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에벤에셀(삼상7:12-14)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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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0월 4일 수요일
제목 : 지금까지 에벤에셀
본문 : 사무엘상 7장 12-14절
1. 지금까지 에벤에셀
1) 지난 1년 6개월, 지금까지 에벤에셀
한 해의 끝이 다가올수록 유독 떠오르는 몇 개의 본문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이 제게는 그중 하나 입니다. 이 맘 때가 되면, ‘에벤에셀’이 왜 그리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매년 빠짐없이 생각이 나고 또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아마 저와 비슷하게 이 맘 때가 되면 에벤에셀을 떠올리시는 성도님도 일부 계시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이 시점이 되면, 한 해를 돌이켜 보는 기점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지난 1년, 또는 지난 9개월, 10개월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를 돌아보는 것이지요.
저도 이어진교회의 개척 후 1년 6개월의 여정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작년 4월, 첫 예배도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예배 후 출산을 위해 곧장 병원에 갔었고, 그렇게 본의아니게 이어진교회 첫 출산으로 주보에 아엘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아엘이를 보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의사소통을 하는 제 친구가 되어 버렸으니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또 저는 작년 전교인가을마당에서 새가족을 위한 VIP존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별히 제가 무언가 한 것은 없지만, VIP존에 앉아 계신 새가족들의 표정이 해맑았던 사진 한 장이 제 기억에 남아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작년 가을특별새벽부흥회가 기억에 강하게 남습니다. 말씀으로 채워지는 은혜도 상당했고, 특송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감동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잔치 같았습니다. 피곤했고 또 추웠지만, 크리스천이기에 누릴 수 있는 새벽녘 축제 같았습니다.
지난 1년 6개월 하나 하나 다 떠올려보면 물론 고난도 어려움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감사며,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을 묵상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2) 하지만 이 맘 때여야 떠오르는 에벤에셀 하나님
그러니 “지금까지 에벤에셀” 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멋있는 표현인지 모릅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 흘러가는대로 살았는가 싶었는데, 되돌이켜 보니 모든 순간,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내가 살아가게 된 것이니, 이는 얼마나 큰 은혜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이 맘 때가 되어야만 에벤에셀 하나님을 묵상하게 될까?”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맘 때가 되어야만 에벤에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닌, 날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에벤에셀의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2. 왜 우리는 매일 에벤에셀 하나님은 못 보는가?
1) 언약궤를 부적으로 여긴 이스라엘 : 하나님을 지니처럼
먼저 진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진단입니까? “왜 우리는 매일 에벤에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가?” 에 대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이를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모습을 보며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을 보면 두 번의 전투가 기록되어져 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괴롭히자 이들이 에벤에셀에 진을 칩니다. 하지만 이들은 4,000명의 죽음과 함께 처참한 패배를 맛보게 되지요. 이때 이들이 생각합니다. “아! 하나님의 언약궤가 없어서 졌구나! 그게 있으면 우린 전투에서 이길 수 있어!”
그래서 이들은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언약궤가 전쟁터에 들어오자 이들이 환호합니다. 왜요? 이들에게 있어 언약궤는 ‘승리’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투로 30,000명이 죽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패배의 원인을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으로부터 찾았고, 그래서 언약궤를 가지고 나아갔지만, 결말은 처참한 죽음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들은 패배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즉 언약궤를 그저 부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승리의 부적 정도로 여겼기에 이들은 에벤에셀에서 실패와 패배의 수치를 맛보게 됩니다.
2)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여긴 블레셋 : 무늬만 크리스천
반대로 전투에서 승리한 블레셋은 언약궤를 챙겨갑니다. 그저 전리품의 목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그들이 섬기던 우상, 다곤이 있는 신전에 들어갑니다. 이스라엘의 패배, 빼앗긴 언약궤. 정말 수치 중 수치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고 계셨고, 어쩌면 스스로 상품화 되기를 거부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전투에서는 패배해 언약궤를 빼앗겼지만, 그렇다해서 하나님의 능력까지도 빼앗아 간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능력으로 임하셨습니다. 어떻게요? 다곤의 머리를 깨버립니다. 또 다곤의 손을 깨버립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생각할 수 있는 그 힘을, 행동할 수 있는 그 동력을 모두 잘라 버리신 것입니다.
어느 한 목사님께서 이런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설명하셨는데, 참 잘 설명하셨다 생각이 들어 한 번 나눠보려 합니다. “거룩함이 상실되자 그곳에 수치가 찾아 왔고, 이방 땅에 거룩함이 들어가자 그들에게 두려움이 찾아 왔다.” 고 말입니다.
3)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
이쯤에서 한 번 점검해보길 원하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위치에 있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저 부적처럼 말씀을 붙들고 오직 세상이 말하는 부와 권위 그리고 성공을 추구하고 있는가, 또는 블레셋처럼 말씀을 전시상품 마냥 보관만 하며 겉모습만 크리스천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목회자인 저도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그 하루를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려 하면 너무나 힘이 듭니다. 예수님 처럼 살아가는 것이 구속 당하는 것 같고 그 안에서의 자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또 읽어 그 하루를 살아가는 날은, 예수님 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재밌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전 날의 구속이, 오늘은 말할 수 없는 자유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제 아내가 ‘여자들은 호르몬의 노예’라고 표현합니다. 그 표현을 빌려 ‘크리스천은 말씀의 ’ 이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바라옵기로는 말씀의 거룩함을 날마다 묵상함을 통해, 우리의 삶의 본질이 놀랍게 변화되는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3. 매일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누리다
1) 하나님께 돌이키다
우리의 삶이 점검 되었고, 이제 매일의 에벤에셀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면,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니 첫 번째 과정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무엇입니까? 매일 에벤에셀 하나님을 누리기 위해선, 첫 번째,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입니다. 이들이 전투에서 패배했던 이유는 언약궤가 없어서도, 이들의 힘과 능력이 나약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 입니다.
이제야 원인을 알자 그 원인을 바로 잡기 위해 나섭니다. 지금껏 따르던 이방신들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아스다롯, 풍요와 사랑과 전쟁을 상징했던 이방신 마저도 정리하게 된다는 것이죠.
2) 예배를 회복하다
그렇게 하나님과 자신을 멀게 한 죄를 떨쳐내자 이들이 밟은 두 번째 스텝이 등장합니다. 9절입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지금껏 따르던 세상 헛 것들을 다 떨쳐내고, 이제는 정말 자신들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먹이시고 재우시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로 나아갑니다. 즉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고 축복입니까? 심지어 지금 이 자리에 우리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눠 먹음이 또 얼마나 큰 감사제목입니까?
저는 지금 우리 함께 모인 은혜가 매주 주일마다, 그리고 이번 특별새벽부흥회를 통해 더욱 커져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더욱 간절함으로 엎드려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제가 이번 특새를 통해 목표를 세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에이든 윌슨 토저 목사님이 쓴 책 중 이런 내용이 있는데, 제 이번 목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
하나님의 부름 받아 이곳에서 목회자로 세움받아 나아가지만, 저 역시 하나님 말씀 앞에 예배자로써 온전히 세워져, 온전한 예배를 통해 그 은혜를 채움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저와 여러분 모두 예배의 회복, 예배의 기쁨과 감격, 예배의 사모함이 매일을 통해 고백되어 지고, 그로 인해 날마다 함께 하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누리길 소원합니다.
4. 지금까지에 머물지 않는 신앙
온전한 예배를 통해 회복의 대로를 걸었던 이들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며, 그 돌을 ‘에벤에셀’ 이라 칭합니다. 그리고 그 돌은 기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에벤에셀은 과거의 실패와 패배 그리고 수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넘어 현재 역사하시고 일하시고 계심에 감사하며 이에 기대하게 하셨고, 앞으로는 이루어가실 하나님의 언약을 소망하며 살도록 합니다.
이는 곧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이 지금의 기대와 미래의 소망으로 이어져 갈 때,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대하고 소망하여 매일 한 걸음 내딛어 지금을 넘어 내일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 되길 축원합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지금까지 에벤에셀
-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어 나아가는 우리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무지해 지금껏 인도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 온전히 내 마음을 드리길 원합니다. 나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의 고백을 날마다 드리는 우리 되게 하소서
2. 지금까지 에벤에셀 + 주 은혜임을(후렴)
- 매일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누리며 끝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길 고대합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주님을 의지하는 자의 삶 되게 하소서. 매일의 예배가 주님의 은혜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 곧 다가올 특별새벽부흥회가 주님의 은혜로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주여 우리를 받아 주시옵소서. 주께서 찾으시는 예배자 되게 하소서.
3. 예수님만을 더욱 사랑
- 나 사는 동안 주를 더욱 사랑하며, 무엇보다 주께서 부어주시는 그 사랑을 내가 누리길 원합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 앞에 아름다운 신부의 고백을 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더 나아가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우리되게 하소서. 한 영혼을 전심으로 품어, 사랑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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