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먹으라!
책을 먹지 않는 세대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은유적인 언어로 묘사하는 것을 에스겔은 자신의 인격 안에서 경험하고 있다. 식탁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하나님이 주는 모든 것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그 음식은 충격적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파피루스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음식에 대한 그의 혐오감은 빠르게 사라진다. 그는 한 번 맛보고 나서 그 맛이 달콤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스겔이 느낀 만족은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메시지의 내용 (애곡, 신음 소리, 화 선언) 에서 비롯된 것일 수 없기 때문에, 그 “달콤한” 느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 직접적으로 접한 것에서 온 것임에 틀림없다.73) 이런 효과는 소명에 대한 에스겔의 저항을 완화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으로 의도적이었던 것 같다.
“네 백성의 아들들”) 라는 구절은 강한 혈연관계를 함축하고 주위의 다른 민족과 이 집단을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93)
예언자는 이 짧은 단락을 통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전부 전할 것을 요구받는다. “너의 마음으로 받아라”(‘카흐 빌르바브카’) 와 “너희 귀로 들어라”(‘우브오즈네이카 슈마’) 라는 표현은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앞의 명령과 언어적으로 동등한 것이다. 이 단락은 에스겔 예언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자기 백성에게 한 마디 한 마디 그대로 선포해야 한다는 것과 예언자는 백성의 반응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마지막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자신이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먹으라”는 말씀을 3회 듣고 (2:8; 3:1, 3), 하나님이 할 말씀을 들으라는 명을 2회 받는다 (2:8; 3:10).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소화되고, 내재화되고, 통합되고, 구체화되고, 살아 있어야 한다. 미디어는 그 자체가 메시지다. 더욱이 하나님의 대변인의 메시지는 사적인 추론이나 논리나 신비로운 성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계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예언자가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예언자 본인이 지닌 타고난 능력과 자질이 상쇄되거나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영감은 예언자의 능력과 자질을 고양시키고 더욱 활발하게 만든다.
첫째,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자로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그 부르심이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자로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보내는 이에 대한 명확한 환상을 가져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사자로 섬기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영으로 권능을 받아야 한다.
넷째, 하나님의 사자로 섬기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메시지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의 사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신성한 자격을 구비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의 사자로 섬기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그 부르심이 성공을 향한 부르심이 아니라 신실함을 향한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