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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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39장 & 대표기도
찬송가 539장 & 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벽을 깨워주셔서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새벽예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버지여, 세상의 흐름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예배로 시작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아버지 앞에서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우리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시고 의를 전가하여 주신 예수님을 중심에 두지 않았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박해를 받아셨음을 기억하며, 더 깊이 알아가며, 이제 그 예수님을 닮아가며 예수님을 위하여 묵묵하게 여러 고난들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으로 인한 찬양과 감사가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어제부터 금요일까지 예수님께 집중하는 가을 캠프에 참석한 담임목사님, 영육간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시고, 필요한 집중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총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총회가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며, 각 교회들에게 예수님을 잘 선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총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리가 아닌 것들에 힘을 낭비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교회 소방 설비를 놓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온 성도들이 각자의 마음을 담아서 헌신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심을 믿게 하여 주시고, 모든 과정을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 교회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고통과 아픔의 현실 앞에서 낙망하고 넘어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 믿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진짜 현실, 예수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보면서 다시금 일어나 예수님을 깊이 경험하고, 육정영으로 다 치유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 이 시간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 가운데 예수님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고, 말씀 듣고 기도할 때에, 말씀 붙잡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 이 시간에도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오늘의 예배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예수님 놓지 않게 하여 주시고, 회개하는 겸손한 심령으로 하루를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서론
오늘 함께 읽으실 하나님의 말씀은 /// 함께 같이 말씀을 두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렇게 새벽예배에 나오신 우리 성도 여러분들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박해를 당하신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성경은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불친절합니다. 굉장히 답답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궁금한 것에는 성경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궁금한 것을 과감하게 생략시켜버립니다. 성경은 다른 세상의 책들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세상의 책들은 그 책을 읽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면, 성경은 반대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성경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중심에서 책을 읽어왔는데, 성경은 나라는 책을 읽는 독자 중심을 깨부셔 버리고, 성경의 지배를 받게 만드는 것이지요. 마치 왕처럼 성경을 읽는 독자들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우리는 따라가는 것이지요. 성경은 그렇기에 매우 독특한 책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특별히 오늘은 성경의 과묵한 모습. 과묵성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론
본론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그 유명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본문을 통해서 성경의 과묵한 모습. 성경의 과묵성을 같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과묵한 아브라함입니다. 여기서 과묵하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말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왜 아브라함이 과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심정. 느끼는 감정. 속마음을 전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22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는 자로서 이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그리고 2절에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충격적인 명령이 떨어집니다. 2절까지 읽은 저와 여러분들은 3절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예상이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반응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3절에는 아브라함이 순종하는 행동만 나오게 됩니다.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4절까지 우리는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5절에 아브라함을 말을 합니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말을 했는데, 여기서도 정확히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정말 돌아오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이렇게 말을 한 건지, 아니면 종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종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렇게 계속 우리는 아브라함의 심정을 전혀 알 수 없게 됩니다. 8절에서도 아브라함이 어떤 마음으로 아들에게 말을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우리는 그저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심정이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 아들 이삭을 잡아다가 칼로 찌르려고 할 때 조차도 아브라함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궁금한 것을 전혀 알려주지 않고, 과감하게 다 생략하여 버렸습니다. 그렇게 계속 숨기고 또 숨기고 숨기면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멈추면서 이 사건은 끝이 나게 됩니다. 19절까지 성경은 우리가 궁금한 것에 전혀 알려주지 않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버립니다. 아브라함의 감정에는 성경은 과묵하게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사건을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요약하여 줍니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브리서에서 아브라함의 모든 감정, 속마음, 느꼈던 심정들을 한 단어로 요약하여 버렸습니다. 믿음이라고 요약하여 주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궁금한 것을 말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궁금한 것을 내려놓고, 이제 성경이 말해주는 대로 그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제 그 믿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겁니다. 그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그 믿음은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모든 속마음들을 생략시켰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숨겼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삭과 같이 제물로서 이제 받쳐지게 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 예수님의 심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숨겼지만, 이제 마태복음 예수님 때에는 밝히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성경은 우리가 궁금했던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과감하게 생략시켜버리고, 전혀 답을 해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 있어서 분명하게 숨기지 않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느끼고 계시는 심정을 겟세마네 본문에서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궁금한 것에 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 가져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그 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를 마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박해를 받아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론
결론
우리가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은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교회 밖을 떠나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저와 여러분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저와 여러분들이 성경이 보여주는 것에 관심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그 분, 예수님께 저와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우리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시고, 화를 복으로 바꾸어주신 구원자 예수님께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오늘 하루도 예수님께 집중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것에 한 눈 팔고 살아왔던 죄악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금 세상 속에서 예수님께 관심 갖고, 예수님께 집중하며,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