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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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1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13 보라 그가 구름 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16 너희는 여러 나라에 전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리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17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21 내가 저 깃발을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1. 한 국가의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다.
예레미야는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먼 미래의 심판이 아닙니다. 임박한 심판입니다.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이제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가까운 미래죠. 임박한 것입니다.
지금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기 이전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적인 역사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이때까지 있어왔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그냥 세계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가 강력한 나라나 제국에 의해서 그 힘에 의해 침략받고 패전하게 되는 것은 수없이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고 북은 이미 멸망하고, 남유다도 점점 힘이 약해지면서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게 되는 것.
이것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한 나라의 몰락일 뿐인거죠.
그러나 우리는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의 몰락이 역사 속 패전국의 이야기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바는 남유다는 단순히 바벨론 제국에 의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가시는지 그 관점을 집중적으로 봐야겠죠.
하나님은 남유다를 심판하십니다. 바벨론은 심판의 도구일 뿐입니다. 제국이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거죠.
이방신을 섬기는 나라에 의해서 하나님을 섬겼던 나라가 패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약속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약속입니다. 마땅히 지켜지겠죠.
문제는 그 약속을 듣고도 남유다는 돌아오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예레미야 선지자는 임박한 심판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회개할 기회가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약속하시면서도 회개할 기회를 끝까지 주십니다.
마음의 악을 씻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17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패망합니다.
2. 예레미야의 탄식
예레미야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어떤 마음을 가집니까?
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슬프고 아픕니다. 왜냐하면 바벨론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남유다가 멸망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 자”이죠. 그리고 그 들은 것을 선포합니다.
어쨌든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과정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의 마음이 얼마나 처참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가 이방신을 섬기는 나라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일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죠. 예레미야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단순히 슬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으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서 메세지를 선포하실 때 그 마음에 철저하게 공감한 선지자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예레미야가 슬퍼하고 마음이 답답해하는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슬픈 분은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패악을 저지르고, 이로 인해 심판의 길을 향해 걸어갈 때 가장 마음이 아프고 통탄한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예레미야를 투영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해계십니다.
3.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딜레마의 해결
실제로 남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전쟁에서 패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역사를 통해서 선택받은 백성들을 포기하시는 것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가만히 보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비록 남유다는 멸망했지만, 미래에 일으킬 새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은 승리하게 하시기 위함이 바로 가장 큰 계획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승리의 왕으로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죠.
남유다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십니다.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죠.
그 왕을 따르는 우리에게 전쟁에서 패망하는 것이 아닌 승리하는 영적 이스라엘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적용)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자들의 특징은 “회개하고 따르는 것”이다.
남유다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이방신을 자신들의 왕으로 모셨다.
이것의 끝은 임박한 심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자들이다.
이제 남유다에게 있었던 바벨론에 의한 심판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안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돌이키고, 회개하고, 그분을 왕으로 모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