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

예수님 치유 시리즈 17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22 views

모든 환경과 상황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

Notes
Transcript

본문말씀

요한복음 9:1–3 (NKRV)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인트로

지난 번에 시카고 다운타운에 온누리교회 캠퍼스에서 설교부탁을 받고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주일 오후예배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귀한 교회였습니다.
대개 다운타운 근처에서 살면서 직장이 다운타운이고 또 그 근처의 학생들이 대부부의 성도들이었습니다. 너무도 젊고 활기넘치고 젊은 에너지가 팍팍 뿜어내는 이들을 만나고 나서 저 역시 젊음의 에너지를 받고 은혜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20분정도 설교를 준비를 하느라고 했는데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점점 그 양이 많아지는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길어지면 다시 정리해서 줄이고 또 그렇게 다시 보다가 보면 또 어느새 늘어나고… 참 기이안 현상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자꾸 무언가를 더 주려고하는 욕심과 잘해야 한다는 적지않은 부담감과 또 하나님의 하실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인지 조금 더 라는 생각이 저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교회 찬양팀을 버스킹전도에 활용하고 싶어서)
실제로 설교를 시작하고 나서는 사실 준비해간 설교와는 다른 이야기를 온통 하는 바람에 20분 설교가 한시간 설교가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지만 나중에 영상을 확인을 하니 한시간이 넘는 설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담임 목사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여나 젊은이들에게 예배가 지루함으로 느껴지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온누리 담임목사에게 괜한 곤란함이 생기지는 않았을까하는 염려아닌 염려가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일예배를 은혜로 잘 드리고 난 몇일 후에, 온누리교회 담임목사가 점심을 대접하겠다고해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내심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목사님이 컴플레인 하려나 싶었서 죄송했다는 말도 전할겸 겸사겸사 조심스레 약속장소에 조금 일찍 나가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목사님께서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꺼내더군요. 이유를 묻자 교회를 섬기는 한 청년을 찬양팀으로 섬길수 있도록 헌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거에요.
사실 그 날 설교를 마치고 예배도 마치고 이제 돌아오려고 하던차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그냥 예배당에서 잠시 서 있을 때, 한 청년이 다가와서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청년과의 대화
다운타운 고급 유명한호텔에서 근무하는 30대 청년인데 하나님의 콜링에 대해서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여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점은 본인의 마음에 계속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욕심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제 생각을 물어온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수십년전 저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도 찬양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때 저 역시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세상에서 노래하던 제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 날이 순간 스쳐 지나가더군요.
아주 오래전에 저에게도 있었던 축복안수 기도를 저도 그 청년에게 했습니다. 저에게 있었던 것처럼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이렇게 얘기 했어요.
안수축복기도
형제님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일들이 우리가 보기에 좋던 나쁘던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보시고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그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결단하시고 실천하세요. 심지어 그것이 나의 욕심이라고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결단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대로 그분의 영광을 형제님의 헌신을 통해 드러내실 것입니다.라고 격려하고 축복기도를 해 줬어요.

우리들의 현실의 삶

매일같이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때마다 하나님께 물어보고 기도도 해보고 그 응답을 따라 그 길을 가면 참 좋을듯 합니다. 그러나 매번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 주시는데도 우리가 눈치를 채지 못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사실 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기준으로 현재 우리앞에 있는 사안의 크고 작음을 결정하여 커보여서 감당하기 어려우면 기도를 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작아보이면 안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 기준으로 그 기도의 비중도 다릅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자하는 일이 그것이 나의 욕심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놓으신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때도 있습니다.
저에게 물어왔던 청년이 그랬던것 처럼 저 역시 그런 경험을 인생을 살면서 자주 경험합니다. 오늘 이 순간 이 시간에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내 개인의 영달을 위함인지 잘 모를때가 많이 있지만 우리는 매번 그것으로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렇든 저렇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것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영~아니고 불편하고 혹시 나 때문에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나로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는것은 아닌지하는 걱정은 믿음 없음의 생각인 것입니다.
물론 모두 다 잘 구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누구도 알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잘 세세히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목적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 하신 목적을 성경은 하나님영광을 위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내가 태어난 이유와 살아야하는 목적을 분명히 아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나면 그때부터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치 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과 저 처럼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먹고 마시는 일 조차도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먹고 마시는 그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 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할지라도 본래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광이란?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이 “영광”이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사전을 보니 “훌륭함을 나타내거나 이루어 이름이 빛나고 자랑스럽게 되는 상태”라고 합니다. 혹은 “훌륭한 사람을 대하게 되어 기쁘고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상태”를 일컬을 때 사용합니다.
출애굽기 33장 18,19절을 보면,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이 얼굴을 보고자 원했지만 직접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선한 형상을 모세 앞에 지나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사람들이 본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모든 선한 형상입니다. 그분의 얼굴이 아니라 그분을 알 수 있는 선한 형상들인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모세의 얼굴에 반사된 광채도 단순히 그분을 인식토록 만든 수단으로써 빛이 동원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영광을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 뿐만아니라 스데반집사가 하나님품에 안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얼굴에 드리워진 빛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하얗게 빛으로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속성 전체를 망라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조금더 쉽게 비유한다면 이렇게 말씀을 드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아주 의로운 사람이나 특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만나면 존경함이 일어나고 저대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자나요. 우리말로 ‘아우라’라고 표현하듯이 왠지 모르게 뒤에서 빛이 나는 것 같고 큰 권위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빛이 나거나 물리적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쌓아온 그 모든 성품이나 실력, 나아가 그 인격체 자체가 아우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사람에게서도 이러할진대 정말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분과 교제, 동행한 체험이 있다면 그분에게서 느끼는 아우라는 우리의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말 밖에는 다른 표현이 없는것 같습니다. 영광은 그분의 임재는 물론 동행하심을 체험하고 난 이후에 그분 전체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광!!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시8:1) 하늘 위에 영광을 두셨으니 하늘의 별빛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동일 내용을 평행구절로 반복하는 것은 히브리어의 대표적 수사법입니다.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은 동의어입니다. 주의 이름 즉, 그분의 모든 속성을 온 땅과 온 하늘, 우주 만물에 드러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 여기서 영광은 그분의 그분다우심, 그분의 모든 속성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지지 않는다.(immortal)”(롬1:23)고 형용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교개혁자 좐 칼뱅 Calvin은 “우리가 그분을 알 때 그분의 영광을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등을 통해서 그 분의 임재함을 느낄 때 그분의 영광을 보게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 스스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삶가운데에서 날마다 체험하고 그리고 그 분을 우리 인생가운데 들어내는 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나는것이고 곧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영광 vs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한가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분하여야 합니다. 본질을 숨기고 현상만을 내세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욕심을 하나님의 일인냥 그것을 들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혹여 우리가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들중에 나의 일을 합리화하여 마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처럼 자기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왕이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을 자기가 보기 좋은 것들은 남겨 두었습니다. 사무엘이 그것을 탓하여 묻자 사울은 하나님께 드리려고 남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남겼다고 말은 하지만 그 속에는 사울 스스로의 자신의 영광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의 자기영광, 욕심이 있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불순종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없지 않나요?
순종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그분께 순종할 때 온 천하에 드러나는 것인데,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의 불순종으로 그 분의 영광이 나의 영광으로 인하여 가리워 진다는 말입니다.
자기 영광은 세상에서 누리는 교만한 자의 썩은 면류관 같은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은 내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두며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낸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떼로는 자신의 영광이라는 것이 상당이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영광에 도취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고 나 아닌 누군가에게 강조하는 것, 그것조차도 자기 영광에 빠질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입술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 하지만 실제적인 나의 삶 속에서는 자기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말하고 불의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결론- 겸손으로 섬김과 헌신

나부터 시작하는 겸손은 내 주위가 친절한 마음 때문에 따뜻해지고 사랑의 열매로 풍성해지며 그런 나의 작은 섬김과 헌신으로 상처받은 자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자기 스스로를 비추어서 교만으로 부터 멀어지고 겸손으로 낮아지고 섬김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처해진 모든 일들은 마치 오늘 본문의 사건의 날때부터 소경된 자의 어려움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 사건, 형편, 상황 등등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광위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위해 우리 모두 함께 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