혜와 기술로 온 마음을 쏟아 성전의 기구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세울 성전인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 역시 사람들의 은사와 헌신으로 아름답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주신 이유는 그 은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와 세상을 섬기기 위함 합니다.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각자의 역할과 자리가 주어질 뿐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은사와 헌신을 통해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6-8 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가 후람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볼까요?
“내가 후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의 성전인 교회를 잘 세우도록 책임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만 열심히 섬기고 헌신한다고 교회가 마냥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수고와 헌신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 견고히 세워집니다.
21절입니다.
후람은 이렇게 해서 만든 두 기둥을 성전의 현관에다가 세웠다.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고 하였고, 왼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고 하였다.
15절부터는 후람이 만든 성전 기구중 현관에 세워진 두 기둥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두 기둥이 성전의 입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높이가 약 9미터정도고 둘레가 약 6미터 정도니까 굉장히 크고 웅장한 기둥들입니다.
후람은 단순히 기둥만 만든게 아니라 기둥을 잘 꾸미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진을 잘 보시죠.
머리 부분에는 놋쇠로 석류를 만들고, 그물에다가 석류를 두 줄로 늘어뜨려서 기둥 머리를 장식했습니다.
그 위는 그물로 꾸몄습니다.
그 위에는 백합화 모양으로 꽃봉우리를 만들었습니다.
석류나 백합화는 풍요를 상징합니다.
이를 통해 후람이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정교하고 아름답게 성전기구들을 만들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람은 이 두 기둥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한 기둥의 이름은 야긴이고 다른 한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야긴의 의미는 ‘그가 세우신다’, ‘그가 견고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보아스의 의미는 ‘그에게 힘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두 단어의 의미 모두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굳게 세우신다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고백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전이라 말할수있는 교회 공동체는 어떨까요?
앞서 우리는 후람과 같은 성도들의 은사와 헌신으로 교회 공동체가 세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만으로는 절대로 교회를 세울수도 없고, 지킬수도 없습니다.
거기에 교회의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척교회를 섬기며 이 진리를 더욱 깨닫는 중입니다.
교회를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아무리 지혜롭게 잘 준비했더라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실수할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뢰해야할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나가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교회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에는 보이지 않는 두가지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 교회는 견고하게 세워질수 없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의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데 있어 빼먹을수 없는 마지막 한가지 요소가 남아있습니다.
셋째, 교회는 거룩함으로 견고히 세워집니다.
23절부터 설명하고 있는 성전기구가 놋쇠 물통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잘 이해하실수 있습니다.
지름이 약5미터 정도 되고, 높이가 대략 2.5미터 정도, 둘레가 대략 15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대야입니다.
2000말의 물을 담을수 있으니까 약 4만리터의 물을 담을수 있는 크기입니다.
우리 생수병이 1.5리터니까 생수병 거의 2만 6천개 정도의 물을 담을수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물입니다.
그래서 이 것을 ‘바다 물통’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물통 역시 두 기둥처럼 성전 밖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그 대야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놋쇠로 된 12마리의 황소들입니다.
세마리씩 동서남북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황소들은 12지파를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그럼 성전에서 이 바다모양의 물통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후에 몸을 씻는 곳입니다.
깨끗한 상태가 아니고는 성전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오직 정결한 상태로만 만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로 세워질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죄에 대한 정결함과 거룩함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죄악으로 더럽혀진 몸을 씻고 주님 앞에 나아갈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이 교회는 굳게 세워질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인 성령이 우리안에 임재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재하지 않는다면 교회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첫째 사람의 헌신과 둘째 하나님의 일하심도 모두 십자가를 통과한 다음의 일입니다.
십자가 없이 교회에 헌신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십자가 없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2장 20-22절 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자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여기서 성경은 교회를 눈에 보이지 않는 건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교회의 기초란 그들이 전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터전이 되고 그 위에 건물이 세워지는데 예수님이 그 건물의 모퉁잇돌, 머릿돌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건물이 되어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교회란 있을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십자가를 자주 묵상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매주 성찬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의 기초가 십자가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성찬식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반복해서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교회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거룩해져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은 뛰어난 지혜와 기술을 가진 후람을 통해 성전의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성전 문 앞에 세워진 두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성전 앞에 바다 물통을 만들었습니다.
후람이 한 모든 일은 성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후람입니다.
우리에게 성전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도들의 헌신과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과한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처음 소개했던 필립 얀시의 ‘나의 사랑, 나의 고민, 교회’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빌, 이 큰 배는 낡아서 삐걱거리고 이리저리 흔들린다네. 그래서 구토가 날 때도 있지. 하지만 이 배는 목적지까지 잘 간다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걸세. 자네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말이세.”
너무나 교회를 잘 표현한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교회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교회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교회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기초 위에 사람들의 헌신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그런 교회를 언제나 사랑하면서도 언제나 고민하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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