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되지 않아도

야곱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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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 2. 벧엘 3. 신앙

Notes
Transcript

네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

지난 주 두 가지 미션을 잘 했죠? 오늘 보니까 그래도 지난 주보다는 1시 전에 많이 왔던데, 그 마음과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우리 가온누리가 되기를 바래요!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나 누리기도 못하고 도망부터 가야했죠. 그가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는데, 이 곳은 원래 야곱이 살던 곳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약 80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인천에서 오사카 정도의 거리에요.
여러분 오사카 가려면 어떻게 가요? 걸어가요? 수영해서 갈 수 있는 사람 있어요? 말도 안되는거죠?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라반의 집으로 야곱이 지금 도망치고 있어요. 그만큼 하나님의 보호하심도 믿지 못했다는 뜻이겠죠. 급하게 도망쳤는데 말이나 낙타를 탔겠어요? 튼튼한 두 다리만 믿고 냅따 도망친거에요.
고대 근동에는 한낮에는 이동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어요. 해가 너무 뜨겁기 때문에 한낮에는 쉬고 아침과 해가 진 후에만 주로 이동을 했는데, 야곱도 그렇게 이동했을까요?
아니죠. 야곱은 한낮이라 해도 쉴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사냥꾼인 형은 낮에 뛰어다니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뛰고 보는거에요. 그만큼 죽음의 공포를 굉장히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죠.
제가 필리핀에 있었을 때, 선교사님 큰 아들이랑 저녁을 먹고 밤에 산책을 나갔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가 한 골목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개 짖는 소리랑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거에요. 딱 듣기만 해도 “아 이건 대형견이다" 싶을 정도의 묵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어요.
그리고 뭔가가 우당탕탕 하면서 달려 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 앞에 진짜 뻥을 조금 더하면 저만한 세퍼트가 눈이 뒤집어져서 달려오고 있는데, 그 방향이 저랑 선교사님 아들이 있는 곳이었어요.
눈이 돌아간 세퍼트를 보는 순 간 저희는 뒤로 돌아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개랑 달리기 시합해봤어요? 개는 이길 수 없어요. 그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뛰다가 “야야야 갈라져 너는 왼쪽 나는 오른쪽!!”하고 갈라졌어요.
뛰다가 돌아보니 세퍼트가 없는거에요. 그 동생을 쫓아간거죠.
다행히 물리진 않았어요. 열려 있는 집에 일단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거든요.
그리고 세퍼트 주인이 와서 사과하고 데려갔어요.
죽음의 공포 앞에 서니까 아무 것도 안보이는거에요. 일단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되더라구요. 돌아보면 진짜 개밥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힘든 것도 모르고 일단 달리기부터 하게 되더라구요.
둘 다 개의 공포에서 해방된 다음에 했던 것은 주저 앉아서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어요.
(쉬고)
야곱은 그 이상의 공포를 느꼈던 거에요. 800km의 거리고 뭐고 일단 살려고 앞만 보고 달렸어요. 뜨거운 태양? 온도? 그런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단 말이죠.
얼마나 달렸을까요. 잠시 쉬어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는데, 그 때 쌓였던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갑자기 확 몰려왔어요. 제가 야곱이었다면 피로가 몰려 올 때 주저 앉아서 미친 듯이 통곡하면서 울었을 것 같아요.
진짜 서글펐을 것 같고, 쓸쓸한 밤을 보내는 내 자신을 보며 불쌍하다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라는 신이 먼저 형이 나를 섬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받아야 하는 장자의 축복을 형이 빼앗아 가는거 같아서 되찾아 온 것’ 밖에 없는데
지금 자신은 도망자 신세이고, 죽는 것이 무서워서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자신의 주위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거에요.
정말 처량하지 않았겠어요?
(쉬고)
더 이상 도망 갈 힘이 없을 때 그는 주저 앉았고 그 곳에서 돌을 베개로 삼아 베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해요.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그 때, 어쩌면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잠이 들었던 그 때 야곱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어요.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쉬고)
신에 대한 고대 근동 사람들의 인식은 “신은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였어요.
지역마다 신이 있는데, 신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라 생각 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역을 옮겨 갈 때 마다 그 지역에 있는 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야곱도 이러한 생각을 하던 사람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그가 자는 동안, 정말 먼 거리를 도망쳐온 자신을 찾아온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쉬고)
야곱의 관점에서, 야곱이 배워온 세계관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을 여기까지 따라 올 수 없어요.”
여전히 가나안 땅에 있어야 하고,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했어요.
자신이 받은 장자의 축복은 가나안 땅에 두고 왔다고 생각했어요.
“장자의 축복을 준 신이 가나안 땅에 매여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 생각했어요.
(쉬고)
그 곳에 있어야 할 신. 하나님이 지금 이 곳에서 있고 내가 그를 만나게 된거에요.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라고 생각할만큼 믿겨지지 않는 상황 앞에 그가 서 있어요.
(쉬고)
여러분은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처음 만났나요?
혹시 그 때를 기억하나요?
그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과 감정을 느꼈었는지 기억나나요?
(쉬고)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던 순간"이 분명히 있어요.
저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던 그 날"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어요.
형, 누나 친구들이 기도하면서 울고 하나님을 만나고 감사를 고백하는 것을 부러워만 하던 사람이 저였어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기도가 잘 되지 않는거에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아세요?
기도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기도, 아무리 해도 듣지도 않으시는거 같은데 뭐하러 하나 싶었어요. 그래서 매일 저녁마다 있는 기도모임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가지 않았어요.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선택한거에요.
전화도 받지 않고 도망다녔어요. 그러던 중 사고가 터졌죠. 작년 여름수련회 때 이야기 했던 것처럼, 전도사님과 사람들이 저를 붙잡아서 기도시키려고 작전을 짜기 시작했어요.
비장하게 봉고차에 사람들이 올라타고 제가 사는 마을로 출동을 했죠. 그리고 친한 동생이 집으로 전화해서 “형 잡으러 갔어 피해"라고 말을 해줬죠.
봉고차가 마을로 진입하는 것을 보고 저는 도망을 갔고, 봉고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저희 집으로 뛰어 올라갔어요.
허탕치고 내려와서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저는 의기양양하게 슈퍼에 들어가서 스크류바를 사서 들고나오다가, 슈퍼 문 앞 양쪽에 대기하고 있던 형들에게 붙잡혔고, 스크류바는 땅에 떨어졌고 저는 봉고차에 짐짝처럼 실려서 끌려 갔어요.
그렇게 기도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모든 탈출로에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탈출도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기도하지 않으면 집에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짜증도 내고 누워있다가 이렇게 된거 기도나 해보자 생각했어요. 하지만 기도도 안하던 사람이었는데 기도가 됐을까요? 그냥 눈만 감고 있다가 졸다가 딴 생각했다가를 반복했어요.
그러다 갑작스럽게 기도를 하게 되었고 저는 그 날 예수님을 만났어요.
갑자기 터진 눈물과 콧물에 기도를 멈췄는데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 옆으로 휴지가 툭 떨어졌어요. 그 날 저는 두루마리 휴지 새거 하나를 그 자리에서 다 쓸 정도로 펑펑 울었어요.
나같은 쓰레기를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나 때문에 죽기까지 하셨다는 그 사실이 너무 강렬하게 저에게 다가왔어요.
내가 사람이라면, 정말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해서 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더라구요.
그 날 이후 저는 바뀌게 되었어요.
지금까지는 부모님의 하나님. 선후배의 하나님이었던 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거든"요. 그냥 그 사실 만으로도 너무 감사한거에요. 교회가 가고 싶고, 예배가 기다려졌어요.
그 때 담임목사님께서 수요일 저녁마다 호세아 강해설교를 하셨는데, 성경책에 메모를 할 곳이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받아적기까지 했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 정말 엄청난 충격과 기쁨을 가져다 주었어요.
(쉬고)
여러분도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 그 날이 있을거에요. ‘
그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과 감정을 느꼈었니요?

벧엘

야곱은 지금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어요.
“신이 지역을 벗어나 나와 함께 한다.”
“말로만 들었던 그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셨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찾아오셨다!”
(쉬고)
12-13절. “꿈에 본즉" “또 본즉"
“이거 실화야??” “이거 맞아?” 계속 반복해서 보는거에요.
도망자의 서러움과 피곤함으로 인해 무너질대로 무너져있었던 야곱의 마음 속에 소망이 생겨나면서 힘이 생기기 시작하는거에요.
지역 신의 범위를 넘어서 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마음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해요.
계속해서 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
“나는 너와 관계를 맺고 함께 하기를 원하며,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12절에 나오는 사닥다리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
“너와 교제 할 날을 기다려왔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붙잡고 찾고 올라와라. 나도 네가 있는 그 곳으로 내려가겠다.”
(쉬고)
여러분 지금까지 야곱이 하나님 앞에 보여준게 뭐가 있나요?
그가 집에서 나와 도망치면서 하나님을 찾았나요?
아니 도망치기 전에 기도라도 했나요?
그는 살아오면서 한번도 하나님에게 자신의 믿음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쉬고)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신이에요. 세상을 창조한 신. 그런데 그가 지금 한명의 인간에게 가서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는거에요.
전지전능한 신.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충분히 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여러분은 알고 있어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셨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어요.
(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찾아오셨거든요.
나의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이미 그 분은 우리를 찾아오셨어요.
이미 여러분은 야곱에게 찾아가셨던 그 하나님을 각자의 삶에서 이미 만났어요.
왜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라고 하셨겠어요?
강제로 믿게 만들수도 있고,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마음을 조정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굳이 우리를 찾아와서 말씀하신 이유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진정한 고백을 듣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에요.
만들어진 고백이 아닌 진짜 순수한 감탄과 고백을 듣고 싶으셨던거에요.
저와 여러분은 그러한 고백을 삶으로 드리고 있는 존재들이구요.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이 삶의 고백을 기다리고 계셨던거에요.
그래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라며 찾아오신 것이구요.
(쉬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말씀하세요.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놀랍고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가 기다리던 대답은 아직 듣지 못했어요.
그가 지금 그 순간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장자의 축복을 실제로 줄 수 있는 신. 하나님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자신의 정통권을 보증해줄 수 있는 신과 함께 돌아가서 자신의 자리에 되찾는 것이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말 말고, “집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분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으세요.
(쉬고)
내가 너를 위해 일할게.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을 끝까지 해주지 않으시는거죠.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속시원한 대답 들은 적 있어요?
저는 최근에 기도하는데 답을 주실 듯 주실 듯 안주셔서 기도하다가 “아버지 정답을 알려줘!!!”라고 소리 친 적이 있어요.
어차피 해주실거 좀 빨리 대답해주시지 왜 이렇게 뜸을 들이세요!!! 라는 아주 도발적인 기도를 한거죠.
그런데도 하나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쉬고)
야곱이 지금 그래요.
지역을 넘어서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 일하신데요. 너무 좋아요. 그런데 어떻게?
뭐라도 가시적인 것을 보여주셔야 믿을거 아니에요?
13-15절.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그 축복을 나에게도 주시긴 했는데,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먼 미래의 이야기인거에요.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은 좋은데, 상황이나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인거에요.
상황을 바꿔 주시겠다는 말도 없어요.
(쉬고)
그런데 이것은 분명히 말씀하고 약속하세요.
임마누엘.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를 떠나지 않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쉬고)
지금 당장 돌아가라는 말씀은 아니었지만, 야곱에게 있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하나님께서 주시는거에요.
스스로 삶의 통제권을 쥐고 집착하느라 잊고 있었던 그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을 야곱에게 주고 계셔요.
“너 왜 그 것도 못참아서 이렇게 일을 꼬아버렸어!!”
“조금만 더 참았으면 자연스럽게 너가 장자의 축복을 받았을텐데!”라며 꾸짖거나 핀잔 주지 않으시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하셨던 그 약속을 너를 통해 이루겠다 라고 말씀하세요.
잘못에 대한 책망이 아닌 은혜를 보여주고 계시는거죠.
(쉬고)
그래서 도망치면서 정말 서럽고 쓸쓸하고 힘든 밤이었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밤을 보낸 야곱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 고백을 해요.

신앙

첫째,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둘째,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쉬고)
하나님을 진하게 경험한 사람 치고는 고백이 좀 걸쩍지근해 보이죠?
뭔가 조건을 걸고 지키셔야!!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하나님이 집이 될 것이고, 십일조를 드릴거에요!”라고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사실 이것은 조건을 내걸은 서원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 3가지 서원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한 고백이기 때문이에요.
첫째, 하나님께서 나에게 땅을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나는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 삶에 일하셨음을 내가 믿고 인정합니다. 이 기둥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나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내가 얻을 모든 수익은 하나님에게 왔으니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쉬고)
조건부 서원이 아니에요.
21절.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이 말은 사실은 ‘돌아오게 하시리니' ‘돌아오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신뢰합니다’라는 고백이 그 안에 숨겨져 있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와 함께 하시겠다 말씀하셨으니 저는 그 말을 신뢰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라는 것이죠.
(쉬고)
가장 혹독한 밤을 지낸 야곱에게 환한 빛이 비추기 시작하는거에요.
하지만 야곱은 오늘 이후로 다시 돌아오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서원을 기억해내지 못해요.
그러나 야곱이 다시 기억해 낼 때까지 하나님은 열심을 내셨고, 야곱을 위한 일하심을 멈추지 않으셨어요. 그 이후에도 그의 삶에서 뛰어노시며 일하셨어요.
(쉬고)
야곱이 이 고백을 기억하지 못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님을 만났으나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옛 습관,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삶의 패턴들을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만나 멋진 고백을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 삶의 통제권을 쥐고 흔들려 했어요.
어쩌면 우리들도 이와 비슷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만났고, 알고 있고 그 분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고백하며 살아가지만, 나 역시 끊어내지 못한 옛습관 때문에,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삶의 패턴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쉬고)
“이제는 좀 그만하라고.” 화내실법도 한데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다 감수하시면서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 것들을 끊어낼 수 있는 은혜"를 계속해서 부어주고 계셔요.
(쉬고)
야곱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그는 벧엘에서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믿음을 벧엘에 두고 길을 떠나요.
벧엘에서 멈추었어요. 너무 강렬하게 하나님을 만나서 놀라서 서원까지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그는 벧엘에 자신의 믿음과 고백을 잘 정리해서 올려두고 길을 떠났어요.
(쉬고)
여러분은 어떤가요?
한주를 살아내면서 화나는 일도 많았을 것이고, 속상해서 울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한주를 살아내기도 했을거에요.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나요?
삶의 자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는 자리를 기꺼이 드리며 지내왔나요?
저는 여러분은.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이 곳에서 함께 고백했고 기도하며 선포하고 있어요.
그런데 혹시 그 기도와 선포. 그 믿음을 이 곳에 두고 돌아가지는 않았었나요?
(쉬고)
야곱은 루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이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잘 살아낼 것 같은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일어나 길을 떠났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어요.
(충분히 쉬고)
저와 여러분의 삶은 다르기를 정말 간절히 바래요.
깨달은데로, 주신 마음에 맞게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삼고 붙잡아서 약속대로 싸워내는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해요.
(쉬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내 신앙과 믿음의 색깔을 바꾸어서는 안돼요.
야곱처럼 신앙이 정체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정말로 믿으려면!
뜻대로 되지 않아고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내 믿음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려고 애를 써야 해요. 한걸음 아니 반걸음이라도 내딛어야 해요.
(쉬고)
야곱의 신앙의 최절정은 20년 후 얍복 강가에서 나타나요. 무려 20년이나 걸렸어요.
라반의 집에서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고, 걸으려 하지 않았고 믿음의 색깔을 유지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에요.
(쉬고)
여러분의 믿음은 어디에 있나요?
여러분의 믿음의 색깔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충분히 쉬고)
이번 주 아니 다음 주 예배가 없으니 2주간의 미션이에요.
2주 동안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이 믿음을 지켜내야 하는 사건들이 정말 많이 일어날 거에요.
믿음으로 상황을 이겨낸 그 사건들을 순 톡방에 올려주세요. 아니면 그 순간 함께 기도해달라고 순 톡방에 올려주세요.
2주 동안 살아가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속이 뒤집힐 수도 있을거에요.
그 때 기도를 요청하세요. 그리고 이겨낸 그 순간의 감정을 함께 나누세요.
(쉬고)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쉬고)
믿음의 색깔을 유지하며 나아가려 할 때 분명 많은 시험과 고난이 여러분을 찾아올거에요. 세상은 우리를 짓누르리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물러서지 않는거에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었어요. 지금 이 상황에 발목잡혀서는 절대 안돼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말씀하셨어요.
야곱에게 임했던 그 사닥다리. 언제나 교제하며 대화할 수 있는 그 역할을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고 계셔요.
(쉬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물러서지 마세요.
계속 앞으로. 우리 함께 서로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들고 걸어가야 해요.
(쉬고)
2주 동안 믿음을 지켜낸 사건과 필요한 기도를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래요.
그러한 사건이 많아져서, 삶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보고 공유하며 은혜의 깊이를 더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의 삶에 가득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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