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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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 조망.
렌즈 - 조망.
잠깐 초점 맞추는 것과 같은 이야기.
사사기와 사무엘 사이에서···.
그런데 이런 곳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
정말 큰 역사는 작은 곳에서 일어나고
진정으로 풍성한 은혜는 뭐가 없는 가난한 곳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그렇다.
겹쳐진 흉년
겹쳐진 흉년
룻기의 배경도 그러하다.
이 때의 시기는 왕이 있기 전이니 사사시대였으며, 아주 잘 살 때가 아니고 흉년이 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먼저, 정말로 궁핍한 때였다.
먹을 것이 없었다.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1절)
어느 정도의 흉년이었는가? 베들레헴에 양식이 없을 정도. 빵집에 빵이 없음. 그냥 풍년 대비 흉년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기근이라는 말인데, 그 시절의 기근은 정말로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때이고, 아마도 그래서 모압 지방으로 건너 갔던 거 같다. 요단강 건너 여리고 지나...
2. 말씀이 없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먹을 것만 궁핍한 것이 아니었다. 흉년이라는 말에 앞어서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였는데, 이는 왕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영적인 의미로는 왕정이 시작되지 않아서 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왕으로 섬기고 따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궁핍함의 이유.
궁핍함의 이유.
사사기로부터 룻기를 죽 읽어보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각자 생각하기에 옳은대로 행하여서 흉년을 맞이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베들레헴 출신 한 사람도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가 불순종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4절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원래 안되지 않나? 나중 결과는 좋아지만 안되는 일이었다. 배고파서 간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거기에서 장가 갔다는 이야기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왕이 아니었다. 나중에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어려움도 도리어 유대땅 쪽이 빨리 풀렸다.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무엇이 남았는가?
무엇이 남았는가?
우리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 어디에서 그것을 해결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답이 나오지 않아 불안하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의지할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사람을 의지하고 내 생각을 의지할 때는 남는 것이 없다.
1) 엘리멜렉의 가족은 먹을게 없이 흉년이 들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모압으로 옮겼다.
2) 그랬더니 엘리멜렉이 죽었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 속에 하나님을 왕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3) 그 후 두 아들이 남았다. 그래도 아들들이 남아있으면 장래를 보장할 수 있지 않은가?
4) 거주한 지 10년 즈음에 아들도 죽었다.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것이다. 며느리들은 남았는데 손주들도 없다.
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이런 말씀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남은게 없다.
남은게 없다.
남은 사람이 없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보자 참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인가? 이름 이야기 하나 더 해보자 나오미는 “나의 마음에 드는 자, 나에게 기쁨을 주는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어떤가?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공감이 가지 않는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소망이 사라진 듯하다. 물론 해피엔딩임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배울 것.
우리가 배울 것.
도입부에서 배울 것이 있다.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행할 때에 좋은 결과가 있기 어렵다. 이게 바로 선악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본문의 시대는 사사 시대였다. 이 사사를 공동번역에서는 판관이라 했는데, 재판관이라는 의미다. 판관 포청천 있지 않은가?
재판관의 자리에서 내려오라. 내 생각에는, 내 판단에는 그러면서 하나님까지 판단하고 내 맘대로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
힘이 없어지면, 연약해지면 내가 남 판단하지 않을 것 같은가? 더 판단한다. 너 때문에 그랬다고 손가락질하는 사사시대를 속히 끝내라.
어려워서 그렇다고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세상의 질서에 너무나 섞이기 좋아하고··· 배부를 수만 있다면···엘리멜렉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너무 잘못했다 문제있다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도 그렇다. 조금씩 조금씩 내 생각대로 남들처럼.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에도 임한다. 말씀을 통해 계속 살펴 보겠지만, 룻기의 역사도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지금은 주님 앞에 더 나갈 때이다.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비로소”
사실 빠를 수록 좋다.
여러 가지 많이 있던 것이 사라질 때, 그 없어진 것 상실한 것을 가지고(역설적으로) 상한 심령을 가지고 주님께 다시 돌아가라. 그때로부터 역사는 일어난다.
정말 지금 내게 하나님이 왕이신가?
그에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말씀을 통해 돌아보는 시간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