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는 것'과 '중요한 것을 아는 것'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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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9–29 NKRV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1. 지식의 저주에 갇힌 우리

지식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마블 영화에서 이 말을 사용한 대사가 나왔었는데요.
지식의 저주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배경)이 상대방에게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적 편견”을 의미합니다.
지식의 저주가 많이 나타나는 현장이 어디냐면, 제가 교수님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대학교 수업을 들으신 분들 중에 유독 수업 전달이 잘 안되고,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는 교수님들을 보신 적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것이 전부 여러분의 문제는 아닐겁니다.
분명히 여러분의 친구, 동기들이 같이 느끼는 그런 교수님이 계시기도 하단 말이죠.
그런 경우 이 지식의 저주에 빠진 교수님들이 종종 있는 겁니다. 교수님들은 정말 다 그 분야에 전문가이신 분들입니다. 그 분야에서 학문적 지식으로 권위를 가지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와 소통이 잘 안되고, 수업의 전달이 잘 안될까요? 어쩌면 교수님들이 학생들이 ‘이건 당연히 알거야’라고 전제하는 것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전제가 많으면 소통이 더 어려워지겠죠.
그래서 교수 능력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이 학생이 정말 조금 안다’라고 전제하고 가르치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내용을 얘기하냐면, 어쩌면 그 소통에 있어서 답답한 교수님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나타나는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식의 저주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정보들, 유용한 정보들 뿐만 아니라 그다지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까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sns, 유튜브, 스마트폰, 미디어 매체 등을 통해서 정보가 끊임없이 전달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들을 듣고, 알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많은 정보들을 알고 살게 됩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요.
그런데 이런 지식의 과다가 큰 문제점을 낳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든다는 거에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가, 어떤 지식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를 잘 판단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지난 주 본문을 통해서 유대인들 중 율법주의자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율법의 엄격한 기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그들의 의로움으로 여기는 자들이죠.
그런데 38년된 병자가 병 고침을 받고, 그의 삶을 다 구원받은 이후의 기쁨을 누리며 길을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왜일까요? 그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이죠.
안식일은 율법주의자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율법입니다. 안식일에 500m 이상 돌아다니면 안식일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죠.
그런 자들이 율법주의자들이었죠. 심지어 그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까지 박해하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런 율법주의자들에게 무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행함(19절)

본문 19절을 볼까요?
요한복음 5:19 (NKRV)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예수님 당시에 문화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가족 관계면서 가업을 잇는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아버지가 목수다, 그러면 아들도 목수가 돼야 합니다. 그것이 미덕이고, 당연한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는 목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면 ‘그의 직업은 목수다’라고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하니까 유대인들이 분노했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선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인 예수님 자신이 그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거죠.
마치 하나님은 존재시지만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하시는 것들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보여주시고,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이 행한다는 말이 되는거죠.

2. 아버지께서 행하시는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 (1) : 살리심, 영생을 주심 (21-26절)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대로 행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십니다.
요한복음 5:21 (NKRV)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는대로 하신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사역은 살리는 사역입니다.
또 이 살리는 사역을 다른 말로 예수님이 표현하십니다.
요한복음 5:24 (NKRV)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 “생명으로 옮김” 이것이 바로 살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죠.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은 “살리는 사역”입니다. 이것은 곧 “영생을 주는 사역”이고, “생명으로 옮기는 사역”입니다.

3. 아버지께서 행하시는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 (2) : 심판하심 (27-29절)

두번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심판의 권한을 아버지께서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27 (NKRV)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 심판하는 권한을 맡게 되신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 일은 이제 미래의 일입니다. 종말론적이죠.
마치 가업을 물려받는 아들에게 가업의 모든 권한을 넘기시듯이 하나님의 권한을 예수님께 다 주시죠.
그것은 “생명을 주는 권한”이며, “심판하시는 권한”이었습니다.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1. 율법 지식의 저주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누구에게 말씀하고 계신지 한번 짚고 넘어가봅시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정말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이 613개의 계명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 613개를 모두 다 외우고 있을 뿐더러, 그것을 다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십계명을 다 외울 수 있는 분 있나요? 어렸을 적부터 외우고, 훈련받은 분들이 아니라면 사실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여러분 중에 성경 구절을 10절 이상 외우시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아마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613개의 율법을 다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우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의 의미, 이유까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율법의 지식에 참으로 능통한 자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참으로 아까 서두에 말했던 “지식의 저주”에 빠진 자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 지식의 저주”에 빠졌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지식의 저주는 무엇이었나요? 정말 많이 알아서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저주 아니었습니까?
이들도 마찬가지죠. 정말 많은 율법의 지식이 저주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시며, 심판하시는 심판주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율법 지식의 저주가 참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하는 베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정작 정말 중요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었는데 율법의 지식 때문에 그렇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 지식의 저주입니다.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1. 정보 과다로 인한 지식의 저주로 정작 중요한 예수님을 놓치는 세대

우리는 정말 많은 지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렇게나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정말 많은 유익들이 많지요. 그러나 한번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나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서 참으로 행복합니까?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나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서 진짜 생명을 얻습니까?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나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서 영원한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까?
정작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는 분, 생명을 주시는 분, 심판을 면하게 하셔서 부활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 정말 그 수많은 sns, 유튜브 손가락질 몇번에 쏟아지는 우리를 즐겁게 하고, 어떤 때는 유용한 정보를 주는 그 지식들이 정말 여러분을 행복하게 합니까? 생명을 줍니까? 심판을 면하게 해줍니까?
실상 그 손가락질 이후에 남아있는 허무함은 우리에게 어느 순간 불안함과 불행을 선물해줍니다.
오히려 그 손가락질이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줄 것 같지만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우리는 느끼죠.
그런데도 쏟아지는 지식 때문에 정작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1.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 : 살리기 위해서, 심판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정말 말씀하시고자 하는게 뭘까요?
예수님은 그 수많은 율법의 지식 속에서 참된 생명을 주시고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이 율법의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라

1.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지식”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라

2.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그 지식을 넘어서 예수님을 먼저 생각하라

이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또한 생명을 받은 이후의 심판을 면하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실상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죠. 참된 삶의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것. 그 영생을 얻고싶어 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애써 무시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망이 없는 지식 속으로, 그 지식의 저주로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그 지식의 저주를 벗어나 생명을 주는 참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합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의 릴스를 넘기기 시작할 때, 알고리즘을 따라 그 세계를 유랑할 때
도저히 멈추지 않아지는 생각의 우주 속에서 둥둥 떠다닐 때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심판이 아닌 부활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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