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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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으로 믿음 나타내기
행함으로 믿음 나타내기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지난 주에 히브리서에 대해 함께 나누었다. 기억이 나는가? 히브리서의 가장 핵심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존귀하게 버티는 삶,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상주시고 영원히 칭찬을 아끼지 않는 주님을 함께 나누었다. 오늘의 말씀은 ‘야고보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쓴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믿음은 곧 행동이라는 것이다. 야고보의 말을 빌리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강조하는데, 사도 바울과 야고보의 두 의견이 충돌하는 것 같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말씀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오늘 말씀에 귀신이 등장한다.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을 대항해 반란을 저지른 타락한 천사이고, 이 땅에서 여전히 악을 퍼트리고 있는 존재이다. 오늘 19절에 귀신들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은 도전하는가? 하나님을 안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귀신도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알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는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주에 함께 읽었던 본문 다음 구절을 계속 보다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사라가 더이상 임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가 끝까지 약속을 기다렸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완성이 되지 못한다. 그가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단에 바침으로 그의 믿음을 의롭다고 되어 하나님께 믿음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창세기에 22장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때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땠는가? 엄청 슬퍼서 밤새 울며 기도하고 그랬는가? 절대 아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이나 정말 좋은 여행지를 가기 하루 전날같은 마음으로 늦잠잔 것도 아닌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제물로 바치러 종들과 산에 올라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종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창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여기서 아브라함은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반드시 자신의 아들을 살리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때 이미 아브라함에게 부활신앙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들 이삭에 번제에 쓸 나무를 등에 지고 하나님이 일러두신 장소로 걸어가 이삭이 “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하며 아버지께 물어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어린 양을 준비하셨을 것이라 믿는다며 제단을 쌓고, 그를 결박하고 이삭을 제단에 올려 죽이려는 찰나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며 급하게 그를 찾으셨다. 히브리어의 반복은 강조를 뜻한다. 아브라함 마음에 진짜 죽이려는 마음을 아신 하나님을 다급하게 그의 행동을 막으신 것이다. 그렇게 예비하신 숫양을 제물로 드리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신다. 창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이삭이 등에 지고 올라간 것이 무엇인가? 나무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를 뜻한다. 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누구인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해서 화목제물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아브라함를 통해 암시한다. 방금 읽은 22장 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후손, 예수님을 통해 참 복을 누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당시에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이 모든 역사를 본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러한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실 메시야를 미리 그에게 보여주셨고, 나타내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섬세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행동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는 위대한 칭호를 받고 하나님이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두 번째로 기생 라합이 등장한다. 그녀는 여리고 성에 살았던 기생이었다. 유대인이 아닌 가나안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리고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았던 라합은 여리고 성의 왕이 정탐꾼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찾아내려고 할 때, 정탐꾼들을 숨겨주웠던 믿음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이 강하시다는 사실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행동할 수 있겠는가? 절대 할 수 없다. 또한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기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통해 여리고 성을 정복한 것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저 자연현상으로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답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 길이 되어주시고, 선하신 길로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신약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것을 높이 칭찬하여 마태복음 첫 장에 유대인 족보에는 여성이 절대 등장할 수 없는 그러한 시대 상황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역사로 남게된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분명하게 보았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지 않았더라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돌지 않았더라면, 기드온이 300명이 적다고 전투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다윗이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이 시대에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선교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아가 조선에 오지 않았더면 성경과 이 모든 역사 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믿음의 조상들과 선배들이 믿음으로 살았기에 우리는 오늘 우리의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무엇이 필요한가?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성령님을 찾고 구해야하는 것이다. 금요기도회 때도 나누었지만, 성령님은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는 담대함을 우리게 주신다.
우리가 오늘날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선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날 헬스를 끝내고 집으로 가다가 노부부가 비오는 날 폐지를 줍고 수레를 끌면서 가다가 수레가 붕뜨면서 수레가 무거웠는지 엎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주님의 세밀한 음성으로 ‘너가 무엇때문에 헬스를 하고 있니?’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노부부를 도와드리고 우산을 드리며 직접 끌어서 가셔야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렸다. 내가 착해서 그런가? 아니다. 솔직히 나는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 단지 세밀한 주님의 음성에 순종했을 뿐이고, 이 작은 도움으로 예수님의 따뜻한 온기를 조금이라도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지나치는 것은 진정 내 안에 믿음이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선행을 하는 이유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살아가야함을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지나치면 안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친구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안되서, 말해도 교회에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등 여러 이유로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함으로 성령님의 마음을 구해야하는 이유인 것이다. 많은 드림인 친구들은 기도제목이 대부분 없는걸로 알고 있다. 복음을 전해보라. 기도제목이 엄청 많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실패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기도해야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함께 새생명 축제도 준비하고 금요기도회 나와서 복음을 전할 담대한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친구들이 함께 교회나와서 예배하는 날을 꿈꾸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서 금요기도회에서 기도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주셨던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처럼 우리가 지금 다같이 말씀을 듣고 앉아있지만, 믿음있다고 말하나 행동하지 않으면 구원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오늘 읽은 야고보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지나갈 뿐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위대한 역사 속에 믿음으로 행함으로 증명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보고 나타내어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원히 칭찬받는 일꾼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