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죽으면 믿음이 죽고 믿음이 죽으면 기도가 죽는다

열왕기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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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역사상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중 하나로 알려져있는 어거스틴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이라는 책 이름을 들어보신적 있으시죠?
그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가 죽으면 믿음이 죽고 믿음이 죽으면 기도가 죽는다’
기도와 믿음은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사귐의 기도라는 훌륭한 책을 통해 많이 공부했습니다.
올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기도에 대해 아는 것과 기도를 실제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아마 모두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다고 더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다고 덜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바쁠수록 더욱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믿음없이 살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잘 기도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기도가 회복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은 성전 건축후 하나님께 봉헌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서 꼭 들어주셨으면 하는 것들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8장 22절부터 계속되고 있습니다.
열왕기서에는 정말 많은 사건들과 많은 왕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솔로몬의 성전건축이 그 중심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성전 건축 안에서 또다시 중심은 솔로몬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는 솔로몬의 기도는 열왕기상의 중심중에 중심에 해당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 바로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그의 기도에 이스라엘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8장 22절입니다.
그런 다음에 솔로모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데서,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두 팔을 들어서 펴고 이렇게 기도하였다.
사진을 한번 보시죠.
솔로몬은 마치 대제사장처럼 성전 제단앞에 서서 하늘을 보며 두팔을 벌려 기도합니다.
그가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한 것은 모두 7가지입니다.
의도적으로 딱 7이라는 숫자에 맞춰 기도한 것입니다.
7은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성경에서 3이 하늘의 숫자이고 4가 땅의 숫자인데 그 합이 7입니다.
어쩌면 솔로몬은 자신의 기도가 땅과 하늘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7가지 기도를 드렸을지 모릅니다.
솔로몬은 먼저 5가지 중보기도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구하는 기도, 둘째, 전쟁에 패했을때의 기도, 셋째, 가뭄에 빠졌을때 기도, 넷째, 기근이나 전염병 그리고 적의 침입과 같은 재앙에 빠졌을때 기도, 다섯째, 이방인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제 여섯번째, 일곱번째 기도가 오늘 본문에서 등장합니다.
여섯번째 기도는 전쟁터에 나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번째 기도와 다른 점은 죄악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나가라고 말씀하신 전쟁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일곱번째 기도는 마지막 중보기도인데 기도중에 제일 긴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하는 중요한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서 전쟁에 패배하여 적국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경우입니다.
이때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솔로몬의 기도에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7가지 중보기도를 보면 대부분 위기상황에 대한 간구들이라는 점입니다.
저한테 성도들을 위해 딱 7가지만 기도하라고 하면 저는 성도들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할것 같습니다.
성도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성도들이 하는 일들이 많은 열매를 맺게해 주십시오.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은혜와 평강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할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솔로몬이 바라는 것은 그냥 백성들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까봐 백성들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위기 상황에 빠지면 사람은 누구나 유혹을 느낍니다.
믿음이 흔들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런 절박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솔로몬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두 손을 들고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솔로몬처럼 예수님은 하늘에서 그렇게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시는 예수님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2:5 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십니다.
그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실까요?
우리가 돈 많이 벌고, 우리가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솔로몬처럼 분명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갖도록 기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끌려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절체절명의 그 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놀랍게도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요한복음 15:5 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위기를 겪습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기를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깊은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할수 있기를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고난과 위기의 순간 우리가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기도는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시는 예수님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럼 이제 솔로몬이 오늘 말씀에서 한 그의 여섯번째 중보기도를 살펴볼까요?
44-45절입니다.
주님의 백성이 적과 싸우려고 전선에 나갈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어느 곳으로 보내시든지, 그곳에서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성전을 바라보며, 그들이 주님께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솔로몬은 전쟁터에 나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전쟁이 자주 일어났겠습니까?
전쟁은 나라의 운명, 한 개인과 가정의 운명이 달려있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생사가 오가는 매우 긴박한 순간의 연속입니다.
이때 백성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군인의 수나 전쟁무기, 전술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 마느냐에 그 승패가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기드온처럼 300명의 용사만으로도 수만명의 군사를 무찌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냥 무조건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하면 승리를 주십시오.
기도하면 적들을 짓밟게 해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아닙니다.
그의 기도는 전쟁터에서 기도할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정확히 번역하면 ‘그들에게 공의를 실행해주십시오’ 입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했어도 기도만하면 무조건 이기게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동기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악을 판단해주시라는 것입니다.
악한 쪽을 패배하게 하시고, 의로운 쪽이 이기게 해주시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악한 쪽이라면 어떨까요?
그럼 심판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려면 의로운 편에 서야만 합니다.
여기서 의로운 편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지혜를 내려놓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마음을 아시고 공의롭게 판단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기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기도합니까?
평소에는 안 그러다가도 위기상황일때는 그냥 하나님께 떼만 쓰려고 합니다.
무조건 기도를 들어달라고 메달립니다.
위기 상황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기도속에 혹시 숨겨진 동기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일때 우리안에서 영적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일어납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으로 빨리 어떻게든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기도는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지혜대로 일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전쟁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심으로 하는 기도는 위기의 순간 우리에게 승리를 줍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나 기도를 통해 승리할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46절 이하입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백성이 주님께 죄를 지어서,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원수에게 넘겨 주시게 될 때에, 멀든지 가깝든지, 백성이 원수의 땅으로 사로잡혀 가더라도 그들이 사로잡혀 간 그 땅에서라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의 땅에서 주님께 자복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악행을 저질렀으며, 우리가 반역하였습니다’하고 기도하거든, 또 그들이 사로잡혀 간 원수의 땅에서라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과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주님께 죄를 지은 주님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거역하여 저지른 모든 반역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들 앞에서도 불쌍히 여김을 받게 하셔서, 사로잡아 간 사람들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여 주십시오.
7가지 그의 중보기도중에 가장 긴 기도입니다.
그만큼 솔로몬이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두가지 입니다.
자주 반복되는 단어가 회개와 용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죄를 지어 전쟁에서 지고 포로로 끌려 가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해달라는 것입니다.
마치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내다보고 기도하는듯 합니다.
그럼 이 기도문을 읽고 있는 독자는 누구일까요?
열왕기상하를 읽고있는 첫번째 독자는 바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땅에서 슬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전도 무너지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모든 소망이 끊어진 순간입니다.
그런 그들이 이러한 솔로몬의 기도를 읽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다니엘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하루에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솔로몬의 기도를 읽고 소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중에는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절망 중에도 다니엘처럼 소망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처럼 하루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절망하던 그들에게 큰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우리 역시 죄에 넘어져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마치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듯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느낄수 있습니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따지기라도 할텐데 그것도 아닙니다.
분명 자기 잘못으로 인해 망하게 된 것이라면 누굴 탓할수도 없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는데도 유산을 미리 땡겨받는 죄를 저지릅니다.
그 후 다른 나라로 가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됩니다.
그때 그는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던 돼지를 치는 일꾼이 됩니다.
너무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사료라도 먹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주인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죽는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 비참한 상황속에서 그가 기억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종으로라도 삼아달라고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길인데 아버지는 저 멀리 동구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자 그를 측은히 여기시고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아버지는 그에게 아들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에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기도할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51-53절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쇠용광로와 같은 이집트로부터 이끌어 내신 주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소유입니다. 종의 간구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를 살펴보시고, 부르짖을 때마다 응답해 주십시오. 주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 조상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 내실 때에, 주님의 종 모세를 시켜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그들을 주님의 소유가 되도록, 세상의 모든 백성과 구별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이러한 기도에 응답해달라고 담대하게 구할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를 지어 다 망가져도 다시 용서해달라고 기도할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반역한 이스라엘을 다시 긍휼히 여기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예와 성품이 이스라엘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염치 없더라도 하나님께 이런 요구를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는 절망가운데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죄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새 마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죄에 넘어지고 유혹에 넘어지고 회개하기를 반복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내 삶에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기도하기를 멈춰서는 안될까요?
그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더 큰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일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계획대로 변화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그 형상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날 우리는 그 형상으로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중 하나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도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기도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하나님은 눈을 들어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것이 오늘 솔로몬이 한 중보기도이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날마다 하시는 중보기도입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번연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방패요, 사탄을 향한 채찍이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죄를 멈추도록 이끌지만, 죄는 기도를 멈추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때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날마다 벽돌을 나르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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