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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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하는 교회 1. 하나님 이름을 위해 싸우는 교회 2. 하나님께 전적 헌신(충성)하는 교회 3. 대적을 알아보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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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하는 교회, 승리하는 교회

수10:1-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주제: 승리, 교회
https://ref.ly/logos4/Atlas?IsLegendExpanded=false&IsMediaCollectionExpanded=false&MapId=THEISRAELITESBATTLEGIBEONANDCONQUER-KO&MapStyleKind=Terrain
# 동백 꽃 필 무렵, 향미 잡으러 온 건달. 그의 편이 되어주는 동백이. 멱살 잡힌 순간 등장하는 용식이(황용식)
# 어린 시절, 4살 위의 형님. 태권도복 입고 등장. 빛나는 검은 띠.
다른 사람과 싸움이 붙었을 때 어떤 힘센 사람이 자기 앞에 나서서 대신 싸워 준다면 참으로 든든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 싸움을 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힘들고 처절한 정복전쟁 속에서 힘세고 능력 있는 누군가가 도와주고 함께해 준다면 그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헤쳐 나가며 강력한 적군을 상대로 싸우는 싸움이란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누가 함께 하셨습니까?
본문 10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싸워주신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잡고 있는 창과 칼을 더 굳게 붙잡게 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기적적인 승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적적인 승리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까?
1. 하나님 성호: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여호수아를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를 파하고 아이성까지 점령했습니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가나안 본토 부족들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2절에 보면 “크게 두려워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두려운 마음으로 심란했던 가나안 본토 부족들은 그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기브온 족속이 혼자서 이스라엘에게 항복해 버린 사실을 알고 더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2절 하반절에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동맹의 주력이었던 기브온이 자기 혼자 살겠다고 이스라엘에게 항복한 사실을 인하여 나머지 다섯 부족은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다섯 부족은 당장 연합군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배신한 기브온 족속부터 없애 버리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곧 여호수아에게 전령을 보내어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수10:6)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들을 도와줄 필요는 없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기브온과 화친을 맺은 것은 그들이 속임수까지 동원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9장에 나오듯이 기브온 족속은 마치 자기네는 가나안 본토가 아니라 먼 곳에 사는 부족인 것처럼 속여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과 화친한 것은 단순히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지 그들을 보호해주겠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가나안 본토인들의 분열과 싸움은 가나안 동맹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 싸움에 나서야 할 절실함이나 선명한 명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로서는 개입보다는 관망세를 유지하거나 혹은 지원군을 보낸다 하더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천천히 파병을 해도 무방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 족속의 다급한 요청을 받고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갔습니다.”(수10:7)
어째서 이스라엘은 하등의 이득을 얻지 못할 이 싸움에 개입한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이 싸움에 전군을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까?
앞서 9장에는 기브온 족속이 거짓말로 이스라엘과 화친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이 발각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장 몰살시켜버림으로써 자신들을 속이는 족속의 최후를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그 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9장 19절에 보면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까닭에 그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마찬가지로 가나안 연합군으로 인하여 곤경에 처한 기브온 족속을 도와주어야 할 이유도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을 세웠는데, 우리가 자기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내 성질에 맞지 않는다고 내 멋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기브온 족속을 도와주기 위해 모든 군사와 함께 이 싸움에 개입하게 된 단 한 가지의 이유는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을 높이기 위해 싸움터에 기꺼이 달려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 리가 있겠습니까?
8절에 “그 때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출정한 바로 그 때에!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수10:8).
만약 자기 욕심만 차리겠다는 식으로만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런 교인은 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큰 열매를 거둘 수 없으며, 그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결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적적인 승리를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욕을 채우기 위해 목회하는 목사를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자기 체면을 세우려는 마음으로만 가득한 장로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리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감투나 완장노릇하기만 좋아하는 명예욕으로 가득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불타오른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예수 생명을 전하기 위해 내 삶을 수단으로 삼아 손발을 움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사람이 창조된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깃발을 높이 들기보다는 도리어 교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만을 살필 뿐입니다. 이른바 소비자중심 교회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 교회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신자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편에서는 오직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며 그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약속하고 서원한 것을 생명을 바쳐서라도 꼭 지키려 하는 성도와 교회를 어찌 아끼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신자의 삶이, 교회가 나아가는 미션과 비전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동기와 목적에서만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앞장서 주실 뿐 아니라 홍해와 같은 문제를 뛰어넘게 하시며 큰 산과 같은 문제를 돌파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고 여호와의 성호를 영광스럽게 하고자 하는 신실한 목적만을 가지고 나아감으로써,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약속해 주시는 전능자의 도우심을 앞으로도 계속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 충성 : 전적 헌신
‘하나님께 전적 헌신’을 바쳐 충성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곧 전투에 돌입했는데, 9절에 그들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길갈에서 기브온까지는 약 20Km의 거리인데, 이스라엘군은 밤새도록 야간 행군을 감행한 후에 새벽녘에 적군에게 기습작전을 펼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적군의 의표를 찌른 훌륭한 전술이었고 단번에 승세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해 주셨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에게는 ‘대충해도 어떻게 되겠지.’ 하고 방심할 이유가 아니라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는 확신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확신 속에 싸움터로 나간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11절에 보니까 적군이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포도 폭격기도 없는 시절이었지만, 그 우박 덩어리야말로 하나님께서 투하해 주시는 ‘융단폭격’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 우박폭격을 감행하신 장소가 기가 막히게도 그 퇴각하는 적군들이 “비탈에서 내려갈 때”였습니다.
우박을 한 대 맞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자리에 그냥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내리막 비탈을 뛰어가던 가속도 때문에 땅에 뒹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우박 맞지 않고 뛰어 내려가는 자기편의 발에 부딪히면서 같이 넘어지게 되는 연쇄반응 효과까지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1절 끝에 기록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고 그 결과를 기록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호수아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수10:12)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이런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 안 되면 내일 하지 뭐’라는 식의 느슨한 태도가 아니라 ‘모든 적군을 한 명도 남김없이 섬멸해 버리겠다’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밤이 되면 추격전이 불가능해질 것이 뻔했기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향하여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 제게 낮 시간을 더 주십시오. 그래야 이 전투를 완전히 끝낼 수 있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광의 굴절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지구의 자전이 멈추었기 때문인지를 너무 궁금하게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무슨 시적 표현이나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정상적인 24시간 단위의 시간 흐름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초자연적인 사건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본문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라고 증거 할 정도로, 기적 중에서도 전무후무한 기적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밤새도록 달려가서’ 전투에 돌입하고 또 ‘새벽부터 온종일토록’ 쉬지 않고 죽도록 싸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달을 멈추게까지 하시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시간’이 모자라지 않도록 도와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다할 진, 사람 인, 일 사, 기다릴 대, 하늘 천, 목숨 명)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이 말의 중심은 앞부분에 있지 뒷부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선을 다한 자들에게 이처럼 불분명하게 대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최선의 노력과 최고의 정성을 먼저 쏟아 붓는 성도와 교회를 반드시 도와주시며 지금도 불 말과 불 성곽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과거, 교육국, RGB 라인과 빔 프로젝터 복제. 다중 모니터. 책상 밑 기어들어가고...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자기 일 하고 있어.
힘든 일을 도와주러 온 친구나 이웃은 땀 흘려 일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 다른 일을 한다면 어디 말이나 되겠습니까?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 놓고 도움을 받아야지, 의당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고서 남의 도움만 기다린다면 정말 염치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그런 뻔뻔한 자세를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 제단에는 조금도 내어놓지 않으면서, 그저 하나님께서 먼저 더 부어 주시면 그 중에서 조금 하나님께 사례하고 나머지는 자기 것에다가 더 같다 붙여서 계속 불려 나가겠다는, 지극히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는 교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너그럽고 후하신 분이라 해도, 어떻게 그런 뻔히 속 보이는 교인을 도와주시겠습니까?
시간도 귀중한 것이지만 문제는 무엇 때문에 아까워하는가에 있습니다.
내가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더 많이 놀기 위해서 시간 가는 것을 아까와 하는 것과, 주님께서 시키시는 선한 일을 더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까와 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예배드릴 시간에 먼저 예배드리고 기도할 시간에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주어진 24시간과 일주일을 바삐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나머지 공부할 시간, 일할 시간, 집안일 돌볼 시간도 다 주십니다.
해까지 멈추면서 도와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루 중에 새벽기도 시간 한 시간 지킨다고, 일주일 중에 주일 하루를 지킨다고 다른 시간이 모자라게 하시겠습니까?
오직 내가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돈과 힘과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그것들이 항상 모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 사람의 삶을 지원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물질과 힘을 주님을 섬기는 일에 다 바쳐도 여전히 모자라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다 바쳐 헌신해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면서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와 교회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그 필요한 물질과 힘과 시간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것을 꼭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원수 : 임전태세(臨戰態勢)
‘하나님의 원수에 대한 임전태세’를 갖춘 교회가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하게 됩니다.
15절에 이하에 보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 연합군들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져서 섬멸시켜 버린 사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16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그 날 전쟁에서 그 아모리 연합군의 다섯 왕들이 퇴각하던 도중에 “막게다의 굴”에 숨었는데 여호수아는 일단 그 굴을 봉쇄해 놓았다가 추격전이 완전히 끝난 후에 그들을 끌어냅니다.
그리고 25절에 있는 대로 여호수아는 자기의 지휘관들로 하여금 그 다섯 왕들의 목을 발로 밟게 한 후에 처형시키도록 합니다.
그것은 승자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힘을 과시하는 행동으로서, 그 전쟁의 진짜 승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은 무슨 원한이나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대적,” 즉 우상 숭배자들을 심판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28절에 “그 날에”라고 시작된 말은 바로 태양을 머물러서 하루 시간을 더 연장시켜 주신 바로 그 날에 다음에 이어지는 전투들을 계속 쉬지 않고 이어갔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행한 것이 그 앞의 성읍에서 행한 것과 같았더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님의 원수였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던 만큼 하나도 살려 두지 아니하고 다 깨끗이 진멸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으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가는 곳마다 그 명령을 철저히 준수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군이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수를 상대로 싸우는 한에는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 싸움을 이기게 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교회가 승리합니까?
하나님의 원수를 자기의 원수로 알고 싸우는 교회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하나님께서 그 교회 편이 되시는 것이고 그 싸움은 백전백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대적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원수입니까?
개척교회의 대적은 대형교회다?!라는 말도.
나를 괴롭게 하는 그가 하나님의 대적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원수요 대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이단이요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가 곧 하나님의 원수요 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가 이단을 정죄하고 우상 숭배 종교를 대항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결핍된 탓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원수가 교회의 대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모르는 교회, 아니 하나님의 원수를 가려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교회는 사실상 이미 적군과 동조하거나 내통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단’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다를 이, 끝 단자입니다. 비슷한 것 같은데 끝에 가보면 다른 것이 이단입니다. 안식교가 이단, 교주 안상홍의 죽음 이후에 두 번째 부인 장길자가 교주가 되어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이단입니다. 신사도운동을 펼치는 교회, ‘침례회’라는 그럴듯한 교단의 이름 뒤에 숨어있는 ‘구원파’ 이단교회가 바로 우리가 대적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천주교는 어떤가? 총체적 이단.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고 심판하실 상대와 손을 맞잡는 것, ‘종교 간의 화해’니 ‘기독교 교단 통합’ 등의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는 이 ‘적과의 동침’ 행위는, 결코 화해와 사랑의 연합이 아니라 함께 구덩이에 빠지고 함께 지옥에 떨어질 자멸 행위일 뿐입니다. WCC운동과 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 4대 종파 TV출연.
오직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해서 싸우는 교회만이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워 주시는 능력에 힘입어 승리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단과 싸우고 우상종교를 진멸하는 것이야말로 곧 교회 본연의 사명과 직결됩니다.
당연한 말이 아닙니까?
이단 교회의 수가 줄어들고 우상숭배자의 세력이 약화되고 무신론 정권이 붕괴되어야 참된 교회가 더 마음껏 전도하여 택자를 모으고 신실한 성도들이 온 세계 선교를 위하여 힘을 더욱 크게 떨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원수와 싸우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거나 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자신의 원수로 삼으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그 사람 편이 되지만, 하나님의 원수와 손을 잡으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도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적과 아군의 구별이 없는 희한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온갖 종교들 간에 교묘한 화해 무드만 더욱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하나님의 원수를 분명히 가려내고 그들을 대적하여 싸우는 대열에 끝까지 서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반드시 거두실 최후 승리에 꼭 함께 참예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40절은 ‘가나안 남쪽 지역’ 정복을 요약한 것이며, 41절은 ‘산지와 남방 사이 지역’의 정복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은 43절에 기록된 대로 오직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한” 대 승전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많은 땅,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들을 단번에 점령하여 자기네 영토로 삼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영적 싸움을 싸우고 그 전투에 이겨야 만이 그 자신도 살아남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싸움을 기피하고 그저 편하게 앉아 있으려고만 하면 ‘부흥’은 고사하고 ‘생존’ 자체까지 위협을 당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인들이 전적으로 헌신하고 죽도록 충성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전투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받을 ‘복’ 타령만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대신 나서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보수주의 교회들이 자유주의 교회들과 교단 통합을 하고 형제 사랑 어쩌고 하고 있으면, 결국 그 자유주의자들에 의하여 통째로 잡아먹히고 교회와 신자뿐 아니라 참된 진리 그 자체까지 잃게 될 날만 남아 있을 뿐인 것입니다.
아직은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날뛰고 있는 한, 그 사탄의 앞잡이들, 즉 ‘하나님의 원수’들이 곳곳에서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하)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적하여 담대히 싸우면, 그런 교회와 성도는 그야말로 ‘무적’이 되고 ‘필승’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임을 명심하면서,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고 ‘정성과 힘’을 다 바쳐 헌신하며 ‘하나님의 대적’을 향한 임전태세를 늘 유지함으로써 오직 이 ‘경향의 산성과 요새’를 중심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고 이기게 하시는’ 멋진 승리를 꼭 함께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개회찬송 9장
예배찬송 358장
설교후찬송 386장
(헌금특송 ‘분투와 승리’ 주제의 찬송 혹은 성가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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