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즐겁고 기쁜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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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백성의 온전한 산 소망
하나님 나라 백성의 온전한 산 소망
베드로전서 1:3–9 (NKRV)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지난 주에 우리는 무엇을 나누었는가? 사람을 죽이는 저주로 사용되는 혓바닥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입술로 살기로 함께 결단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 아래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진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의 말, 사랑의 언어가 가득해야 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이다. 오늘 말씀의 저자는 베드로이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고, 예수님이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아람어로 하면 게바이고, 헬라어로 말하면 베드로이다. 이때 당시 소아시아(현재 튀르키예 지방)에 살고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부터 핍박을 심각하게 받고 있었던 당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3절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라는 고백으로 찬양하는 이야기가 나타난다. 구약에서는 절대로 등장할 수 없는 단어가 ‘하나님 아버지’이다.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을 부를 수가 없어서 야훼, 아도나이, 여호와로 부른다. 그렇게 거룩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세상 어떤 신보다 왕보다 뛰어난 분을 어떻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돌이켜 나를 위해서 살던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자에게 새로운 정체성으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받아 우리에게 소망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소망이 점점 더 자라나고 확신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부활의 능력은 답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그 위대하신 주님이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썩어지지 않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을 주고 싶어하신다. 오늘 주님께서는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고 버티고 완주하는 사람에게 썩어지지 않는 유업을 잇게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셨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결국 바벨론 포로기에 빼앗기게 되고, 로마에게 점령 당했지만 결국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의 나라가 다시 재건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이처럼 주었다가 뺐는 것이 아닌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의 것은 마치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아이폰 15프로를 받으면 일 년 뒤에 아이폰 16이 등장하면서 쓰고 있던 아이폰은 새로운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오늘 베드로서의 말씀에서는 현세의 변하는 물질이나 땅이 아니라 하늘에 영원한 복을 간직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것이 다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리스마스 이브의 선물보다 얼마나 더 기쁜 일인지 모른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종말이 오면 어떨 것 같은가? 핵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무차별하게 학살하며 전염병이 가득하거나 빙하가 녹아 물에 잠길 것 같은가? 그러나 베드로후서를 읽으면 베드로가 전하는 말세에는 세상이 완전히 불에 타서 이 세상이 소멸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때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안전하게 보호해주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현재 삶이 고단하고 힘들고 괴롭겠지만 그러한 상황을 기뻐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할 때, 주일에 일어나는 것부터 누군가는 고단할 수 있다. 찬양팀이나 임원을 하는 친구들은 토요일에도 교회에 나와 자신의 시간과 삶을 드려 헌신한다. 그때 매우 피곤하고 지치고 쉬는 날이 없는 듯한 어려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시간을 끝까지 버틴 사람은 분명한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에 여러분이 무릎에 성장통이 심해서 의사선생님께 찾아갔더니 키가 엄청 클 것이라고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성장통이 너무 아프다고 키크는 것을 거부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여러분이 하는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이 없이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어렵다. 우리의 신앙도 삶의 고난과 고통이 클수록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온전한 모습으로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매일마다 꾸준히 빠짐없이 가까이한다면, 분명히 24시간의 시간동안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며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심을 누리길 소망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접보고 경험했으나 그들이 불순종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나님의 큰 이적과 기적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직접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알지 못하는 맹인과 같다. 그러나 처음과 끝을 다 아시는 주님을 확신하며 따라가는 삶이 곧 구원에 가까워지는 삶인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구원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 가지라도 실천하려고 하는 그 마음과 동시에 그에 따른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익을 누리는 삶이 구원을 누리는 삶이다. 매순간 큐티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경험하시라.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고난이 즐겁고 기쁜 이유’이다. 나는 헬스를 열심히 한 날에는 반드시 근육통이 온다. 그 근육통은 근육을 찢는 행위이기에 너무 아프다. 그렇게 근육이 찢어지고, 회복하는 반복의 과정을 통해 근육이 자라고 커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학교, 가정, 교회 안에서도 수많은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다. 사람은 학업이 힘든 것보다 관계가 어려울 때가 가장 힘들다. 그러나 그 갈등을 피하고 직면하지 않고 남탓하는 사람은 절대로 인격이 아름다워질 수 없다. 피하면 피할수록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힘듦과 어려움과 갈등 속에 있을 때, 나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며 주님이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을 거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앞으로 다가오는 고난과 힘듦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변태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 가운데 삶에 고난이 없는가? 그렇다면 내년에 시작되는 제자훈련을 꼭 받으시라. 삶이 아주 정신없이 바쁘지만 반드시 그에 따른 유익이 있음을 확신한다. 혹여나 고난 가운데, 삶의 힘듦 가운데 있는가? 여러분 옆에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 주님께 “나는 할 수 없습니다”고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라고 날마다 기도의 자리에 나와 고백해보라. 위로하시며 힘주시는 주님을 경험할 것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드림인 친구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소망하며 닥쳐오는 고난을 주님과 함께 싸우고 걸아가며 승리를 맛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