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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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부터 1945년까지 약 10여년 동안 나치는 600만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사건을 벌입니다. 이를 ‘홀로코스트’라고 말합니다. 이 홀로코스트는 자국민 뿐만 아니라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두번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아주 치욕스러운 역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의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은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600만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위해 야드바솀이라는 국립 기념관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는 희생자들의 이름, 그들이 남긴 문서, 유물 등을 수집하고 그것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자료를 후손들 뿐만이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방문객에게 무료로 개방하며, 많은 희생자를 추모하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드바셈’안에는 이스라엘이 과거 자신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한 문장에 담아두었습니다.
“망각은 망국의 길이며, 기억은 구원의 길이다.”
홀로코스트로 부터 해방되었고, 자유로워졌을 지라도 그 역사는 반드시 기억하여 그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모든 설명을 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날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것은 우리에게도 그리 생소한 문장은 아닙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이 문장은 티비 역사 프로그램 뿐만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과거 혹은 역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현재와 미래를 바르게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과거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는 현재와 미래를 바르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진정으로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기 원한다면, 단순히 향수나 추억으로 기억하는 수준을 넘어야 합니다. 그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기억해야합니다. 우리의 기억과 현재의 나의 모습이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어야만 과거라는 토대위에 바른 현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삶을 통해 바른 미래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는다면, 바른 신앙인으로 바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할 때만,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하나님의 거대한 경륜 속에서 현재의 나란 존재가 누구인지 바르게 해석되며, 나의 남은 인생의 참된 의미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시편 105 편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현재의 삶 속에서 지난날 베풀어 주셨던 과거를 기억하는 시편이라고 정의 내려볼 수 있습니다.
시편 105 편은 많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족장시대에서 가나안 정복 시대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셨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는 것으로 본 시편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본문은 출애굽 그리고 그 뒤에 있던 광야 생활과 가나안 정복 스토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24-25절 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점점 불어나 그들의 적들보다 더 강해지게 하셨고
적들의 마음을 바꿔 주의 백성들을 미워하게 하셨으며 그분의 종들에게 음모를 꾸미게 하셨다.
이 본문에서는 한 줌에 불과하고 하찮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대국 애굽에서 백성들의 수를 번성하게 하셔서 적들보다 강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입을 통해서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다'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시련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에게 억압을 당했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시련과 미움이 전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시편 속 기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과 주도하에 진행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약한 이들을 강하게 세우시는 것도, 심지어 하나님의 받는 고난과 어려움도 주님의 주권하에 진행됨을 되새기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읽어 보면 좋지만 26절부터 30절까지만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그분의 종 모세와 직접 선택하신 아론을 보내셨다.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표적을 보였고 함의 땅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을 행했다.
하나님께서 어둠을 보내 그 땅을 어둡게 하시니 사람들이 그 말씀을 거부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피로 바꿔 물고기들을 죽이셨고
그 땅에 개구리들을 가득 채워 왕의 침실에까지 들어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파리 떼가 날아들었고 온 나라에 이가 득실거렸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박을 비처럼 쏟아붓고 온 땅에 번개가 치게 하셨으며
포도나무들과 무화과나무들을 치고 그 땅에 있는 나무들을 산산조각 내셨다.
그분이 말씀하시니 이런저런 메뚜기 떼가 수도 없이 몰려들어
그 땅의 채소란 채소는 다 먹어 치웠고 그 밭에서 난 열매들도 삼켜 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그 땅의 모든 처음 난 것들, 곧 모든 기력의 시작인 장자를 치셨다.
그러고는 이스라엘을 데리고 나오시되 은과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셨으니 그들 지파 가운데 약한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떠나자 기뻐했다.
이어서 여호와께서 구체적으로 출애굽 과정에서 보여주신 열 가지 재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본 시편을 잘 읽다보면 출애굽 당시 하나님에 애굽에 내렸던 재앙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재앙을 말할 때, 단순한 기적과 이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존의 파라오의 질서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해 도전하시며 그들을 짓밟으시는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가 몇 가지만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8절에 주께서 보여주신 어둠은 그 당시 이집트에서 섬기던 태양신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빛과 어둠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나 여호와임을 만인에게 공공공연하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29절은 물을 피로 바꾼 사건은 생명의 근원이라 여기던 나일강을 피로 물들이게 하시면서 그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하고 계신 사건이었습니다.
30절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개구리를 생명과 다산을 주관하는 신으로 개구리가 풍요를 가지고 온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개구리 때로 도리어 피해를 보게 하면서 그들이 믿는 신이 허상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애굽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믿고 있는 잘못된 우상들을 무너뜨리고 계십니다.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이들이 섬기는 모든 신과 잘못된 문화와 관습을 처참히 짓밟으시며 진정으로 이 시대의 신이 누구인지, 이 세상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통치자가 누구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시편 속 기자는 바로 이 모든 신들 중의 신이 주님이시며 이세상 어떤 신보다도 강하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일 기억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39-41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을 이불처럼 펴시고 밤에는 불을 비춰 주셨다.
백성들이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불러 주셨고 하늘의 빵으로 배부르게 하셨다.
그분이 바위를 여시니 물이 펑펑 솟아 나와 강물처럼 마른 땅을 적셨다.
이어, 그들의 광야에서 삶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로부터 그들을 보호했주셨습니다. 또 뿐만아니라 그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빵을 그리고 물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시편 속 주인공은 이 광야라는 장소와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키시며, 자신의 백성들에게 공급하시는지를 기억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약속과 그분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신 것이다.
그분은 기뻐하며 백성들을 이끌어 내셨다. 즐거워하며 선택하신 사람들을 이끌어 내신 것이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이방 민족들의 땅을 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방 민족들이 일구어 놓은 것을 상속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시편 기자는 이 모든 구원의 역사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성취하시며 가나안 땅에 입성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했던 가나안땅을 끝내 주심으로 주님의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인고의 시간들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계획 속에 있음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 성실하신지 보여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을 기억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고 있습니다.
좋합해보면,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했고, 힘과 능력을 기억하며, 보호하심과 성실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기억하며 찬양하고 있을까요?
바로 현재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고 그 율법에 순종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삼아 하나님의 율례로 여호와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을 살고자 하게 함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지난 날의 하나님의 행사를 망각해 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ㄷ을까요? 이들은 또 하나님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 다시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다운, 백성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그런 정체성을 잃고 사는 이들에게 밝은 미래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일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민족에게 행하신 역사가 자신의 현재 삶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현재의 나의 삶과 동일하게 연결 되길 원하기에 지난 날의 하나님의 역사와 행사를 기억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하나님을 행사를 진심으로 기억하고 찬양했다면, 이들에게는 현재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바를게 자각하며 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일들일 기대하고 소망하게 되었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행사를 되새겨 볼 때 비로소, 현재에 확신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은 확신에서 멈추지 않고 자연스레 미래에 대한 소망과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적은 찬양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의 자신들의 본문을 잊지 않기 위해 지난 날을 기억하며 찬양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이게 어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이며 더 나아가 앞으로 하나님이 택할 모든 백성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음도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잘 살고 있는 누군가를 통해 우리를 기억하여 불러 주시고, 우리의 생사 모든 것을 주관해 주시며, 지치고 힘들 때, 힘과 능력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준비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성실하고 신실하게 우리를 노력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은혜와 은총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망각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일해주신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하며 현재의 나를 바로 세워야 살아간다면, 그래야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자각하며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 갈 수 있음은 물론 우리를 통해서 미래의 자신의 자녀가 될 사람들을 끊임 없이 초청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초청 집회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또 오늘 기도 모임 또한 그것을 위한 기도모임입니다. 기도모임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걱정이 들기 마련입니다.대상자는 잘 올까, 그들은 잘 반응할까,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등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기도모임이 바로 걱정과 염려에 가득찬 기도모임이 아니라
지난 날 한줌 먼지에 불과하던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시고 세워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오늘 기도모임이 희망이 가득찬 기도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열심으로 일하실 것이라고 소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그리고 나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이 우리가 품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소망과 희망말입니다. 이번 전도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분명 우리 공동체 가운데, 우리 가운데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아니 어느 누구보다 그들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래서 그 분이 일하십니다. 우리 그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전도집회를 주님께 올려드리며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