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106문.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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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성령 하나님이 시험을 이기게 하신다.
신앙고백: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342장(너 시험을 당해), 341장(십자가를 내가 지고)
기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려 자기 아들을 대속제물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주의 용서를 구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가 오직 주의 은혜를 힘입어 삼일 밤 주를 예배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다음 세대를 긍휼히 여기시고 믿음과 신앙성숙을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대언하는 종을 붙잡아주시고,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그 말씀으로 교회를 단단하게 세워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마 6:11-13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일용할 양식은 누가 주시느냐?
창조자 되시는 성부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얻어지고,
죄 사함은 누가 주시냐?
구속자 되시는 성자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얻어지고,
죄 짓지 않고, 악에서 구출되는 것은 누가 하시냐?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임재하심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삼위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생필품과 모든 일용품들을 주시는 분은,
창조주 되시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도,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앞으로 죄를 이길 힘을 주시는 분도,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하면서,
성부 하나님의 창조사역,
성자 에수님의 구속사역,
성령 하나님의 적용사역을,
의지하면서,
전적으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먹고 사는 것도,
죄 용서 받는 것도,
앞으로 거룩하게 살아갈 능력도, 오직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가능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다가,
이제 땅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먹을 것도 주의 손에 달려 있사오니,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가 죄 사함 받는 것도 주의 손에 달려 있사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건짐받는 것도 우리 스스로 할 수 없고, 주의 손에 달려 있사오니, 주여 우리를 구하여 주옵소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겸손하게, 주의 도우심을 간절히 요청하는 것이, 주기도문입니다.
오늘, 주기도문 6번째 간구,
소요리문답 106문입니다.
함께 문답을 보시겠습니다.
제106문 : 여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라는 여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에 시험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또는 우리가 시험 당할 때 붙들어 주시고 건져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갑자기 옆에 멀쩡하던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깜짝 놀라면서, 당황하죠?
숨을 안 쉬니까,
인공호흡을 하든지, 심폐소생술을 하든지,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죠.
숨을 안 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일이죠.
기도가 그런 것입니다.
기도 안해도 깜짝 놀라면서 당황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어도 기도는 안 할 수 있지.
교회 다녀도 기도 안 할 수도 있지.
저는, 우리 다음세대가,
특별히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세대가 될까봐 굉장히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은 하는데,
정작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될까봐 그것이 염려가 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옆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두렵고 떨리십니까?
마치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숨을 못쉬고 그러면 당황하듯이,
우리 마음 속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에 나타나는 경각심이 있으십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다시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목적어가 1인칭 복수입니다.
우리를 입니다.
나만 숨쉬면 되는 게 아니고,
내 옆 사람,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숨 쉬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옆 사람이 숨을 안 쉬어요.
기도를 안 하고 있어요.
하나님 아버지, 도와 주세요.
여러분,
주기도문이 뭡니까?
우리의 일용할 양식도, 우리의 죄 사함도, 우리가 시험에서 벗어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가 있어야 된다.
그것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건짐을 받는 것도 기도해야 한다.
내 스스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주기도문인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시험 가운데 있는 것이고, 악에게 기세를 붙잡혀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만 좇아 살아가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자기 인생처럼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나의 거룩함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우리 주변 사람들의 거룩함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
정말 기도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것인데,
기도해야 하는데,
절박한 심정으로,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시험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다음세대가 기도하는 세대인가요?
얼마나 뜨겁게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세대인가요?
우리 다음세대가 기도의 은혜를 누리고 있나요?
정말, 하나님 은혜 없이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다음 세대가 가지고 있나요?
에이,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지
내가 성경도 아는데,
거룩하게 살 수 있지.
이건 교만입니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주의 은혜가 없이는 악에서 건짐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거룩하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구원도 은혜이고, 성화도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갈 힘을 주셔야,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과 작년 2022년을 비교할 때,
20대, 30대 개신교인 인구가,
30-40%, 심지어 50%대 까지 떨어진 연령층도 있었습니다.
이탈율이 엄청난 것이죠.
우리 다음세대가 기도하는 세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뜨겁게 부르짖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아가는 다음 세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세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어두운 한국교회를 다시 밝게 비추는 다음세대가 창조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북한 주민들, 특히 기독교인들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2023년 통일부에서 발간한,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19 이후로 더욱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심해졌고,
옆집 할머니가 감시한대요.
벽에 대고,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하냐?
왜냐하면, 자기에게 도움이 되니까,
옆집이 도망치거나,
탈북을 하면, 바로 신고하려고,
할머니가, 자기 집 벽에 귀대고 소리를 듣는대요.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휴대폰을 검열한대요.
북한은 손전화기라고 하죠.
휴대폰 검열해서,
우리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마음대로 보는데,
북한은 아니에요.
보다가 걸리면, 최대 10년 징역 살아야 합니다.
한국 드라마, 종교 관련 영상, 음란물 보다가 걸리면,
최대 `10년 징역 살수도 있고,
아니면, 뇌물 주고 풀려나야 되고,
아니면, 핸드폰을 빼앗기고, 2차 검열이 들어가는데,
한국 사회에서 이러면 난리 나겠죠.
그만큼, 사상통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니까,
성경책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성경책 가지고 다니면, 불순분자, 반역자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성경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우상이라고 가르치니까요.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정책과 대치되니까,
성경책이랑 기독교를 반대하는 거에요.
또, 북한이 참 좋은 나라인지 어떤지,
의사도 배급을 받습니다.
우리 나라는 고액연봉자죠.
근데 북한은 의사도 배급 받으면서 일합니다.
우스운 일이죠.
우리 청년들이 북한 가서 살면, 아마 기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통제가 심하고, 사상검열이 심하고, 기독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를 반대하는 북한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어떻겠습니까?
9월 18일자 뉴스에,
2019년도에 평양에서 지하교회를 운영하다가, 그게 들켜가지고,
5명이 공개적으로 처형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함경북도에만 1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하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도해야 합니다.
평양에서 무려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하교회를 운영하면서,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정말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렇게 교회생활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 우리가 북한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순교의 피가 되어서, 또 다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성경과 복음의 영향력이 북한 정치권을 변화시키고,
제가 보기에는 정치인들 중에도 분명히 지하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점차 확대되어서,
북한이 참된 하나님을 알고, 변화되어서,
정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셔서,
이 시험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서 7차례 정도 등장하는데,
대체로 예수님에 대한 시험이 대부분이고,
마태복음, 4장 3절에보면,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데,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그 외에는,
자기 의가 가득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기고만장해서, 예수를 시험하는 장면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였다.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였다.
죄인들이 예수를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병든 자, 헐벗은 자,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한 것이 아니라,
가장 종교적 색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자기 중심적이었고, 자기 의가 충만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시험한 핵심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슴하셨습니다.
“너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해라.”
여러분,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시험에 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기도하는 동안 잠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제사장과 군병무리들이 와서,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자,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를 모른다고 거짓말 쳣습니다.
시험에 든 것이죠.
우리 육신은 연약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세상의 모진 공격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죠.
우리가 할 수 없으니,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도와주십시오.
성령님, 내 안에 역사하셔서, 충만히 일하여 주십시오.
나는 죄 밖에 없사오니, 성령님 내 안에서 주의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
*나만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다음세대도,
우리 옆 사람, 우리 공동체, 우리 모든 지체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십자가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는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음을 지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죽기 위해 사는 사람,
거룩한 죽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 살기 위해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과 사고 앞에서,
우울해지고, 염려가 찾아오고,
신앙적 방황이 오고,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을 이기는 비결 첫번째, 십자가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로는, 한 영혼을 품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적극적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영혼,
다른 영혼을 위해
늘 기도하며,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 성장을 위해 늘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정말 아버지가 하실 수만 있다면, 십자가를 피할 수 있게 좀 도와주시옵소서.
그런데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이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내가 당당히 십자가를 감당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 앞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는데,
아버지의 뜻이라면,
담담히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는데,
어떻게 가능합니까?
나는 죽지만,
나를 통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나 그 길 가기 원합니다.
아버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한 영혼을 품는 사람은, 결코 시험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기도문은, 우리의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우리의 죄 사함도,
우리의 거룩한 생활도,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다음세대가 기도하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뜨겁게 부르짖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북한 주민들,
특히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목숨걸고 신앙생활하는 그들,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으면,
언제 고발당할지 모르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 내부가 변하고,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북한 땅에 도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기도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제목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나만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이웃들, 교회, 우리 다음세대들, 북한 땅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지하교회 교인들까지,
정말 시험에 들어서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내도록 기도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이고, 기도제목인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십자가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육신은 너무나 연약하여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목을 매며, 오로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이런 육신의 소욕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도우심 밖에 없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님, 우리 가운데 충만히 일하여 주옵소서. 우리 다음 세대 한 명 한 명에게 충만히 일하여 주옵소서. 죄를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더 나아가 북한 땅에서 지하교회를 운영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들이 시험에 들지 말게 하여 주시고, 끝까지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신앙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들을 통하여 북한 땅이 복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 교회를 위해서, 담임목사님, 사모님, 늘 주님 은혜 가운데 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주시도록.
우리 교회 안에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하나도 없도록. 모든 성도가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깨어 시험에 들지 않고, 오직 악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숨쉬지 않는 성도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기도하지 않는 그들에게도 주의 충만한 도우심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든 만유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양식도, 우리의 죄 사함도, 우리의 거룩한 생활도, 주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줄 믿사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시험에서 능히 이길 수 있는 힘도 더하여 주옵소서. 이 땅의 다음세대와 한국교회와, 북녘의 지하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신앙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북한정권의 탄압 가운데서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을 흘리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십자가로 시험을 이기게 하여 주시고, 한 영혼을 품고 기도할 줄 아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1.5: Saint Augustin: Anti-Pelagian Writings (Catholic Edition)
제9장 - 유혹 속으로 들어가다. 기도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늘 스승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12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자기 자신의 소견과 싸울 때 g시험에 들지 않도록, 즉 시험에 이끌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기도합시다. 그러나 그가 선한 의지로 자신의 악한 양심을 정복한다면 그는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인간 의지의 결단은 주님께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승리를 허락하지 않는 한 불충분합니다. 실제로 어떤 간구에서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더 분명한 증거가 무엇일까요? 우리 구주께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만 말씀하셨다면, 그분은 인간의 의지를 훈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이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와주신다는것을 보여 주셨습니다.이 말씀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것입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에서 너 자신을 제거하지 말라."13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노니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묵상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예수를 시험한 자는,
마귀 -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착각하는 자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그 말씀을 철저히 거부하는 자.
바리새인과 서기관 - 가장 종교적이었으나, 가장 자기 의가 강한 자
비판 의식이 강했던 사람
자신 안에 죄를 보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하였다.
죄인들이 예수를 시험하지 않았다.
우리를 :
시험은 공동체적이다.
시험은 함께 겪는다.
영성은 공동체적이다.
내가 예수를 잘 믿어도, 하나님은 타인의 시험에 우리의 영혼이 동참하게 하신다.
우리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괴로워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시험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타인이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다음세대
신앙은 있는데 교회는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은 형식도 지키고 본질도 지키라고 하셨다.
간음하지 말라 -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지 말라.
주일성수 - 예배자의 자세를 갖추어라.
북한 주민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박탈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경지역에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생명을 박탈하는 즉결처형 사례가 지속적으로 수집되고 있으며, 구금시설에서 수형 자가 도주하다가 붙잡혀 공개처형되거나 피구금자가 구금시설에서 출산한 아기를 기관원이 살해한 사례도 있었다. 일부 구금시설에서 는 비밀처형이 실시되고 있다는 증언도 수집되었다. 또한, 북한에서 는 사형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형법 개정을 통해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범죄의 수를 늘려왔으며, 최근 에는 비상방역법, 마약범죄방지법 등의 특별법을 제정하여 방역조 치 위반행위 등에도 사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살 인과 같은 강력범죄 뿐만 아니라 마약거래, 한국영상물 시청·유포, 종교 · 미신행위 등 자유권규약상 사형이 부과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증언들이 수집되었다. 18세 미만 아동과 임신 부에게 사형이 집행된 사례들도 수집되었다.
또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불순녹 화물이 있는지 여부를 단속하기 위해 길거리나 대학 등에서 수시로 휴대전화 검열을 하며, 주민들의 통화를 감청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 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서신검열, 초상휘장 검열, 복장검열 등을 정 기·수시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주민들의 외부정보 접촉 이 증가함에 따라 생활검열을 점차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이 선거로 선출할 수 있는 대표는 최고인민회의와 도· 시·군 인민회의 대의원이다. 선거는 불참할 수 없다고 하며, 실제 주 민들은 선거에 불참하거나 반대투표 할 경우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선거를 주민의 권리가 아닌 의무로 인식하고 있었 다. 투표용지에 아무런 표식없이 그대로 투표함에 넣어 찬성투표 한 다는 것이 일관된 진술이었으며, 반대투표 방법을 모르거나 반대투 표한 경우를 들어본 경우도 없다는 진술이 대부분이었다. 피선거권 도 제한되고 있는데, 성분, 당원 등 당위원회가 정한 조건에 맞는 사 람이 대의원 후보로 단일 추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후보로 결정 되면 무조건 당선된다고 한다.
우선 배급대상자라고 알려진 교원과 의료인에 대해서는 지역과 소속된 병원에 따라 배급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소 배급은 기업소의 상황에 따라 배급량이 상당히 차이를 보였다. 외화벌이 기 관은 대체로 배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었으나 규정에 미치지 못 하는 매우 적은 양을 배급하는 기업소도 많았으며, 배급을 전혀 하 지 못하는 기업소도 있었다. 북한의 식량배급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소토지 경작, 가축 키우기, 장사, 밀무 역 등 개인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해외에서는 인터넷 사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원칙적으로 스마트폰 사용은 금지되어 있고 전화 통화만 가능한 2G핸드폰만 소지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스마트폰 사용 금지규칙을 어겨서 기기를 압수당하고 벌금을 부과 받았다는 증언이 수집되었다.
국민에게 국가의 공식신념만을 따르도록 하면서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도록 강제하거나 국가의 공식신념을 따르지않는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한다면 이는 자유권규약 제18조에서 보장하는 사상 및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에 해당될 수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헌법(2019)에는 사상·양심의 자유에 대한 규정이 없다. 대신 사회주의헌법(2019) 제3조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하며김일성-김정일주의가 북한의 지도사상임을 밝히고 있다.
기독교 관련 북한당국의 반종교 교육은 학교 교과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졸업 후 조직생활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집된 증언에따르면 북한에서 반종교 교육을 받고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했다고 한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을 반동분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언들도 있었다. 한 증언자는 2015년에 계급교양관을 1달에 1번씩 참관해야 했는데, 거기서 ‘종교는 침략자들이 북한에 가져온 것으로 그들이 성경도 가져왔다’는 내용이 포함된 반종교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제국주의적 침략의 앞잡이이므로 반민족적·반혁명적 적대계층이라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증언자는 교육기관, 사회기관, 법기관에서 ‘종교는 허황된 것이고 거짓’이며 선교사는 악한 자라고 세뇌가 될 정도로 지속적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감히종교에 관심을 가질 생각도 하지 못했고 ‘선교사’라는 단어를 들으면지금도 무섭다고 한다.
“주민들을 모아 놓고 교양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처음 ‘성경책사진, 예배하는 모습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반동조직이라고교육하면서 성경에는 미신에 관한 것이 적혀있어 이것을 읽게 되면사상이 변질되니 이런 책을 주변에서 보게 되면 신고하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국가 반역자로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래서 재북시 저 뿐만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은 성경책이 북한제도에 대해 안 좋게 적어놓은 책으로 알고 있었고 이를 소지하면죽임을 당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기독교를 탄압하는 이유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수령 우상화 정책과 주체사상에 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탈종교화된 사람들
2017년 이후 무종교인이 종교인을 앞질러 67%나 되었다.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리셋 :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라
낮은 데 마음을 두라.
과거
초등학교 시절
대학생 시절
악에서 구원하소서
한 영혼을 품으라
십자가를 지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셨다. = 시험을 이기심.
시험을 이기자, 그 이후는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다.
영혼을 품지 않는 삶 그 자체가 악한 삶이다.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 자체가 악이다. 이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뿐이다.
이것이 악이다.
마귀가 예수를 어떻게 시험했는가?
예수야, 너를 위한 삶을 살아.
너를 위해 빵을 만들고
너를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고
너를 위해 이 모든 나라를 소유하라.
시험
불시험(painful trial) 헬라어로는 ‘퓌로시스’(πύρωσις)인데, ‘불에 태우다’는 뜻의 ‘퓌로오’(πυρόω)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 도가니에 던져진 것과 같은 혹독하고 고통스런 시련을 뜻한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이 당하는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해 가르치면서 역사 이래로 하나님의 백성(신약의 성도)은 끊임없이 불과 같은 시험(고통스런 상황)에 직면했는데, 이런 와중에도 변절하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이라고 하였다(히 11:33–38).
시험(試驗, test, temptation) 지식 수준이나 기술의 숙달 정도 등을 일정한 절차를 따라 알아보는 것. 어떤 사물의 기능(능력, 성능)을 실지로 경험하여 봄. 성경에 언급된 시험에는, 신앙의 연단을 위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로 인간에게 내려지는 ‘시련’(test)과 인간 스스로 욕심에 이끌려 생겨나는(사탄이 꾀는) ‘유혹’(temptation)으로 나누어진다.
•시련과 유혹 – ‘시련’은 영적인 선을 창조하기 위한 의도로, ‘검사해 보는 것’, ‘훈련해 보는 것’ 곧 ‘연단’을 의미한다. 어떠한 형태로도 악의 근원이 될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약 1:13) 아브라함을 시험하셨고(창 22:1), 또 욥을 시험하셨다(욥 23:10).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을 시험하신다(벧전 1:7; 4:12–13; 약 1:2, 12). 간혹 하나님의 시험이 가혹하며 고통스러울 때도 있는데, 이는 오직 훈계하고 바르게 하기 위함이거나(신 8:2–3; 13:3; 삿 2:20–23; 고전 11:32; 히 12:4–11), 자기 백성을 더욱 성숙케 하여 복을 주기 위함이다(신 8:16).
이와는 달리 인간을 죄악에 빠뜨리려는 ‘시험’ 곧 유혹이나 술수가 있다. 이러한 시험은 악을 저지르게 하기 위해 유혹하는 것으로서, 성경은 사탄이 그 근원이라고 가르친다. 사탄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신 뜻에 반대하는 악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에 위배되는 제반 욕망과 행위를 부추기는 원인 제공자다(마 4:3; 고전 7:5; 살전 3:5). 본래 사탄은 천지 창조 후 뱀을 도구로 삼아 인간을 시험하였다(창 3장; 딤전 2:14–15). 같은 수법으로 사탄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문턱에서 시험하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마 4:1–11). 사탄의 이 같은 시험 곧 유혹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벧전 5:8). 따라서 성도는 시험에 굴복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하고(마 26:41), 인내해야 한다(벧전 1:7; 4:12–13). 그러면 친히 시험을 받으시고, 또 물리치신 예수께서 시험당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도와주실 것이다(히 2:18; 4:15–16).
•시험을 당하는 이유 – 인생은 세상을 사는 동안 수많은 시험(유혹)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시험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기 때문에(갈 5:17). ②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요일 2:15–17). ③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에(약 1:13–15). ④ 악하고 잘못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계 2:20). ⑤ 세상 지위와 권세에 대한 과도한 야망 때문에(막 10:35–37). ⑥ 박해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요 16:1–2). ⑦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큰 재물과 부요함을 지나치게 의지하기 때문에(마 19:16–24; 막 10:17–30; 눅 12:16–21; 딤전 6:9–10). ⑧ 세상에 대한 염려 때문에(마 13:22). ⑨ 어두운 생활을 하며 악행을 즐겨하기 때문에(잠 2:12–15). ⑩ 음욕 때문에(잠 5:1–20; 6:24–29; 7:1–27; 9:13, 15; 전 7:26; 마 5:29–30). ⑪ 우상 숭배자들을 가까이하기 때문에(출 34:12, 14–16).
•시험을 이기는 비결 – 사탄은 물질(육신)을 통해서, 혹은 정신적인 문제(명예 등)를 통해서, 종교적(영적) 문제를 통해서 시험해 온다. ‘시험하는 자’라는 그의 별명처럼 사탄은 어떻게든 우리를 죄로 유혹하려 든다. 이 같은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① 인내해야 한다. 시험 앞에서 무릎 꿇어서는 안된다. 시험을 통해 우리를 더욱 온전케 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바라고 기쁘게 여기며 참아 견뎌내야 한다(약 1:2–4, 12). ② 피해야 한다. 유혹이 왔을 때 그 유혹의 상대와 타협하거나 맞서서 호기를 부리기보다 요셉처럼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창 39:10). ③ 대적해야 한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영혼을 사냥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사탄의 공격에 굳세게 대적해야 한다(벧전 5:8–9). 물론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엡 6:11).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 –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지만 시험을 이기는 자는 많지 않다. 시험을 이기고 능히 승리하여 믿음의 자손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인 자들을 살펴보자. ①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 아내의 성적 유혹을 뿌리치고 육신의 정결을 지킨 요셉(창 39:7–12). ② 광야 생활 중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족속들이 두려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주장하는 10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에 맞서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고 믿음으로 가나안 전진을 강력하게 주장한 갈렙과 여호수아(민 14:6–9). ③ 사울을 피해 도피 생활할 당시 십 광야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종을 죽일 수 없다 하여 원수 갚는 일을 중단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다윗(삼상 26:6–25). ④ 아람 장군 나아만이 문둥병 치유에 대한 사례로 금품을 제공했으나 끝끝내 사양함으로 물질의 유혹을 뿌리친 엘리사 선지자(왕하 5:16). ⑤ 일순간에 자녀 7남 3녀, 양 7천, 약대 3천, 소 500겨리, 암나귀 500마리와 수많은 종들을 잃고, 몸에 질병까지 얻은 상황에서 아내마저 떠나갔지만 그래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 의인 욥(욥 1:6–21; 2:4–10). ⑥ 왕의 신상에 절함으로 목숨을 부지하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길을 택한 다니엘(단 6장). ⑦ 십자가 고통을 알면서도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신 예수님(마 26:38–39) 등.
소요리 106문
제 106문 : 여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라는 여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에 시험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또는 우리가 시험 당할 때 붙들어 주시고 건져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켜주심
죄에 시험당하지 않도록
붙드심 + 건져주심
시험 당할 때
마태복음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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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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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고린도후서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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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욥에게는 ‘재난’이 시험이었지만, 솔로몬에게는 ‘부와 명예’가 시험이었습니다.
사역
13 그리고 당신은 에이스페로(들게 하다, 가지고 오다, 가지고 들어가다)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를, 페이라스모스(유혹, 시험) 안으로. 도리어(알라) 당신은 류오마이(부중명 / 구원하다, 건지다)하소서, 우리를, 그 포네로스(악한, 나쁜)로부터.
페로 : 운반하다,이끌다, 가져오다.
요세푸스에서 이 단어는 "데려오다"라는 의미와 "인도하다", 중간형 또는 수동형 "움직이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참조. "타다").
신약.
a. "데려오다"의 의미로 병자 등을 예수님(막 1:32, 2:3 등) 또는 베드로(행 5:6)에게 데려다 줍니다. 베드로는 순교로 "인도"될 것입니다(요 21:18).
에이스페로:
1. 이 단어는 "운반하다 또는 가져오다", "전달하다"를 의미합니다.
2. LXX는 제물을 성소로 가져올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3. 신약에서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져오지 않고(딤전 6:7), 병자를 집으로 데려오고(눅 5:17-18), 제자들을 법정에 세우고(눅 12:11), 피를 성소에 가져오고(히 13:11),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데 사용됩니다(마 6:13).
마태복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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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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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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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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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마태복음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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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태복음 22: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마태복음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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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태복음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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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을 시험한 사람은, 마귀였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었고, 외식하는 자들이었고, 한 율법사였고, 결국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그가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의 공격이었다.
그는 타협할 수 없었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가 유대인의 왕임을 증명하셨다.
마태복음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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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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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페이라스모스 :
어간 πειρα-의 근본적인 의미는 영어의 test, try와 히브리어의 nsh (G. Gerleman, THAT II, 69-71): 어떤 종류의 시험을 치 르다와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이 시험은부담, 위험, 불확실성, 심지어 위험과 불신을 동반합니다. 시험은 의도에 따라 긍정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시험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실패를 유도하는 시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신약에서 이러한 시험의 대상은 사실상 사람이 유일하며, 신뢰, 신실함, 순종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속 그리스어에서는 드물게 사용되는 Πειρασμός는 주로 인간이나 다른 힘(고난, 박해, 올무 등)에 의한 어떤 부담이나 위협, 즉 명백히 인간적인 경험을 가리킵니다. 객관적으로 πειρασμός (4번만 발생)는 사람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도록 위협하는 어떤 위험입니다. 주관적으로 이 위협은 부분적으로는 걱정(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함, 보호 청원)의 계기로 인식되고, 부분적으로는 자극(자신을 증명할 기회)으로 인식됩니다.
마가복음, 마태복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유혹,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의 심문( 요 8:6에도 있음), 제자들의 기도 청원 등 세 가지 영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마 4:3의 독특한 표현인은 살전 3:5에서만 나타납니다.
누가는 더 독립적입니다. 누가는 또한 기독교인의 유혹 (8:13, 행 20:19)을 강조합니다(4:13, 22:28).
누가복음 22:28
 NKRV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예수님은 모든 시험이라고 말할 만한 다양한 시험들이 있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시험’은 “종교적” 형태로 나타났다. 비 종교적 형태가 아니었다.
류오마이 :
1. 이 단어에는 "구하다", "보호하다", "지키다", "막다", "전달하다"와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2. LXX는 이 단어를 히브리어. nsl (84회)에 sṓzō보다 더 자주 사용합니다. 또한 "풀어주다", "되사다"를 뜻하는 gʾl에도 12번 사용됩니다. 또한 "해방하다", "구속하다", "보관하다"를 의미하는 다른 용어로도 사용됩니다.
1. 그리스어로 동사의 첫 번째 용도는 사람이나 도시, 성벽, 땅 등을 신이 지키거나 저장하는 것입니다.
구약 사용의 특징.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필멸자와 불멸자처럼 존재론적 법칙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는 인자하심에 따라(느9:8), 그의 이름을 위하여(시 79:9), 그의 뜻대로 구원하십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구세주입니다(사 63:16).
역사 속의 구원으로서, 그것은 항상 공동체 또는 적대적인 의도로 인한 상황으로부터의 구출로서 개인과 관련이 있습니다그녀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 안에서 보존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인간 편에서 믿음 또는 신뢰가 요구됩니다(시 22:4-5). 이 믿음은 윤리적 의미를 지니며 순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참조, 34:19).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죄책감을 고백할 때 구원하십니다(시 39:8).
III. 신약.
1. 이 단어는 신약에서 흔하지 않습니다.복음서에서는 마 6:13, 27:43, 눅 1:74, 바울서에서는 로마서에서 세 번, 고후 1:10에서 세 번,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에서 각각 한 번만 등장합니다(참조: 디모데후서 세 번, 베드로후서 두 번).
2. 신약에서 '구원하다'의 의미는 항상 하나님을 주어로, 사람을 목적어로 하는 '구원하다'입니다. 구약의 인용문이나 암시가 7번 나옵니다.
3. 이 용어는 마 6:13, 롬 11:26, 골 1:13, 딤전1:10, 딤후 2:4에서 종말론적 의미( )를 가집니다. 4:18; 벧후 2:9. 구원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보존입니다. 종말론적 구원은 죄로부터의 현재적 구원과 이 죄의 시대를 지배하는권세로부터의 구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는 최종적인 보존을 위해 이루어집니다(마 6:13).
포네로스:
A. 그리스 세계.
I. 고전 시대. 이 단어는 빈곤이나 궁핍을 나타내는 그룹에서 1., "슬픈", "불행한," "보살핌이 가득한", 2. "문제를 일으키는", 3. "불쌍한", "가난한", "부적합한", "매력적이지 않은", "나쁜", "불운한", 4. "실패한", 5. "천민", 6. "정치적으로 쓸모없는", "쓸모없는", 마지막으로 7. 다양한 뉘앙스를 가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II. 헬레니즘 시대. 이 의미는 헬레니즘 시대에도 큰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가득한", "쓸모없는", "잘못된g", "해로운", "반대되는", "도덕적으로 나쁜", "악한" 등의 일반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포네로스 다이몬 또는 포네론 프뉴마라는 개념도 발견되는데, 후자는 LXX의 영향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B. 구약과 후기 유대교.
I. LXX 및 기타 구약 번역. 포네로스는 히브리어 원어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쁜" 또는 "쓸모없는"(동물, 과일, 땅, 사람), "악한", "좋지 않은"(평판), "홍보", "슬픈"(외모), "불행한", "해로운", "헛된", "악한"(말), 보다 일반적인 도덕적 의미에서의 "악"(생각, 눈, 행위) 등입니다.
절대적인 사용은 율법을 어기고(삼상25:3) 교만(욥 35:12)으로 특징지어지는 악한 사람(삼상17:7)에게 가능합니다. 호 포네로스는 아직 사탄에게 사용되지 않습니다. 포네로스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겔 11:2). 악인 중에는 남자, 여자, 어린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창 13:13, 시 25:16, 지혜 3:12).
II. 후기 유대교.
1. 쿰란. 여기서도 히브리어 용어는 일반적 의미와 도덕적 의미 모두에서 악한 것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음행과 배교의 가증한 행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의 결여 등 악으로 간주되는 것을 열거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2. 랍비들. 나쁜 눈, 마음 또는 동반자는 나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쁜 것을 고치시고, 나쁜 모든 것은 그분과 반대됩니다. 비판은 악의 혀입니다. 악한 충동은 세속적이고 경건하지 않으며 부패할 수 있는 것, 특히 율법에 어긋나는 것을 향합니다. 이 충동은 사탄과 관련이 있지만 사탄을 악한 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C. 신약.
I. 나쁘다, 해롭다, 서비스할 수 없다, 쓸모없다는 의미.
1. 이 의미는 신약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계 16:2의 상처는 번거롭고,엡 5:16의 종말의 날은 (도덕적 타락을 고려하지 않는 한) 그 비참함으로 인해 어두워지며, 엡 6:13의 날은 고통의 날(평범한 날, 죽음의 날, 심판의 날 또는마귀가 특별한 힘을 가진 날) 이고,갈 1:4의시대는 유혹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2. 마 7:18에서 열매는 "쓸모없는"(좋은 나무의 열매와 구별되는) 것이며, 마 1 8 :32; 25:26; 19:22에서 종은 선하지 못합니다.
I. 도덕적 감각.
1. 형용사 사용.
a. 사람. 인간은 하나님과 대조적으로(막 10:18) 도덕적으로 나쁩니다(마 7:11).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할 때 더 강한 의미에서 그렇게 됩니다 (마 12:34-35). 그들은 내면의 악한 창고에서 악한 말을 내뱉습니다(12:35). 메시아적 표적을 원하는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마 12:39).
b. 사물과 개념.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의 이름은 반대자들에 의해 악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참조, 잠 2:7). 악의 눈은 탐욕스러운 눈입니다. 마 6:23; 눅 11:34에서 신체에 대한 언급과 그에 따른 적용, 필로의 유사 구절을 고려할 때 "병든"이라는 의미일 수 있지만, 구약과 신약에서 마음과 눈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악한 눈 또는 탐욕스러운 눈이라는 개념이 공통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악"도 가능합니다.
뜨거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마 6:13인데, 동쪽에서는 남성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서쪽에서는 중성적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마 13:19은 남성을 지지하지만 중성("악")이 더 일반적인 미국ge입니다. 그러므로 이 청원은 유대인 모델에 따르면 모든 악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요청일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에는 현세적인 악도 포함되지만, 이를 넘어 도덕적 악과 종말론적 악까지 확장됩니다.
악 = 선의 부재
A Handbook on the Gospel of Matthew
이 마지막 청원은 특히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유혹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시련, 박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세상 종말 직전에 신자들에게 시련과 박해의 시기가 올 것이라는 예의 소망과 초기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 이 단어를 해석합니다. 그러나 한 학자가 지적했듯이 유혹 앞에 정관사가 없다는 것은 이 특수한 해석에 반대하는 강력한 논거가 됩니다.
마태복음 : 소개와 해설
13. 과거의 죄에 대한 물질적 공급과 용서()가 끝나면 두 절에 걸쳐 미래의 죄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유혹 (페이라스모스)는 더 나은 '시험'입니다(위 101쪽 참조). 하나님은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지는 않으시지만(J1:13), 자녀들이 시험의 시기를 통과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시험을 원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취약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악 (또는 '악한 자' -5:37에서와 같이 두 가지 번역이 모두 가능하며, 의미는 선택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음)으로부터 구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NIV 문화적 배경 성경공부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비슷한 유대인의 저녁 기도문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가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에드"(참조: 26:41-42, 47)를 의미했습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NIV 본문 주석 참조)라는 뒤의 추가는 교회가 이 기도를 사용하는 데 적합하며, 유대인들은 종종 기도를 마칠 때 이러한 독설을 추가했습니다.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용서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을 불신하기 때문에 이 기도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실 수 있지만(4:1; 신 8:2), 우리의 능력 밖에서 시험에 들게 하지는 않으십니다(고전 10:13; 약 1:12, 13).
생활적용신약주석
6:13 유혹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유혹에 의해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은 결코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백성을 연단하고, 그분을 의지하도록 가르치고, 그분을 더 닮도록 성품을 강화하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시는 방법은 각자의 삶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혹에 굴 복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예수님은 추종자들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을 신뢰하고악한 자와 그의 속임수로부터 구출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이 말씀을 기도하는 신자들은 자신의 죄된 본성과 유혹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메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13절)'는 실패할 정도로 어려운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 페이라스모스는 유혹과 "시련"을 모두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을 "시험"(아브, 창 22:1; 에페이라세, LXX)하셨을 때, 분명한 의미는 아브라함을 시험에 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혹( 악에 대한 유혹)에 대한 야고보서의 말씀은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의 악한 욕망에 이끌려 끌려갈 때"(약 1:14)라는 것입니다. "유혹하다"의 두 가지 의미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하는 해석자들에게 시험의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극심한 고난의 시기, 즉 "땅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입니다(계 3:10, 참조. 마 24:22). 우리는 이미 마지막 청원을 신자의 현재 삶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3절의 첫 번째 조항()을 하나님이 인간을 악으로 유혹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예수님은 " 악한 자에게서 우리를 구하옵소서"라고 덧붙이십니다. 그리스어 포네로스는"악" 또는 악한 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사상에서 사탄은 "악한 자"로 지정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해석자들은 전자의 의미(즉, 우리의 삶을 종종 괴롭히는 어려운 상황)를 선호합니다.
Reading Matthew: A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on the First Gospel
(3) 유혹. "유혹" 앞에이라는 한정 관사가 없는 것은 이 청원이 마지막 날의 가혹한 시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순종이 시험에 드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계 3:10)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시험하여 보소서, 내 마음과 생각을 시험하여 보소서"(시 26:2). 그러나 다른 랍비들은 다윗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증명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시험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밧세바를 시험 삼아 보내셨습니다(바빌로니아 탈무드 산헤드린 107b). 주기도문의 청원은 정확히 정반대의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나를 시험하지 마옵소서, 나는 견딜 수 없사오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시고, 그 어려움을 완전히 피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영은 기꺼이 할 수 있지만 육은 약하다는(26:41) 그의 취약성에 대한 고백()이야말로 악한 자의 공격()에 맞서 사람을 가장 잘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13:19 참조).
홀만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한 자에게서 구하옵소서. 앞의 용서에 대한 요청이 치료적인 영적 약이라면, 이 요청은 예방적인 약입니다. 이미 발생한 죄책감을 다루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유혹과 악으로부터의 구출은 우리가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용서와 구원을 구하는 왕국 종의 간구는 죄의 권세를 다루는 기도입니다(요일 1:7-9); 둘 다 우리가 죄의 존재에서 벗어날 날을 고대하는n입니다.
순결과 순종으로 성숙하고 성장하는 왕국 종은 용서를 구하는 기도에 점점 더 의존하고보호를 위한 기도에 점점 더 의존해야 합니다. 이생에서 왕국의 종은 지속적인 용서가 필요하지만, 여기서 배운 많은 교훈은 나중에 유혹의 덫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자들은 결코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신약 성경에는 깨어 있고 깨어 있으라는 권면이 많이 있습니다(예: 마 24:42, 25:13, 26:41).
BST
주기도문의 후반부에서는 소유격 형용사가 '당신'에서 '우리'로 바뀌는데, 이는 하나님의 일에서 우리 자신의 일로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영광에 대한 우리의 불타는 관심을 표현한 후, 이제 우리는 그분의 은혜에 대한 겸손한 의존을 표현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자 위대한 왕이시지만,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를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위치에 두더라도 그것들을 제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소한 일로 하나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기도에서 그것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지배하도록 허용하는 것만큼이나 큰 오류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녀의 완전한 복지에 관심이 있으시며 우리가 우리의 필요, 음식과 용서 및 악으로부터의 구출에 대한 필요를 그분께 신뢰있게 가져 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일부 초기 주석가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첫 번째 요청이 문자 그대로의 빵, 즉 몸을 위한 빵을 구하는 것이라고 믿지 못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고귀한 세 가지 첫 번째 청원 이후에 갑자기 평범하고 물질적인 관심사로 내려가는 것은 부적절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청원을 비꼬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빵은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터툴리안, 키프리안, 어거스틴과 같은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 말씀이 '보이지 않는 말씀의 빵(od)1 '이나 성만찬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롬은 벌게이트에서 '매일'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를 '초실체적'이라는 괴물 형용사로 번역했는데, 이는 성만찬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더 크고 현실적인 성경적 이해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교부들의 영성화에 대해 칼빈은'이것은 매우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1 루터는 '빵'이'음식, 건강한 신체, 좋은 날씨, 집, 가정, 아내, 자녀, 좋은 정부, 평화 등 이 생명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지혜가 있었습니다.2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예수님이 '빵'에서 삶의 사치가 아닌 필수품을 의미했다고 덧붙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에서 우리 입술로 간구하신 세 가지 청원은 매우 포괄적입니다. 이 기도는 원칙적으로 물질적(일용할 양식), 영적( 죄의 용서), 도덕적(악으로부터의 구출) 등 인간의 모든 필요를 다룹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할 때마다하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삼위일체론적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 청원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은밀한 암시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받는 것은 아버지의 창조를 통해,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들의 속죄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악한 자에게서 구출되는 것은 성령의 내주하시는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고대 사본(최고는 아니지만)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오직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돌리는 독설로 끝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김정은, 北 주민이 하나님 알아가는 것 두려워해” 크리스천투데이
‘북한인권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수잔 숄티 대표(디펜스포럼/북한자유연합, 북한자유주간 대회장)가 북한자유주간(9/17~23)을 맞아 17일 오후 에스더기도센터에서 ‘복음통일 위한 10년 헌신자 모임 십년클럽 9월 정기모임 및 통일한국포럼’ 초청 강사로 나섰다.
숄티 대표는 1999년 미국 상원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청문회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고, 2003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 의회 증언을 성사시켰으며, 탈북자들을 도운 공로로 2008년 ‘서울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이날 ‘북한 내 노예 종식’을 주제로 강의한 숄티 대표는 “하나님께서 북한과 관련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올해 유엔에서는 탈북민 여성 증인들을 초청했다. 증언했던 탈북민 여성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이분들의 증언을 통해 느낀 점은, 북한 김씨 정권이 북한 주민을 아무리 핍박해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부모와 자식 간 유대 관계는 깨질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숄티 대표는 “이혜영 씨의 경우, 한국에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약 50일간 고문을 받았다. 이 씨는 북한에서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 자금을 보내는 남한 가족들과 중간 다리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다. 이 씨가 구금소에서 처형당하는 수감자들을 보고 수많은 치욕과 고통, 분노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자신을 기다리는 딸 때문이었다. 이후 이분은 2019년 코로나 직전 탈북했다”고 했다.
또 “두 번째 증인인 지하나 씨의 경우, 굶주림보다 본인과 자녀들이 자유를 갈망해 탈북을 결정하게 됐다. 그러다 성경 공부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중국 감옥에 수감돼 고문을 받았다. 이후 강제 북송돼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게 되며 끔찍한 인권 유린을 겪었다. 그럼에도 자녀를 구하고자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고, 또 강제북송됐다. 그리고 2015년, 세 번째 탈북 시도 끝에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오게 됐다”고 했다.
이어 “마지막 증인 송미한 씨는 12살인 어느 날 어머니가 사라졌다. 송 씨는 북한의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한동안 어머니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는 상황에 지냈고, 살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고 한다. 송 씨의 어머니는 딸을 구하고자 중국에서 돈을 벌었고, 송 씨를 구출하기 위해 브로커를 보냈다”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북한에 의해 고통당해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했다.숄티 대표는 “올해 통일부에서 공개적으로 북한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때 보고서와 데이터 수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권 문제가 완전히 묵살됐었는데, 이번에 보고서가 발표된 것은 너무나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보고서에는 2017년부터 2022년 사이 탈북한 분들의 인터뷰가 실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분들을 통해 확인한 바, 현재 북한 상황은 과거 고난의 행군 때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을 때만큼 좋지 않다”고 했다.
숄솔티 대표는 “보고서를 보면, 고등학생이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처형되거나, 임산부가 김일성 사진에 손가락질했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당하기도 하고, 한 기독교인은 평양에서 지하교회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은 집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군대에서든 끔찍한 폭력에 노출됐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에 전화를 하면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지거나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중국 내 탈북 여성의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보고서의 내용이 어둡지만, 의미도 있다. 한 증언에 의하면 2017년 함경북도에서 12명이 선교를 하다 체포돼 2명은 정치범수용소로, 10명은 교화소로 보내졌고, 또 다른 증언에 의하면 2019년 평양에서 지하교회 운영이 발각돼 5명이 공개처형당했고, 7명은 정치범 수용소로, 30명은 노동교화소로 끌려갔고, 50명은 강제 이주됐다. 함경북도에서 12명이나 되는 사람이 지하교회를 운영했고, 평양에서 무려 100명 정도가 지하교회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또 “지하교회 네트워크, 중국 내 안전가옥, 북한 난민 구출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기독교인인 것을 보면 북한 내에서도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며 “김씨정권은 그동안 기독교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는 모두 실패했다. 북한 내부 각 계층에 비밀 기독교인이 있고, 내부에서도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김정은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북한 주민이 더 알아가는 것과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드라마 등 외부 세계와 접하는 것”이라고 했다.
숄티 대표는 잠언서 24장 11-12절과 시편 94편 16-19절, 요한복음 21장 25절을 나누며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력과 맞서 싸울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참으로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북한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 함께하고 계신다. 탈북민 분들은 항상 제게 ‘언제 북한 정권이 무너지느냐’고 질문하는데, 그 시점이 이제 왔다고 믿는다. 자유는 오고 있다. 하나님을 믿고 계속 기도하고, 우리가 이 싸움에 있어 해야 할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숄티 대표는 대북전단 살포 사업 강화를 비롯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 방안에 대해, “탈북민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정부 차원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보다 탈북민을 지원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며 “한국 정부를 돌아보면 김대중 정권이 북한을 지원하며 북한 정권이 살아났고 북한 주민은 희생당했다. 햇볕정책이 북한 주민에게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생각된다. 지금은 미국 대통령도 한국 대통령도 북한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 변화를 이루기 가장 좋은 시점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북한에 정보를 유입하는 캠페인을 위해 자유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이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도움을 주고 싶을 수 있어도, 문재인 정부가 전단금지법을 통해 여러분이 북한에 정보를 유입해 줄 권리를 앗아갔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계속 지원을 하고자 한다. 저희 또한 지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황장엽 선생님은 북한이 절대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아킬레스건이 인권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도 10년 넘는 시간 동안 북한 핵 문제로 시간을 낭비했고, 그것은 큰 실수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기에 인권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며 “더 나아가 북한 주민에게 더 이상 그들이 김정은의 노예가 아니란 것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셨기에 북한 주민 또한 가치가 있고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말게 해 달라는 것이므로.
우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해당이 되는 것인데,
특히 북한 주민, 기독교인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대교리문답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노트 195문
195문. 여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여섯 번째 간구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에서, 우리는 먼저,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공의로운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명하셔서 우리가 유혹에 공격받고 좌절되고 잠시 동안 사로잡히게 하시고,2) 사탄과 세상과4) 육신이 우리를 강력하게 곁길로 끌어내고 덫에 걸리도록 하게 하시며, 우리는 죄를 용서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부패하고6) 연약하고 깨어 있지 않아서 유혹에 굴복하고 우리 자신을 유혹에 내어줄 뿐만 아니라,8) 우리 스스로는 유혹에 저항한다거나 유혹에서 빠져나와 회복하려 한다거나 유혹을 자기반성과 성장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럴 마음도 없어서 유혹의 권세 아래 내버려 둠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10)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육신을 굴복시키시고,12) 사탄을 제어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14) 은혜의 모든 수단을 베푸시고 그 수단들에 복을 주시며, 우리를 소생시키셔서 그 은혜의 수단들을 주의 깊게 사용하게 해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유혹에 빠져 죄 짓지 않게 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만약 우리가 유혹을 받게 된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굳게 붙들어 주시고 유혹의 때에 견딜 수 있게 해 주시기를,17) 또는 우리가 유혹에 빠져 넘어진다면, 다시 일어나 유혹에서 벗어나 회복되고, 이렇게 유혹에 빠져 넘어진 일이 오히려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성장하는 데 사용되기를,19) 그래서 우리의 성화와 구원이 완성되고, 사탄이 우리의 발 아래 짓밟히고,21) 우리가 죄와 유혹과 모든 악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32장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
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29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비결이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5장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묵상
일용할 양식 - 성부 하나님의 창조 사역
죄의 용서 - 성자 예수님의 구속 사역
악을 이기는 성화 - 성령 하나님의 적용 사역
시험의 종류 - 테스트, 유혹
테스트 - 그 마음이 어떠한지를 테스트
유혹 - 마귀가 육신의 정욕을 사용하여 유혹
결과
영적 성장
2. 더욱 주를 의지하게 됨
3. 교만이 꺾임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이 기뻐하시는 것에 관심이 생겨야,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기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말 그대로 시험이요, 죄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시험 III. 시험의 특별한 성질
야고보서 1장 2절의 의미상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극적 의미에서는 “시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IV.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목적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목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첫 번째 목적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 곧 그 사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은혜 아니면 부패함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시험이 사법적 재판관의 기능을 갖고 있거나 그런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와 부패함은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에 치우침으로써 스스로 속습니다. 우리 마음에 어떤 은혜가 존재하는지 살펴보면 부패함이 나타나고, 부패함을 살펴보면 은혜가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로 영혼은 늘 불확실한 상태 속에 있게 되고, 결국은 시험당할 때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바닥까지 살필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시험이라는 도구를 영혼의 내부와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내려보내 그 안에 있는 것을 밝히 드러내심으로써, 그의 본바탕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셔서 그의 믿음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큰 시험과 시련을 통해 믿음을 드러내실 때까지 자기가 갖고 있던 믿음(저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능력과 활력을 말하는 것입니다.)을 알지 못했습니다(창 22:1~2). 아브라함이 믿음을 갖고 있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갖고 있는 믿음을 그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시험하셔서, 그의 교만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려고 히스기야를 잠시 떠나셨습니다(대하 32:31).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더러움을 찾아내 자기 앞에 쏟아 놓기 전까지는 기고만장했던 자신의 교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은 시험을 통해 자신의 추한 모습을 확인하게 될 때, 감사와 겸손과 체험의 보고(寶庫)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2.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두 번째 목적은 그에게 자신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십니다.
1) 억제하시는 은혜를 통해 자신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억제하시는 은혜를 통해 자신을 사람에게 보여 주십니다. 시험을 통해 사람은 온갖 죄를 범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시험당하기 전에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산다고 착각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이런저런 악을 저지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험이 닥치면, 우리는 서거나 넘어지거나 함으로써 우리의 보존이 어디서 오는지 쉽게 깨닫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경우가 바로 그랬습니다(창 20:6).
2) 새롭게 하는 은혜를 통해 자신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새롭게 하는 은혜를 통해 자신을 사람에게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계속 시험하셔서 그에게 새롭게 하는 은혜가 족하다는 점을 깨닫게 하셨습니다(고후 12:9). 우리는 시험을 통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과 힘이 얼마나 큰지 또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족한지 모릅니다. 해독제의 효능은 독을 마신 후에야 확인이 가능하고, 약의 소중한 가치는 질병에 걸려 보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시험당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어떤지 모른다면, 형통할 때 그 힘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존받고 있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시험을 받아 보아야 합니다.
VI. 사탄이 시험하는 방법
이 의미에서의 시험은 적극적으로 죄를 범하게 하는 힘(곧 시험은 악으로 이끄는 악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성질에 속하는 시험으로서, 사탄으로부터 오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아주 다양한 통로를 통해 오는데, 때로는 사탄 홀로, 세상, 세상의 다른 사람들 또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거나 아니면 연합적으로 이것들 모두나 일부가 결합되어 올 수 있습니다. 이 통로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탄이 홀로 시험하는 경우
사탄은 때때로 세상의 사람들이나 사물들 또는 우리 자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시험합니다. 이때 사탄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악하고 모독적인 생각을 집어넣어 시험합니다. 이 시험은 세상이나 우리 자신의 마음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행하는 사탄의 단독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본성은 이 시험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또 세상 속에 있는 어떤 것이나 세상 사람들도 전혀 개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도 하나님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 없고, 또 하나님을 악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시험에서 죄를 범하는 자는 오직 사탄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할 자도 오직 사탄뿐입니다. 이 불화살들은 악랄한 사탄의 공장에서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영원히 자신이 날린 불화살의 모든 독액과 독소를 자신의 심장으로 되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2. 세상을 이용하는 경우
사탄은 때때로 우리 내부의 도움은 받지 않으나 세상을 이용하여 우리를 시험합니다. 세상을 이용하여 사탄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줌으로써”(마 4:8)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받아 우리를 시험하는데, 이 방법들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즉 사탄은 세상으로부터 온갖 종류의 도구와 무기를 순간마다 취해 우리를 시험합니다.
3. 우리의 도움을 받는 경우
사탄은 때때로 우리 자신의 도움을 받아 우리를 시험합니다.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그리스도가 받았던 시험과 우리가 받는 시험은 다릅니다. 주님은 사탄이 “자기와 관계할 것이 없다.”(요 14:30)고 선언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다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확실한 우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그렇게 사탄은 가룟 유다를 시험했습니다. 사탄은 유다에게 아주 수월하게 작업했습니다. 사탄은 유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생각을 심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사탄은 유다에게 들어갔습니다”(눅 22:3). 또 사탄은 유다에게 “은 삼십”(5절,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을 줌으로써, 세상의 사물도 시험에 이용했습니다. 사탄은 세상 사람들 곧 제사장과 바리새인들도 이용했습니다. 또 유다 자신의 부패한 마음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6).
시험은 = 불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시험을 이긴다는 것은,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I. 시험에 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 시험에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혀 시험을 받지 않을 정도로 시험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탄이 힘과 악의를 계속 행사하는 한, 세상과 욕심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누군가 “그리스도는 우리처럼 되시려고 시험을 받으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기 위해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 의미의 시험은 우리가 치르는 영적 전쟁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역 전체 기간을 “시험”의 때로 불렀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눅 22:28). 우리가 시험을 전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성경에 없습니다. 또한 시험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약속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내용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마 6:13)입니다. 즉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을 받을 수 있으나 시험에 들어서는 안 됩니다.
2. 시험에 든다는 것은 사탄과 우리 자신의 욕심의 통상적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우리를 매일 시험 받는 상황에 처하게 하는 사탄이나 우리 자신의 욕심의 통상적 활동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시험에 든다는 말이 암시하는 두드러진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일상적 활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성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혹이나 두려움을 통해 특별히 죄의 유혹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시험에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에 패하거나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시험에 패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시험에 넘어지는 것, 우리가 유혹받는 죄나 악을 범하는 것, 또는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시험에 들더라도 얼마든지 시험에 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시험에 들었을 때, 얼마든지 그 덫에서 빠져 나올 수 있고, 사탄을 짓밟을 수 있습니다. 비록 시험에 들었다고 해도, 영혼은 승리자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시험에 들었으나 절대로 시험에 굴복당하지 않으셨습니다.
4. 시험에 든다는 것은, 시험에 떨어지고 시험으로 곤란에 빠진다는 것이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바울이 표현하는 것처럼, 엠핍테인(ἐμπίπτειν) 곧 시험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걸려들도록 덫이나 함정으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나 깊은 웅덩이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는 금방 죽거나 파멸당하지는 않지만, 곤란에 처하고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집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빠져 나오거나 해방될지 알지 못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도 똑같은 의도가 다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즉 시험을 당하는 것과 시험으로 곤란에 처하는 것은 똑같이 곤란을 면할 방도를 당장은 찾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벧후 2:9)라고 말했습니다. 경건한 자가 시험으로 곤란한 상태에 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에서 그들을 건지실 방도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들어가도록 이끄는 시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시험에 듭니다.” 시험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동안 우리는 안전합니다. 하지만 시험이 안으로 들어와 마음과 교섭하고 지성을 설득하며, 감정을 유혹하고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 기간이 길든 짧든, 영혼이 그것을 알아채든 아니면 느끼거나 감지할 수 없든 간에 막론하고, 우리는 “시험에 든” 것입니다.
IV.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님이 정하신 수단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님이 말씀하시는 방편이 있는데,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1. “깨어라”, 2. “기도하라.”
1. 깨어라
여기서 “깨어라.”는 말은 포괄적인 의미로서, 원래 갖고 있는 의미인 ‘잠을 자고 일어나다.’는 뜻으로 절대 한정되지 않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경계하다, 조심하다, 원수가 우리에게 접근할 때 쓰는 온갖 방법과 수단을 생각해 보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3절에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할 때 바울은 바로 이런 의미로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리고 좋은 군사들이 “남자답게 행동하는” 것처럼, 이 일을 할 때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심하다.’는 뜻인 프로세케인(προσέχειν) 곧 주님이 종종 표현하신 말과 같은 뜻으로 자신을 돌아보다는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절에서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하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편적인 조심성과 근면성을 갖고 시험으로 곤란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의 마음과 길, 사탄의 유혹과 방법, 세상에서 죄를 범할 기회와 상황들을 주의하라는 것이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핵심 의미입니다.
2. 기도하라
“기도하라.”는 두 번째 지침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을 작정입니다. 기도의 의무와 기도에 대한 사실들은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이 두 가지 지침 곧 깨어 있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영혼이 시험으로부터 보존받기 위해 해야 하는 신앙적인 노력의 전부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설교들
요한은 함정인 세상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육체의 욕망을 의미하는 "육체의 정욕"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게으름, 잘못된 성적 욕구 충족 또는 여러 가지 중독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은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욕망하는 것(예: 도둑질, 탐심, 소유물에 대한 거짓말 등)입니다.
"삶의 교만"은 세속적 함정의 세 번째 측면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을 우리 삶의 왕좌에 올려놓는 것이 포함됩니다. 자존심인 교만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신을 높이고 그분의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을 정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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