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명만 빼고

요나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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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계획 성공 2. 실물 교육 3. 하나님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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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 성공

오늘은 지난 한달간 살펴 보았던 요나서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요나서 4장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쉬고)
우리는 3장을 통해 건성으로 전달했으나 그 말을 귀담아 듣고 금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던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받아주셨죠.
그 결과 니느웨는 멸망하지 않고 살아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심판을 모면했기에 기뻐했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지 않았기에 기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 죄를 고백한다면 용서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니느웨 성 안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죠.
(쉬고)
이 사람은 입이 잔뜩 부어 있습니다. 입을 내밀고 삐죽삐죽 거리면서 불편한 티를 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는데, 딱 한 사람은 굉장히 불편한 티를 내고 있습니다. 그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심판을 거두신 사실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실망했습니다. 분노를 표현합니다.
(쉬고)
이렇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선지자 요나입니다.
선지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선지자는 죄인이 회개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죄인을 용서하신 것에 대해 감사를 고백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자이고 요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선지자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죠. 죄인을 용서하셨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내가 받아드릴 수 없으니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나님에게 요청합니다.
(쉬고)
그가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에게 굉장히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결코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죽음을 댓가로 치르더라도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는 절대 멈출 수 없고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삶 보다. 죄인이 돌이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보다 정의구현이 먼저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죠.
1장에서 요나의 모습을 한번 떠 올려 볼까요?
풍랑을 만난 배가 부서지고 있고 뒤집히기 일보직전 일 때 그는 배 밑바닥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비를 뽑아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 들켰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합니다.
“내가 모시는 신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라는 말까지 합니다.
왜요?
나 하나 희생해서 니느웨가 지도에서 지워질수만 있다면, 그래서 내 조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핍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거든요.
삶보다 정의구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풍랑을 만났을 때 죽음을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에요.
나 하나의 죽음으로 조국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기꺼이 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다. 요나의 마음이었습니다.
(쉬고)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선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선지자 요나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했습니다.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듣드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 생각했습니다.
(쉬고)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반응은, 선지자 요나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요나는 삶보다 죽음을 원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죽음보다 삶을 원했습니다.
1장의 이방인들요나를 바다에 던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든 그를 살려내려고 했습니다.
풍랑의 원인이 되었고, 살아남으려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바다에 던졌기 때문에 요나가 밉고 싫을 수도 있었는데 그들은 요나를 살려내려고 했습니다.
3장의 이방인들외국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건성으로 선포된 말씀. 그리고 앗수르 사람들이 믿는 신보다 약하고 열등하다 생각했던 히브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 쓰고 기도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죽음보다 삶을 원했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쉬고)
이방인과 요나. 도대체 둘 중 누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시나요?
얼핏보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요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아는 사람은 그 은혜를 거절하고 있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죠.
(쉬고)
4장 1절은 요나의 심리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1절은 6개의 히브리 단어로 되어 있는데, 그 중 4개가 요나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쉬고)
우리 성경에는 간단하게 나와있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이런 뜻입니다. “나빴으며, 나빴고, 정말 매우 나빴다.”
즉. 불쾌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불쾌해서 화가 머리 끝까지 차버렸다는 거에요.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내가 이래서 안온다고 했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내 예상과 빗나가질 않습니까?‘
“예예. 제가 잊고 있었네요.”
“하나님은 참 은헤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매우 인자하신 분이셨었는데, 제가 잊고 있었네요“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이렇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네요“
(쉬고)
그는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하나님을 조롱하듯 이야기 합니다.
요나가 말한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4장 6절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표현하는 이 고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34장 7절.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이지만 ”벌을 면제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뒤이어 나옵니다.
그러니까 34장 6-7절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요나는 오늘 6절까지만 이야기합니다. 그가 7절을 몰랐기 떄문일까요? 뒷 이야기를 몰라서일까요?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빼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지만 벌을 면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 것은 지금 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는 ”내 기분이 너무 불쾌하고 나쁘다. 화가 난다“ 이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뒷 이야기를 빼며, 하나님을 조롱하듯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쉬고)
감정에 휩쌓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겠죠.
일단 내 감정을 쏟아버릴 대상만 찾게 되고, 반드시 실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보이지 않고, 마음이 평온도 없고 쏟아내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큰 실수들을 하게 되겠죠.
혹시 이렇게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분노에 쌓였던 적 있으신가요?
제가 종종 인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는데, 제가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화를 내고 꽤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질렀던 순간이 거의 없는데 그 중 대다수가 다 인도에서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인도를 갈 때 중고 휴대폰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 휴대폰이 불안정한 전기 공급으로 인해 얼마가지 못해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수리도 잘 되지 않고 또 새로 구입하기에는 너무 부담이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친구가 제 생일을 맞이해서 사용하지 않은 갤럭시 탭 작은 것을 보내줄테니 그 것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보낸 지 한달이 다 되어 가는데 저에게 탭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한달이 되어갈 때 쯤 저는 “우체국에서 소환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소환장에는 “당신이 불법으로 기계를 유통하다 걸렸으니 우체국으로 와서 상황을 소명하라”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우체국을 찾아갔더니 한 직원이 저를 보자마자 화를 내더니 강제로 의자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주더니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으로 강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 받아적고 나니 벌금을 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뭐 문제가 생겼으니 벌금 내는 것이 맞겠지 싶어서 벌금을 냈습니다.
반성문과 벌금을 냈는데도 저에게 탭을 돌려주지 않고 일주일 후에 보내주겠다고 하더라구요. 뭔가 이상했지만 공무원이 사기를 치겠나 싶어서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주가 지나도록 보내주지 않더라구요. 느낌이 이상해서 우체국을 찾아갔습니다.
(쉬고)
그 직원이 그 자리에 없더라구요. 다른 직원들이 저에게 “제가 낸 벌금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낸 벌금으로 왜 개인이 휴가를 가느냐? 내 탭은 어디 있느냐?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물었습니다.
직원들이 일제히 저를 비난하면서 “너가 바보 같이 벌금 내놓고, 왜 우리에게 물어보느냐? 벌금 안내도 되는건데 니가 낸거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점점 화가 나는거에요.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면서 “나를 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 너희들은 왜 가만히 있었느냐. 그 사람이 나에게 사기를 칠 때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 너희도 공범 아니냐?‘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쉬고)
그 순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구요.
저는 인도인을 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쳐하게 되고 심지어 5-6명에게 둘러쌓여 비난을 받기 시작하니까, 하나님도 복음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더라구요.
10분 가량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너무 소란스러웠는지 우체국장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방에 들어가자마자, 제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것을 보자마자 도망치고 나오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도 떠올리지 않고 화를 내면서 싸우고 우체국장실에 들어갔는데, 그 책상에 성경책이 놓여져 있었거든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만나보기 어려운 그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하필이면 우체국장이었던 것이죠.
성경책을 보는 순간 제가 왜 인도에 갔는지 생각났습니다.
제가 화를 낸 것을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도 생각이 났습니다.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겠더라구요.
다행히 국장님의 도움으로 탭도 잘못된 벌금도 돌려 받게 되었는데, 그 것이 저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쉬고)
감정에 휩쌓이니까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구요.
지금 요나가 그러고 있는거에요. 그는 저보다 더 심하게 하나님에게 화를 냅니다. 조롱하는 것을 넘어서 “차라리 죽여주세요!”라고 까지 외치고 있거든요.
저는 요나가 참 비겁하다 생각합니다.
1장에서도 자신이 바다에 뛰어들면 되는 문제인데, 선원들에게 자신을 던지라고 말하며 죽음을 떠넘기더니, 이번에도 하나님에게 죽여달라면서 죽음을 또 떠넘기고 있거든요.
(쉬고)
이 정도되면 머리 한대 쥐어박고 정신 좀 차려라!! 하셔도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요나야 너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맞니?”
“야 너 이게 맞아?”하면서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부드럽게 물어보고 계셔요.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가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죠.
요나가 갖고 있는 지독한 자기 의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화를 내는 것이 맞느냐?”라고 물어요.
화가 풀려야,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달아야, 스스로가 맞다. 라고 하는 그 교만을 버려야 하나님과 의미있는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죠.

실물 교육

하나님께서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셨는데 요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대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니느웨 동쪽으로 가서 자리를 펴고 앉아서 초막을 세워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것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전까진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쉬고)
지속적으로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을 기대하면서 니느웨를 지켜봐요.
“니느웨의 회개는 진심이 아닐거야"라는 확신 속에 하나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죠.
그 심판이 머지 않아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는지, 금방 짓고 무너뜨릴 수 있는 초막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있어요.
이 초막은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막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요나에게 굉장히 기쁜 일이 생깁니다.
(쉬고)
6절. 박넝쿨을 하나님께서 주셨어요. 그래서 요나는 정말로 기뻐해요.
그가 왜 기뻐했을까요? 단순히 박넝쿨을 주셔서 기뻐한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던 요나는, 박넝쿨을 보고 “아 하나님께서 내 행동에 반응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저 니느웨를 쓸어버리실거야!” “곧 일하시겠지!”라는 기대감에 기뻐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죠.
바로 다음날 새벽에 벌레들이 다 갉아먹었거든요.
(쉬고)
벌레들이 갉아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나의 뜻에 맞춰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거에요..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6절 초반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는 “여호와"라고만 나왔는데, 6절에서는 “하나님 여호와"라고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쉬고)
그 전까지 “여호와"라고 표현 했던 것은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만을 상징했던 것인데, 6절부터 다른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왜 니느눼를 용서했는지를 밝히고 계시는거에요.
하나님 여호와. 야훼 엘로힘.
나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여호와가 아니라, 온 세상을 지은 창조주이며, 온 세상을 다스리는 창조주이다.
니느웨를 용서하신 이유. 바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이에요.
하지만 요나는 그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또 “차라리 죽여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죽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죠.
진짜 못되지 않았나요?
마치 어린아이가 때를 쓰듯이,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해주지 않으시면 “차라리 죽여달라”라고 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요나가 보여주고 있는거죠.
(쉬고)
제가 청소년부 사역을 할 때 만났던 3인방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각자 청소년부를 15년 20년씩 섬기고 계실만큼 굉장한 열정과 마음이 있으셨던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인지 이분들의 영향력과 입김이 그 부서에서 굉장히 강했습니다.
제가 전도사로 부임했을 당시, 청소년부에 어려움이 있어서 100여명 출석하던 청소년부가 40명도 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였습니다.
그리고 부임도 하기 전에 3인방 선생님이 저에게 연락을 해서 보자고 하셨어요.
세 분이 다 나오실 줄 알았는데 한분만 계셨고 2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2시간이 되어갈 때쯤 또 한분이 오셨어요. 그래서 또 2시간을 이야기 했어요. 2시간이 되어갈 때쯤 또 한분이 오셔서 총 6시간을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거죠.
그 분들이 저에게 요구하는 것은 딱 하나 였습니다.
“내 말을 잘 들어야 이 교회에 오래 있을 수 있다.”
“내가 이것저것 다 해봤고, 누구보다 잘 아니까 우리에게 물어보고 일을 진행해라"
“우리 말을 새겨 듣지 않으면 전도사님의 자리가 위험할 수 있다.”
(쉬고)
6시간동안 이야기를 하고 집에 오면서 저는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지" (쉬고)
이 곳에서 청년부를 섬기고 있는 것처럼, 청소년부를 섬겼습니다.
학교 학원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고, 학원이 끝나면 차에 태워서 집에 데려다주면서 계속해서 만나 관계를 쌓아갔습니다.
40명이었던 청소년부가 몇개월만에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었고 모든 선생님들이 즐거워하던 그 때 문제가 터졌습니다.
(쉬고)
또 6시간 동안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죠.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간다고 말도 못할만큼 세분이서 저를 계속 몰아세웠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나쁜 분들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열정이 너무 뛰어나고 그동안 선생님들을 통해 많은 청소년부 아이들이 변화되었던 일들이 많았기에 저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셨던거에요.
그 당시에는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제가 해야 한다고 계속 하셨는데, 그 해 여름 수련회를 기점으로 세분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본인들이 해왔던 지난 사역들이 옳고,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음에도 청소년부 아이들이 변화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셨거든요.
과거의 영광을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본인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으신 후 그 분들은 완전 바뀌셨어요.
사람이 바뀌는 것이 어렵다는 것 잘 알고 계실겁니다.
15-20년을 섬겨왔고 그 사역의 패턴과 고집이 굳어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니까 바뀌더라구요.
과거의 영광을 내려놓고,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을 기꺼이 포기하고 앞을 보고 걷기 시작하시더라구요.
(쉬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요나처럼, 굳어진 나의 생각과 신앙 습관으로 인해 “내가 원하는데로 해야 한다. 내가 맞다. 옳다.”라는 생각을 갖고 계시진 않으셨나요?
교회를, 공동체를 위한 말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만들고 싶은 모습을 말하고 있지는 않으셨나요?
(충분히 쉬고)
하나님은 요나가, 우리가 그러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정말 앞을 바로 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10-11절을 보면 “너. 나"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박넝쿨을 사랑했지만"
“나는 사람을 선택했다"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명인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
(쉬고)
하나님께서는 먼저 구원과 은혜를 경험한 요나도 우리도 중요하지만, 아직 그 용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도 아끼고 사랑하고 계신다라고 말씀하고 계셔요.
구원은 요나만을, 이스라엘만을, 저만을 그리고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는거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11절의 말씀“창조주인 내가 사람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데 너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선택해 구원하셨던 것처럼,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구원하기 위한 계획들을 준비하셨고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요나서는 결말이 없습니다. 열려 있습니다.
요나가 회개하고 돌아섰는지, 아니면 지금처럼 고집을 부리면서, 어린 아이처럼 때를 쓰다 죽었는지 성경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쉬고)
저는 요나의 결론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찬양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습니다.
은혜가 있어서 말씀대로 잘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다 전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쉬고)
요나의 열린 결말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의 의와 고집 그리고 생각을 끊어낼 수 있느냐?”
“그것을 내려놓는데 굉장한 괴로움이 따라올텐데 기꺼이 할 수 있겠는가?”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3인방 선생님들은 그 다음 해 15년 20년을 섬겼던 청소년부를 그만 두셨습니다.
많은 애정과 사랑과 에너지를 쏟은 공동체였기에 내려놓기 힘들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에 순종하고자 내려놓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그후 그 분들은 새로운 사역의 자리에서 훨씬 더 행복하게 즐겁게 사역하게 되였습니다.
(쉬고)
우리는 지금 새생명전도축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태신자 작정도 했습니다.
새생명전도축제, 태신자 작정을 하는 이유“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을 올바르게 전달하려면,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요나처럼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의 모습을 갖고 있거나 혹은 끊어내지 못한 습관과 고집 등이 우리에게 있다면
불신자.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제대로 나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그들에게 전달 할 수 없습니다.
(쉬고)
내가 먼저 경험한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내가 품은 태신자들도 온전히 누리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나부터 구원을 경험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쉬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구원을 베푸시기로 결정하셨고 그 일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해 반드시 역사하실 것이고, 우리를 통해 그들을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쉬고)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내 삶에서 요나와 같은 모습은 없었는지"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 말하면서 내 만족을 채우려 하지 않았는지"
반드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쉬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저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 믿고 확신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름답게 전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전히 전달되어지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두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새생명 전도축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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