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 주일오후설교(다니엘3:8-18) 세 친구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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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3:8–18 (NKRV)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9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서론
주일 오후 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저는 “세 친구의 믿음” 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 9월 29일이 추석이었습니다.
추석 명절이 지나면, 살이 2kg 은 찌는 것 같은데요. 다들 즐거운 추석 명절을 보내셨습니까?
사람들은 추석 명절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죠.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에, 추석을 지내로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항상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들 제사상에 절하는데? 어떻게 하지?
절 안 한다고 친척들이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항상 저는 제사상에 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선택에 직면했었고,
“절 하지 않겠다” 마음 속으로 다짐하곤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세 명의 믿음의 사람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신상에 절하지 않아서 생긴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세 명의 믿음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어떤 위협과 비난을 당하였는지?
또 무엇를 포기했는지?
그들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를 보고 /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때에 신앙 생활의 지표로 삼기를 원합니다.
[배경] - 먼저 본문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3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니엘 3:1 “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 높이 60 규빗 (27m) / 너비 6규빗 (2.7m) 짜리 금 신상을 만들어서, 두라 평지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언제 이 신상을 세웠느지? 년도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70인역 성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의 통치 18년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단3:1 In his eighteenth year (그의 통치 18년) Nabuchodonosor the king made a golden image
그렇다면, 다니엘서 3장의 시간적 배경은 - 예루살렘이 망하는 시점 전후가 됩니다. (주전586년)
2.다니엘과 세 친구들(사드락,메삭, 아벳느고)은 유다 사람들인데,
나라가 망해가지고 bc 605년에 바벨론에 끌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다의 귀족 출신이었는데, 끌려 올때에 나이가 15-20세 정도 되었습니다.
바베론에 끌려 와서, 3년 동안 바벨론의 언어와 학문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꿨는데,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면 죽을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하나님께서 그 꿈의 내용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1) 다니엘은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고,
2)다니엘의 세 친구 (하나냐/사드락, 미사엘/메삭, 아사랴/아벳느고)는 바베론 지방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니엘 2:48–49 (NKRV)
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49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이제, 이 사람들(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에 온지 약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유다에 살았던 년수보다 바벨론에 산 년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벨론 사람 다 되었다는 것이죠.
ex) 한국 사람들도 여러 나라로 이민을 많이 갑니다.
특히나 어려서 이민을 가는 사람들을 이민 1.5세대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있는데요.
그 분은 미국에 중학교때에 이민을 왔다고 했습니다.
영어도 아주 유창하고, 사고 방식도 한국 사람이라기 보다는 미국사람 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의 미국 사람처럼 됩니다. 미국 사람처럼 생각하고/ 미국 사람처럼 말하고/ 미국 사람으로 사는 것이죠.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우리나이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이제 시간이 흘러서 바벨론 사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바베론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바벨론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율법에 금한 음식을 제외하고),
바벨론 사람들과 같이 섞여서 살았습니다.
But, 한 가지 섞일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세 친구들은 바벨론 사람처럼 살았지만, 이 믿음의 사람들 (세 친구)이 바벨론에서 어떤 길을 걸어 갔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갔던 길을 우리도 여기서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3:1–7 (NKRV)
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3 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6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1)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 두라 평지에 금 신상을 세우고,
2) 금 신상의 완공을 축하하는 낙성식에 바벨론 모든 관리들을 참석하게 하고,
3) 나팔을 불때에, 금 신상에 절하게 하였습니다.
4) 7절에 보시면, 모든 백성들이, 악기 소리를 듣고, 금 신상에 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5)그런데,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고 불리는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였습니다.
6)이것을 본 바벨론 사람들이 이들을 왕에게 고발하였습니다. (8-12절)
7) 느부갓네살 왕은 이 소리를 듣고, 화가 나가 났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회유)
다니엘 3:15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8) 하지만, 세 친구들은 금 신상에 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9)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나죠.
24-25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다니엘 3:24–25 (NKRV)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들을 불에서 지켜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1:34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이것을 본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니엘 3:28–30 (NKRV)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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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여기 까지가,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세웠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약 20년 전에, 다니엘 2 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 통치 2년에 꿈을 꾸죠.
[사진/ 2장과 3장]
다니엘 2:1 “1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2장의 꿈이 어떤 꿈이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1)머리 - 순금
2) 가슴과 두 팔 - 은
3) 배와 넓적다리 - 구리
4)종아리 - 철
5) 발 - 철과 진흙으로 된 신상
그때, 사람이 손 대지 않는 돌이 나와서,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을 쳐서, 신상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신상 전체가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고,
그 돌은 큰 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
꿈의 해석?
다니엘 2:38–40 (NKRV)
38 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넘기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39 왕을 뒤이어 왕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40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금 머리 - 바벨론을 상징하고,
바벨론 이후에, 여러 나라들이 등장해서 다스릴 것인데, 이 나라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but,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장에서, 시간이 흘러/
느브갓네살 왕은 자신의 나라를 상징하는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퓰러 신학교 구약학 존 골딩게이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의 왕국(바벨론)이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것은 2장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2장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가르쳐주셨나요?
바벨론은 망할 것이고, 그 다음에 일어나는 나라들도 망할 것이고,
영원히 존재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바벨론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입니다.
3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 vs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
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느부갓네살 왕 -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왕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동참하게 만들었습니다.
but 2) 세 친구들 -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왕의 말을 거부하였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로서/ 이 세 친구들처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통치가 풍성히 이루어지길 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Just as 세 친구들 처럼/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첫번째, 어떻게 세 친구들은 이렇게 좋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성경은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8 For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And this is not your own doing; it is the gift of God,
하나님의 은혜 -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주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9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긴것입니다.
열왕기상 19 장 18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들 아시는 것 처럼, 엘리야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바알의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누가 참된 하나님인지 대결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가 450명, 아세라 선지자가 400 명이나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셔서, 누가 참된 신(하나님)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열왕기상 18:21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1)바알 선지자들- 송아지를 잡아 각을 뜨고,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바알 신을 하루 종일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아죠
2)엘리야 - 나무 위에 물을 뿌리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러니
열왕기상 18:38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이때, 엘리야는 자기만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알았습니다.
열왕기상 19:10 (NKRV)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요. 아니야 네 말고도 이스라엘에 남은자 7,000명을 남겨두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9:18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 말씀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땅에 남겨두신 자들이었습니다.
로마서 11 장 4-5 절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1:4–5 (NKRV)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처럼,
이 땅에 우상에게 절하지 않도록 남겨진 자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나서 그런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11:4)
ex) 추석 명절 차례상에 절하지 않았던 저의 어린 시절도 내 결심으로 그렇게 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세 친구들도 느부갓네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그들의 결심이 대단해서 그런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적용) 우리가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믿음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여기 그러실 분은 없으시겠지만, 혹시나 신앙 생활 오래하셨다고 자기 신앙을 자랑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을 볼 때에, 그것 밖에 안되냐? 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더 품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 친구들은 참으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생명까지도 포기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어떤 비난의 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는지 보겠습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믿음의 사람들은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가게 됩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은 외로운 길을 가게 됩니다.
1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이 말씀은 몇 몇 바벨론 사람들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고발한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낙성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음악 소리가 들리면 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만 절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고발하였습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요. 두라 평지에 모든 사람들이 절하고 있는데,
이 세 사람만 절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는 믿음의 길은 외로운 길 인것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이 세 사람은 바벨론 사람들로부터 참소 당하였고,
2) 느브갓네살 왕에게 회유를 당하였습니다.
이 세 사람이 절하지 않으니까, 느부갓네살 왕은 한 번 더 설득합니다.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그럼에도 이 세 사람은 이러한 비난과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ex) 우리는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로서, 외로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다고 때로는 비난받고, 또 협박을 받기고 하고, 또 회유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승관 장로님 직장 다닐때 이야기]
이번에 성지 순례를 가서, 장로님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숙소에 들어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장로님께서 직장 다닐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데, 장로님은 예수를 믿어, 술을 먹지 않으셔서,
여러 가지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였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여 주셨지만,
신앙 생활 때문에, 직장에서 여러가지 고충이 많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해봐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떳떳히 밝히고 다니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 라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 신앙을 밝힘으로써, 찾아올 불이익 때문에, 우리는 우리 신앙을 밝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But, 세 친구들은 목숨을 걸고 자기 신앙을 밝혔습니다.
나는 바벨론 신들을 섬기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 섬깁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길은 결고 쉬운 길이 아닙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주님과 함께하는 외로운 길입니다.
때로는 비난과 협박에 시달릴 수 있는 힘든 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우리가 가기를 원하는 길이 아닙니다.
베드로도,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이 길이 원치 않는 길임을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21:18 (NKRV)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그의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죠.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 인것으로 알고, 비난과 협박이 올때에도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3.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의 길도 가게 됩니다.
19절-23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느부갓네살은 세 친구들을 회유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용광로의 온도를 7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철의 녹는점이 1538도 라도 하는데요.
느부갓네살 왕은 용광로의 온도를 올릴 수 있을 만큼 회대로 올리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을 용광로에 던졌습니다.
당연히 이 용광로에 들어가서 살 사람은 없습니다.
그 온도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이 세 사람을 붙든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3:22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but, 이 세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총신대 김대웅 교수님 같은 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부활을 예표하는 사건으로 보기도 합니다.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세 사람이 던저졌으나, 신의 아들과 같은 사람이 함께 있었고, 불이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고, 겉옷 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다라고 합니다.
다니엘 3:27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이 내용을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전혀 살 수 없는데, 이들은 살아있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우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믿습니다.
why?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믿는 것이죠.
이 세 친구들은 바벨론 사람들의 비난과 느부갓네살 왕의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포기하면서 그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22-23절 말씀을 다시 보면,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이 세 사람을 붙든 사람은 죽었지만, 이 세 사람은 결박된 채 용광로에 떨어졌습니다.
이미 용광로에 떨어지기 전에 죽었어야 되는 것이죠.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이들과 함께 불 가운데로 떨어진 것 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길은 주님과 함께 죽음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주님께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 이스라엘/ 남 유다의 백성들이 구했던 우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 사람들이 구했던 우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 친구들과 같이 죽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지만,
정작 예수님과 함께 죽는 죽음의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본문은 육체적 생명도 포기하는 순교자들의 신앙을 보여준다고 많이 해석되어 왔습니다.
일제 시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 시대 7년 동안 감옥에서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참으로 입으로 담을 수 없는 고문을 당하시고, 믿음을 지키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의 선배님들을 보면 얼마나 부족한 지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은혜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까지 내 뜻도로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았는데,
믿음 주셔서, 참 사람들의 비난과 협박에도 믿음 지키게 하시고/
또 주님과 함게 죽을 수 있는 은혜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39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죽을 수 있도록 기도하셨고, 그것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로서,
내 뜻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날마다 삶의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죽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부족하시다면, 하나님께 더 은혜 주셔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을 수 있도록 해 다랄고 기도하고.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끝가지 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더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됩시다.
결론 - 말씀 정리하면
우리는 세 친구들과 같이 하나님께 은혜 받은 남은자들입니다.
이 남은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믿음의 길은 남들이 가기를 원하지 않는 길입니다.
외로운 길이고, 심지어 우리는 죽음의 길로 날마다 걸어야 합니다.
이 믿음의 길 끝까지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