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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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9월 4일에 있었던 일인데요.
공교육 멈춤의 날이라고해서 선생님들과 시민들이 시위를 한 일인데요.
많은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49일째가 되는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국회 앞 대규모 추모 집회를 예고했다.
저도 여러번 기사를 봤지만 교권이 많이 추락했나, 조금 심각성을 느꼈어요.
여러분과 제가 그래도 10년정도 텀이 있고 우리 권사님들은 또 다른 세대이시긴 한대.
우리 권사님들 시대에는 정말로 맞고 자라던 시기,
체벌금지가 제가 중학교2학년때쯤 생기기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때까지 맞았던걸로 기억해요.
축구하다가 2분인가 수업을 늦었는데, 빗자루로 5대씩 맞고 끝났습니다.
선생님들이 수업때 뭐 많이 집어서 던지기도하시고, 무기를 꼭 하나씩 들고오셔서, 요즘 뭐 웹툰에 99강화 몽둥이인가 나뭇가지인가 있는데, 그 때는 선생님들이 하나씩 다 들고 다니셨어요.
수업시간에 잠자면 머리통 많이 깨졌습니다.
근데 뭐 요즘은 인권이다 뭐다해서 난리도 아니에요. 뭐 핸드폰 꺼라 말도 못하고, 떠들어도 말못하고, 뭐 그런다고 하는데, 뭐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매일 있지는 않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넫 제가 이렇게 가만히 생각해보면은, 나는 꼰대인가를 생각해봐요. 나때를 생각하니까
그래서 꼰대냐, 나는 꼰대는 아닌 것 같은데 싶었어요. 근데 더 잘 생각해보니까 저는 꼰대에요. 그런데 꼰대가 아닌척 입을 다물고 있더라고요.
이해하는 척, 공감하는 척하는 거죠. 속은 안그러면서. 척척하면 어떻게하죠? 미움은 안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도움되는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배운다라는 것은 사전적으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 가르침을 받아 알게 되거나 익혀 가다
2. 그대로 본받다
가르치다
1.깨닫거나 익히게 만들다.
2.알도록 일러 주다
우리의 선생이라고 한다면 단 한분이 계실 것 같아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선생님이십니다. 우리의 좋은 본보기이시죠. 그분은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삶으로 모든 것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살아갈지를 배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여기서는 4가지의 동사처럼 보이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러나 동사는 한가지에요. 제자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가는 것도, 세례를 베푸는 것도,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도 모두 제자를 삼는 일인 것이죠.
예수님의 주 사역은 결국 제자 삼는 일이었습니다. 그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지난주에도 봐봐요. 성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베드로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이 베드로와 함께하신다는 것이죠.
제자의 길은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길입니다. 그 제자의 길로 우리는 살아가야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구원과는 상관없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넓게보면요. 우리 선생님들도 교사로 헌신하고 저도 여기서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우리 찬양단도 매주 연습도 하고 열심히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거 열심히해서 구원받는 것 아니에요. 저도 여기서 설교 안하고 다른 일 한다고해서 구원 못받는거 아니에요.
동시에 성령을 받았다면 제자도의 길에 서야된다는거에요. 우리안에 성령님이 계시면 그 제자의 길위에 서야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도에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거에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렇게 산다고 해서 구원받는게 아니에요.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살아갈 방향성이라는거에요.
성령이 우리안에 거한다면 ,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부인 - 자신의 이익에 끌려 다니기를 거부하는 것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것,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 결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
자기부정x, 율법에 얽매이는 것x, 나의 삶의 통제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 자아자체의 포기
디모데후서 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디모데후서 2: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디모데후서 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디모데후서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디모데후서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 단순히 곤경을 인내하며 단순히 참아야 한다는 권고의 수준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생명을 잃는다는 면에서 의미가 더 깊게 이해될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특권, 이익, 명성, 평안함 등의 상실까지 확대하는 것이 원리상 적절하지만, 근본적인 의미는 생명을 잃게되는 길이다.
마가복음 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가복음 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손해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목숨은 가장 소중한 것.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나?
35절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하면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그리스도와 복음 > 나의 생명
예수님의 사역
자신의 생명을 바침. 희생제물이 되어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 그러나 부활하심.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이 주어짐.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 - 적용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는 것 -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 그들을 환대하는 일
누가복음 5:30–32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오늘 날의 환대, 환영하는 것 그 이상. 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
우리 중고등부 공동체의 결속력 중요함. 나랑 다른 사람을 나의 바운더리에 초대하는 일. 정말 쉽지 않는 일. 그렇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일
사랑? 누군가의 필요를 돕는 일도 당연히 사랑이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죄인들과 함께 하며 약한 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돕는 것.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곳에 가는 것,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는 이에게 가는 것.
성경에서 믿음을 무엇이라고 표현할까? 성경은 믿음을 하나님 찬송잘하고 헌신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베드로전서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후서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베드로후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 예배자리 잘 참석하는 것. 하나님 믿음으로 당연히 해야하는일.
예배 나와서 잘했다하는건. 유치부 애들은 유초등부 애들의 교육방식 = 달란트
중고등부 -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환영받고 감사한 일.
믿음을 선한 행실로 이야기를 함.
한 가지 예화로 이야기를 맞치려고 하는데요.
제가 작년이였나 학교 수련회 때 신앙의 회의감이 있어서, 난 뭘 위해 이렇게 살아가나 싶었을 때가 있었어요. 언젠가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말을 괞히 했나 싶을 정도가 있을 때가 있겠지만, 솔직하게 우리끼리 있으니;까
학교 수련회 때 교수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자신이 어떻게 이 길을 가게된 이유를 막 설명하시다가, 자신ㅇ이 존경하는 전도사님인가 목사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80,90년도였으니까 아마 민주화운동부터해서, 여러 시위가 많이 있던 시절이었나봐요. 이 존경하는 목회자분이 그런 운동하다가 감옥도 많이가고, 뭐 성경적이라고 이야기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지만 여튼 참 고생을 많이하셨대요. 연세가 꽤 있으셨나봐요.
그래서 이 교수님이 물어보셨대요. 이제는 그만 하시고 조금 쉬시죠. 왜이렇게 고생하면서 다니십니까. 조금 편한길도 있으시지 않으세요.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대요. 늘 지금까지 예수님이 계실 것 같은 곳으로 가려다보니, 오늘 이렇게까지 왔다는거에요.
마가복음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