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소리 (열왕기상 19장 9-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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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 views하나님께서 영적 침체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회복시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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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시작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이 곳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의인이라고 착각하며 한 주를 살아왔습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예배를 드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 곳에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여 이러한 자격 없는 죄인들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우리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신 그 예수님을 몰랐던 죄악을 회개합니다. 그 구원자 예수님 앞에 고개를 숙이며 죄를 고백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려드리오니, 이 시간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24일 주일날 수경노회에서 파송된 오륜교회 임시당회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섬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성도들이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여 주시고, 개인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 하나님 나라 전체를 보고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총회를 마치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선하게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우리 총회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고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계속해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교회 많은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행사들 가운데 온 성도들이 관심 갖고 참여하게 하여 주시고, 그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소방 설비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기도합니다. 온 성도들이 주님의 은혜로 헌신케 하여 주시고,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연약한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찾아와주신 예수님, 그들에게도 찾아와 주셔서 주님의 손길로 치유하여 주시고, 일으켜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들이 주님 손 잡고 일어나 예수님을 깊이 알고, 예수님을 찬양하는 자들로 세워주시옵소서. 아버지, 고난한 하루를 마치고 성도들이 예배의 자리에 왔습니다. 지치고 힘든 마음 가운데 말씀하여 주셔서, 은혜로 힘차게 주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셀가족 예배 / 유빈 하빈 도빈 성빈 /
아버지,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 하나님, 역사하여 주셔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이 풍성하게 드러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광고 주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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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식 전하겠습니다. 율법완성 읽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기도회도 하고 김장도 하면 1년 다 끝나갑니다. 말씀 은혜 나눔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참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섬김, 장학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창조과학세미나 여러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 바랍니다. 소방설비 특별헌금에도 예수님 주시는 마음으로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오예밤 시즌4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녁 7시 본방사수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담임목사님 남은 일정들 가운데 계속해서 함께 기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성경 봉독
말씀 성경 봉독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찾아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열왕기상)은 19장 9절과 18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같이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서론
서론
오늘도 이렇게 금요예배에 나오신 우리 귀한 성도 여러분들을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힘이 빠지는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치고 기분이 울적해지고, 새로운 일을 할 의지가 사라지는 순간들을 이따금씩 경험하곤 합니다. 저는 주로 이제 목요일 학교 수업을 마친 후에 뭔가 기분이 내려앉는 느낌이 듭니다. 월요일 새벽예배 마치고, 월요일날 학교로 넘어가서 주어진 학업을 감당합니다. 그렇게 목요일 마지막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집으로 내려갈 때에 뭔가 힘이 없고, 기운이 없는 그런 느낌을 받곤 합니다. 아직 금요일 수업과 채플 예배가 남아있음에도 이런 뭔가 울적한 느낌이 드는 것이지요. 그렇게 울적한 기분에 있다가 금요일이 되면 교회 가는 생각에 다시 긴장이 되면서 울적했던 기분은 사라지는 것이지요. 저와 같진 않더라도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침체된, 울적한, 지치고 힘든, 심하게는 살아갈 의지가 없어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뭔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두고 싶다.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떤 순간에는 하나님께도 뭔가 원망하게 되는, 하나님께 화도 내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순간 다 열정적으로 의욕에 불타서 살아갈 순 없겠지요. 이렇게 가라앉고, 우울한 순간들이 삶 속에서 찾아온다는 것이지요.
본론
본론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선지자 엘리야 역시 이러했습니다. 19장 전에 18장에서 엘리야는 혼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물리치는 어마어머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승리를 경험한 엘리야는 이제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펼쳐진 것은 아합의 아내였던 이세벨의 소름끼치는 위협이었습니다.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이는 엄청난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찾아온 것은 더 큰 이세벨의 위협이었던 것이지요. 엄청난 회복의 변화를 엘리야는 기대했지만, 현실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제 엘리야는 무너지게 됩니다. 믿음이 강했던 엘리야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두려워 떨며 도망쳐버리는 엘리야만 남게 되었습니다.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이제 엘리야는 삶의 의욕이 상실된 채로 이제 로뎀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제 아무 것도 못하겠다고 그러니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달라고 하나님께 자신의 무너진 마음을 토로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힘없이 누워 잠만 자게 됩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걸려버려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잠만 자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엘리야는 그 천사를 준 떡과 물을 먹고 마시며 힘을 내게 됩니다. 그렇게 그 음식물을 의지하여 이제 하나님의 산, 호렙 산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 이제 하나님의 산, 호렙 산으로 가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살펴볼 호렙 산에서의 사건이 시작됩니다.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을 만나러 하나님의 산 호렙 산을 찾아간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엘리야를 꾸짖는, 혼을 내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엘리야야! 너가 어쩌하여 여기 있느냐!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원망하며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게 됩니다.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이오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이세벨 같은 사람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이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다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미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마음을 아시고 그 절망감과 무기력함에 빠진 엘리야를 회복시켜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엘리야가 여기 올 것임을 알았지만, 엘리야를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야야 너 어찌 여기 있냐? 이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자신의 속마음을 자기 상황과 함께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자기 말을 하면서 뭔가 떠오르게 됩니다. 지난 과거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18장에 있었던 그 승리의 사건 때 말했던 자신의 말이 스쳐지나가는 것이지요.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18장에서 엘리야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자신의 상황을 보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조금도 자기가 혼자라는 상황에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자기가 홀로 남았다는 것에 아주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바알의 선지자들과 영적 전쟁을 벌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승리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19장에서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도 부정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오직 나만 남았거늘.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자기 상황을 자기 스스로 말하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19장 절망에 빠진 엘리야는 말을 하면서 문뜩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어? 18장에서도 혼자였는데, 나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나 지금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거지? 하나님께서 엘리야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처음 만남부터 이미 엘리야에게 영적인 수술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회복의 대화를 시작하고 계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엘리야를 이끌어서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시게 됩니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지금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조금씩 깨닫게 하여 주시면서 그 다음으로 엘리야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나타나는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지진까지 일어납니다. 그런데 굉장히 특이한 문장이 적혀있지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 그 다음 구절도 읽어보겠습니다.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심지어 불까지도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모습이 펼쳤음에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지요. 이러한 바람 지진, 불 이러한 현상을 신현 현상.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생기는 현상인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그 현상을 비트시고, 세미한 소리가 들려나옵니다. 이 세미한 소리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럽시니까? 13절에 그 이유가 나타납니다.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세미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세미한 소리를 듣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람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고 불도 아닌 세미한 소리에 나타나셨음을 알고, 이제 얼굴을 가리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굴 어귀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까랑 똑같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엘리야야 너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이상하게도 11절에서 말했던 말을 똑같이 다시 하게 됩니다. 한 번 더 읽어보죠.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시청각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떤 교육이었을까요? 어떤 가르침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바람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고 18장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그 불로도 임하시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엘리야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까? 세미한 소리에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 동안 엘리야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생각했습니다. 산을 가르시고 바위를 부수시고, 모든 것들을 태우시는 그러한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눈으로 귀로 가르쳐주시는 것이지요. 18장에서만 너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란다. 19장에서 지금 절망하고 쓰러지고, 극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살아갈 힘이 없는 지금 너에게도 함께 하고 있단다. 이렇게 돌려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여 주셨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던지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상황 속에서 좌절하며 쓰러졌지만, 이제 이 세미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엘리야는 14절에서 말을 할 때에, 처음 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말을 하게 됩니다.
11절과 14절은 문자적으로는 똑같은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오예밤에 계신 우리 김학재 선생님 정도 되셔야지. 이 차이를 표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1절에서 오직 나만 남았거늘 이 대사는 매우 분노에 차고, 하나님께 원망이 가득하고, 격한 어조로 말을 했던 것이라면, 14절에 오직 나만 남았거늘 대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절망과 좌절이 사라지면서, 기쁨과 감격이 가득 차면서 회개하면서 이 대사를 뱉어내야 하는 것이지요. 엘리야는 그렇게 14절에서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면서 극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엘리야는 완치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15절부터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사명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읽어보면 미래의 일까지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하사엘이라는 인물은 엘리야 다음 후계자 엘리사 때에 왕이 된 인물입니다. 지금 엘리야에게 미래의 일어날 일을 말씀하여 주신 것이지요. 16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예후 역시 엘리사에게 기름부음을 받아서 왕이 된 사람입니다. 미래의 일어날 일을 말씀하여 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다음 후계자 선지자로 세우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17절에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그 과정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보게 될 18절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선포가 나오게 됩니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께서 바알을 미워하는, 사랑하지 않는 칠천명을 남기시겠다고 선포하여 주신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이 칠 천명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이 칠 천명은 마지막 때에 생겨날 예수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들이 생각한 메시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닮은 아주 강력한 모습의 왕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기대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바람과 지진과 불과 같이 강력한 이스라엘 다윗의 아들로서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강력한 나라로 바꾸어 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제자들도 역시 예수님의 나라에 미리 한 자리를 맡고 싶어서 제자들끼리 경쟁을 하곤 하였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께서 자꾸만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왕이 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라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려고 그리고 부활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강력한 다윗의 자손, 이스라엘 왕으로 승리하실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람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고 불도 아닌, 세미한 소리로 오셨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제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예수님은 붙잡히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게 됩니다. 제자들은 도망가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절망에 빠지며, 다시 원래 살던 갈릴리 바다에 돌아가게 됩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사건이지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사건입니다.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그렇게 제자들은 낚시를 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이제 예수님께서 차려주신 조반, 아침 식사, 밥상을 먹으며 회복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시면서 좌절한 베드로를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다시 제자의 사명을 가르쳐주시는 것이지요.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되어, 사명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전파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교회가 세워지고, 수많은 제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맞추지 않는 그 칠천명이라는 것이지요. 이 칠 천 명안에 우리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이들이 우상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준비된 칠 천명이라는 것이지요. 엘리야의 사건은 이렇게 오늘날 교회 성도들에게까지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따금씩 넘어질 때가 생겨납니다. 다시 일어나야 하는데, 자기에게 처해진 상황을 보면서 또 다시 넘어지고 절망할 때가 생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히 선포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침체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우리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렇게 회복시켜주셔서 다시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죽음에서 살아난 것도 은혜이고, 이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주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셔서, 언제나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그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이 시간 함께 찬양하며 우리 주님께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주품에 품으소서
주품에 품으소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옛날에는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우리 자신들의 상황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서 우리 상황을 보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쓰러지고, 포기하려고 합니다. 나 혼자 남았어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아무 상관 없었는데, 이제는 상황 바라보고, 환경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며 혼자 남았다는 것에 너무 두려워 떨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것들을 보면서 두려워 떨고, 넘어지고, 좌절했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다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홀로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함께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다 같이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늘 함께 하시네
예수 늘 함께 하시네
이 시간 함께 계속해서 기도하십니다. 엘리야는 상황 바라보고 환경 바라보고 이세벨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두려움에 빠지고,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서 도망치는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엘리야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바알 선지자들과도 함께 하셨고, 도망가는 이 순간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떡과 물을 먹이셔서 호렙 산에 가게 만들어 주시고, 자기 상황을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함으로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고, 시청각 교육으로 하나님은 제단에 임했던 모든 물을 증발시켜버린 불로만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약해빠져버린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로도 여전히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 성도들에게도 세미한 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받고, 회복되고, 사명자로 세워져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그 예수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주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그 예수님을 기억하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놓지 않고, 예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여 달라고 우리 이시간 함께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앞서가시네
예수 앞서가시네
우리 이 시간 마지막으로 기도하실 때에, 우리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가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굳건하게 세워지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달라고 우리 이 시간 마지막으로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