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없는 바울처럼 (고전 9: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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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도입
- EX: 얼마 전, 토요일 아침에 담임목사님과 사역자들이 맥도날드에서 교제를 하고 회의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최근에 방문하신 분들 중에 청년이 있었는데 내성적인 성격!
- 이예진 전도사님: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 대화가 이어지지 않음.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누워있는 게 취미라고 대답
- 이예찬 전도사님: 가만히 누워있어보라! 공감대 형성을 위해!
- 나: 주일날 교회에 오시면 함께 빈 방에 들어가서 누워서 이야기하는 건 어떠냐?
- 담임목사님: 상대방의 모습으로 다가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 당시에 오늘 이 본문으로 수요일에 설교를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바울에 대한 평가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 그런데 당시 사도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기회주의자”란 비판을 많이 받았다. 오해를 받은 거죠.
- 상황에 따라 워낙 다양하게 행동을 했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저 사람은 한결같은 사람이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가 아니라, “저 사람은 줏대가 없어" “상황에 따라 행동이 왔다갔다 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 바울이 원래 그런 성격을 가져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 바울의 원래 성격은 성정이 곧고, 항상 일관적이며,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 EX: 갈라디아서 2장에서 베드로가 복음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자, 공개적으로 책망을 한다.
- 당시 베드로의 위상을 생각해보라! 당시 바울은 영향력으로 보나 인지도 면에서 보나 베드로보다 한참 아래에 있었던 사람.
- 본질에 대해서는,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양보를 하지 않는다.
- 하지만 그 진리의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 복음을 위해서라면, 본질이 아닌 부분들은 과감하게 양보했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다.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1) 본문 설명
<< 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바울은 분명히 자유인이다 (9:1). 세상적으로도 로마시민으로서 자유인이다. 영적으로도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으로부터, 죄로부터 자유한 존재가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한 존재가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할 의무는 없다.
- 하지만 바울은 자발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종이 되었다. 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 그러면서 20-22절에서 어떻게 어떻게 다른 이들을 얻으려고 노력했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 20절: 유대인을 상대할 때 // 21절: 이방인을 상대할 때 // 22절: 약한 자를 상대할 때
- (ㄱ)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다.
- 유대인 &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은 표현이다.
- 바울은 유대인들을 대할 때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 바울 자신은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가 아니었다. 유대인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는 사람이었다.
- 그럼에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최대한 친숙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 EX: 행 21장 //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데, 유대인들을 전도할 때, 그들을 자극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율법을 따라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그들의 방식대로 결례기간이 끝난 것을 신고하였다.
-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 (ㄴ)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
<< 21절
- 이방인들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익숙치 않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세상을 좇아 이방신들을 좇아 살던 사람들이다.
- 그들을 대할 때는, 자신도 율법 없는 자처럼 행동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 어떤 의미에서, 바울에게는 더 불편한 일!
- 바울은 평생 엄격한 율법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이방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더 불편했을 것.
- EX: 우리와 자란 배경이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는 게 더 쉽다. 자란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과 교제하는 것?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 바울은 율법 없는 자가 아니었다. 구약의 율법으로부터는 자유하지만, 이제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새계명을 받은 자이다.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살아내야 할 하나님 나라의 법과 기준이 있다. 그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율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 그럼에도, 이방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복음 외적인 것을 먼저 요구하지 않는다. 종교생활이 어떻고, 신앙생활이 어떻고, 교회에서는 이래야 하고, 이러한 것들을 말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 그들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 (ㄷ)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의 모습으로!
- 상대방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간다.
- 왜?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
- 복음이라는 본질적인 것을 위해서라면 비본질적인 부분은 양보하고 있다. 그들을 얻기 위해서!
-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
<< 22절 후반부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이다.
2) 줏대 없는 바울처럼 & 적용
- 남들이 볼 때는 일관적이지 않는 모습이다. 매력 없는 모습이다.
- 오늘 설교의 제목이 “줏대 없는 바울처럼"인데, 정말로 줏대가 없는 모습이다.
- “줏대 없다"의 사전적 의미: 사람의 성정과 행동이 곧지 않아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 그런데 사실 바울은 자신의 성정과 행동이 곧지 않아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치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그 사람에게 맞춰주고 있는 거죠.
- 오늘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이것입니다.
- 자신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면서, 상대방에게 맞춰주라는 것입니다.
-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구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상대방의 모습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어요.
-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의 모습을 비우고,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성육신의 정신!”
-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 교회 안에도 전도대상자들 많다.
- EX: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내성적인 모습으로, 너무 부담이 되지 않게..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것을 찾으면서..
- EX: 수다스러운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텐션을 맞춰줘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 EX: 전도대상자가 있다면, 그사람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이 테니스를 좋아하면, 함께 테니스. 요리, 자녀문제..
- 그 사람의 모습으로, 그 사람의 성향으로, 다가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얻기 위해서!
-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세워나가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예수님의 성육신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서 필요한 삶의 패턴입니다.
>> 그 사람의 모습으로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가 됨

1) 본문 설명
-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저희가 짚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 지금 바울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 (같은 말이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되었다.
- 그리고 22절에서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
- 원어를 보면, 유대인처럼 &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 율법 없는 자처럼 이라고 할 때는 “호스"라고 하는 전치사를 사용했다. “~처럼”이라는 단어! 영어로 like!
- 무슨 말이죠? 실제로는 유대인이 아닌데 유대인 처럼 다가갔다. 실제로는 율법이 없는 자가 아닌데 율법 없는 자처럼 다가갔다.
- “~처럼" “~같은"이라는 말은 사실 그것이 아니다라는 거죠?!
- EX: 제가 저희 아내보고 “아이유 같아요"라고 하면, 아이유가 아닌데, 아이유처럼 예쁘다는 거지, 아이유라는 것이 아니자나요.
- 그런데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가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원어에서 “~처럼"이 없어요. 한국어 번역은 조금 아쉽습니다. NIV 번역이 이 부분은 잘 한 것 같습니다. 구분을 했습니다.
- 무슨 말이죠? 바울이 자신은 약한 자가 아닌데 억지로 약한 자처럼 행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실제로 자신이 연약한 존재이며,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며 다가갔다는 의미입니다.
- 그 약한 자들을 얻기 위해서!
2) 약한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 여기서 약한 자들이 누구를 가리킬까요?
- 교회 밖에 있는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지만, 고린도전도 8-10장의 문맥을 볼 때, 여기서 약한 자들은, 교회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가리킨다.
- 8장에도 그러한 언급이 있고, 10장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는 말이 있습니다.
- 그러니까, 고전 3:1에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요.
- 그렇다면, 본문에서 바울은 불신자를 향한 전도의 맥락 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복음의 진보를 말하고 있다. 믿지 않는 자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믿음이 연약한 자가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고 더 닮아가게 하는 일을 모두 포함한다. 이것이 본문에서 바울이 그들을 "얻는다"는 것의 의미이다.
-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구원하고, 그 복음을 통해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가는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이 복음에 참여한다고 말할 때의 의미이다.
3)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가 된다는 말은?
- 바울은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처럼 행동하고, 이방인에게 이방인처럼 행동했던 것처럼, 억지로 약한 자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본인도 연약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 그냥 자신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연약함으로 공감대를 이루고, 그들을 복음으로 세워나갔습니다.
- 우리가 다 오해를 하는데요. 우리의 온전한 모습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 사실 우리는 다 연약해요. 바울도 연약한데, 누가 연약하지 않겠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굉장히 연약한 사람입니다.
- 우리가 누군가를 세우고자 할 때,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그들의 신앙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 EX: 마크 데버. “제자훈련” 책에서.
-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제자훈련의 사명을 감당한다…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한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빵있는 곳을 가리켜 보이는 일과 같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공개하더라도 멘토의 연약한 모습을 통해서도 그들은 배운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더 따르게 된다.
- EX: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고3 이었던 자신의 아들이 재수를 함. 처음엔 걱정...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위로를 받음^^
- 바울은 그것을 알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4) 약함의 역설
- 약하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복음의 특징이다!
- 예수님은 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다. 십자가에서 약함의 모습으로 죽으셨다.
<<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 약함을 통해 강한 자들을 이기셨다. 이게 복음의 방식이다!
<< 고전 1:25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
<< 고후 11:30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
- 왜죠?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 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한 자들에게 머물기 때문에 (고후 12:9)
-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말씀사역을 할 때도, 약함 가운데 있었고, 두려워 떨며 설교를 했고, 그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고전 2:3-4).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고, 복음의 방식이다.
-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10)
>>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 연약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라는 것을요.
>> 우리 교회 안에도 믿음이 더 자라야 되는 분들이 많지 않느냐?
>> 그들에게 그들의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길 권면합니다.
>> 그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 마지막 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약한 자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다가갔던 근본적인 이유를 밝힙니다.

복음의 가치, 복음에 참여하는 영광

<< 23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 바울이 왜 자유를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줏대없는 인간이라는 비난까지 들어가며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는가?
- 복음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 복음이 무엇인가?
- 그리스도를 통해 자격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복음이다. 연약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받은 엄청난 은혜!
- 바울은 이 은혜를 누구보다도 극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바울에게는 복음의 감격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을 위해서라면 내가 어떤 일이든지 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 특히, 바울은 지금 복음을 전하는 것을 염두하고 있다. 복음의 능력을 흘려보내어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고, 그들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 쉽게 말하면, 복음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것!
- 사실, 한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가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 우리는 그것을 잘 안다.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우리는 그일의 쓰임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쓰임받기에 적합하고 충분해서 쓰임 받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하고자 할 때, 그 순종을 보시고, 그 믿음으로 보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 바울도 인정했던 것처럼, 사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예요. 계속해서 연약하고 앞으로도 연약할 것이다.
- 그래서, 바울의 표현이 맞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는 참여하는 것이다.
- 엄청난 영광! 엄청난 기쁨! 복음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복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고 보람된 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 바울의 마지막 고백이 이것이지 않습니까?
- “내가 이 일을 위해서라면, 내가 만난 예수님과 내가 받은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라면, 나의 모습과 나의 성향, 나의 주장을 내려놓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 “때로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비난을 받더라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복음에 참여하는 영광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 2000년 전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이 마음으로 부어주셨다. 그리고 그 성령님께 붙들려서 그 뜨거운 마음으로 이 성경본문을 기록하고 있다.
>> 오늘 이시간, 저와 여러분도 “같은 영”에게 사로잡혀 “동일한 마음”을 가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 바울에게 이 마음으로 주시고, 이렇게 본문을 기록하게 하신 동일하신 성령님께서 이시간 이 본문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동일한 그 성령님께 사로잡혀서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길 원합니다.
>> “바울처럼, 나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지~!”라고 고백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

- 사랑하는 한마음교회 지체 여러분
-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기준과 자신의 성향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 상대방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들을 제자 삼기 위해서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자세이다.
-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 모습 그대로 연약한 자들에게 다가가는 것복음의 정신이다.
- 이 복음을 위해서 바울처럼, 어떠한 일이든지 감당하며, 복음에 참여하는 그 영광을 마음껏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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