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기다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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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서론
-예화
-문제제기
저는 이시간 무엇을 기다립니까? 라는 제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길 원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기다려본적이 있으십니까?
어렸을때를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어디를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렸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를 다녀오시면 꼭 손에 무언가를 들고 계셨습니다. 과거에는 먹는것도 귀하고 또 용돈도 많지 않았기때문에 그것을 기대하며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기다림은 어떻습니까? 기쁨으로 기다리고 설레어하며 빨리왔으면 좋겠다는 기다림입니까? 아니면, 도리어 천천히 오면 좋겠다. 라는 마음에서 기쁨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섭니까? 여러분의 기다림이 기쁨의 기다림이면 좋겠습니다. 또 기대하는 기다림이면 좋겠습니다.
오늘말씀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듣고 깨닫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본문 연구
-본문설명
-본문의 진리
-본문에 나타난 교리
사도바울은 선교여행을 다닐때 데살로니가라는 큰 도시에서 3주동안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과거에도 큰도시에서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던것 같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지만, 바울은 박해를 받아 다른곳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급히 떠나온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음에 걸렸던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 성도의 형편을 알아보았습니다.
디모데는 이에 여러 좋은 소식도 있지만 성도들이 박해당하고 있고, 예수님의 다시오심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는 소식을 전해주게 됩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격려하였고 성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주기로 한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먼저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지 궁금해 하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때와 시기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1-2절입니다.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짧은 시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울은 그곳을 떠나와야 했지만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쩌면 그들을 격려하며 위로하기 위해서 이렇게 썼을수도 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을수도 있지만 내가 말한바를 너희가 알고 있다고 하며 저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편지를 쓴것입니다.
또 우리가 누가복음 12장 39-40절을 보면 어떻습니까?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도둑이 오는때를 알았더라면 도둑맞지 않을것이다. 때문에 생각지 않은때 내가 올것이기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도둑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올시간을 정해주고 말합니까? 그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어느때 내가 그곳에 가겠다하면, 준비하고 있어서 도둑의 목적달성이 무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기를 알려주지 않기때문에 무방비하게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다시오시는 날을 이처럼 예측할수 없다 말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예측할수 없지만 성경에서는 반드시 온다말하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반드시 오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려야 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는 과거 큰 대국을 이루었습니다. 식민지도 많이 삼았습니다. 그들은 ‘팍스 에트 세쿠리타스’라는 평화와 안전을 자신들의 식민지국가들에게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 의미는 ‘너희들이 로마에 충성하면 우리가 너희를 지켜줄게 너희가 안전하게 여행가게 해주고, 다른 나라가 쳐들어 올때 우리가 지켜줄게. 너희는 안절할거야”라는 것입니다.
많은 지역을 평정한 로마가 무역로를 만들어 무역활동이 활발해지고 군사력을 동원해 안전케되자, 식민지들로 하여금 충성을 하면 그에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한것입니다.
아마,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이러한 로마의 평화이념에 만족하며 ‘모든것이 평안하고 안전하구나!’라고 하였을지도 모르겟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평안하고 안전하다 느낄때, 임신한 여자의 해산의 고통처럼 갑자기 예측하지 못할때 멸망이 이르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의날은 도둑처럼, 아기를 낳을때 산통처럼 갑자기 아무도 예측할수 없을때 올 것입니다.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 부터 소외되는 것과 주의 날이 오는것에 대해 모르는 것을 밤과 어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구원과 주의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것을 낮과 빛이라 말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어둠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날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들이기때문이고 빛에 아들이고 낮에 속한 사람이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둠에 속한 사람은 깨어준비하지 못하고 술마시고 취합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은 육신의 잠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잠을 잔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즐거움에 빠져 방심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현재 삶을 어떻게 즐길까?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입니다.
또 술마시고 취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성도로서 술마시고 취한자들은 없을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술마시고 취한다는 것은 점점 거룩성을 잃어가는 행동을 말합니다. 거룩함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멀리떠나고 또 자신의 삶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거짓말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술취한자입니다.
낮에 속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바울은 “다른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깨어 정신을 차릴지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예수님의 오심이 늦어져도 방심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5처녀와 어리석은 5처녀는 그들의 모습이 달랐습니다. 슬기로운 5처녀는 예수님 오실것을 기다리며 또 준비하고 있었지만 어리석은 5처녀는 준비하지 못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순간 매사에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말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말고 종교적인 것에만 취중하고 있을라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삶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 살아가라”라는 말입니다.
즉 지금 세상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낮에 속한 우리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합니다.(8절)
호심경은 무엇입니까? 로마 병사들이 어깨쪽에 걸어 가슴과 등을 감싸 심장을 보호하던것으로, 지금은 방탄복 또는 갑옷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갑옷은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사랑으로 행할때 우리는 사탄의 궤계로 부터 자유하며 또 온전히 우리를 지킬수 있는것입니다.
또 투구는 무엇입니까? 머리를 보호하는 도구입니다. 몸으로 오는 것들은 호심경이 막아내지만 머리로 오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투구는 이에 우리의 머리를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합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란 다가오는 구원에 대한 확실한 기대감을 뜻합니다. 구원에 대한 소망이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소망하며 확신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이 오시면 좋겠다”라는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오신다” “ 나는 그것을 믿는다, 확신한다!”라는 마음인것입니다.
우리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호심경과 투구가 필요한 것처럼 영적 전쟁을 위해서는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과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써야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초를 서는 군인처럼 늘깨어 있어야 합니다. 군사들처럼 무장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바울은 또 마지막으로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우리가 구원을 확신하게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기 위해서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살든지 죽든지 상관없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라 말합니다. 세워주라 말합니다.
우리도 어떠해야하겠습니까? 서로 격려하고 성도로서 세워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다시오심은 재앙이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소망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깨어서 술취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빛의 자녀로 살수 있습니다.
진리를 취하면 유익한점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을 줍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낼 이유가 있기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빛에 속한자들로 구원을 위해 택했다는 사실을 알고 핍박과 고난중에도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나갔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살지 않고 늘 깨어 있을수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 해산의 고통하는 때와 같이 온다는 것은 매순간을 준비하게 만듭니다. 사랑의 호심경을 통해 구원의 투구를 통해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갑작스럽게 오시지 않으시고, 때와 시기를 정하고 오신다하면, 나태함에 빠지게 될것입니다. 준비되어있지 않고, 세상사람들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인생이 될것입니다. 결국에는 어둠과 밤에 속한자들로 살아가는 자들과 동일시 될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실천방법
-버려야할 것
-현실에서 해야할 것 2~3가지
때문에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항상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매순간 나아갈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셀레는 마음으로, 심판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이제는 축복과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고 소망하며 나아가야 하는것입니다.
구체적인 날짜는 예수님도 말씀하지 않으셨기에 알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약속하셨기에 이루시고 성취하시며, 결국에는 모든것이 말씀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건처럼 이미 이루신 구원을 다시 재림때에 우리에게 확증하실것입니다.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보면 구원의 역사는 창세기에 분명나타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약속이 설마 이루어지겠냐라고 하면서, 핍박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순간 역사하시고 이루셨고, 결국에는 구원을 이루겠다하시는 그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결론
-전체요약
-중요한 간증과 권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사람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하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을 것 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약속하여 성취된 이미 이루신 언약처럼 아직 오지 않은 그 심판의 때를 소망하며 감사하며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빛의자녀로 살게해달라고, 또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는 저희되어야 할것입니다. 예수 오심을 소망하면서 그리해야 할줄 믿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를 통해 또한 우리의 가정을 통해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