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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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us 3:5 NKRV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해마다 이뤄지는 새생명축제 가운데, 우리 신일교회에서는 태신자를 품고 기도하며 새생명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작정하며 전도합니다. 3.7운동을 하고, 새생명축제를 위해 릴레이 금식기도와 세이레심야기도회를 진행하는 것 모두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근원의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는 왜 새생명축제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일까요?
2.어떤 분들은 매년 새생명축제가 다가오면 부담에 휩싸이시고 도망가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새생명축제만 없어도 신일교회를 다닐만하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전도하지 않으면 부담을 주는 분위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미 태신자 작정 때부터 적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주변에 전도할 사람은 없는데 데리고 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자체가 번거롭습니다.
3.그러다보니 태신자를 품어보고자 하는 마음부터 벌써 사라지고, 작정서에는 최대한 이름을 적지 않습니다. 태신자를 새생명으로 해산하는 수고를 애초에 포기하고, 최대한 이 시기를 잘 피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입니다.
4.그러나 저는 이러한 현상이, 새생명의 의미를 사람을 데리고 오는 전도의 개념으로만 축소시켜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했습니다. 축제이긴 한데 그냥 사람이 모인 전도행사쯤 생각하실 수 있겠다 싶습니다.
5.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새생명은 단순히 복음을 듣는 자리에서 결신하고 교회 등록만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친다면 사실 새생명축제의 명칭부터 성도초청축제, 성도등록축제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6.오늘 본문의 ‘중생’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팔링게네시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시 출생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거듭남, 중생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는 새생명이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전 형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7.사실 이방 철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새생명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구절은 우리에게 이러한 중생이 있다는 것과,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줍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8.조직신학에서 중생을 다룰 때도 기본 개념은, 거듭난 영혼만이 살아서 복음을 듣고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중생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 세계에 무지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복음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관심도 없고 오히려 미련히 여기며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주변의 가족, 친지, 이웃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복음 초청을 거부합니다.
9.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결신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삶이 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중생하여 새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 이후로 하나님 앞에 죄인인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영혼은 죽어있고, 육체만 살아있습니다. 영혼이 없다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합니다. 마치 시체에는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냄새가 소용없듯이, 영적 죽음의 상태는 하나님께 관심이 없습니다.
10.하지만 성령님께서 그의 영혼을 만지시고 살리시면 그에게 새 일이 일어납니다. 이제 그는 복음의 부르심을 듣기 시작합니다. 귀기울여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합니다. 하루 전만 해도 복음에 관심도 없고 거절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그의 태도나 생각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식의 성찰 끝에 결론을 얻어 바뀐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의식 넘어 무의식에서 새생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11.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는 금식하며 저녁마다 모여 부르짖으며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적혀 새생명으로서 구원을 얻도록, 그의 영적 죽음을 성령께서 생명으로 바꾸시도록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단순히 새생명축제 당일을 위해서만 아니라 새생명의 탄생과 성령의 역사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남은 기간을 그러한 열정으로 새생명의 축제가 일어나도록 기도하고 전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중생(重生, regeneration, rebirth) 헬라어로 ‘팔링게네시아’(παλιγγενεσία)인데, ‘다시’란 뜻의 ‘팔린’(πάλιν)과 ‘출생’이란 뜻의 ‘게네시스’(γένεσις)가 결합된 말로 ‘다시 태어남’이란 의미다. 즉,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서(엡 2:1,6) 새로운 생명(영생)을 얻게 되는 성령의 역사를 말한다(고후 5:17; 엡 2:5).
예수께서는 이를 ‘거듭남’(요 3:7), 바울은 ‘부르심’(롬 1:5,7; 8:30; 갈 1:6)이라 표현했다. 이렇게 중생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요 3:3,5). 중생은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① 죄와 허물로 죽은 영적 생명을 근본적으로 소생시키는 전인격적인 변화이다. 따라서 사람의 노력으로 육신에 속한 지정의(知情意)를 개발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②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즉각적인 변화이다.
③ 은밀하며 가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를 즉각 인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생이 회심(回心)과 동시에 일어날 때는 변화를 의식하게 된다.
④ 인간의 의지가 아닌 성령의 단독 사역이다(겔 11:19; 36:25; 요 1:13; 고후 5:17).
⑤ 사람과의 협력이 아닌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역이기 때문에(시 33:11) 인간의 사정으로 폐기(취소)되거나 저항할 수 없다(요 6:45). 그런데 알미니안파(Arminian)는 중생을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 사역으로 본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피조물을 회복시키시는 신적인 행위인데, 이를 통해 피조물은 비로소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중생은 죄로 인해 타락한 도덕적 속성이 회복될 유일한 길이다. 중생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비로소 참여할 수 있게 된다(요 3:3).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회심할 때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정체성을 주신다. 이런 회심 사건은 매우 강력한 신적 행위인데, 요한은 이런 거듭남을 “위로부터 오는” 사건으로 이해했다(요 3:3).
바울은 이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후 5:17). 거듭남은 신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불멸성과 같은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 중생은 우리의 몸에 적용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내적 자아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일단 성령께서 신자의 삶에 거듭남의 은혜를 부어주시면 신자들의 육체적 몸도 부활 시에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중생의 역사가 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의식적 경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정확히 언제 중생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고 계신다.
중생과 회심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회심은 복음으로 향한 초청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지만, 중생은 신자의 내적 자아를 갱신시키는 신적인 행위로 중생 이후에 회심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중생과 회개와 믿음 사이의 시기적 관계성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신자의 구원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믿음에 근거했던(단동주의) 개혁신학자들은 중생이 회개와 믿음 전에 반드시 위치한다고 전통적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에 있어서 새로운 삶이 다시 부여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구원의 과정 가운데 일정량의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았던 사람들은(신인협력주의) 중생이 인간의 회개와 믿음에 반응하는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했다. 일부 개혁신학 전통도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는데, 회개와 믿음 그 자체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결과로 이해하면서 받아들인다.
비록 중생이 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성화에서부터 영화로 향하여 가는 평생의 변화의 과정의 시작점으로 중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평생의 변화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자들은 반드시 성령 하나님과 협력해 나가야 하며 끊임없는 영적인 훈련을 통해 성령의 사역을 받아 누리는 토양을 신자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성령을 통해 신자들은 “새 자아를 입는 일” 혹은 “그리스도를 입는 일”이 가능케 된다. 이는 옛 자아를 벗어버리고 이전의 죄악된 습관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사역과 병행되어 일어난다.
신약 성경에서 중생은 세례와 연관되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중생과 세례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신학 전통들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요한복음 3:3–8과 디도서 3:5에 근거해 일부 전통들은 물 세례가 중생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이런 전통들은 유아 세례를 실행했다. 세례와 회개와 믿음 사이의 협력 관계를 믿는 전통들은 이미 일어난 거듭남의 외적인 상징적 표지로서 세례를 이해하면서 회개와 믿음에 근거해 중생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통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한 자들에게만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생은 창조 그 자체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바울에 의하면, 창조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왜곡되었다. 온 세상이 죽음과 부패로 가득 찬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바울은 인간 역사가 종지부를 찍게 될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고 왜곡된 피조물이 해방되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와 비슷하게 마태복음 19:28에도 모든 것이 회복될 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날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거듭나게” 될 날이 될 것이다.
주요 구절
John 3:3–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Matthew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Romans 8:1–17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Romans 8:19–23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Ephesians 2:1–6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Ephesians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Colossians 3:9–10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Ezekiel 11:19–2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Titus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2 Corinthians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질문 - 이 구절에서 '씻다', '중생하다', '새롭게 하다'라는 사건 단어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1. '중생'과 '갱신'은 모두 '씻음'의 결과이며, 둘 다 성령에 의해 일어납니다[Alf, El, Hn, Lg, Lns, NCB, SSA, TC]: 하나님은 우리를 씻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결과 우리는 성령에 의해 중생하고 새로워졌습니다. 성령은 또한 중생의 대리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Lg]. 2. '씻음'과 '거듭남'은 모두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수단입니다[Blm, EBC, EGT; TNT]: 하나님은 우리를 씻음으로써 우리를 중생(또는 중생으로 구성된[EGT])의 결과로, 그리고 성령에 의해 새롭게 됨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3. '중생'은 '갱신'으로 설명됩니다[GNC, Herm, HNTC, MNTC]: 하나님은 우리를 씻음으로써 우리를 중생, 즉 성령에 의해 새로워지는 결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질문-λουτροῦ '씻다'는 무슨 뜻인가요? 1. '씻다'는 영적 정결에 대한 은유입니다 [EBC, EGT, GNC, Hn, Lns, SSA; TNT]: 우리는 우리의 죄에서 씻겨졌습니다. 2. '씻음'은 세례에 대한 은유입니다 [Alf, Blm, El, Herm, HNTC, Lg, MNTC, NCB, TC]: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일부 주석가들은 이벤트 대신 λουτρόν을 이벤트가 열리는 '김' 또는 '세례 글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Alf, Lg].
"중생"과 거의 동의어인 "갱신"은 연결된 속격 명사 "리뉴얼"입니다. 이 단어는 어떤 사건과 관련하여 단독으로 사용됩니다(롬 12:2에서 "마음의 새로움"이라는 목적어를 사용합니다). 이 생각에 대한 가장 유익한 유사점은 고후 5:17("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과 롬 6:4(세례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새로운 삶"으로 이어짐)이며, 이 두 구절은 회심과 관련하여 새로운 삶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필립 H. 타운어, NICNT
λουτροῦ παλιγγενεσίας는 "새로운 시작의 세척" 또는 "회심의 세척"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참조: 이세베르트, 134, 137; 참조: 겔 36:25-28). …여기서 일련의 속격이 언급하는 개념은 "씻음", "새로운 시작", "갱신", "성령"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관련 구절에서 물/세척/정결의 두 개념과 하나님의 영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구별되며 인간의 내적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내적 정화와 내적 변화는 관련되어 있지만 에스겔서에서는 구별됩니다. 36:25-26(그리고 고전 6:11에는 "씻음"과 "거룩함"이 별개의 개념으로 나열되어 있음에 유의하십시오). …그러므로 고전. 3:5에서 바울은 이 내적 변화를 겔 36:25-27과 유사한 방식으로 두 가지 다른 관점에서 고려합니다. 36:25-27 및 고전 6:11. 그는 네 개의 속격 명사를 가장 구별하기 쉬운 용어를 앞뒤에 배치하고 그 결과인 변화를 나타내는 용어를 가운데에 배치하여 체계적으로 배열합니다. 첫 번째 속사 쌍은 과거의 죄로부터의 정화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씻다"와 그 씻음을 내면의 변화, "새로운 시작"으로 말하는 단어입니다(노르비, "씻다" 참조). 두 번째 쌍은 받은 새 생명과 살아가야 할 새 생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새 생명을 주시고 지탱해 주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그분의 일을 하셔야 하므로 그러한 새 생명을 내적 변화, "갱신"으로 말하는 단어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ἀνακαίνωσις** (롬 12:2; 고후 4:16의 관련 동사 ἀνακαινόω**, 골 3:10히 6:6의 ἀνακαινίζω** 참조. 6:6)의 기본 어근 καιν-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며, 형용사 καινός는 신약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엡 4:24)에 대해 이런 의미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작동 동사 "구원"이 한때 죄의 노예였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경우, 설명 명사 ἀνακαινώσεως의 의미는 "갱신" 또는 "새로 만들다"인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창조물"이 생겨나게 하는 행위, 즉 "처음이자 유일한 갱신, 이전에는 없었던 생명의 창조"(TDNT 요약, 388; J. Behm, TDNT III, 447-54, 특히 453 참조). 그리스도인과 그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된 지식으로 새로워지는 것은 이러한 초기 중생의 기초 위에 있으며, 따라서 이 용어와 그 동사는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이와 관련된 의미로 사용됩니다(예: 롬 12:2; 골 3:10).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는 최초의 갱신을 성취하는 분을 나타냅니다(참조: 살후 2:13: "성령의 거룩함을 통한 구원"): "성령"은 쇄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입니다. 이 초기 "갱신"과 바로 전에 언급된 "중생의 씻음"은 겔서에서 볼 수 있는 내적 변화의 두 가지 측면입니다. 36:26-27; 요 3:5-8; 고전 6:11: 물/세척/청결 및 성령에 의한 중생/성령에 의한 갱신/초기 성화.
조지 W. 나이트, NIG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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